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이 거룩한 사람들을 참사랑으로 뽑으시고, 영원한 영광을 주셨네.
하느님, 복된 사도들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를 저희에게 알려 주셨으니 거룩한 시몬과 유다의 전구를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하느님을 믿는 백성이 나날이 늘어나 교회가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소서.
2024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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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에페 2,19-22)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6,12-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6,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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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 2,19-22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모임이 주님을 기리나이다.
루카 6,12-19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28일
이동현 베드로 신부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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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사도들에게서 전하여 오는 신앙
언젠가 성공회에서 옮겨 온 분의 세례와 견진 문제로 이리저리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세례와 견진에 대한 증명이었습니다.
세례는 간단하였습니다. 누가 세례를 주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공회에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로 일치되는 예식도 이미 거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견진은 어떻게 될까요? 의문스럽기는 한데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는 없어서 교회법, 교리, 전례 전공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법을 전공한 분이, 교황청에 있는 친구에게까지 물어 답을 주었습니다. 견진을 준 주교의 성품이 사도 계승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견진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천 년 전에 살았지만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사도 계승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우리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전에 살았던 조상이 있고 우리가 그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렇게 우리는 사도들에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에페소서는 우리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2,20)이라고 말합니다. 족보에서 첫 조상이 다르면 다른 집안이 되듯이, 하나의 집안인 교회는 모두 사도들을 기초로 하고, 그 기초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사도들에게서 전하여 오는 신앙을 잘 간직하면서,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기초인 사도들과 결합하여 “하느님의 한 가족”(에페 2,19)인 교회의 일치를 지켜 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잘 결합된?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에 듣는 에페소서 독서는 에페소 교회가 예수님이라는 모퉁잇돌과 사도라는 기초 위에 세워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건물이라는 뜻으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열두 사도 명단을 보면 열두 사도는 기초로서 부실하고, 그들의 결합은 잘 이루어지기 어려운 엉성한 공동체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을 배반할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구성원이 서로 삐걱거릴만한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눈여겨보는 것은 오늘 축일로 지내는 열혈당원 출신의 시몬과 세리 출신의 마태오 관계이고, 잘 아시듯이 이들의 출신 곧 열혈당원과 세리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지요.
그런데 출신으로만 보면 엉성하고 삐걱거릴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잘 결합된 주님의 거처로 자라난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적인 출신으로만 보면 잘 결합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뒤 그리고 성령으로 변화된 뒤 이들은 든든한 기초가 되었고 그 위에 전체 교회는 잘 결합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이질적인 이들이 그리스도라는 용광로에서 성령이라는 불에 정련되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성이 강하고 이질적인 우리도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서로 잘 결합되어 하느님의 거처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정련돼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성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같이 이루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하고, 경쟁적이고 분열적인 개성이 조화롭고 통합적인 개성으로 바뀌어야 하며, 나만 정의롭고 너는 불의하지 않고 같이 하느님의 정의를 이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 축일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그리스도 공동체이고 오늘 에페소 말씀대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거처로 지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 특히 성령의 사랑은 눈곱만큼도 없고,ㅇ그래서 한 번도 그리스도 공동체다운 적이 없거나, 모래 위에 세워져 서서히 무너져가는 공동체는 아닌지.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바로 내가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 집의 건축자재요, 그 가정의 식구입니다.
오늘은 사도 시몬과 유다(타대오)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열두 사도를 뽑으신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2-13)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올리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는 먼저 부르시어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선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들이 사도로 뽑힐만한 충분한 조건들을 갖춘 자들로 보이지 않습니다.
곧 신분이나 능력이나 지위에 있어 사도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무명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뽑힌 후에도 여전히 특별한 내력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거룩한 이들이었기에 뽑힌 것이 아니라, 뽑히었기에 거룩한 이들이 된 것입니다. 거룩한 분에 의해 뽑히었고, 거룩한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 유다와 시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도 시몬이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뿐, 다른 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도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단지 타대오, 곧 “용감한 자”라고 불렸다는 사실 뿐, 다른 내력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도”란 모름지기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건물’이 되고, 거룩한 분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모퉁이 돌이십니다.”(에페 2,20)
사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령스럽게도 이 “건물”(집)은 “자라납니다”. 곧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에페 2,21).
그렇게 자라나면서 신령스런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집니다.’ 그렇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2,22).
참으로 신령스런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이토록, 우리 안에 당신의 신비가 살아있다니, 헤아릴 수 없이 크나 큰 분이 나보다 작아져 내 안에 들와 있는 이 사랑의 신비 앞에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경탄할 뿐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뽑으신 다음,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에 녹아, 세상에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가정’을 건설합니다. 바로 내가 그 나라의 백성이요, 그 집의 건축자재요, 그 가정의 식구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3,14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위대한 성인들은 책이 아니라 제자를 남기려 했을까?
오늘은 성 유다 타대오와 성 시몬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12명의 사도를 뽑으시고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중요한 점은 사도를 뽑으시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제자들이 살다 보니 생긴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제자들을 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복음을 더 많이 전파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더 넓은 곳으로 가셨어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를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마리나 채프먼은 딸 바네사 제임스(Vanessa James)와 ‘이름 없는 소녀’(The Girl with No Name)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였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유괴범들에게 버림받은 후 콜롬비아 정글에서 꼬리감는원숭이 무리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원숭이 그 자체였습니다. 사냥꾼들에게 발견되고는 사창가에서 살았습니다. 나중엔 탈출하여 결혼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습니다.
누구나 성장은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가톨릭교회 공동체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처음부터 교회를 만들 생각으로 열두 사도를 뽑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가 된 싯다르타도 모두 책을 한 권도 쓰지 않고 제자 공동체를 만드는 데 생을 바쳤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이 알았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책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제자 공동체를 통해 전달하는 게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자 공동체를 세우려 했던 더 큰 이유는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2015년에 방송된 KBS 인생극장 ‘뇌 병변 장애 부모가 삼 형제를 키우는 방법: 그렇게 부모가 된다’라는 내용은 많은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자기 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두 장애인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겠다는 꿈을 가졌을 때 가족들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삼 형제를 낳았고 누구보다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아도 어느 정도는 살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함께 일합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는 백수였어!’라는 소리를 하지 않기를 바라요.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훌륭한 분이셨어.’라는 소리를 듣기를 원해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내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천덕꾸러기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어요.”
공동체를 낳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면 둘이 사랑을 해봐야 그렇게 남자와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녀를 낳아도 그렇습니다. 자녀를 낳지 않으면 사람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결혼해야만 자녀를 낳는 게 아닙니다. 제자들도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아이들아!”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자녀를 낳음, 곧 제자들의 공동체를 세움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성 베네딕토는 세상에 사는 의미가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라는 것을 3년 동안 굴에서 기도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그 이전부터 그러한 공동체를 낳으려는 이유로 자신을 갈고닦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첫 정식적인 수도회가 탄생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결혼하기 전부터 자녀를 정신적으로 잉태하고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려고 준비합니다. 그런 부모와 그냥 살다가 우연히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부모는 다릅니다. 낳으려는 목적으로 살아야 나도 성장하고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어떤 공동체를 낳고 기르고 파견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나의 성장과 완성이 굉장히 빠르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보면, 대체로 80년대의 노래입니다. 당시에는 라디오를 통해, 아니면 엘피판이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음악을 들었습니다. 특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테이프에 담아서 들고 다니며 들었습니다. 음질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당시에 들었던 것들입니다. 지금 훨씬 더 좋은 음질과 멋진 사운드 그리고 다양한 노래가 있음에도 잡음이 잔뜩 들어가 있는 노래에 감탄사를 내뱉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부족한 삶에 대한 낭만일까요? 부족했기에 더 집중했고 그래서 사랑했던 것입니다. ‘찌지직’ 거리는 잡음 소리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긴 영상을 보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튜브의 짧은 영상만 보고, 책도 두꺼운 것이 아닌 얇고 글씨 적은 것을 본다고 하더군요.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만큼 풍요로움 속에서 보고 들을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족함이 있어야 작은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부족함보다 풍요로움을 미덕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부족함 속에 있으면 불행한 것으로 단정짓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을 지냅니다. 열두 사도의 일원인 두 사도의 축일이기에,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지금 이 장면을 보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싶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의심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셨고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배고프고, 그리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이시니 분명히 풍요로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부족함 투성입니다. 이 부족함 안에 계속 머물라고, 전교 여행을 보내실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부족함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부족했을 때 행복의 이유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모범을 직접 보여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삶은 풍요로움이 가득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삶도 부족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함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런 모범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려고 할까요? 부족함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오늘의 명언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꿈을 위해 도전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장애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승리자입니다.
- 레나 마리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열두 사도들은 하늘을 향해 펼쳐진 예수님의 정성어린 기도이며 정성어린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 자체인신 예수님을 통한 성화의 길이 바로 사도들이 걸어가신 진리의 길입니다.
이 진리의 길은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사랑처럼 현실과 끝까지 함께하는 복음의 진실한 여정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복음화의 과정을 힘차게 걸어갑니다.
열두 사도들의 길은 순명의 길입니다. 순명 안에 진리도 있고 질서도 있고 복음도 있습니다. 복음이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삶을 베푸는 것입니다. 간택하신 열두 사도는 화합을 의미합니다.
복음으로 화합하며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교회가 됩니다. 사도들은 목숨을 믿음으로써 하느님께 돌립니다.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오늘 이 하루가 열두 사도처럼 복음을 통한 복음의 힘을 기르는 정성어린 기도이며 순명의 시간이길 바랍니다. 찬 바람 속에서 맡게되는 이 가을 국화향기 참으로 그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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