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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5/23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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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권능과 신성과 지혜와 힘과 영예를 받으소서. 알렐루야.

주님, 기쁜 마음으로 거행하는 이 파스카 신비를 저희가 날마다 실천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보호를 받고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5월 23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23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5,22-31)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5,12-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사도 15,22-31
오늘 제1독서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무렵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15,12-17
오늘 복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23일
봉원민 브루노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0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한 사명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이 계명이 주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시듯 제자들도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르라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5,11).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 사랑을 배우고 맛 들이면서 기쁨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한 사명, 새 계명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5,12).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 인간은 자기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인간의 구원자」 10항 전반부 내용입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는 어제 복음 말씀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가정과 우정 안에서, 연인 또는 부부 사랑 안에서, 공동체의 친교 안에서, 사랑의 연대와 봉사 안에서, 미사와 기도와 묵상 안에서, 저마다의 길에서 사랑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무의미와 권태, 곤경의 나락에 떨어집니다.

회칙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인간 내면에 이 깊은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그 결실로 인간은 하느님을 흠숭할 수 있을뿐더러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깊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 사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그 깊은 경탄을 일컬어 복음, 곧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

기쁨이 충만한 이들이 참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의 사랑 친구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오늘 주님 말씀 중에서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라는 말씀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요즘 제가 친구 덕을 보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친구란 이런 것이구나 또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올해 저희는 장학기금 마련을 위하여 바자회 대신 음악회를 계획했고 시니어 성가대를 만들었는데 남성 대원들의 수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들에게 응급으로 지원을 요청했는데 친구들은 친구라는 것만으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동참해줬습니다.  

친구는 많지만 진짜 친구는 많지 않다고 하고, 진짜 친구는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이라고 하는데 제 친구들이야말로 이런 면에서 진짜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저께 다른 분들도 동참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원래 같이하려다가 다른 합창대와 시간이 겹쳐 같이하지 못하겠다던 분들인데 그저께 식당에 농작물을 가지고 오셨을 때 음악회 취지를 자세히 설명하니 그런 좋은 일이라면 기존의 합창대에 양해를 구하고 함께하기로 한 겁니다.  

이 또한 오늘 주님 말씀처럼 진정한 친구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라고 하시며 이런 종과 달리 친구는 친구가 하는 일을 알고 또 같은 일을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친구라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야 하고, 같은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실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고 있고,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알고 계시겠지만 복습 삼아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란 요한복음 6장 39절에 의하면 살리시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물론 사랑이지만 사랑 가운데서도 살리시는 사랑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얘기합니까? 사랑 가운데는 죽이는 사랑도 있다는 말입니까? 예, 이런 사랑을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있습니다. 애욕 곧 사랑하고픈 욕망 또는 욕심의 사랑이나 스토커(Stalker)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사랑은 욕심이기에 원하는 사랑을 소유할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여버리거나 파괴하는 사랑으로 돌변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랑의 욕심도 있지만 욕심의 사랑도 있습니다. 사랑이지만 사랑에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사랑이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물리적으로 죽이거나 파괴하진 않지만 사람의 기를 죽이거나 꺾는 경우는 흔합니다. 교만의 사랑 곧 교만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아니라 군림하는 아버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사랑을 베풀었으면 그 사랑에 고마워하며 원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거나 되지 않으면 분노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지요. 그래서 이런 사랑도 살리는 사랑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지요. 그러므로 살리는 사랑은 이런 사랑들이 아니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다른 복음에서 당신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사랑을 배워서 알고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사랑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오늘도 우리는 여기 공동체에 모여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함께 모여 살고 있는가요?

우리가 꼭 함께 모여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대체 왜 모여 살아야 하나요?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는 “서로 사랑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모여 살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려면, 먼저 함께 있어야 하니까요. 곁에 함께 있지 않고서 서로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함께 모여 사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을 해야 서로 사랑할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되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지 말고,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벗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왜, 벗을 위한 사랑이 원수나 죄인을 위한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대체 “벗”이 누구이기에, 그러실까? 나에게는 그러한 벗이 있는가?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벗”이라 부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주시며’(요한 1,15 참조), 우리를 친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고, 함께 깊이 믿기에 예수님과 서로 친구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친구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벗”인 우리 주님과 함께 즐거운 날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5,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당신의 벗, 
당신 것으로 뽑으셨습니다.

당신의 자유,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애와 호의를 입히셨습니다.

당신 진리를 가르치시고, 
당신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소유가 되게 하시고, 
당신의 양식을 먹이셨습니다.

저는 끝없이 빗나가지만, 
당신은 끝없이 충실하셨습니다.

하오니, 주님! 
사랑의 소명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축복으로 
세상을 축복하게 하소서.

저의 전 존재, 전 생애가 
당신의 것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기쁨

오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친구는 같은 수준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강아지가 예쁘다고 해도 개와 진정한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강아지의 수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처럼 낮아지셨지만, 당신 친구가 되라고 당신 지위로 높이려 하십니다. 그 방법은 당신의 계명인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당신처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인간이 강아지와 완전한 친구는 될 수 없어도 어느 정도의 친구는 될 수 있습니다. 강아지를 인간처럼 사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강아지를 인간처럼 행동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이유는 강아지보다 인간으로 사는 것이 더 큰 행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행복을 누린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 친구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당신의 기쁨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에게 이 기쁨을 주시기 위해 뽑으시고 성장시키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결국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는 사랑과 기쁨, 평화 등의 성령의 열매지만, 그것으로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바로 그 성령의 열매로 우리를 당신과 같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가까운 동료 레오 형제와의 진정한 기쁨에 관한 대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레오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오 형제여, 잘 듣게나. 만약 우리가 하느님 은총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온갖 병자를 치유하며,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 있는 기적을 베풀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기쁨은 아니네.” 

레오 형제는 놀라운 기적마저 완전한 기쁨이 아니라는 프란치스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귀를 기울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다시 이어 말했습니다. 

“또 만일 우리가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우리 수도회가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해도 그것 역시 완전한 기쁨은 아니네.” 

레오 형제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님, 완전한 기쁨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프란치스코는 밝고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레오 형제여, 우리가 지금 이렇게 혹독한 추위와 폭풍 속을 걷고 있는데, 만약 밤이 깊어 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며 ‘형제들이여,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부탁했을 때, 수도원의 형제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게으름뱅이들아, 어서 떠나라!’ 하며 쫓아낸다면, 바로 그때 우리가 이 모든 모욕과 추위를 참아내고 인내하며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기쁨’일세.” 

레오 형제는 프란치스코의 말을 듣고 깊은 깨달음 속에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완전한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평소처럼 조용히 혼자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의 마음에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친구 레오 형제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레오 형제는 제게 가장 소중한 친구입니다. 만약 저에게 주시려는 어떤 특별한 은총이 있다면 그것을 저에게는 주지 마시고, 오직 제 친구 레오에게만 주소서. 제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그에게 더 큰 영적 기쁨과 평화를 주시길 청합니다.” 

며칠 뒤, 레오 형제는 홀로 기도하는 중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넘치는 기쁨과 평화를 느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 특별한 위로와 은총이 놀라워 기도 후 프란치스코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형제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특별한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은총을 제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레오 형제여, 그 은총은 하느님께서 자네에게 주신 것이 맞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내가 하느님께 간절히 청한 은총이기도 하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자네를 나보다 더 위로하고 축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지.” 

이때 레오 형제는 비로소 프란치스코가 말했던 ‘완전한 기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완전한 기쁨이란, 자신이 가진 세상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평화를 자신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곧 ‘구원자’가 되는 기쁨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에 사는 롯을 위해 하느님과 친구가 되었듯이, 모세도 하느님과 “벗과 대면하여 말하듯”(탈출 33,11)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친구가 됨으로써 얻은 성령의 은총은 지팡이로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한 평화를 누리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기쁨의 완성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면 그 지팡이를 받게 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과 친구가 되었기에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축제가 멈추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기쁨은 그리스도를 잉태한 것에 멈추지 않고 엘리사벳을 찾아가 그녀도 그리스도의 일꾼을 잉태하게 성령을 전해주심으로써 완성되었습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동료들에게 오페라 한 곡을 들려줄 수 있는 바로 그러한 마음, 이것을 갖게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연결되는 통로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마치 사렙타 과부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엘리야와 친구가 되어 죽은 아들을 되살리게 된 것처럼 먼저 예수님의 뜻을 따라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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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책상 위에 커피가 담긴 텀블러가 놓여 있습니다. 이 텀블러를 유심히 바라보는데, 2차원으로 정면에서 보면 직사각형으로, 위에서 보면 동그라미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3차원으로 보면 원기둥이 됩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동그라미, 직사각형, 원기둥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텀블러가 어떻게 생겼어?”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동그라미, 직사각형, 또 원기둥 모두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과연 텀블러의 모양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을까요? 
 
부분만을 떼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 안에서도 이렇게 부분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히 진리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년필을 좋아해서 만년필 검색을 종종 하게 됩니다. 비싼 만년필이 정말로 많습니다. ‘이런 만년필로 글을 쓰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필기도구로만 규정하면 비싼 만년필이 필요 없어집니다. 모든 만년필이 똑같이 보입니다. 즉, 가격과 디자인이라는 부분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구분보다는 근본적인 것을 봐야 했습니다. 
 
주님 따를 때도 이것저것 생각합니다. 기도, 봉사, 희생, 자선….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앞서 말씀드렸던 기도, 봉사, 희생, 자선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것저것 나누어 생각하면서, 정작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가장 근본적인 사랑 자체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따르는 길도 명확해집니다. 
 
이 사랑을 주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이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렇게 가장 근본이 되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이 아닌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주인은 종에게 일을 시키면서 그 일의 목적이나 결과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이 관계에서는 명령과 복종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계획과 목적을 이야기해 주신 것입니다. 종이 아닌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주님을 선택한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이루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가장 근본적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계십니까? 

 

오늘의 명언

하루에도 여러 번 나는 자신을 돌아본다. 해야 할 일은 충실히 실행하였는지, 또 친구들에게 신의를 잃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또 내가 배운 것을 몸소 실행에 옮겼는지 말이다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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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장미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간절한 명령이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명령은 사랑입니다. 간절하신 명령은 우리 삶의 어디에나 머뭅니다. 상처에도 버려진 마음에도 지치고 무너진 관계에도 머뭅니다.

공동체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예수님의 간절하신 명령이며 부탁입니다. 그런데 잊고 살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공동체의 빛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랑은 삶의 보편적인 길입니다. 많은 것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랑은 서로를 기다려주고 서로를 올바르게 잡아줍니다.

사랑은 말이 아닌 삶이며 살아있는 깊은 뜻입니다. 사랑 없인 모두가 빈 껍질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십니다.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인 하느님께서 함께계시듯 사랑은 먼 데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실천하는 꾸준한 배려이며 꾸준한 기도입니다.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랑의 오늘 되십시오.

 

 

 

요한복음 15장 12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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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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