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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30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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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2024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30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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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에페 6,1-9
오늘 제1독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기십시오.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는 약속이 딸린 첫 계명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종 여러분,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두려워하고 떨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현세의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종이든 자유인이든 저마다 좋은 일을 하면 주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그리고 주인 여러분, 여러분도 종들을 이와 같이 대해 주십시오. 겁주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며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시고 또 그분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루카 13,22-30
오늘 복음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30일
윤상현 비오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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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구원받을 사람이 적다는 말씀일까요? 많다는 말씀일까요?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사람은 적다는 말씀일까요, 많다는 말씀일까요?

문은 좁고, 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길거리에서 가르치실 때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도 당신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구원되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이들 가운데서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께서는 동서남북 사방에서, 아마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는 그분을 본 적도 없던 이들이 들어와서 잔칫상에 자리를 잡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상반된 측면이 함께하는 것은, 누가 구원을 받을지 미리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일 듯합니다. 스스로 구원되리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쉽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일깨우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것도 구원을 보장하여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그분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 알고 있다고 하여도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만하지 말고 문이 닫히기 전에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일입니다. 

언젠가 그 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그 안에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이들이 먼저 그 잔칫상에서 첫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볼 것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필리 2,12).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올바른 구원의 태도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길을 가다가 여러분도 가끔 경험하셨겠지만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질문하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예수 믿으세요.’라는 대답을 자기들이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왠지 불쾌합니다. 왜 불쾌할까요?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 불쾌하겠습니까? 그들의 선교 방식이 불쾌할까요?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 불쾌할 리 없고 선교 방식이 불쾌하고, 선교 방식보다는 선교 태도가 불쾌하며, 선교 태도보다는 구원 태도가 불쾌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들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의 태도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보면 그들의 태도는 확신이 아니라 영적 교만이고 적어도 겸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주님을 믿고 있어도 구원에 있어서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있어도 잘 믿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이런 면에서 오늘 어떤 사람은 구원에 대해 겸손하고 조심스럽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적냐고 묻지만 많지 않겠지요? 라는 태도이고, 자기의 구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묻는 그런 태도 같습니다. 

이런 태도는 자기 구원에 무관심하지 않고 궁금해하니 좋은 태도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자기가 확보한 것인 양 교만하지 않으니 좋은 태도이며, 무엇보다도 어찌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 배우려는 자세이기에 좋은 태도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좁은 문이란 어떤 문입니까? 많은 사람이 묵시록의 십사만사천 명을 잘못 이해하여 마치 숫자가 정해진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런 것입니까? 학교 입학 정원처럼 정해진 제한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런 것이 결코 아니지요. 하느님은 천국 입국 정원을 미리 정해놓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들어올 수 있기를 바라시고 모두가 들어오도록 사실은 문을 활짝 열고 계십니다. 

그러니 좁은 문이란 하느님이 정원을 좁혀서 좁은 문이 아닙니다. 뒤에 보면 들어오지 못할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그러니 좁은 문이란, 정의의 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나쁜 짓 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느님께서 원치 않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좁은 문입니다. 

저절로 사랑이 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좁은 문이 아니고, 모두가 사랑할 수 있고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좁은 문입니다. 

불의하지 않기도 힘들고 원수 사랑하는 것은 더 힘드니 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힘쓰라는 오늘 주님 말씀을 가볍게 듣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기회를 놓치지 말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던 중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을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 받을 사람이 많은지 적은지’를 묻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구원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지’를 대답하십니다. 그것이 더 본질적인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대답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첫 번째 충격>은 구원의 문이 “좁은 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이는 어찌 들으면, 참으로 모진 말씀으로 들립니다. 마치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보편성에 어긋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문’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문이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닌 “좁은 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가 부르심은 받지만, 모두가 응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곧 당신 자신이 “문”이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당신을 따라 들어가는 이에게 열려 있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문’은 동서남북 온 세상에 열려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루카 13,29)

<두 번째 충격>은 ‘집주인이 문을 닫아버리면 아무도 열 수 없는 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구원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닫는 집주인에게 달려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루카 13,25)

이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지금 ‘문’이 열려있으니 당장 들어오라는 다급함을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곧 영원을 사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 ‘문’은 내일 들어가야 하는 문이 아니라, ‘오늘’ 당장 들어가야 하는 문입니다. 곧 지금 나와 함께 계신 당신이 바로 ‘그 문’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세 번째 충격>은 지금과 그때에는 ‘첫째와 꼴찌가 바뀌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의 눈과 그분의 눈이 서로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곧 그것은 민족이나 혈통, 출신이나 가문 혹은 세상의 출세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첫째와 꼴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정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이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두를 충격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급함과 절실한 요청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응답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3,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주님!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꺾이고 사라지게 하소서.

문이 좁기에 붙들어 주는 
당신을 꼭 붙들고 들어가게 하소서.

열린 문이신 당신이 저의 희망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좁은 문'은 십자가가 아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저는 좁은 문을 ‘십자가’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좁은 문의 의미가 조금 더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좁은 문은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게 할 수 있도록 만드신 예수님의 작품입니다.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여닫는다는 것은 조금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주어져 있는데 십자가를 지고 당신께 올 수 있도록 예수님게서 마련하신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니 트레호(Danny Trejo)는 괴로운 과거, 중독, 투옥을 극복하고 사랑받는 배우가 되어 회복과 구원을 체험한 놀라운 사람 중 하나입니다. 대니는 1944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력, 범죄, 마약이 만연한 가정과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약물을 시작했으며, 8세에 마리화나를 시도하고 12세에 헤로인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토레호의 삶은 범죄와 중독으로 더욱 악화하여 청소년 구치소에서 여러 차례 수용되었고 결국에는 성인 교도소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습니다. 

1960년대 초에 당시 그는 헤로인 중독에 깊이 빠져 있었고 분노와 폭력에 시달렸으며 종종 싸움을 위해 독방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그는 변화하겠다는 개인적인 결심을 했고, 인도를 구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렇게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었습니다. 이때 그를 이끌어준 영적 기반 회복 모델이 12단계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더 높은 영적 권위에 항복하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보상하고, 공동체에서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이 트레호의 회복의 기초가 되었고 그의 인생관을 바꾸었습니다. 

석방된 후에도 트레호는 절주에 전념했으며 AA(Alcoholics Anonymous) 및 NA(Narcotics Anonymous)에 합류하여 새로운 커뮤니티와 목적을 찾았습니다. 그는 빠르게 AA의 후원자가 되어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자기 경험을 힘과 공감의 원천으로 활용했습니다. 

현재 트레호는 위험에 처한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 교도소, 회복 센터에서 연설하면서 변화 가능성에 대한 증거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빌 윌슨은 AA(Alcoholics Anonymous)를 공동 창립자입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알코올 의존증이 되었으며 각종 노력으로 되지 않던 금주를 한 가지 깨달음을 통해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윌슨은 여러 차례 술을 끊으려고 시도했으며 종종 짧은 기간 동안 금주를 경험했지만, 매번 재발했습니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년간 의학적 치료, 심리 상담, 자기 훈련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악화하였고, 일련의 입원과 뉴욕시의 타운스 병원에서의 회복 시도 실패 후 1934년에 바닥을 쳤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욕망을 못 박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혼자 힘으로 질 수 없습니다. 빌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에디라는 친구에 의해 술을 끊는 것도 믿음의 힘, 하느님께 항복하고 의존하는 노력,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의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윌슨은 알코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평안함과 해방감을 느끼는 강렬한 영적 경험을 합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으며, 더 높은 힘에 굴복하는 것이 중독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알코올 중독자 밥 스미스 박사와 함께 알코올 중독자 익명 단체(Alcoholics Anonymous)를 설립하여 공동 지원, 책임 및 영적 원칙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동은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획기적인 일을 하였습니다. 

“이미 편안해진 방식에 몸과 마음을 가두지 마라. 그러는 순간, 오직 그것만 원하게 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말은 영화 ‘아마데우스’, ‘백야’의 안무 총괄 책임을 맡았던 미국 무용계의 여왕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의 말입니다. 리더십 전문가인 김남인 씨가 타프와 인터뷰할 때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정상에 오른 비결은 무엇인가요?”

타프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침 5시 반, 옐로캡(택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에요.”

그녀는 무용을 시작한 후 50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5시 반에 이미 예약해 놓은 ‘택시’를 타고 체육관으로 가서 온몸과 정신을 깨웠다고 합니다. 

그녀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피곤할 때가 있고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울 때가 있지만 이미 와 대기하고 있는 택시의 문을 열고 앉으면 다시 이불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일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무용에 대한 태도가 그녀를 세계 최고 현대무용가로 만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연습을 하는 일은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택시’라는 매개체게 없다면 이루기 불가능합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길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지게 만드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접하게 됩니다. 운동하거나 공부할 때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좁은 문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적은 사람들이 함께 십자가의 길로 가는 공동체입니다. 그 공동체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고해성사가 힘들고 성체성사가 지겹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하게 함으로써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 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노래방이 생겨나면서 친구들과 자주 들렀던 생각이 납니다. 시간제한이 있는 노래방에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약 1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렀던 노래는 꼭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노래방에 있는 노래 중에 가장 긴 노래였습니다. 이 가장 긴 노래를 함께했던 친구들이 한 소절씩 부르면서 마무리했던 것이지요. 
 
이 노래가 끝난 뒤에는 시간을 초과하면서 놀았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잘 부르는 노래, 의미 있는 노래 등으로 마무리합니다. 왜 바뀌었을까요? 시간을 연장하는 것보다 노래 부르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떠올리며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지금의 삶 자체가 중요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히 후자인 지금 삶 자체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것 자체에만 집착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죽음이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지금 삶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삶, 자기가 잘하는 삶, 또 의미 있는 삶으로 자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사는 지금 삶에 특히 사랑하며 사는 의미 있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부분 건강, 재물, 성공이라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가치들을 추구해서는 구원의 길로 향하는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통해 이 세상에서는 첫째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꼴찌가 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세상의 가치를 통해서는 꼴찌처럼 보이더라도, 주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때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혹시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씀하시면 어떨까요? 참으로 막막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잔칫상을 코 앞에 두고서 울며 이를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원의 좁은 문을 향한 지금 우리 삶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의 명언

책임감은 성숙에 이르는 첫 걸음이다.

- 헨리 클라우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어김없이 내려놓고 비워내는 잔치의 계절입니다. 단순한 행복 단순한 실천이 자신의 삶을 살아낸 고마운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의 시작입니다. 

하느님 없는 신앙은 공허하듯 하느님 없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화답할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고마우신 하느님이 계시기에 시작도 있고 마무리도 있고 새로워지는 우리의 생활도 있는 것입니다. 

새로워지는 사랑의 실천을 지나야만 갈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의 잔칫상입니다. 그래서 가장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아질 때 보게되는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입니다. 

하느님 아닌 하느님을 많이 좇았습니다. 우리가 찾는 하느님은 오늘도 최고의 선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동쪽도 서쪽도 북쪽도 남쪽도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쫓겨나지 않습니다. 

최고의 선물은 사랑하며 살다가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기에 가장 좋은 때는 지금입니다. 깨어있는 첫째 망설임의 꼴찌가 되는 내려놓고 비워내는 기쁜 날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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