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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3/17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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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불충한 백성에게 맞서 제 소송을 이끌어 주소서. 거짓되고 불의한 자에게서 저를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의 힘이시옵니다.

주 하느님, 성자께서는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셨으니 주님의 도우심으로 저희도 그 사랑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2024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3월 17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3월 1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5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예레 31,31-34)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 제 2독서
    (히브 5,7-9)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2,26)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으리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으리라. (요한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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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으리라.

 

 

요한 12,20-33
오늘 복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3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32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3월 17일
이학노 요셉 몬시뇰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12:35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바랐을 소망을, 오늘 복음은 그리스 사람들의 입으로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동문서답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은 매우 정확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뵙고 그분을 알고 싶다면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건너가는 참된 파스카를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생명’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의 신비가 온전히 드러난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은 뒤 다시 열매를 맺듯, 십자가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파스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마지막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당신을 뵙게 하여 달라는 이방인들의 요청에, ‘땅에서 올려진 십자가’야말로 가장 정확히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장소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다면, 십자가를 바라보면 됩니다.

사랑이 완전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완전함을 요구하면, 그 자체로 억압이고 폭력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은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지요. 그러나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은 완전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그 고통스러운 계획이 이제 시작되려고 합니다. 십자가야말로 죽음으로 사랑을 드러내는 완전한 사랑의 장소요 그 약속(계약)의 장소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길 떠나는 인생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얘기합니다. 그러니 오늘 사순 제5주일은 ‘영원한 구원/생명을 얻는 길’이 주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의 길은 요한복음에서 아주 선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에 예수님이라는 길을 따라가면 진리의 길을 가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되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 김찬선을 따라오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을 프란치스코나 성인들처럼 잘 따르는 사람이면 저를 따르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이 되기에 저를 따라도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저를 따라오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주님을 잘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봐야 합니다. 어떤 것이 주님을 잘 따르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떠나야 길입니다. 떠나지 않는 길이란 없습니다. 문제는 길 떠나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황천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자기 목숨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가기보다 이집트에서 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서 제4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 지켜야 한다고 하신 다음, 모든 걸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자 따르지 않습니다. 

그가 생각한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야 하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있던 곳을 떠나야 하며, 죽음이라는 강도 건너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홍해가 있었습니다. 홍해는 죽음의 강이기도 하고 생명의 강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목숨은 잃고 가나안의 목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것이 싫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것이 싫습니다. 

자기 부정이기 때문인데 그러나 자기 목숨을 미워함은 작은 자기는 부정하고 큰 자기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소아(小我)는 죽고 진아(眞我)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인생은 어차피 목숨을 담보로 한 투자임을 알면 인생이 단순해진다.

‘한국 교회사 열전’에 따르면, 정 쁘로다시오는 개성의 명문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내려와 신분을 감추고 새끼 꼬는 일을 하면서 미천하게 살았습니다. 30세경에 입교하여 부인과 함께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보기 위해 서울로 모여드는 교우들을 돌보았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타인의 밀고로 부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배교를 강요하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형벌과 형관의 감언이설로 배교하여 석방되었지만, 바로 후회하고 뉘우치며 다시 형조에 달려가 배교를 취소하고 죽기를 청합니다. 

형조의 문지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굽히지 않고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계속 조르는 바람에 결국 41세의 나이로 순교합니다. 

가끔 이런 순교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죽고 싶어서, 죽기 위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주식 시장에서 수익에 확실한 때에 돈을 빌려 가면서까지 투자하려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밀알 하나로 상징되는 당신 목숨을 더 많은 생명을 얻기 위해 투자하셨습니다. 그 투자처는 아버지였습니다. 투자 방식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끊임없는 투자자임을 증명합니다. 유튜브에서 보니 자기가 키운 하마에게 물려 죽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하마를 자신이 키웠으니 하마가 자기를 물지는 않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또 다른 것에서 보니 개가 호랑이 새끼들을 젖 먹여 키웠는데 그 호랑이들이 커서 어미 개를 지켜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개가 되었습니다. 자기 주위에 호랑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투자하지 않고 가만히 두면 어떨까요? 썩습니다. 결국 인간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습니다. 그냥 놔두는 것도 일종의 투자입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2007)는 맥캔들리스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무엇이든 잘해야 한다는 부모의 기대에 지쳐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외도로 생기게 된 아들입니다. 

그는 대학까지 졸업해 주고 가진 돈 모두를 기부하고 자유를 찾아 미국을 횡단하여 알래스카까지 갑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의 목적지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은 그에게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에 갇혀 “행복은 함께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라는 글을 남기고 버스 안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합니다. 

맥캔들리스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자유는 없었습니다. 외롭기만 했고 관계를 위해서는 일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투자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이것을 알면 인생이 쉬워집니다. 나의 밀알을 사랑이라는 땅에 묻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자는 언제나 손실이 날까 두렵게 합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액을 한꺼번에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버린 것의 100배를 받고 죽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먼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청년 레지오를 하며 봉사하지 않았다면 사랑에서 오는 생명력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제가 되고 온전히 생을 봉헌하기를 결심하기까지 우리는 충분히 시험해 볼 기회가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내가 투자하는 생명에 가장 많은 열매가 맺히게 하는 대상에 투자합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투자합니다. 투자법을 압니다. 어른이 되었다면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요? 역시 아버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아드님이 당신을 위해 투자하게 함으로써 그 열매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우리 결단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여인은 칸트가 청혼해 주길 원했지만, 칸트는 데이트 때마다 철학적인 이야기만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먼저 칸트에게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저와 결혼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칸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개, 결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350개를 찾았습니다. 이제 결정했습니다. 결혼해야 하는 이유가 4개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칸트는 결혼하지 못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연구 후에 청혼하러 여자의 집에 갔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 딸은 이미 결혼했네. 아이가 둘이나 있지. 그동안 자네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결혼의 장단점을 생각하는 동안 3년이나 흐른 것입니다. 
 
심사숙고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루기만 하는 것은 큰 후회를 남길 뿐입니다. 특히 사랑이 그렇습니다. 사랑은 먼 훗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겠다. 사랑하겠다.”라며 뒤로 미루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 사랑한다.”라며 지금 당장 말하고 또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사랑은 미뤄지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지금 사랑해야 함을 주님께 배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계약을 맺으시려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으며,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 드릴 순간이 다가왔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겪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이 세상의 삶을 모두 거는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구원을 위한 사랑 때문에 또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드높이는 사랑을 위해 지금 당장 결심하시고 이행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당신 사랑으로 많은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주님의 사랑이 모든 구원이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어떠해야 할까요?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지금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미루는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남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나도 실천하겠다는 이기적인 사랑도 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듯이, 어떤 조건도 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랑만이 예수님을 온전하게 따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날지 선택할 수는 없었더라도 어디로 갈 것인지는 택할 수 있습니다.

- 스티븐 크보스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에 새겨져 있는 밀알의 여정입니다. 죽어야만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열매를 맺는 밀알이 진짜 밀알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생명의 길이 열리는 생명의 참된 순리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질수록 멀어지는 열매의 길입니다. 

삶의 방향을 잡아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생명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우리에게 심어주십니다. 하느님을 긍정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습니다. 

죽어야 사는 우리들 삶입니다. 죽어야 비로소 살아있음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죽어야 할 생명이 살아야 할 생명이 됩니다. 죽어야 부활하는 삶입니다. 땅이 밀알을 받아들이듯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할 부활의 삶입니다. 밀알을 많은 열매로 구원하듯 우리를 십자가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믿는 뜻깊은 사순입니다. 열매의 길이 생명의 길이며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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