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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7월 30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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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

 

 

2022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을 사형에 처하려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 영주는 생일에 아내 헤로디아의 딸이 청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선물로 줍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7월 30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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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14장 1-12절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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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김주헌 스테파노 신부 강론

 

 

2022년 7월 30일 (토)
김주헌 스테파노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7월 30일 (토)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세례자 요한의 죽음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허망하고 충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마태 11,11 참조)이라고 하신 이의 죽음에서 어떠한 영웅적인 모습이 보이지도, 하느님의 극적인 개입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저 ‘힘 있는 자들’이 벌인 잔치의 ‘눈요깃감’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죽음으로 지상에서 요한의 삶은 끝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의 죽음에서 불사불멸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세상 권력과의 거창한 투쟁 끝에 장렬한 죽음을 맞기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와 예언자,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서조차 우리가 찾는 특별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정의와 평화, 진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목숨은 오히려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의 구원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어쩌면 가장 없애 버리고 싶은 목숨, 가장 하찮게 여기는 목숨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의 핵심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그에 따르는 비통함이 아닙니다. 악이 하느님의 사람을 죽이지만, 악의 힘으로는 하느님의 사람도, 하느님의 나라도 결코 끝낼 수 없다는 희망을 선포하는 데에 있습니다. 악에 의해서 결코 끝나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체험해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이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따라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보았는지 소리 내 웃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 입을 막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성당에서는 웃는 것 아니야.” 
 
지난 부활 대축일 미사 때였습니다. 미사에 오신 신자들을 향해 밝게 웃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신자들 역시 “축하합니다.”라면서 인사했지만,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부가 인사하니 마지못해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큰 슬픔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분이 다시 살아나서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깜짝 놀람과 동시에 큰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에 큰 기쁨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실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성당에서는 웃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 암시에 걸려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 눈치를 보면서 웃어야 할 때도 웃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도 울지 못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신앙인은 세상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을 살피면서 그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헤로데 영주가 헤로디아의 농간에 농락되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자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기는 했지만, 의인으로 생각하면서 함부로 하지는 못했지요. 그러나 자기 생일잔치에 헤로데의 고관들과 갈릴래아의 내노라는 인사들이 초청된 자리에서 기분이 너무 좋아 헛된 맹세를 합니다. 어떤 청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맹세였습니다. 이때의 청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군주가 손님들을 초청해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것은 그들에게 자기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예수님의 소문에 죽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하면서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나바테아 왕녀를 소박한 것이 빌미가 되어 나바테아 왕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게 되었고, 전쟁 패배로 인해 로마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을 가서 죽게 됩니다. 
 
세상의 눈치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를 살피면서 그 뜻에 맞게 열심히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눈치는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요한이 헤로데에게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마태 14,4)

 

올바른 삶은 우리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가져다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견디고 지켜나가는 이들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의 열매가 된다. 어중간한 삶을 아프게 반성한다. 

문제의식은 너무 무디고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럽다. 명백한 과오를 통해 삶을 교정하고 과거의 악순환을 멈추는 것이 신앙인의 참된 도리이다.

진리는 아무래도 숨겨지지 않는다. 요한 세례자가 등장한다. 그는 진리로 삶을 이야기한다. 양심을 깨우고 정의의 목마름을 외치고 이기(利己)와 무지를 꾸짖는다. 우리 시대를 바로 보는 것이 예수님을 바로 보는 신앙인의 사명이다. 

새로운 삶은 이와같이 어디서 한순간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고 각오와 결심 실천을 통하여 일으켜 지는 것이다. 일으켜 지는 정신이 우리모두를 건강한 삶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올바른 삶은 작은 길도 선명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만든다. 진정한 회개를 다시 품게하는 요즈음이다. 진리이신 주님과 가까워지는 삶인지를 자문하여 본다. 환상적인 만남이 아니라 진실한 만남이 중요하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달라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가치는 우리자신의 진실한 회개이다. 진실한 회개가 우리 시대의 참된 좌우명이 됨을 믿는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회개의 순간이며 회개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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