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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4/26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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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알렐루야.

하느님,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어 믿는 이들이 불어나게 하시니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 백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세례성사로 새로 난 저희가 불사불멸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4월 26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26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4,13-21)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오늘 복음
    (마르 16,9-15)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사도 4,13-21
오늘 제1독서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르 16,9-15
오늘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26일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10:5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인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이들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함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부활하셨다는 증언을 여러 차례 들었음에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는데, 이는 그들을 향한 심판이 아닙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는 만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시는 간절한 부르심이자 초대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그들을 믿으시며 주저하시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는 명령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사명입니다.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부활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낙심과 절망에서 벗어나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믿음으로 그 부활의 은총과 희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부활의 은총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과 태도로 예수님의 사랑과 희망을 드러내야 합니다.

제자들의 완고한 마음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을 더디게 하였다면, 현실의 고통과 시련은 우리가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느끼며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사랑, 용서, 화해 그리고 희망으로 부활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 팔일 축제는 곧 마무리되지만, 부활의 삶은 날마다 새롭게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에 믿음으로 보답하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증 편향적인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그렇게 굳어지는데 이것이 오늘 사도행전의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완고함이고, 오늘 주님께서 꾸짖으시는 제자들의 불신도 이것의 일종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편향적으로 편드는 것인지 모르지만 제자들의 불신은 이해할 수 있는 불신이고, 그래서 주님께 그렇게 꾸짖음 받을 정도인가 생각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이 헛소리려니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제자들 뿐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이 믿지 못한 것이 사람의 말이기 때문만일까요? 그렇지 않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이기 때문이고, 이런 말은 하느님께서 말씀해주셔도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은 사람의 말이기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우리가 신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의 세계에 대한 말은 신이라야 알아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나서야 믿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사실 몸무게에 헤비급과 라이트급이 있듯이 믿음에도 급(Class)이 있는 것입니다. 곧 신적인 Class(급)와 인간적인 Class(급)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의 큰 믿음은 믿을 수 없는 인간도 믿지만 인간의 작은 믿음은 믿어야 할 하느님도 믿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은 당신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막중한 사명을 맡기시는 주님에 관해 얘기합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은 아무나 믿지 못하고 여간해서는 믿지 않지요. 그런데도 혹간 가다가 크게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믿어주면 믿어주는 대로 되는 경우가 있지요.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면 처음에는 그 믿음에 배신해도 언젠가는 그 믿음에 보답하잖습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세 번 배반하였고 그런데도 또 믿어주시니 결국 주님을 위해 죽지요.

이것이 주님의 큰 믿음인데 그런데 베드로가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큰 믿음으로 믿어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 모셨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오늘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믿어주신 베드로가 그 믿음에 배신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주님을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담대하고 늠름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큰 믿음을 닮는 우리, 그래서 베드로처럼 믿음에 믿음으로 보답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되고, 한 가족이 되라.

오늘 <알렐루야 환호송>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 118,24)

그렇습니다. 오늘, 이날은 저희가 만든 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시고 건네주신 날입니다. 인간에게 큰 사랑이 베풀어진 날이요, 당신의 죽음으로 부활생명을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이 날의 아름다움을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36항)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막달레나 마리아도, 엠마우스의 두 제자들도, 모여 있던 열 한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맑고 투명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미 듣고 보았지만, 믿지를 않은 까닭입니다.

이를 믿게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우리는 요즈음 <제1독서>인 <사도행전>을 통해서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 안에서 어떠한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말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믿음’ 안에서 체험하게 되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믿음이 삶이 될 때, 비로소 깨닫게 되고 증거 됩니다. ‘믿음이 삶이 될 때’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당신의 몸을 매달 듯, 그렇게 자신을 내어놓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여기에서, 먼저 알아들어야 할 것은 우리는 온 세상에로 “가라”는 파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 안에만 머물지 말고, 타자에게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원임을 말해줍니다.

마치 당신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향하여 먼저 다가오셨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파견 받은 자”가 되어야 하고, 파견하신 분의 뜻을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파견 받았으되,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파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곧 유다민족이나 이방민족이나. 우방이나 적국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민족 온 인류에게로 가라는 것이요, 또한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로 가라는 파견이요,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파견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되고, 한 가족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2015.6.18.)에서, 우리가 더불어 사는 집인 지구가 “우리와 함께 사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어머니”(1항)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피조물에 관한 책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

그렇다면 오늘, 나는 내 형제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되고 한 가족이 되어주고 있는가?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16,15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믿지 못하고 있음을 
빤히 알면서도 
당신의 소중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저의 불신에 
발등이 찍히고 또 찍히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파스카를 살고 
당신을 선포하게 하소서. 

오늘 제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1998년 동아 제약의 박카스 광고가 생각납니다.
 
대학생 둘이 시험을 모두 마치고 친구들과 신나게 농구합니다. 문제는 농구하다가 발목을 겹질려서 쩔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입니다. 지하철을 탔는데 빈자리가 전혀 없고 노약자석만 비어 있습니다. 친구는 다리가 아프니 여기에라도 앉으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다리 아픈 친구는 지하철 손잡이에 철봉 하듯이 매달리며 말합니다.
 
“저긴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
 
바로 그 순간 성우가 이야기하지요.
 
“젊음! 지킬 건 지킨다.”
 
지킬 것을 지켜야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그런데 지킬 것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 이유를 말할 때가 많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손해 볼 수는 없지.’, ‘뭘 믿고 저렇게 행동하는 거야?’ 등등의 이유가 붙게 됩니다.
 
나만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모습’을 내세우면서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건강할 수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원하시는 사회는 지킬 건 지키는 사회였습니다. 특히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이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킬 것을 지키고 계십니까? 하느님 법칙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법칙, 그리고 나만의 법칙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과거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공생활을 하고 있을 때, 제자들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자기들이 가장 믿음이 굳세고 주님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수난 하시고 죽으신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에 관한 말씀도 믿지 못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부활 증언을 믿지 않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증언 역시 믿지 않습니다.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락방에 숨어 벌벌 떠는 모습이 아닌,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힘들어하는 모습, 사랑의 주님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모두 버리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일까요? 큰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순간이면 충분하다. 아무리 짧은 순간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삶에 만족할 수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기쁨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기쁨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피조물이 있기에 창조주의 부활은 그만큼 소중합니다. 부활은 삶을 일구어 내는 진정한 복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여기에서 복음 선포는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감출 수 없고 기쁨은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바로 복음의 산증인입니다. 복음은 안과 밖이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의 방향은 나눔이고 배려입니다. 인식의 전환으로 서로를 인정하는 부활의 삶이 됩니다. 부활의 삶은 이렇듯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합니다.

생활의 실천이 복음 선포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새겨지는 복음의 참된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나누는 거룩한 오늘입니다.

 

 

 

사도행전 4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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