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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8/04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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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2024년 8월 4일 연중 제18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8월 4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8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8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16,2-4.12-15)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 제 2독서
    (에페 4,17.20-24)
    여러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 오늘 복음
    (요한 6,24-35)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탈출 16,15)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탈출 16,15)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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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16,2-4.12-15
오늘 제1독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에페 4,17.20-24
오늘 제2독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17 
나는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헛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지 마십시오. 

20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 관하여 듣고 또 가르침을 받았을 줄 압니다. 

22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23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24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요한 6,24-35
오늘 복음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24 
군중은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8월 4일
손우배 요셉 신부

 

✚ 예수회센터 소개 00:23

✚ 미사시작 01:22

✚ 강론시작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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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사람을 속이는 욕망

이집트의 고기 냄비는 ‘옛 인간’의 생활 방식입니다. 그런데 옛 인간의 삶은 충만하지 않습니다. 광야 길에 지친 이스라엘이 이미 잊은 듯하지만, 이집트는 설령 먹을 것이 있었다 하여도 종살이하던 집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이 억눌려 부르짖었기에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는데, 이스라엘은 그 해방을 잊고 음식이 주는 쾌락을 찾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람을 속이는 욕망”(에페 4,22)이라는 표현이 특별히 눈에 들어옵니다. 욕망, 어떤 것을 좋다고 여겨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람을 속인다고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이 참으로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수 건너편까지 애써 예수님을 따라간 이들은 무엇을 찾고 있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빵을 청하지만, 막상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바로 생명의 빵이시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분을 떠나갈 것입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옛 인간에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음식을 구하려고 수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지금 찾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찾지 말라고, 그 빵이 생명을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은 옛 인간을 벗어 버리지 못합니다. 

마치 이집트의 음식을 그리워하여 종살이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들처럼, 내 손으로 붙잡을 수 있어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더 큰 선물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은 배까지 마련하여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옛 인간을 만족시키는 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일용할 양식

정해진 양식,
필요한 양식, 

이 둘 가운데 어떤 것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야 할까? 

풀어서 얘기하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먹어야 할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다 청해서 먹어야 할까? 

오늘 탈출기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만나를 줄 터이니 일용할 양식만 거두라는 말씀입니다. 만나란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입니다. 거두는 수고를 인간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수고를 한다 한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그 수고가 헛되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베드로가 고기잡이할 때의 그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래아 최고의 어부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과 만나는 그날처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그때까지 자기가 고기를 잘 잡아서 고기를 많이 잡고, 자기가 애를 많이 썼기에 많이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겁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힘이 있지요. 능력과 노력이 그것인데 신앙이 없는 인간은 보통 자기에게 능력이 있고 거기에 노력까지 다하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베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만은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는데 예수께서 하라는 대로 하니 많이 잡게 되었고, 이때 그는 예수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주님임을 깨닫고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느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기를 써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믿게 됩니다. 

만나에 담긴 또 다른 뜻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만큼만, 달리 말하면 정해주신 대로 거두어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필요한 만큼 청하는 것을 불허하시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는 가난에 관해 얘기하면서 필요가 곧 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 필요해서 청하는 것과 욕심으로 청하는 것은 다르다고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아신다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청합니까?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조금 필요한데도 많이 필요하다고 필요에 거품이 없습니까?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다시 말해 하루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천년을 써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욕심부림으로써 결국 필요가 아니라 욕심으로 청하지는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내게 더 필요하다 하진 않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인간은 각자의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굶주리고 목마르다.

오늘 복음은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예수님께서 ‘성체’라는 주제로 이끄시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내어주셔 교회를 먹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너지가 떨어져 지쳐감을 의미합니다. 언제 사람이 지칠까요? 불안할 때입니다. 안 좋은 감정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차피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처지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다면 사람이 지치지 않을까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죽음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더 큰 공포를 피하기 위한 피신처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정받지 못함’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더 많은 인정을 받았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주지 않고 더는 작가로서 좋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전 KBS 아나운서인 이혜성 씨는 똑똑하고 예쁘면서도 ‘인정중독’에 빠져있었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녀는 공부를 잘해서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인정을 받아도 배가 고파서 폭식증에 시달렸습니다. 먹으면 멈출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마음, 이것이 배고픔이고 목마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인정받음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진주를 들고 시장에서 그것을 팔려고 다니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그렇게 귀한 물건을 들고 다닐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아이에게 그 진주를 준 부모만이 그 진지의 가치를 압니다. 

우리 각자는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라는 진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를 창조하신 분에게 봉헌한다는 말은 그분만이 그것을 5천 명을 먹이실 만큼의 가치로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 곧 의미 치료를 한국에 소개한 책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의 공동 저자 박상미 교수는 24세 때 수돗물이 얼 정도로 단열이 안 되는 옥탑방에서 인생을 끝내려 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남자친구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몰래 사귀고 있었으며 가난은 그녀를 더는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이틀 동안 잠들어 있다가 깼을 때 그녀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자기 죽은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죽기를 원했던 그녀는 “살려주세요!”를 연발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주어진 은총이라고 믿으니 그 삶을 주신 분이 왜 자신을 창조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처럼 심리적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의미를 찾아주는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였고 그것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당신 살과 피는 내 빵과 물고기를 바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을 창조자로 믿고 그분이 나를 창조하신 뜻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저도 저 자신을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며 불만에 싸여있을 때 성체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음성을 들었고 그제야 나의 죄를 깊이 뉘우치며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나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때 더는 신학교 생활이 지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이유는 나를 바쳐 목숨을 걸고 수행할 사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찾지 못한 이유는 나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살과 피를 내어줄 존재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가 바로 아이가 부모를 만나듯이 우리가 당신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알려주는 창조자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통해 우리가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냥’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실수한 사람에게 “왜 그랬어?”라고 묻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그냥”이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이 무책임한 단어에 화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무책임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떻게 되겠지.’라는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나’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당연히 자기가 만든 ‘나’입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마치 남이 만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갖 불평불만을 다 쏟아내곤 합니다. 부모님 탓, 조상 탓, 형제자매 탓, 친구 탓, 회사 동료 탓, 환경 탓, 여기서 더 나아가 하느님 탓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남이 나를 만들었을까요? 큰 착각입니다. 자기가 만든 ‘나’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면서 책임감 없이 사는 우리입니다. 그 결과의 삶은 만족스럽지 못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지금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바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만드는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고유한 ‘나’를 만들면서 지금을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남 탓, 조상 탓, 환경 탓, 하느님 탓 등을 하고, ‘그냥, 어떻게 되겠지.’ 등의 무책임한 말로 꽁꽁 싸매고 사는 삶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 혼자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하고 나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언제나 함께하시기 위해 생명의 빵을 매 미사 때 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은 빵을 배불러 먹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빵이라는 사실은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거저 주어지는 빵을 계속 먹고 싶어 했기에 하느님의 일을 하려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일을 해야 예수님의 빵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실 주님께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렇게 큰 사랑을 계속 베풀어주신 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무상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면서, 자기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싫어하시는 것을 우리도 싫어한다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하느님의 뜻과 일치될 것입니다.

- 성 아오스딩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담쟁이와 칡넝쿨처럼 배고픔과 목마름은 뒤얽혀 있습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거짓 없이 정직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생명의 빵으로 살아갑니다. 생명의 빵은 거짓을 이깁니다. 생명의 빵 앞에 우리모두 머리를 숙입니다. 생명의 빵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거짓과 속임수로 살지 말고 생명으로 어우러져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빵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살아있음과 살아감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 삶의 희로애락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빵이 감사로이 우리의 삶을 안고 갑니다. 삶은 삶을 통하여 전달됩니다.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허기와 갈증을 채워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며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좌표가 되시는 생명의 빵이 계십니다. 생명은 생명의 빵을 만나야 합니다. 생명의 빵을 온 삶으로 모시는 감사의 거룩한 주일 되시길 바랍니다. 생명은 생명의 빵으로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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