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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0/0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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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하느님, 놀라우신 섭리로 천사들을 보내시어 저희를 지켜 주시니 저희가 사는 동안 천사들의 보호를 받다가 마침내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0월 2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0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수호천사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23,20-23)
    나의 천사가 앞장설 것이다.

  • 오늘 복음
    (마태 18,1-5.10)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탈출 23,20-23
오늘 제1독서

나의 천사가 앞장설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8,1-5.10
오늘 복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0월 2일
도승현 베드로 신부

 

✚ 수호천사기념일 소개 00:06

✚ 10월 교황님 기도지향 01:17

✚ 미사시작 01:34

✚ 강론시작 08:3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한 나그네가 짐을 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갑자기 웬 소 한 마리가 빈 수레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가는 길인데 …….’라고 생각하며 자기 짐을 수레에 실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생각해 보니 소라는 동물은 본디 사람 일을 돕기 마련인데, 소에게 짐만 싣고 자신은 미련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는 소 등에 올라탔습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그네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소에게 채찍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소는 나뒹굴었고, 소에서 떨어진 나그네는 다치고 짐도 여기저기 흩어져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에게 짐을 지우고, 게다가 자기 몸까지 실어 놓고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를 더 괴롭히는 나그네의 모습을 우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일 나그네가 소를 귀하게 여겼다면 그는 소와 더불어 편안하게 여행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소중히 여기고 소는 하찮게 여겨 결국 소와 함께 자신도 다치고 짐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기]”(18,10)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누가 더 잘났고 못났는지를 판단하기보다 ‘더불어’, ‘함께’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다른 이도 귀하게 여기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수호천사는 누구?

그끄저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오늘 또 수호천사 축일을 지내는 것은 무슨 뜻이람? 오늘 이런 말이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천사 축일을 하나만 지내면 되지 왜 대천사 축일, 수호천사 축일을 따로 너절하게 지내는 것입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의 불경스러움을 즉시 반성하면 교회 전례가 이렇게 하는 것에는 저도 모르는 큰 뜻이 있겠지, 급히 겸손 자세로 급변경하여 그 뜻이 무엇일까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묵상하니 ‘맞춤 천사’가 수호천사란 연결이 되었습니다.  

수호천사란 너절하게 많은 천사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나의 천사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이런 말도 생각났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알맞게 잘해 주실 수 없으셔서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어머니를 주셨다는 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많아도 내게 어머니는 딱 하나이고 나의 어머니요 나만의 어머니입니다. 또 다른 생각도 났습니다. 제가 인도 가서 여러 힌두 사원을 둘러봤을 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 같은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본다는 뜻이고, 천수천안(千手千眼)이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은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보고 듣고, 천 개의 손으로 보살피고 보듬는다는 곧 대자대비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수호천사도 이해하면 수호천사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다 보살피시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즉시 백 마리 양과 길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주님께서는 양이 백 마리가 있어도 한 마리도 잃지 않으시겠답니다. 우리의 주님은 당신이 길이시고 길잡이시며 한 마리의 양도 잃지 않으시는 착한 목자라고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 길이고 길잡이십니까?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는 길이고 길잡이시지요. 거기로 가야 하는데 거기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양도 있고, 알지만 세상이 더 좋아 보여 세상으로 가려는 양도 있는데, 그런 양이 나를 내 개인 경호원인 수호천사를 보내 지켜주시겠다는 겁니다. 이런 뜻에서 오늘 탈출기의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런 수호천사를 내게 보내 주시겠다는데 마다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내 천사라고 하여 내가 함부로 대해도 되겠습니까? 그끄저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천사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절이고, 수호천사란 하느님께서 내게 특사 곧 특별사절로 보내신 천사이니 이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조심하여 그 말을 들어야겠습니다.  

문제는 누가 나의 수호천사입니까? 눈에 보이고 누군지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마 네가 나의 수호천사가 되고, 내가 너의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내게 충고하는 너를 나의 수호천사로, 너의 충고를 나의 수호천사가 하는 말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소중한 것으로 볼 줄 아는 눈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하느님께서는 ‘작은이들’ 하나라도 그지없이 존귀하게 여기신지라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두어 당신과 함께 있도록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곧 천사들이 존귀한 존재인 것이라기보다 천사들을 붙여 보호해야 할 만큼 ‘인간의 존재가 존귀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서로 송사하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1코린 6,2-3) 

그렇습니다. 그날이 오면, 천사들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천사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이토록 인간은 존귀합니다.

이는 <시편> 8편을 떠올려줍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 8.5-6) 

그렇습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이 천사에게 씌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에게 씌워진 것입니다. 결국, ‘천사’는 하느님이 되지 못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이 되는 ‘영광과 존귀의 관’이 씌워졌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참으로 존엄합니다. 그지없이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이 존귀함을 잘 보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귀함도 잘 보호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인간의 존귀함은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에서 오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인간의 존귀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존엄을 평가하거나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존귀한 존재로 존중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나가야 할 사명도 부여받고 있음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혹 우리의 관심이 ‘큰 사람’에게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볼 줄 아는 눈’일 것입니다. 곧 “누가 큰 사람이냐?”가 아니라,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가?”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형제가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보는 일입니다. 아멘.
.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8,5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
무엇을 하든 
당신을 지향하여 
일하게 하시고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하게 하소서.

모든 주어진 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드리는
감사가 되게 하소서.

오늘, 나의 모든 삶이
당신께 바치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죄지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

오늘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증표, 바로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키고 이끌어주는 수호천사의 존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여러분, 어린이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특히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내일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가, 아빠가, 바로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어린이들이 가진 높은 자존감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자존감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내가 얼마나 귀하게 보호받고 있는지를 깨달을 때 싹틉니다. 우리는 귀중한 것을 잘 보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요? 그 증거가 바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신 수호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

우리 각자를 담당하는 천사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있다는 이 말씀보다 더 큰 우리의 존엄성에 대한 보증은 없을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어둠 속에서 싹틥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랑의 시선이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나는 결국 이런 죄나 짓는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보호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깊은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한 인간을 어떻게 죄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언론의 과장된 묘사와는 달리, 그의 삶의 본질은 깊은 고독과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혼란기에 태어나,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고아원을 전전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나는 버려진 존재다’, ‘나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차가운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그의 범죄는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부유층만을 노린 이유에 대해 훗날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것을 훔쳐 그들이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는 그의 범죄가 단순히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죄의 끝은 허무였습니다. 십수 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그가 한 말은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제가 훔친 수많은 보석과 현금은 단 한 순간도 제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후회스럽습니다. 철창 안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로 훔치고 싶었던 것은 돈이나 보석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의 삶은 비극적인 증거입니다. 자신을 지켜주는 사랑의 시선이 부재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죄가 결국 자신을 얼마나 더 깊은 열등감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지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어떻게 일상에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순간에 피어난 한 여성의 실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네덜란드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체포되어,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생지옥이었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혹독한 노동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 나갔습니다.

어느 날, 코리와 그녀의 언니 벳시는 자신들이 배정받은 막사에 지독할 정도로 벼룩이 들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더해진 끔찍한 환경에 코리는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언니 벳시는 조용히 기도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성경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잖니. 우리 이 벼룩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코리는 언니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끔찍한 벼룩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벼룩을 두고 감사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막사에서는 간수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수감자들을 폭행하고 물건을 빼앗아 갔지만, 유독 자신들의 막사에는 간수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간수들은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 그 끔찍한 막사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 벼룩들 덕분에, 그들은 저녁마다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숨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벼룩이 바로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던 셈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코리 텐 붐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 불평과 원망이라는 죄에 빠지기 가장 쉬운 순간에도, 우리가 원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 속 썩이는 자녀, 나를 괴롭히는 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며 원망과 죄에 빠지는 대신,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찾아봅시다. 믿음은 노력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신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방학이었고, 바로 윗반 선배님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점에서의 만남이었는데, 학교에서 보는 것과 다른 모습의 선배님들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때 한 선배에게 훗날 글 잘 쓰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배님께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한 달에 책은 몇 권이나 읽어?” “시간이 없어서 거의 읽지 않죠.” 
 
“글은 매일 써?” “뭐 거의 쓰지 못하죠.” 
 
저의 답에 선배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모습으로는 턱도 없다.” 
 
괜히 말했다는 생각과 선배의 말이 사실이기에 말 한마디 못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화가 좀 났습니다. ‘이 선배가 뭔데 나의 한계를 결정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글 쓰는 신부가 되었고, 책도 11권이나 출판했습니다. 만약 당시의 모습대로 책도 전혀 읽지 않고, 글도 전혀 안 썼는데 저절로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선배의 말에 자극을 받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왔기에 가능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가 될 수는 있지만, 자기에게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즉,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 중요합니다. 
 
지금 제게 ‘턱도 없다’라고 말해줬던 선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억울했고 못된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의 말에 제가 원했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선배는 제게 한 명의 수호천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수호천사는 우리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마음속으로 권고하며, 우리의 영적인 선택, 즉 주님을 향한 결심을 지키고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을 따지면서 수호천사의 이끎에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편하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가치 기준이 세상의 기준과 완전히 다름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는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순진함이나 천진난만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 전적인 의존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끄심에 굳은 믿음을 갖추고 겸손하게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지켜주는 주변의 많은 수호천사들, 그런데 나 자신도 그런 수호천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빅토르 위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전달자요, 은총의 고마우신 선물입니다. 수호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영적존재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수호천사의 역할은 단순히 지켜주는 것을 넘어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영적 안내자입니다.

수호천사는 각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세심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수호천사는 단순히 위험에서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이르는 길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로 인도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강해 보이지만, 유혹과 고통, 외로움 앞에서 쉽게 흔들립니다.

수호천사는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보완하며, 하느님의 힘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 순간순간 하느님 뜻에 맞는 길을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안의 양심과 밀접히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수호천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가장 따뜻한 표징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전하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이끄는 사랑의 통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풀어주신 특별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주어진 우리 삶의 동반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결코 우리 삶을 떠나지 않음을 알려주시는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는 소중한 날 되십시오. 오늘도 수호천사는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로 올려 드리는 고마운 천사입니다.

 

 

 

마태오복음 18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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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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