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부르짖으면, 그분은 내 목소리 들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대적하여도 나를 구하시리라. 너의 근심 걱정 주님께 맡겨라.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주님,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치고 도와주시어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치게 하소서.
2025년 3월 6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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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신명 30,15-20)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신명 11,26) - 오늘 복음
(루카 9,22-25)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신명 30,20)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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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30,15-20
오늘 제1독서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신명 11,26)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5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16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17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20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루카 9,22-25
오늘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6일
박성호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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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제 십자가를 지고 오르도록 초대하시는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담긴 뜻을 깊이 이해하려면 당시 십자가형이 뜻하는 바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 군정은 노예 폭동과 같은 반란을 꾀한 사람을 붙잡아 십자가형에 처하였습니다. 이는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는 형벌로, 반란을 꾀하다가 잡히면 같은 방식으로 처형된다는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같은 죄를 지으면 같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 십자가형의 첫 번째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심으로써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분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삶’이라는 골고타 언덕에 제 십자가를 지고 오르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과정이 죽을 만큼 힘들어서 피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당신 뒤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 하느님께 향하도록 이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선택
저희 식당의 식단은 아주 간단합니다. 콩나물국밥, 콩나물비빔밥, 된장찌개, 비지찌개, 떡만두국, 잔치국수 여섯 가집니다. 그런데 몇 가지 아닌데도 선택의 고민을 매일같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시는 손님 가운데 한 십여 분은 매일 오시고 매일 똑같은 것 곧 콩나물비빔밥을 드십니다. 그것은 저희 콩나물이 직접 키운 것이라 워낙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뭘 먹을까 선택을 고민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기에 불만이지만, 어떤 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곧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저도 뭘 먹을까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고 싶지는 않은 부류인데, 하찮고 귀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먹는 것에 아주 진심입니다.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전혀 귀찮지 않고 꽤 시간을 들여 숙고한 다음 원하는 맛집을 찾아가는데 거기 가면 줄 서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도 짜증 나지 않고 그것이 즐거움이며 원하는 것을 먹고 나면 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선택에 대해 성찰코자 합니다. 슬기롭고 성숙한 선택을 어리석고 미성숙한 선택과 비교하면서. 계속해서 먹는 것을 가지고 얘기를 이어가면 어렸을 때는 뭘 먹을지의 기준이 달콤함 곧 맛이고, 맛이 있느냐 없느냐이며 내 입맛에 맞느냐 안 맞느냐입니다.
그러나 나이 먹어 어른이 되면 그 기준이 건강입니다. 통풍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은 건강을 생각하며 어렸을 때 즐겨 먹던 것 그러나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끊습니다.
그런데 더 나이를 먹고 더 슬기로운 사람은 기준이 또 달라집니다. 더 영적이고 더 고상하고 더 중요한 것이 기준인데 곧 생명입니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생명입니다.
그게 그거 같지만 영원한 생명에 이르면 건강과 생명은 다른 거지요. 그래서 오늘 독서 신명기는 생명과 행복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을 고민한다면 뭘 먹을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놓고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생명과 행복과 같이 더 중요한 것에 관해 고민하지 않고 먹는 것 같은 덜 중요한 것에 진심이고 그것을 가지고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목숨에 대해 말씀하시며 자기 목숨을 잃어야 목숨을 얻는다고, 목숨을 얻는 방법에 관해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슬기롭고 더 성숙한 사람은 선택을 잘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얻는 법까지 잘 알아야 하고, 얻는 법을 잘 알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얻고 마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목숨을 얻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동아줄을 위에서 내려주시는데 우리는 그 동아줄을 잡기 위해 내가 잡은 그 줄은 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잡고있는 동아줄은 낡고 썩어 곧 끊어질 텐데 그걸 놓으면 죽는다고 꽉 잡고 놓지 못하는 나는 아닌지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동아줄을 놓치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분께 매달려 생명의 길을 가야한다.
오늘, ‘재의 수요일’ 후 첫 번째 날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수난을 예고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 곧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9,22)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일어날 일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반드시”(이백주년 성서; “마땅히”)라는 단어는 이 모든 것이 필연성이나 당위성에 의해 다가오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많은 고난을 겪는” 일이요, “배척을 받아 죽는” 일이요,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수동형으로 표현되어 하느님의 권능이 개입할 것임을 시사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당신을 따르는 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세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곧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과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과 이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지는 일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의 ‘제 십자가 지고’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곧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떠올리는 ‘신약의 십자가’ 이전에 있었던 ‘십자가’. 곧 ‘구약의 십자가’란 대체 무엇을 말할까요?
구약에서 ‘십자가’(타브)는 ‘계약의 표’로서 소유, 선택을 나타내는 동시에, ‘구원의 표’로 주어졌으며(에제 9,4.6.), 주님을 따르는 ‘하느님의 종’과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에게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레위기>(25,55)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종들’이라 칭하며, <탈출기>(19,6)에서는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또 하느님의 제사장으로서 ‘계약’을 ‘구원의 표시’로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계약”을 지키는 것이며, 하느님의 소유로 선택되어 거룩한 백성의 삶을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당신을 따르는 이’는 ‘계약’을 짊어지고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 됩니다. 곧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이러한 결단은 <제1독서>에서 생명의 길로 이렇게 제시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신명 30,20)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사랑으로 그분께 매달려 있고, 생명의 길을 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9,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주님!
배척을 받는 고통을
받을 줄 알게 하소서.
사랑하는 이로부터도
배척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몰이해와 곡해, 오해를
받아 견딜 줄 알게 하소서.
마침내는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도
받아들일 줄을 알게 하소서.
순명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야하는 길이기에
사랑으로 흔연히
배척받을 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순교는 십자가의 크기가 아닌 꾸준함에 있다.
하퍼 리(Harper Lee)는 젊은 나이에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라는 위대한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은 1960년에 출판되어, 그해 퓰리처상을 받으며 문학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약 50년 동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퍼 리가 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그녀 자신이 그 두 번째 작품에 대한 부담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퍼 리는 그녀의 출판사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앵무새 죽이기’로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거릿 미첼(Sherman Mitchell)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라는 역사적인 소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 책은 1936년에 발표되어,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첼의 첫 번째 소설은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녀는 문학계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도 역시 그 이후로는 어떤 글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완벽주의는 열등감에서 옵니다. 더는 좌절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최고의 위치에서 또 다른 책을 썼다가 평이 좋지 않고 팔리지 않으면 자기 위치를 잃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 자존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반드시” 고난을 겪고 죽은 후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단지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함께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저도 사제가 되라는 주님의 뜻이 있었지만, 따를 자신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결혼 안 하고 산다는 게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자매와 산 정자에 앉았을 때 오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 말씀으로 십자가가 나에게 불가능한 무엇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무엇으로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바로 “매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평생 혼자 산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힘들지만, 하루하루로 생각하면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여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이 느끼는 신혼부부라도 어떤 한 사람이 여행 가서 일주일 떨어져 있는다고 상사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순교 또한 내가 얼마나 큰 크기의 십자가를 지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오늘 하루만 버틸 수 있느냐로 다다를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고문과 박해를 생각하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산입니다. 그러나 한 발짝씩 올라간다면 언젠가는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명작을 낸 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후속작을 쓴 대표적인 작가로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와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등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로 1939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써 나갔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영감을 받았다기보다는 매일 글쓰는 습관과 끈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타인벡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글쓰기는 ‘영감’이 떠오를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과 일관성에서 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 중 하나는 “영감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내가 앉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쓸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떠오른다.”라고 했습니다. ‘분노의 포도’는 1939년 작품이고 ‘에덴의 동쪽’은 1952년 작품입니다. 이 밖에도 그의 작품은 10권이 넘습니다.
장사와 요리의 한국 대표적 전문가인 백종원 대표도 많은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빽다방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10개 중 1개만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자세입니다.
인도에 아내의 죽음 때문에 평생 산을 깨서 길을 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이 영화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사순을 시작하는 지금 그분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술과 담배를 끊겠어?’, ‘내가 어떻게 사순 동안 단것을 먹지 않을 수 있겠어?’ 그러나 오늘 하루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안 되면 한 시간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광야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사셨을 것이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40일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의 희망으로 합니다. 그런데 하루만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나면 부활의 기쁨이 마지막 때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십자가에도 부활의 기쁨이 벌써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책을 한 줄 썼을 때 이미 완성된 명작의 희망이 주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그다음 날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평생 지어야 할 십자가는 잠시만 보고 오늘 당장 지어야 할 십자가만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은 필수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원한다면 그물이나 낚싯대로 잡아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해야 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고되고 힘들기만 할까요? 그 과정에서 얻는 행복의 크기는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두고 강의 잘하는 신부라고, 강론 잘하는 신부라고 치켜세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이라는 생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묵상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되고, 매일 책을 읽고 또 매일 글을 쓰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행복합니다. 조금씩 나아지는 저 자신을 보면서,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경험도 행복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원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저절로 되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노력 역시 행복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는데, 3년 묵힌 쑥을 먹으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3년 묵힌 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찾은 시간이 7년 뒤였습니다. 애초에 쑥을 묵혀놨다면 3년이면 원하는 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 없이 목적하는 바만 쫓다 보니 7년을 소비한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쫓는 우리가 아닌 지혜로움을 쫓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당연하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노력에 고통과 시련도 분명히 따라옵니다. 이를 무조건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과정 역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지요. 하느님이신 예수님도 고통과 시련이라는 과정을 겪으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사흘만에 되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이 따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이 모습이 참으로 지혜로운 신앙인이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가 얻어야 할 영원한 생명이 확실히 보장되는 길입니다.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목숨을 비추고 목숨을 구하는 예수님의 목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참된 목숨의 의미를 다시 만납니다. 사랑이라는 십자가를 지는 목숨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목숨이며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의 목숨입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사람의 목숨입니다. 죽음의 시간을 벗어나는 예수님의 목숨입니다. 목숨의 사명은 목숨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살려내야 할 목숨의 가치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친 복음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새로이 얻게되는 목숨의 참된 기쁨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건너뛸 수 없는 십자가와 목숨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목숨을 구하는 진정한 목숨입니다.
목숨을 구하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랑의 오늘 되십시오. 십자가의 여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순의 참된 여정입니다. 그 여정을 따르는 살아있는 사순의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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