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2024년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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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예레 26,1-9)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 오늘 복음
(마태 13,54-58)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오늘 말씀 카드
(예레 26,2)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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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 26,1-9
오늘 제1독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1
유다 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의 집 뜰에 서서, 주님의 집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에게, 내가 너더러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모든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전하여라.
3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려는 재앙을 거두겠다.
4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너희 앞에 세워 둔 내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
5
또 내가 너희에게 잇달아 보낸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 사실 너희는 듣지 않았다. ─
6
나는 이 집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이 도성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7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은 주님의 집에서 예레미야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8
그리고 예레미야가 주님께서 온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두 마쳤을 때,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아 말하였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9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느냐?” 그러면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바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
마태 13,54-58
오늘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8월 2일
박남준 미카엘 신부
✚ 교황님 8월 기도지향 00:24
✚ 미사시작 00:39
✚ 강론시작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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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하느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면.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당신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예레 26,2) 전하라고 하시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처럼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실로에는 여호수아 시대와 판관 시대에 성소가 있었지만, 심판을 받아 버려졌습니다. 이제 예루살렘도 그렇게 멸망하고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라고 비난하며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게 멸망을 선포하실 수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구원을 선포하실 뿐, 심판을 말씀하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유를, 하느님의 행동 범위를 인간이 제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움직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착각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그들의 착각이 깨지려면 성전이 무너져야 하였던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집인 그 성전을 무너지게 두셨습니다.
복음서의 나자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부모와 형제를 자신들이 다 알고 있는 그 평범한 사람, 목수의 아들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나에게 오는 통로를 내가 결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명확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어떤 경로로 말씀하시더라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희망과 열망의 포르치운쿨라
포르치운쿨라 축일
어제 그리고 지난 10일간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하면서 그 의미가 무엇일까? 특히 올해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올해 축일을 지내는 곳이 이곳 아시시 마을이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 축일을 지내기 때문입니다.
원래 올해 저는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제주에서 하려고 했는데 이곳 아시시 마을에서 서울 3개 지구 합동으로 축제를 지낸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곳을 향해 행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 이름을 아시시 마을이라고 하고, 이곳에서 포르치운쿨라 축제를 지낸다고 하니 이곳이 서울 지구 형제회들의 아시시와 포르치운쿨라가 되겠구나, 아니, 더 나아가서 되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되도록 저와 우리 행진단이 일조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던 것이고. 그래서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여기까지 10박 11일을 걸어왔습니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행진 중간 쯤 주례와 강론을 제게 부탁하는 메일을 받고는 이런 저의 마음을 주최 측에게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이신전심인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엮어주시는 것 같기도 하여 마음이 묘했습니다.
아무튼 아시시 마을은 서울 지구들의 포르치운쿨라가 되면 좋겠다는 영감이 떠올랐고 그래서 회원들, 특히 초기 양성기 회원들이 프란치스칸 원천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서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하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포르치운쿨라 축일의 의미부터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많은 회원이 이 축일을 전대사 얻는 축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대사를 얻는 축일인 것 맞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는 전대사를 얻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칸의 고향과 원천을 찾아가 쇄신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고백성사를 본 것도 전대사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프란치스칸답지 않았던 잘못을 뉘우치고 쇄신하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전대사는 축일을 통한 쇄신의 결과로 주어지는 은총이지 축일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전대사가 목적이라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꼴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이 행사 계획 당시 이곳 아시시 마을에서 이 축일을 지내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됐고, 전대사를 받을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축일을 지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 어제 걸으면서 보니 우리의 행진이 순례와 기도와 쇄신의 행진이 아니었습니다. 걷는 내내 세상 얘기만 하는 분들이 있고 그래서 기도하는 분위기가 깨어졌습니다. 더위의 고통과 발이 아픈 고통을 봉헌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일생 복음을 선포하러 다니며 겪었던 순례자와 나그네의 불편을 같이 겪으려는 그런 마음이 부족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한 것처럼 불편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그대로 불평으로 토해냈습니다. 그리하여 불편이 봉헌이 되지 못하고 불평으로 끝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쇄신을 하려면 자기 성찰 곧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 보기 힘들었고 어제 고백성사를 볼 때도 기다리면서 자기를 깊이 성찰해야 하는데 잡담을 하여 다른 사람의 성찰을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절에 가는 의미를 묻습니다. 불공을 드리고 염불하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어서 되겠습니까? 아무튼 저는 올해 이곳 아시시 마을의 첫 번째 포르치운쿨라 축제에서 희망도 보았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다시 또 할 것을 전제로 한 말이고, 앞으로 할 때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부족했던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이곳이 지금 생각하는 피정의 집이 되고, 아시시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이곳이 여러분에게 아시시가 되어야 하고 이곳을 포르치운쿨라로 만들어 가려는 열망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실망스러운 모습 대신 포르치운쿨라로 만들어가는 희망과 열망이 있기를!
오늘 강론은 경기도 마석 글라라의 집에서 있는 서울 3개 지구 합동 포르차운쿨라 미사 때 할 강론을 대신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지식이 끊기면 은총도 끊긴다.
사랑하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시자 사람들은 그분의 지혜와 기적의 능력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라고 묻습니다. 분명 그들이 아는 부모나 형제, 자신들에게서 그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해를 추구하거나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그 은혜의 근원인 대상과 그 은혜에 내가 합당한 자세가 있는지 알려고 해야 합니다.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하며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이는 먼저 부모를 믿습니다. 그리고 알아갑니다. 그러나 어른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지적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려고 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은총이 주어집니다. 당신을 알려고 하루 5분도 투자하지 않는 이에게 그들이 청하는 은총을 주실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교만만 커져 하느님을 자신들의 종으로 여기게 됩니다.
6.25 동란 당시 피난 중 물에 빠져 간신히 살아나 고아가 되어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다가 열일곱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세탁 같은 허드렛일을 하던 이철호씨가 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했습니다. 나에게 은총을 줄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는 미군들이 맡긴 옷가지들에서 때가 잘 빠지지 않으면 삶아 빨았습니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포격으로 파편을 맞아 그 수술 때문에 여차여차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그는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다 배가 너무 고파 요리사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보통 요리를 배우려면 주방에서 2~3년씩 감자만 깎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요리의 종류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감자를 여러 모양으로 깎아 놓았습니다. 나에게 은총을 줄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6개월 후에 요리를 배울 수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공부와 일을 하고 대학은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백만장자입니다.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거의 30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라면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노르웨이에 라면을 팔아보기로 결심합니다. 물론 그들은 라면을 수세미라고 부르면서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접 스프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농심에 자기 이름을 딴 라면 브랜드를 만들어 노르웨이에 팔았습니다. 우스운 모습으로 CF 광고에 직접 출연하고 요리사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라면 시식을 직접 해 주었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의 저자 세이노도 현재는 1,000억 대의 자산가이지만, 자신이 파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입니다.
미군 부대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먹고살고자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화장품이나 식료품들을 가방에 넣어 갖고 부유층 아파트들을 돌아다니며 팔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그런 물건들은 아줌마들이 팔았고 나 같은 남자 대학생은 전혀 없었기에 경비실을 통과하기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문을 열어 준 고객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우선 나는 모든 상품에 붙은 영문 라벨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모조리 외웠습니다.
바세린 연고 하나를 팔더라도 눈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도 잊지 않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눈 화장을 지울 때는 면봉을 사용하라고 하였고 면봉도 함께 팔았습니다. 스팸 햄을 팔 때는 새로운 요리법들도 알려 주었습니다. 결국 한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면 얼마 후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정말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사전 주문도 생겨났습니다.
은총은 알려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그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더는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 주지 않았습니다. 알지 못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하.사.시.’를 읽게 된 계기가 현재 제가 받는 은총의 거의 모든 원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선입관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필립보의 권유로 예수님을 만나 사도까지 되었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전의 내가 가진 지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지금 모습대로 살고 싶어 변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은총을 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은총을 주시는 분을 알려고 하는 노력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신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신부님! 성사 좀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아들인데, 아들에게 고해성사 본다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제가 더 어색해하며 성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고해성사 후, “아들에게 성사하는 것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으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한테 고백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니?”
아들이 자기 죄를 알면 부끄럽지 않을까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모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종종 신자들이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고해소에서 목소리 들으면 누군지 알죠?”
이분은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이 아닌, 인간인 저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동창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봅니다. 처음에 고해성사 볼 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가장 저를 잘 아는 동창 신부에게 성사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제게 맞는 훈화를 해 주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솔직히 고해 들은 것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종 “지난번에 성사 봤던 사람인데요. 기억나시죠?”라고 말씀하시지만,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력 나쁜 머리를 주셔서 하느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그 모든 죄를 다 기억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이 세상을 제대로 살기가 힘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이런 마음이니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고향 나자렛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곳에서 주님의 놀라운 손길이 드러날 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들은 상대방의 믿음을 보고 이루어졌음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존경과 사랑으로 사제를 대하지만, 종종 특정 사제를 향해 “저 사람은 사제도 아니야.”라면서 적의를 표현하고 또 폭력까지도 행사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뽑아 사제로 세워주셨음을 믿지 않는 것이지요. 그 믿음 없음이 과연 자신을 행복하게 할까요? 믿음 없는 곳을 하느님께서는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오늘의 명언
명확히 설정된 목표가 없으면, 우리는 사소한 일상을 충실히 살다 결국 그 일상의 노예가 되고 만다.
- 로버트 하인라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생각이 달라져야 예수님의 실체를 인정할 수가 있습니다. 무지를 깨고 편견을 비추는 기적같은 만남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넘어서야 할 우리들의 불안한 편견입니다. 생명 그 자체로 돌아가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과분한 은총임을 깨닫는 순간이 자비 자체이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순간입니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삶이 우리의 불편한 고정관념을 치유합니다. 축복의 삶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삶입니다.
모든 생명은 기도를 먹고 삽니다. 우리가 옭아맨 고정관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더 이상 우리가 만든 편견의 돌부리에 우리가 넘어지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존경 없는 믿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존중이 멈추지 않는 자리가 기적의 자리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기적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존경과 믿음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은총의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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