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하느님, 복된 요한 사제를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똑같은 사랑의 불로 타올라 오직 주님을 섬기며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2025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히브 10,32-39)
많은 싸움을 견디어 냈으니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 오늘 복음
(마르 4,26-34)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오늘 말씀 카드
(히브 10,35)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히브 10,32-39
오늘 제1독서
많은 싸움을 견디어 냈으니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형제 여러분,
3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33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마르 4,26-34
오늘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31일
신윤민 요셉 신부
✚ 성 요한 보스코 소개 00:06
✚ 미사시작 01:36
✚ 강론시작 08:17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생중계 성당
- 가회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가회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가회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06: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생중계 없음 - 남양성모성지 온라인 매일미사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남양성모성지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생중계 없음 / 화 11:00 / 수 11:00 / 목 11:00 / 금 11:00 / 토 11:00 - 원당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원당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원당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10: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10:00 - 초당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초당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초당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0:30 / 월 06:30 / 화 19:30 / 수 10:00 / 목 19:30 / 금 10:00 / 토 10:00 - 팔로티회 온라인 매일미사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분당 팔로티회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모든 성장 필요한 전제 조건은 스스로 죽는 것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저절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 이 두 비유의 핵심은 ‘자라나는 것’ 곧 성장에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와 나,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성장해 가는 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성장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지요. 씨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서 자신 안에 있는 참생명을 틔우지 못하면, 그렇게 먼저 자신이 싹을 틔우고 그 씨를 성장시키는 양분이 되지 못하면 그 씨는 돌덩이와 다름없습니다.
흙 곧 땅은 씨앗을 감싸고 그 씨앗이 스스로 열도록 수분과 온기를 건네며 기다립니다. 씨앗은 여기에 화답하여 자신을 열고, 내주며,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하여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나 자신 그대로 있고자 하는 안온함과 익숙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성장하려는 터무니없는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를 참으로 감싸고 있는 땅과 나의 내밀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열리기 시작하면 나와 우리의 성장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거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 4,32).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요한 보스코 성인은 자기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격려의 손길을 건넨 분입니다. 많은 젊은이를 품고 돌보았는데 모두 저마다 각별한 사랑을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은 참으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큰 맘만 먹으면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
비유의 이 말씀을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이 대번에 들었습니다. 나는 씨만 뿌리면 되는구나! 왜냐면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르는 채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쉽습니까? 씨만 뿌리면 되니 이 얼마나 쉽습니까? 그런데 이 쉬운 것조차 왜 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은 어제 묵상의 연속입니다. 어제 저는 이런 요지로 묵상하였지요.
“하려는 사람에게 은총도 주어집니다.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겐 은총도 필요 없고, 그래서 은총을 바라지도 청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은총이 주어져도 그리고 아무리 쉬운 것이어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의 경우엔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 씨가 우리 입에 들어갈 열매의 씨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라는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씨를 제가 뿌리고 싶고 여러분이 뿌리고 싶은가 그것이 관건인 셈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는데 한 예가 생각났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수컷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 씨를 뿌리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입니다. 자기 씨를 뿌리기 위해 경쟁자와 싸우다 목숨을 잃기까지 합니다.
우리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보다 내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고, 하느님 나라의 씨보다 내 씨를 뿌리려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하느님 나라 씨 뿌리기는 당연히 관심 없거나 아무리 쉬울지라도 도무지 하고 싶지 않고, 그러니 발심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발심(發心)이란 불교적인 표현인데, 마음을 일으킴 곧 불도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을 뜻하지요.
우리 경우 이 세상이라는 밭에 하느님 나라의 씨를 뿌리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다 싹이 나게 하고 키우고 자라고 열매 맺게 하셔도 그 마음을 일으키는 발심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대발심(大發心)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도 큰맘 먹으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소시민으로 편히 살려는 작은 마음을 먹으면 안 되고, 이 세상에서부터 저세상 곧 하느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작게는 나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크게는 세상 구원을 위해 살기로 마음을 먹기만 하면 작은 마음을 먹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쉽습니다.
한겨울 따듯한 아랫목을 파고드는 마음을 떨쳐내는 것이 힘들지 분연히 문을 열고 한번 뛰쳐나가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이 열리며 작은 마음이 큰마음이 되기에 오히려 쉬우며 은총도 내립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큰맘 먹는 사람에게 세상이 열리고, 용기 내는 사람에게 은총이 내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결코 외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안으로부터 오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건설되는 걸까?
오늘 <복음>은 이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이 바로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곧 ‘하느님나라’는 씨앗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7)
그렇습니다. 분명, 씨앗은 자신 안에 싹을 틔우고 잎으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뿌려진 ‘씨앗’(말씀)의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 교종은 말합니다.
“성경(말씀, 하늘나라)은 읽는 이(응답하는 이) 안에서 자란다(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또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햇살을 받은 나뭇잎이 광합성을 못 알아들으면서도 그것을 채워가고 푸르러가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나날이 그 신비를 마시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31)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됩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됩니다. 마치 십자나무처럼, 모든 인류를 끌어안은 큰 나무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십자나무에 인간이 거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겨자씨’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썩기만 하면, 바로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와서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나는 이 놀라운 신비에 순응하게 하소서. 저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4,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주님!
당신은 겨자씨처럼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길인 까닭입니다.
오늘 제가 형제들 앞에서
작아지게 하소서.
십자나무에
인류의 거처를 마련하듯
제가 형제들의
거처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참사랑은 지칠 수 없는 이유
오늘 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 나라는 땅의 씨가 누구도 모르게 자라듯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어떤 것보다 작지만, 땅에 뿌려지면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깃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같은 내용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그 씨앗이 뿌려져 저절로 자라게 되고 그 열매를 맺게 되면 많은 이들에게 쉼과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은 마치 씨앗처럼 떨어지고 그것이 나중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지치는 이유는 사랑이 씨를 뿌리는 행위이지,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 K씨는 학급의 문제아 A군을 변화시키려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A군이 1년 동안 변하지 않자 ‘내 능력 부족’이라 생각하며 포기했습니다.
훗날 A군은 K씨에게 “선생님이 매일 말 걸어준 게 제게 희망이었습니다.”라고 고백했지만, K씨는 이미 교직을 떠난 후였습니다. 교사 K씨는 자신이 씨도 뿌리고 열매도 맺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매만 바라고 있으니 씨를 뿌리는 것에서부터 가치가 있었던 일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지쳐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부부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모든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제임스 그레고리와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입니다. 그레고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교도관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아래에서 흑인들을 열등하게 보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넬슨 만델라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를 단순한 ‘범죄자’로 여겼습니다. “넌 그냥 테러리스트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냉담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레고리는 만델라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델라는 그레고리에게 존중과 친절로 대하며, 그의 아들에게 줄루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레고리는 점차 만델라의 리더십과 인간성에 감화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만델라가 수감 생활 중에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동료 수감자들과 교도관들에게까지 존중과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용서는 분노와 증오의 쇠사슬을 끊는 것이다,”라는 만델라의 말은 그레고리에게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실천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레고리는 만델라와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편견을 완전히 버렸고, 두 사람은 평생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는 만델라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을 배웠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실천임을 깨달았다.”라고 그레고리는 고백했습니다.
넬슨 만들라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씨를 뿌릴 뿐이었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남아공 대통령이 되었을 때 취임식 날 그레고리를 초대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열매를 기대하고 사랑하고 용서했다면 분명 지쳤을 것입니다. 27년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은 그저 씨앗을 뿌리고 나머지는 주님 뜻에 맡기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치지 않았고 그래서 때가 되었을 때 많은 소출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 예로, 마더 데레사와 빈민굴 청년의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인도 콜카타의 빈민굴을 방문하며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청년은 술에 찌들어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고, 방 안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그의 방에 들어가 등잔불을 켜려 하자, 청년은 화를 내며 등불을 껐습니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청년의 방에 등잔불을 켜 놓고 떠났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다시 방문했을 때 청년은 등잔을 창문 밖으로 던져 깨버렸습니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는 다시 새로운 등잔을 사서 방에 가져가 불을 켜 놓고 떠났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마더 데레사 사랑의 선교 수녀회의 한 젊은 수녀가 그 빈민굴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수녀는 그 청년을 다시 만났습니다. 청년은 이제 깨끗한 옷을 입고 직장도 다니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수녀에게 말했습니다.
“그 키 작은 그 수녀에게 전해주시오. 그때 그분이 내 방에 켜 놓은 빛이 아직도 내 마음 안에서 빛나고 있다고.”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실천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이 즉각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꾸준히 사랑을 베풀 때, 그 사랑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열매가 늦게 맺어질지라도,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만델라와 마더 데레사처럼, 우리도 상대방이 즉각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꾸준히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식을 수 없습니다. 농부는 주인이 주는 씨를 뿌리면 그만입니다. 뿌리지 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인은 계속 씨를 주십니다. 그러니 주님이 지치지 않는 이상 그 씨를 뿌리는 이도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 나라
성당 꼬마들이 제게 다가와서는 “신부님, 로제 알아요? 에스파는 알아요? BTS는 아시죠? 세븐틴 멤버 이름 알아요?” 등의 질문을 하곤 합니다. 이 질문에 저는 “당연히 모르지.”라고 답합니다. 진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르는 저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장원영 모르는 사람, 처음 봤어요.”
제 나이 또래에게 물어보면 앞서 꼬마들의 질문에 다 안다고 말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꼬마들이 연예인들을 잘 아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심이 있고, 그래서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관심 없으면 좋아할 수도 또 재미도 없습니다. 연애하는 이유도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가는 재미를 갖습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도 독서는 재미없었고,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책상 앞에 앉아 있음이 행복하고, 책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당연히 공부도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으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재미있고 여기서 기쁨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설레기도 합니다. 스스로 하느님과 맞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내 쪽에서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없는 관심이 영원히 없을까요? 아닙니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분임을 깨닫는 순간, 관심이 생기고 그 관계에 기쁨을 갖게 됩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냉담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걱정도 주님께 맡기십시오. 부모님보다 더 열심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힘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또 당연한 일도 당연하지 않은 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고 일어난 사이에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처럼 커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리되는지 잘 모른다고 하시지요. 맞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고통과 시련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렸던 하느님을 알려는 관심입니다. 그 관심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 로버트 슐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보도불럭 틈새로도 식물이 자랍니다. 자라나는 민들레와 같이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도 모르는 채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작디 작은 겨자씨가 자라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일깨워줍니다. 성장하는 것이 진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예수님을 닮아 있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우리들 가운데에서 자라나십니다. 사랑은 성장을 품고 성장은 일생을 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우리를 부릅니다. 포기하는 것은 사라집니다.
약하여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신앙이며 올바른 성장입니다. 자라나는 성장은 하느님의 나라와 함께합니다. 우리의 사랑도 예수님과 함께 성장하는 기쁨이길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성장이 하느님의 나라이며 세상의 참된 희망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지를 묻는 새아침입니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02/03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2.03 |
---|---|
25/02/02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2.02 |
25/02/01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2.01 |
25/01/30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30 |
25/01/29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29 |
25/01/28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28 |
25/01/27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5.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