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앞장서 가신 나라로 나약한 양 떼인 저희를 이끄시어 하느님과 함께 천상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4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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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4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4,8-12)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제 2독서
(1요한 3,1-2)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0,11-18)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오늘 말씀 카드
(1요한 3,2)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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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요한 10,11-18
오늘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21일
오흥서 바오로 신부
✚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소개 00:22
✚ 미사시작 01:21
✚ 강론시작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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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나는 착한 목자다.
부활 제4주일의 복음은 ‘착한 목자’에 대한 긴 담화의 결론 부분에 해당합니다. 오늘 복음은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이를 부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선언 뒤에는 그 ‘착함’의 이유가 설명되는데,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목숨”(그리스 말 ‘프쉬케’)은 오늘 본문에 여러 차례 등장할 정도로 강조된 단어인데, ‘숨’ 또는 ‘호흡’을 뜻하며, 인간의 영혼, 생명, 활력 등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자기 숨과 영혼을 내주어 상대를 대신 살게 함을 뜻합니다. 그와 반대로 ‘목숨을 내놓지 않는 목자’는 “삯꾼”입니다. 삯꾼은 자기가 살고자 양들을 이용하고 불필요해지면 내다 버립니다. 그가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등장한 “나는 착한 목자다.” 다음에는 ‘앎’에 대한 내용이 소개됩니다. ‘안다’(그리스 말 ‘기노스코’)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배우는 인지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고, 상대의 본질을 섬세하게 깨달아 이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행위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제2독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를 생각하여 보라고 권고합니다.
특별히 오늘 제1독서에는 작은 반전이 등장합니다. 착한 목자는 사랑하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만, 동시에 그 착한 목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목숨을 내놓는 목자는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시기에 착한 목자 본문을 봉독하는 이유입니다.
양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맡겨진 양들을 하나하나 알고 생명을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의 숨이 양들의 숨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 이 ‘착함’만이 목자가 가지는 진정한 힘이며 권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좋으신 목자의 착한 양들
저는 가능하면 우리말을 쓰자는 주의자인데 오늘 복음의 목자에 대해서만은 한자어를 쓰자고 주장합니다. 지금 우리의 번역은 주님을 “착한 목자”라고 번역했는데 한자어 “선한 목자”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입니다. 선한 목자 안에는 착한 목자와 좋으신 목자의 두 가지 뜻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착한 목자라고 번역하면 아버지 보시기에 착한 아드님만 강조되고, 우리에게 참 좋으신 주님이라는 측면은 빠져 있는데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는 착한 아들이시지만 우리에게는 좋으신 목자시지요.
이는 마치 맛이 좋은 과일을 맛이 착한 과일이라고 번역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당신은 제게 참 좋은 목자십니다.’라고 해야지, ‘당신은 제게 참 착한 목자십니다.’라고 해서는 안 되지요.
어쨌거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목자가 되신 분이시고, 우리를 아버지 하느님께로 책임지고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목자는 삯꾼과 다르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삯꾼은 돈을 벌려는 사람 곧 돈에만 관심이 있지 양들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리로 인해 양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 자기 목숨을 바쳐 구할 마음이 없습니다. 삯꾼의 관심 없음에 대해 오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당신 목숨을 바쳐 우리를 살리시는 구원자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는” 유일무이한 구원자십니다.
사실 우리의 부모가 나를 아무리 사랑하셔도 나를 구원하지 못하시고, 아무리 내가 나를 사랑해도 나의 구원에 너무도 철없이 무관심하지만 주님만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나를 구원하시려고 불철주야 애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 구원자이시기에 당연히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래서 이렇게 또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여기서 주님께서 나를 아심은 나를 속속들이 아심이고 그래서 관심과 사랑의 다른 이름이요 그 결과입니다. 나의 죄도 속속들이 다 아시지만 나의 약함도 아시고 나의 고통도 다 아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잘 그리고 다 아시는데 우리는 이런 주님을 알고 있고 잘 알고 있습니까? 양들도 당신을 안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주님을 잘 아느냐 그 말입니다. 주님을 잘 그리고 다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것만이라도 아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참 좋으신 목자인데 우리는 그분의 착한 양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참 좋으신 목자인데 나는 길잃은 내 이웃 양들에게 무관심하니 좋은 목자도 아니고 좋은 양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좋으신데 나는 착하지 않음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제들만 살 수 있는 나라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든 그 공동체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능력’입니다. 모기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살 수는 없습니다. 강도질하거나 사기를 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재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여인 중 한 어머니의 아이가 죽었습니다. 질투 끝에 다른 엄마의 아기를 훔쳐 왔습니다. 둘이 그 아이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솔로몬은 그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누어 가지라고 합니다. 못된 여인은 그러자고 하고 진짜 엄마는 차라리 그 아이를 여인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그 나라에 살 백성이 정해집니다.
아직 아이는 그 나라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를 그 나라에 살 자격을 얻기까지 키워낼 수 있는 여인은 그 아이의 생명을 위해 자기 소중한 아들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엄마밖에 없습니다. 이 역할을 우리는 ‘사제직’이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사제들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서품받아야만 사제가 아니라 세례를 받으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왕직, 예언자직, 그리고 사제직에 참여합니다.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 혹은 성소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희생에 감사하여 그분의 뒤를 따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부활의 영광을 아버지께 받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녀를 잘 키워놓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는 영광처럼, 분명 그리스도는 부활하실 수밖에 없는 시스템 안에서 사셨습니다.
사제는 더 높은 세상과 더 낮은 세상을 연결해주는 중개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더 높은 존재와 머무는 것도 피 흘림이고, 더 낮은 이와 머무는 것도 피 흘림입니다. 하느님과 머물기 위해서는 죄를 죽여야 하고, 죄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도 참아내야 합니다.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산속에서 40년을 산 할머니가 나옵니다. 그 할머니에게 제작진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내려가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추운 겨울임에도 텐트를 치고 일주일 이상을 할머니와 머물며 말벗이 되어주고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줍니다. 할머니 마음이 열립니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자신이 가진 귀한 쌀과 김치로 밥을 지어줍니다. 제작진은 맛있다며 먹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미안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그래!”라고 말합니다. 사제의 피는 양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줍니다. 그래서 아래로 내려가자는 제작진의 말을 듣습니다.
할머니는 40년 만에 따듯한 밥과 잠자리에서 허리를 펴고 주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이러한 고생을 한 제작진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와줄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늘에서도 일어납니다.
성 다미아노 신부는 아무도 가지 않는 나병 환자들 촌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선교합니다. 그들의 무덤을 파 주고 고름을 닦아줍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도 나병에 걸립니다. 이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가 평소에도 “주님, 저에게도 같은 나병을 허락하시어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신은 건강을 잃어버렸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병 환자들 틈에서 일하는 내 선교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희생을 내려주셨으니, 나의 이 희생은 극히 작은 것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극히 유익한 것이었다.”
나병에 걸려 돌아가시는데 뭐가 유익했다는 말일까요? 돌아가시면서도 “하느님 진실로 내 인생은 행복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영원한 행복에 들리라는 확신은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이 세상도 그러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의 시스템도 같을 것이란 확신 때문입니다. 이분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수많은 봉사자와 재정적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성인은 이 모습을 보며 하늘나라에서 당연히 받을 보상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분과 함께, 이분을 이어 봉사하셨던 성녀 마리안느 코프 수녀는 나병에 걸릴 것을 걱정하는 동료 수녀들에게 자기 수녀원에서는 단 한 명도 나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확언하였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사제직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은총이 한없이 주어짐을 표징으로 보여주십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는 영광은 자녀를 잘 키워내는 희생에 기인합니다. 이것이 사제만이 하늘나라 영광을 차지할 이유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습니다. 국민의 봉사자, 일꾼을 뽑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본인만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해서 당선되었을까요?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 국회의원 후보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을 한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까? 도와준 사람이 아닌, 그저 국회의원 한 사람만 알 뿐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일을 한 사람이 자기를 모든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자기 역할에서 최선을 다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 그 자체로 만족합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중요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 동네 치안을 담당하시는 분, 마트에서 계산을 도와주는 분들 역시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름도 아니 얼굴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 중요한 사람들로 인해 편하게 지금을 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자리에서 중요한 자기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사랑을 그리고 자기의 헌신을 몰라 준다고 억울해하고 화내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실천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또 남들이 나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실천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자체로 만족하며 행동하는 사람만이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입니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한 날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꾸준한 기도와 필요한 활동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착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착한 목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즉,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하셨습니다. 목자의 참된 요건은 단순히 양 치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양들에 대한 관심과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사랑 그리고 양 떼의 주인에게 충실한 것이 착한 목자의 자질입니다.
성소는 단순히 사제 성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성실하게 사는 삶이 바로 성소에 부합하게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 속하는 양이 되어 자기 성소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충실한 양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성소를 다시금 생각하고, 자기 자리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를 떠올리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놀랍게도 세상에 바뀐다.
- 메리 파이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연두빛 새순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첫마음으로부터의 첫시작을 되새기는 소중한 사랑의 성소주일입니다. 가장 귀한 부르심과 가장 귀한 따름의 잊지 못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순간이 빛나는 선택이며 빛나는 감사였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그만큼 마음가짐이 중요한 성소의 여정입니다. 자기를 살리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착한 마음을 주시고 착한 양은 착한 마음을 냅니다.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착한 목자와 착한 양의 만남입니다. 우리의 매 순간은 이 특별한 만남으로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시며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십니다. 성소의 여정은 두 손을 모으는 기도의 여정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저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착한 목자 앞에서 묻고 답하는 은총의 성소주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야 할 가장 소중한 성소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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