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라 불리리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탄생으로 참된 믿음을 일으키시고 완성하셨으니 저희를 인류 구원의 샘이신 성자의 지체가 되게 하소서.
2024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2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요한 2,18-21)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1요한 2,18-21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네.
요한 1,1-18
오늘 복음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31일
유재선 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7:34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생중계 성당
- 가회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가회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가회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06: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생중계 없음 - 남양성모성지 온라인 매일미사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남양성모성지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생중계 없음 / 화 11:00 / 수 11:00 / 목 11:00 / 금 11:00 / 토 11:00 - 원당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원당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원당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10: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10:00 - 초당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초당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초당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0:30 / 월 06:30 / 화 19:30 / 수 10:00 / 목 19:30 / 금 10:00 / 토 10:00 - 팔로티회 온라인 매일미사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분당 팔로티회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부임 첫 본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해 첫날 이른 새벽에 사제관에 전화가 왔습니다. 본당 총회장님이었습니다.
“신부님, 이른 아침부터 죄송해요. 저희가 성전에 모여 있는데, 잠깐 오셔서 강복 좀 주실 수 있나요?”
성전에 들어가 보니, 몇몇 교우들이 성체 조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웬일이세요?”
“신부님, 다른 사람들은 일출 보러 바다로 산으로 떠났는데, 저희는 예수님 만나고 싶어서 왔어요.”
참된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과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1,16)라는 복음 말씀처럼, 그분께서는 은총의 샘이십니다. 그러나 사목 현장에서 만난 교우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총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1요한 2,20).
제1독서의 이 말씀처럼 우리는 또한 예수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은총과 생명, 구원의 빛이 있다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진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동안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좋았던 모습도 그러지 못하였던 모습도 모두 그분께 봉헌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안에서 영적인 생명을 얻어 나가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한처음이신 주님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한 해를 마치면서 지난 한 해만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거 지향적으로 현재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내다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거와 미래가 같이 있는 현재를 사는 사람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현재의 자기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자기의 감정과 상태가 과거도 미래도 매몰시킬 뿐 아니라 삶을 같이 나눈 다른 사람들을 같이 돌아볼 수 없는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이에 비해 나의 한 해 동안 나에게 힘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뿐 아니라 나의 삶을 힘들게 했던 사람까지 함께 돌아보는 사랑의 사람도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안 좋은 일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거나 안 좋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안 좋은 것만 눈에 보이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는 사람은 나 같이 부족한 사람, 나 같은 죄인에게 좋은 일도 많았고 너무도 고마운 사람이 많았다고 한 해를 감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인간과 인간사만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일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비해 일과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 안에서 일과 사람들을 보는 사람은 그 일에 하느님의 뜻이 있음을 보고, 그 사람이 하느님이 내게 보내신 사람임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내다보면서 모든 시간의 원천이요 주인이신 한 처음을 봅시다. 모든 것을 있게 하시고 주시는 하느님을 봅시다.
2024년도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새해 모든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은총으로 껴안으실 수 있는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은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은총으로 하느님이 됩니다.
오늘은 “성탄 8부 내 7일”이며, 2024년을 마감하는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다보며, 오늘을 가져다 준 지난날들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보낼 수 없었던 한해를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는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복음>을 통해서는 ‘한 처음의 날’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한 처음’의 놀라운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여기서, “사람”은 직역하면 ‘살을 취하였다’는 것으로 약함 안으로 들어온 것을 말하고, “사셨다”는 것은 ‘천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어 오셨고, 사람이 되시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함께 거주하고 사신다.’는 믿음은 초기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교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초대교회의 찬미가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이는 단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하느님 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엄청난 사랑’을 말해줍니다. 교부들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까닭은 인간이 하느님 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변모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변모’와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변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을 ‘비우는’ 일이 있고, 그와 ‘같아지는’ 일이 있고, ‘하나 되는’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본받는’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심도 깊은 신비적 차원을 일이 벌어집니다.
곧 베드로가 표현한대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2,4) 되는 일이 있고, 바오로가 표현한대로 “그분의 형상을 지니고”(1코린 15,49), “그리스도를 입고”(로마 13,14;갈라 3,27;콜로 3,10), “같은 모습이 되는”(로마 8,29)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고 내어주어, 그로 하여금 당신께서 누리는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함께 누리게 해 주는 것입니다. 곧 ‘사랑’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타자가 자신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그에게 내어주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그의 자리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어주는 것은 곧 들어가는 일이 됩니다. 곧 자신을 내어주고 나아가 상대에게 들어가기에, 동시에 자신의 그 빈자리에 그를 받아들이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를 취하고 상대를 받아들여 상대와 같아지고,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에서 전해져 오는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직 같아지는 것만이 구원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비우는’ 행위의 종착지는 ‘같아지는’ 것이요, ‘하나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은 또 다시 당신에게로의 변형을 가져옵니다. 곧 이러한 변화는 변화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다른 차원의 변화로 끌고 갑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같아짐’을 통해 우리와 자리를 바꾸는 지점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곧 인간을 하느님이 되게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은총으로 하느님이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를 “놀라운 교환”(admirabile commerci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길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바로 그 길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그저 자기 자신의 ‘아무 것도 아님’ 안에 머물면, 하느님께서 그 안에 들어와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4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주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제 발길이 당신을 향하여 있는지
제 마음에는 당신의 평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제 안에
생명의 빛을 불어넣으셨으니
이제는 죽음의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당신 생명으로 새로워지고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온 세상이 생명의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나는 절대 죽지 않아. 한 말씀만 있으면.
오늘 복음은 로고스 찬가입니다. 로고스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생명이고 빛이십니다. 말씀이 어떻게 생명이 될까요? 인간에게 있어서 말씀은 곧 생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이들은 말씀을 갈망합니다.
‘책도둑’은 나치 독일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인간성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주인공 리젤은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 자신의 삶에 들어온 ‘말씀’을 통해 글을 배우고,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켰습니다.
당시 독일은 자신들의 잔인한 폭정에 반대하는 책들은 다 불태웠습니다. 부모님과 남동생을 잃은 리첼은 그래도 인간성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배우고 불타다가 남은 책들을 주워 읽습니다.
그가 글을 배우고 읽고 쓰는 작은 지하실은 독일에 남은 작은 인간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유대인을 숨겨주며, 훔친 책들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성장시켰습니다.
어느 날 폭격으로 인해 마을의 대부분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파괴된 순간에도 그녀는 살아남습니다. 그 작은 지하실에서 글을 쓰다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잔인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말씀으로 양식을 삼으면 결국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 1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리젤의 이야기는 암흑 속에서도 빛으로 존재하시는 말씀의 생명을 보여줍니다. 말씀은 그녀의 삶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고난 속에서도 자기 생명과 같은 사랑과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버락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의 가장 위대한 멘토가 되었던 흑인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야 안젤루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큰 고난과 차별 속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글과 시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는 왜 새장에 갇힌 새가 노래하는지 안다’라는 그녀의 시는 자유를 갈망하며 억압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간의 영혼을 노래합니다. 마야 안젤루의 말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희망을 전파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마야 안젤루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이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사야서 40장 31절의 말씀처럼, “주님을 바라는 이는 새의 날개처럼 힘을 얻는다.”라는 구절이 그녀의 삶에 잘 들어맞습니다.
마야 안젤루의 말에는 피가 묻어있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은 수많은 역경을 거쳐오며 깨달은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가 “너는 네가 믿는대로 될 것이다.”라는 말을 받아들여 믿음을 키웠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오프라 윈프리를 절망에서 구해주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말씀은 제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었습니다. 한 번은 성체를 영하면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 삶의 방향을 사제로서의 길로 확실히 정했습니다. 사제직의 여정에서 때때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동안 저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음을 느낍니다. 이는 시편 119편 105절에 나오는 “당신의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제 길의 빛이옵니다.’라는 고백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이끄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처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진리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이를 믿고 말씀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생명이고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한 말씀은 나의 모든 고통을 치유해 줄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매일 말씀으로 나의 길을 닦는다면, “난 결코 쓰러지거나 죽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았던 자매님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높은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정에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좋은 아내, 엄마라고 충분히 부를 수 있는 분이었다. 또 이웃에게도 친절했고,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쁜 일상으로 종교 활동에 전념할 수는 없었지만, 죄짓지 않으며 하느님 뜻에 맞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자매님에게 충격적인 일이 다가왔습니다. 글쎄 말기암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의사에게 암이 생긴 이유를 물었습니다. 뭘 잘못 먹어서인지, 운동이 부족해서인지,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인지, 뭐든지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분명히 자기 탓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냥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같은 것이에요.”
무엇이 잘못되면 원인을 찾고 이를 고쳐나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아닐까요? 이때 드는 생각은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불공평으로 삶 전체가 부정되는 느낌일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일상 삶 영역을 넘어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하느님의 영역을 우리 인간이 알 수 없습니다. 억울하다고,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하느님 영역에서는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인간의 영역을 넘어 진정한 행복이 있는 하느님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고 또 부정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맡길 때 바뀔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요한은 ‘말씀은 사람이 되셨다’라면서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요한이 과연 아무런 문제 없이 하느님을 체험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역시 많은 고통과 시련으로 겪었고, 그러나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더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예수님을 참된 메시아로 고백하며, 그 뜻을 우리 역시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노력할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벌써 2024년의 마지막 날을 보냅니다. 올 한 해 과연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그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살았는지를 반성했으면 합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어도 분명히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순간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긴 세월은 저절로 흘러간다.
- 마리아 에지워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2024년은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의 본분을 다시 배우는 가치있는 한 해였습니다. 가장 쉽고도 평범한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늘의 빛을 갈망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밀어낼 수 없는 하늘의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은 우리의 본모습을 찾게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오늘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참빛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향한 사랑의 참빛은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키우지 못한 우리들입니다.
뜨거운 마음을 태우며 사랑은 어둠을 비추는 빛이 됩니다. 세월의 발걸음은 차갑지 않아야 합니다. 2024년을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얽매임과 사로잡힘이 아닌 평화의 빛을 믿기에 우리 안에 피어나는 많은 감정들을 하느님께 내려놓습니다. 더 좋은 세상 더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더욱 빛나는 은총의 2025년이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24년의 고통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 더 한층 성장하는 2025년의 참빛이 되길 희망합니다. 서툰 묵상이지만 제 마음을 받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01/03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03 |
---|---|
25/01/0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02 |
25/01/01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01 |
24/12/30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12.30 |
24/12/29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12.29 |
24/12/28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12.28 |
24/12/27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1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