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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2/06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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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모든 성인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바오로 미키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저희도 죽기까지 신앙을 증언하게 하소서.

2025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2월 6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2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히브 12,18-19.21-24)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 오늘 복음
    (마르 6,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오늘 말씀 카드
    (마르 6,7)
    예수님께서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히브 12,18-19.21-24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6,7-13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6일
이원희 사도 요한 신부

 

✚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2

✚ 강론시작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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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빵, 여행 보따리, 돈을 가져가지 말며,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위하여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빵, 여행 보따리, 돈을 가져가지 말며,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날의 여행에서는 꼭 필요한 것들을 금지하시는 것은 은총의 섭리에 온전히 맡기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옷을 두 벌 껴입는 것이 이중적 처신을 뜻한다고 보아 예수님의 이 명령을 단순한 마음을 지니라는 요구로 풀이합니다. 허용된 단 두 가지는 길을 걷는 데 필요한 지팡이와 신발뿐입니다. 최소한의 것으로 지내는 노력이 선교 사명에서 요구되지요.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엄격함은 무슨 의미일까요? 본질에 대한 집중을 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선교 사명에서 본질적인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살피기보다 파견하시는 분의 섭리에 믿고 내맡기며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행하는 일입니다.

비록 중요하고 필요하더라도 본질이 아닌 보조 수단들은 철저히 배제하고,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집을 거점으로 하여 그때그때 주어지는 수단들을 활용하면서,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제자들은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낫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상 기후로 말미암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기후 문제에 대응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단순함과 섭리에 대한 믿음 안에서 삶의 본질을 추구하고 집중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자유롭고 조화로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복음을 뜯어보면 상반된 동작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파견하심과 우리의 머묾-떠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기도 하고 파견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이 동작들은 상반되기는 하지만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고, 하나만 있으면 불완전하고 둘 다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며, 주님을 중심으로 이 동작들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들입니다. 

먼저 우리는 파견되기 전에 부르심을 받아야 하고, 부르실 때는 다가가고 파견하실 때는 떠나가야 합니다. 부르시는데도 꿈쩍 않고 파견하시는데도 꿈쩍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또 주님과 함께 머물 때가 있고 주님을 떠나 이웃에게 갈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과 함께 머물 때가 있으면 떠날 때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고, 주님을 떠나있었다면 주님께로 돌아가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주님께도 가고 이웃에게도 가는, 주님과도 있고 이웃과도 있는 두 행위가 같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웃에게 갔을 때도 두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 머물 때가 있다면 떠날 때가 있어야 하고, 머묾과 떠남이 자유롭기도 하고 조화롭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은 행복하지만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은 불쌍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왜 지팡이는 가져가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의 파견장면으로, “말씀 선포의 사명”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세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마르 6,7). 곧 미리 준비시키고 무장시키십니다.

<둘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이는 진리가 검증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이미 ‘그들 안에’ 실현되어야 함을 요청합니다.

곧 ‘파견 받은 자들’ 사이에 이미 형성된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파견 받은 자’는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선포하면서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되어야 하고, 하느님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복음 선포의 길’이 본질적으로 ‘함께 가는 길이요 여정’(시노달리따스, sinodalitas)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결국, ‘함께 가는 길’로의 초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견 받은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며, 동시에 하느님과 함께 가는 길이며, 하느님께 함께 가는 길입니다. 복음으로 빛으로 함께 가는 길이며, 그분 영의 동행으로 함께 가는 길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들의 삶 자체, 그들이 살아가는 길 자체가 증거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가는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의 돈도 가져가지 말라”(마르 6,8). 이는 오로지 당신께 의탁하고 당신께 신뢰를 두고 가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왜 지팡이는 가져가라고 하셨을까요?

‘지팡이’는 여행자에게 있어 들짐승을 쫓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세의 ‘지팡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양치기 모세에게는 단순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지팡이였지만, 말씀과 함께 바다를 내려치면 물결이 갈라지고, 바위를 두드리면 물이 솟아나고, 병든 이들이 쳐다보면 살아나게 하는 ‘구원의 지팡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지팡이’로 인류 구원과 사랑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바로 그 ‘지팡이’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1코린 1,23)로 말입니다.

또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집에 머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발의 먼지를 털고 그곳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곧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처신에 따르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임을 말해줍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파견 받은 이’가 할 일이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는”(6,12-13) 것이며, 그 일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그분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제자임과 동시에 파견 받아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 파견하신 그분께 매여 있고, 그분 권능의 지팡이인 ‘말씀의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6,8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할 것을 
이미 가진 까닭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닌 까닭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무능함과 허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어느 책에서 변호사를 하며 한계를 느낀 경험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계를 재판에서 이겼지만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 때라고 말합니다. 이런 경우입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사고를 낸 차주는 돈을 물어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재판에서 이겨 돈을 물어주게 했습니다. 그런데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에서 이겼다고 다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없어진 다리 때문에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갈 수도 없게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재판에 이겼어도 삶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종종 돈으로 모두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봅니다. 억울한 희생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원하며 시위하는 유가족을 향해 돈 더 받으려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보상을 받는다 해도 목숨을 잃는 사람이 되돌아올까요? 그 사람이 만든 역사가 사라졌는데, 이를 돈으로 지울 수가 있을까요?
 
돈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도 ‘돈! 돈! 돈!’을 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돈이 필요할까요? 하느님 나라에 돈이 전혀 의미 없기에, 우리는 죽음 뒤에 10원짜리 동전 하나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삶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여기에 조금 거리를 두면서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자기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물질적인 것을 늘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실 때도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을 껴입지 말라고 이르십니다. 그만큼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 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자기 안의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세속적인 것들을 멀리하면서 오로지 주님의 뜻에 맞게 그래서 주님께 의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결국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의 삶에 정답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나의 이웃들에게 다가가고, 사랑의 말과 행동으로 나의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때 너무나도 부족한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 빅토르 위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회개는 복음과 함께 옵니다. 떠남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입니다. 내맡기는 시작이 있기에 떠남이 있습니다. 가짜를 벗고 이제 진짜를 원하는 회개의 삶을 따릅니다.

회개는 길을 잃지 않게하며 선포는 우리의 목적지를 전해줍니다. 목적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복음은 회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모두는 회개의 초보자일 뿐입니다. 회개를 통해 무엇이 사랑인지를 깨닫습니다. 나눔이 사랑입니다. 선포가 사랑입니다. 회개가 사랑입니다. 사람은 회개로 다시 살아갑니다.

회개로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떠나면서 회개가 시작됩니다. 우리 삶 안에 회개가 있고 순교가 있습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우리 영혼의 참된 목적지입니다. 복음은 회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다면 떠남도 순교도 선포도 복음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회개의 삶이 순교의 삶입니다. 우리 영혼에 가장 필요한 사랑의 회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오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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