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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9/23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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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특별한 은총으로 거룩한 비오 사제를 성자의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의 사제 직무를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새롭게 베푸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시어 빛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2024년 9월 23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9월 23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9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잠언 3,27-34)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신다.

  • 오늘 복음
    (루카 8,16-18)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8,18)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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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잠언 3,27-34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신다.

내 아들아, 

27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28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29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30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31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32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33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34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루카 8,16-18
오늘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23일
이희천 프란치스코 신부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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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잠언의 가르침

잠언에서는 오늘 독서와 같이 인과응보에 관하여 되풀이하여 말합니다.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고 강조하며,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갚음을 힘주어 말합니다. 

잠언의 저자라도 현세에서 늘 정확하게 인과응보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결과는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잠언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지닙니다.

이스라엘의 성경 안에서도 이러한 가르침은 의문에 부쳐지고 이후에 욥기와 코헬렛 같은 책들에서 다른 측면들이 지적되지만, 그렇다고 잠언이 쓸모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고, 선과 악의 갚음이 현세에서 완성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이 행하는 선과 악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온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삶 안에서, 특히 현세의 삶 안에서 때로 의심스럽게 보이는 이 가르침을 어떻게 할까요? 정말로 현세에서 곧바로 선과 악에 대한 갚음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할 때는 대개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합니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악을 행하는 것이 더 유익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합니다.

명백하여 보이지 않는 가르침,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너무 단순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잠언의 가르침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어쩌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마음 안에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이 되고 빛이 되게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환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등불을 켠다는 것은. 어둡기 때문이다. 밝히기 위해서다. 그러니 주님 말씀대로 등불을 켠 사람은 그것을 덮을 이유가 없다. 만일 덮는다면 어리석음이고 바보짓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등불을 켜서 덮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등불을 켜지 않는다. 어둡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어두워도 그 어둠을 내가 밝힐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실로 많은 사람이 어둠을 어둠이라고 생각지 않고 산다. 어둠에 적응된 사람이거나 어둠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둡다면서도 불을 밝히지 않는 사람도 제법 많다. 투덜거리기만 할 뿐 자기가 불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밝히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이 밝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밝히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그래서 네가 밝히면 되지 않냐고 하면 자기는 등불이 없다고 겸손을 핑계로 대거나 등불을 드는 그 귀찮고 힘든 일을 왜 자기에게 하라고 하냐고 오히려 성을 낸다. 의지가 없다고 하지 않고 등불이 없다고 하고, 사랑이 없다고 하지 않고 능력이 없다고 한다. 

또 소시민 정체성에 안주한다. ‘나 같은 소시민이 뭘!’이라는 안주다. 그런데 빛이 되는 일에는 아무도 소시민이라 예외가 아니고 아니어야 한다. 큰 등불이 없다면 작은 등불이라도 있으면 된다. 역시 의지 없고 사랑 없음을 소시민 정체성으로 합리화하는 것뿐이다. 어쭙잖은 겸손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 말씀을 엉뚱하게 이해하여 그럴 수도 있다. 

그제는 기후 정의 미사와 행진이 서울역에서 있었는데 그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리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생각이 짧았고 노력도 부족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주례하신 주교님께서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기후 위기의 급박한 문제에 관해 관심이 없고 그래서 대책을 서두르지 않는데 이 자리에 천만 명이 모였다면 그들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그리고 사제들이 정치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는 촛불을 드는데 더 큰 위기인 기후 문제와 관련해서는 촛불을 드는 사람도 사제도 많지 않습니다. 저도 평소 할 수 있는 한 실천하고 주위에도 얘기하였지만 그제 주교님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면피 수준이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운동을 펼쳤어야 하는데 나의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나의 실천을 떠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그제 모임도 이 말씀 나눔을 통해 여러분에게 홍보할 수 있었는데도 여러분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도 초대하지도 않아서 반성했습니다. 

나의 선행이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랑이 되고 빛이 되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들은 바를 믿고 믿는 바를 실천하기

“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 말씀은 ‘말씀을 들은 자에 대한 지시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루카 8,16)

여기에서, ‘등불’은 하느님 말씀을 비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요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그릇’은 영혼의 능력을, ‘침상’은 몸을, ‘등경’은 거룩한 교회를 표현한다고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세상 만민을 비추고, 진리의 빛으로 집 안에 있는 이들을 밝히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룩한 지식으로 채우게 된다.”

그러니 “침상”인 우리의 몸으로 말씀을 가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한 “그릇”인 우리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덮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사실, “말씀”은 숨겨 덮어지지도, 감추어 가려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마태 5,14)처럼, 감추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집안을 가장 잘 비출 수 있는 곳에 거룩한 교회인 “등경”을 올려놓고, 말씀인 “등불”을 켜서 밝혀두어야 할 일입니다. “말씀”은 빛이 되어 온 집 안과 집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비추어 밝혀줄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의 뼈와 살을 가르고, 우리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숨겨진 것들을 드러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루카 8,17)

그렇습니다. 이토록 ‘말씀’은 빛이 되어 세상과 우리를 비출 것입니다. 그리고 빛과 진리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의 등불”은 거룩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진정, 말씀의 비추임을 받은 영혼은 더욱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 8,18)

그렇습니다.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듣는지’가 중요합니다. 율법학자가 “스승님,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루카 10,26)라고 되물었던 것처럼, 하고 ‘무엇을 들었는가?’ 못지않게 ‘그것을 어떻게 들었는가?’, ‘무엇을 보았는지’ 못지않게 본 ‘그것을 어떻게 보았는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곧 ‘믿음과 사랑으로 희망하여 들었는지’가, ‘문자적 의미’를 넘어 ‘영성적 의미’에 따라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들은 바를 믿고 믿는 바를 실천함으로써 실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루카 8,18)이라는 말씀을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루카 8,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주님!
말씀을 제 안에 가두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덮지 않게 하소서.

아무 것도 당신 말씀보다 
낫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경 말씀을 더 깊게 이해하고 깨닫는 유일한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고 하시며, 반드시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인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며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만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성경의 앞뒤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앞에는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가 나옵니다. 말씀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뒤의 내용은 진정한 당신의 참 가족은 당신의 핏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말씀의 씨가 우리 안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내용 안에서 이 부분이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때문에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더 많은 은총을 받으려면 열매를 맺으려 해야 합니다. 그 열매는 길과 같지도 않고 돌밭과 같지도 않고 가시밭과 같지도 않아야 맺힐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세속-육신-마귀, 곧 탐욕과 성욕, 교만을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야만 그 깨달음이 있어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는 5세기에 이집트에서 태어나 약 17년 동안 깊은 죄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12세부터 알렉산드리아에 살면서 매춘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회심은 여전히 ​​죄 많은 삶을 살면서 군중을 따르려는 호기심과 열망으로 예루살렘 순례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십자가 현양 축일에 성 십자가를 공경하기 위해 무덤 성당에 들어가려 했으나 초자연적인 힘이 그녀의 길을 막았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 끝에 마리아는 자신의 죄악된 삶이 자신을 거룩한 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깊은 통회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성당 밖에 서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이콘을 바라보며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리아는 십자가를 존경하게 된다면 회개하고 자기 삶을 바꾸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도 후에 그녀는 저항 없이 교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심오한 회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전례 중에 루카 복음에서 이 말씀을 듣고 그녀는 깊은 회개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그녀는 앞서 자신이 기도했던 이콘 앞에 돌아가서 감사기도를 올리고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요르단을 가로질러 세례자 요한이 살았던 광야, 즉 예수가 세례 받은 곳으로 가서 영원한 안식을 찾아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는 그 즉시 광야로 들어가 이후 47년을 세례자 요한처럼, 야생의 열매를 먹으며 속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기간에 그녀는 극심한 유혹과 육체적 어려움을 견뎌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전생에 대한 기억과 음식과 위안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기도와 말씀 묵상, 금욕으로 이러한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생애 말년에 요르단 근처 수도원에 살고 있던 성 조시마(Zosimas)라는 수사를 만났을 때 알려졌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막에서 거룩한 은수자를 찾던 조시마는 마리아를 발견하고 그녀의 무식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성함과 성경 지식에 놀랐습니다. 그녀는 성경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성경의 많은 부분을 암기했습니다.

마리아는 조시마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체를 가져오라고 요청했습니다. 1년 후 조시마가 성체를 모시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자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고, 조시마가 그녀를 묻어 그녀의 거룩함을 확인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세.육.마.에서 자신을 이기려는 이들에게 깨달음과 빛을 줍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정원에 앉아 있을 때 근처 집에서 라틴어로 "Tolle, Lege", 곧 "집어서 읽어라."라는 문구를 부르는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근처에 있는 성경으로 달려가서 무작위로 펼쳤고, 그의 눈은 로마서 13,13-14의 한 구절에 머물렀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

이 말은 번개처럼 아우구스티노의 마음을 강타했습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이 순간을 즉각적인 명확성과 확신의 순간으로 묘사합니다. 바로 그 순간 이전의 삶을 버리고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해박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도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는 말로 완전히 바뀌었고, 성 프란치스코도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로 완전히 변화되었으며,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도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미지근한 삶에서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0)라는 말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말씀이 세속-육신-마귀를 이기게 만드는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들로 자기를 변화시키려 할 때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을 읽는 방식이고 가진 자가 더 가지게 되는 방식입니다. 자신을 더 겸손하게 하고 더 사랑이 많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지향으로 읽어야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 수준에 따라 항상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세계를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수만 명의 어린이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안전띠와 유아용 의자를 의무화했습니다. 담배로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담배를 어린아이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흡연이 늘어나면서 가게 점원에게 나이를 확인받으면서 직접 담배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보호하는 방법을 계속 만듭니다. 그러나 그 보호를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그 중독성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전자기기는 사탕이 아니라 마약이다’라고 IT 전문 매체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은 말합니다. 생각을 멈추게 하고, 많은 자극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계속 보다가 습관성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두통, 수면장애, 기억력 상실 등의 증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여기에 우울증까지 심해진다고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그 편리성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문제는 남들도 다 쓰고 있다는 생각, 편리하다는 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름 캠프 전에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캠프 안 갈꺼에요.” 
 
아이뿐이 아닙니다. 현대인 모두가 중독된 것이 참 많습니다. 술, 마약, 쇼핑, 드라마, 게임…. 한도 끝도 없습니다. 이러한 중독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풍요와 편리보다 더 높은 가치를 쫓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 많이 바라보고, 주님을 높이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맑은 정신으로 이 세상을 밝게 살 수 있습니다. 
 
등불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감추어질 수 없고, 밝게 빛나는 빛처럼 멀리 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이 계속 감추어집니다. 자기를 중독에 빠지게 하는 풍요함과 편리함만이 오히려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면서, 주님 말씀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처럼 취급하며 감추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갖고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갖지도 않고 오히려 피하면서 세상의 것만 가지려는 사람은 어떨까요? 주님의 말씀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지만, 세상의 것은 죽음 이후 완전히 내게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갖고, 무엇을 세상에 드러내야 할까요? .

 

오늘의 명언

지혜로운 이가 하는 일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자가 하는 일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 원효 스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사랑으로 얻은 십자가이며 하느님 사랑에 빚진 사랑의 등불입니다. 십자가가 멈추면 기적의 빛도 자연스레 멈추게 됩니다. 십자가가 만들어내는 삶의 신비입니다. 십자가의 시간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십자가의 상처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십자가가 단단한 축복이라는 것을 압니다. 십자가를 지고 우리는 어디까지 왔습니까. 십자가의 시간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는 구원의 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처를 감추지 않으십니다. 이렇듯 십자가의 상처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마음을 보여주는 고해실에서 많은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끈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입니다. 함께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상처받은 이들을 보살피고 도와주었습니다. 

버릴 수 없는 십자가의 상처입니다. 십자가에서 등불이 되고 은총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치유의 날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십자가가 있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상처가 있기에 치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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