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원수들이 저희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모든 곤경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주님, 이 백성의 정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절제하고 극기하며 선행을 실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5년 3월 12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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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요나 3,1-10)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오늘 복음
(루카 11,29-32)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요나 3,8)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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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3,1-10
오늘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주님의 말씀이
1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루카 11,29-32
오늘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12일
최재관 암브로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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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신지, 그리고 메시아이시라면 증명할 수 있는지 시험하려고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루카 10,25; 11,16 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주시는 대신에 그들이 요나의 표징과 “사람의 아들”(11,30)만을 표징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니네베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요나는 주님을 피해서 도망갔습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물에 빠져 죽게 된 상황에서 스스로 물에 빠진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낮과 밤을 지내고 살아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나는 구원은 오로지 주님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요나 2,10 참조). 니네베로 다시 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꺼이 니네베로 들어간 요나는 살아 있는 구원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러한 요나를 만난 니네베 사람들은 기꺼이 회개하였습니다.
험난한 여정을 거치며 구원의 표징이 된 요나를 보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 배척과 고통 속에서 하느님 구원의 표징이 될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복음 마지막에 예수님께서는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한 이들을 악한 세대라고 부르셨지만, 사실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더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모든 이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지 않고 회개의 은총을 청하는
오늘 표징을 요구하는 군중에게 주님께서는 순순히 응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요구하는 군중이 악하다고 꾸짖으시며 오히려 군중이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보여 줄 표징은 솔로몬의 표징이 아니라 요나의 표징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 우리도 군중과 같지 않은지 봐야 하는데 우선 우리도 군중처럼 표징을 요구하는 악한 자가 아닌지 봐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봅시다. 군중도 우리도 표징을 요구하지 않고 요청하면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요구하지 않고 요청해도 악하다고 꾸짖으실까요? 아니면 좋다고 들어주실까요?
제 생각에 표징을 요구하지 않고 요청한다면 자세가 악하지 않기에 들어주실 뿐 아니라 청하는 표징도 좋은 것이기에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제게 마치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달라고 요구하면 주겠습니까? 그런 교만한 자세로 요구하면 누가 주겠습니까? 줘야 할 것도 주고 싶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아무도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군중과 달리 자세가 바뀌어야 합니다. 표징은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요청해야 합니다. 이렇게 바뀌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기적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회개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널려 있는 하느님의 표징들과 기적을 보지 못하고 새로운 표징을 기적처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데 널려 있는 하느님의 표징들과 기적을 보지 못하는 내가 볼 수 있는 나로 바뀌는 나의 회개의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듯 우리는 너무도 악하여 악한 것만 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그 선들을 선으로 보지 못하고 악하게 보고, 선한 것들에서 선을 보지 못하고 욕심 때문에 결핍만 봅니다.
또 장미에서 꽃을 보지 않고 가시만 보며 나쁘다고 악평하고 하늘에서 무지개는 보지 않고 구름만 보며 불평합니다. 그것은 내 안에 악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악하다고 하시며 바뀌라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솔로몬처럼 바뀌지 말고 요나처럼 바뀌라고 하시며 당신이 보여 줄 표징은 요나의 표징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요. 솔로몬은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다가 이방의 신들에게 돌아섰지만 요나는 하느님을 피해 도망쳤다가 하느님께 돌아서며 회개했고, 무엇보다도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일을 했습니다.
자신도 하느님께 돌아서고, 니네베도 하느님께 돌아서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표징을 요구하는 우리가 아니라, 이런 회개를 하라고 주님께 요구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불신의 완고함을 벗고 ‘회개’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오늘 <독서>는 이방인 성읍인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들려줍니다. 반면에 <복음>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을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시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그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 11,29)
여기서, “악한 세대”라는 말은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할 뿐만 아니라, <마태오복음>의 병렬구문에 따르면,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곧 군중이 표징을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모함할 구실을 찾기 위한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표징을 요구하며 시험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루카 11,30)
그렇다면, 요나의 표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라고 외친 ‘회개의 때’에 대한 표징이요, 고래 배속에서 사흘째 날에 ‘다시 나온’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당신께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는 ‘십자가와 부활의 표징’으로 ‘구원의 때’가 왔음을 드러내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2)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1)
사실, 요나와 솔로몬은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소생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번영과 지혜는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표징을 읽을 줄 아는 믿음의 눈’입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을 보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불가사의한 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크나 큰 사랑과 그 자비를 선포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음으로 보면, 모두가 신비요 사랑이요 자비요 기적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적을 찾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9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표징은 지혜를 찾는 이들의 것이다.
요즘 저희 성당에 저에게 안수받겠다고 많은 분이 타본당에서도 찾아오십니다. 저는 책도 좀 읽으라고 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안수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책을 너무 안 읽는 것 같습니다. 저도 책을 싫어하기는 하였습니다. 그래도 어떤 성당 성물방에는 읽을 책이 한 권도 꽂혀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표징만 요구하고 지혜는 추구하지 않는 모습과 다를 게 없습니다. 레지오도 교본에 영적독서를 하라고 하는데, 그냥 교본공부만 하고 영적독서는 하지 않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 11,29)
예수님께서 표징만을 요구하는 이들을 악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참된 사랑과 신뢰 없이 결과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찾지 않고 표징만 바라는 것은 복권을 사지 않고 당첨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1950년대 초까지 육상계는 "인간은 절대 1마일(약 1.6km)을 4분 안에 달릴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기록은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벽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육상선수 로저 베니스터(Roger Bannister)는 그 벽을 깨기 위해 도전했습니다. 베니스터는 1929년 영국에서 태어나, 육상선수로서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꿈도 키우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체력과 호흡법을 연구했고, 특별히 과학적 훈련 방법을 고안해 반복적으로 시도했습니다. 바쁜 의대 생활 속에서도 매일 시간을 쪼개 훈련하며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1954년 5월 6일, 마침내 베니스터는 옥스퍼드의 한 경기장에서 역사적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초반부터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아 달렸습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그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결국 3분 59.4초의 기록으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며 세계 최초로 '1마일 4분 벽'을 깨뜨렸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불가능의 벽을 뛰어넘은 베니스터의 지혜와 노력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의 성공 이후 1년 동안 여러 명이 같은 벽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그 모든 것으로 깨달음을 얻어라." (잠언 4,7)
기적은 먼저 지혜를 구하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지혜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참된 행복과 성취는 즉각적인 결과가 아니라 지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저는 키가 작습니다. "키가 크면 믿겠습니다."라고 하느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건강하게 몸을 관리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가 찾아야 할 지혜입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수천 번 실패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그의 노력 끝에 마침내 전구가 세상을 밝혔습니다. 전구를 개발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한다면 그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면서 청해야 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와 여우는 서로 관계를 맺는 지혜를 배웁니다. 어린 왕자는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사막 여우를 만나려고 그 먼 길을 여행한 것입니다. 무조건 "자기 별에 있는 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면, 하느님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해 주는 심부름 센터로 여기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기적은 '용서'입니다. 용서의 기적을 얻기 위해 어린왕자처럼 노력한다면, 용서할 수 없는 이를 용서하게 되는 참다운 표징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고정원 씨처럼. 이것이 하느님의 표징을 체험하는 방식입니다. 먼저 지혜를 얻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 지혜가 저로서는 '하.사.시.'였습니다. 이 지혜를 찾지 않았다면, "다~주었다."라고 하시는 분을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표징은 지혜를 찾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리고 가장 완전한 표징이 용서 되지 않는 사람이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표징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충분한 사랑과 자비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표징만 바라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찾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진정한 만남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9세기 초, 산업혁명 시기 영국 방직 공장에 방직 기계들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노동자들은 자기 일을 기계가 돕는다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기고 말았고, 노동자들은 해고되었습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분노했고 공장을 습격해 기계를 부쉈습니다. 이것이 1811~1817년에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계를 때려 부순 공장만 망했고, 계속 기계를 사용한 공장은 더 잘 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인공 지능으로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공 지능을 때려 부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 좋은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자리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거리는 없어지더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게 됩니다. 예전에 버스를 타면 운전사만 있지 않고, 버스 안내원이 있었습니다. 만원 버스의 승객들을 꾸겨 넣듯이 안으로 밀어 넣고 “오라잇~”을 외쳤었습니다. 현재 이 직업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망했을까? 아닙니다. 발전 속에서 더 많은 직업이 생겼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며 부정하면 시대의 변화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에 어긋날 때는 잠시 멈춰서서 또 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도 그 시대에 맞게 이루어집니다. 구약시대의 하느님과 신약시대의 하느님이 너무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하느님 뜻을 마음에 담으며, 지금 시대에 맞게 생활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표징을 제대로 읽으면서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의 표징밖에는 따로 보여 주실 것이 없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징은 무엇일까요? 요나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며 하느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를 알아보아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표징입니다. 지금 자기들에게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지금 역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맞게 활동하십니다. 그리고 그 활동을 위해 많은 예언자를 나의 이웃으로 보내셨습니다. 내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웃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나 예언자를 받아들여서 구원되었던 니네베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그들을 받아들여야 구원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오늘날 서구의 가장 큰 질병은 폐결핵이나 나병이 아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배려에서 제외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가장 큰 질병이다. 신체적 질병은 의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외로움, 절망, 희망 없음을 치료하는 약은 사랑뿐이다.
- 성녀 마더 데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쁨이 회개입니다. 역사의 현장 속에서 요나보다 더 큰 이를 봅니다. 지난 시간을 아프게 되짚어 봅니다.
어느 한 순간도 우리 힘만으로 살아낸 시간이 아니었음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회개의 기쁨을 이 사순에 뜨겁게 다시 만납니다.
참사람이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회개의 길에서 우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보아야 사람을 얻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람을 얻는 회개이며 하느님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하느님을 어디에서 보고 찾아야 할지를 깨닫는 사순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회개입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회개를 사는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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