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이들을 선택하셨으니 복된 순교자 아녜스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저희가 한결같은 그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2025년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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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히브 6,10-20)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 오늘 복음
(마르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오늘 말씀 카드
(히브 6,19)
희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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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 6,10-20
오늘 제1독서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마르 2,23-28
오늘 복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21일
권용훈 안토니오 신부
✚ 성녀 아녜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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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풍요로운 우정으로 꽃피우는 하느님 사랑과 만남으로써, 또는 그 사랑과 새롭게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고립감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8항을 열쇠 삼아 오늘 복음의 문을 열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급히 밀밭 사이를 질러가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에 복음을 전하시러 가시는 길일까요, 아니면 누군가 크게 아프다는 전갈을 받으시고 서둘러 그를 찾아가시는 길일까요.
그런데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던 중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호호 불어 먹기 시작합니다. 볕에 익어 가는 밀 내음과 밀 이삭을 흔드는 산들바람! 간단하고 조촐하지만 주님이신 예수님 곁에서 이루어지는 근사한 안식일 식사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따져 묻습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사실 구약의 율법은 매정한 법이 아닙니다.
“너희가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 묶음을 잊어버리더라도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 너희가 올리브 나무 열매를 떨 때, 지나온 가지에 다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신명 24,19-20).
따스함이 묻어 있는 법입니다. 안식일 법도 일을 금하는 법이기에 앞서 돌봄의 법입니다. 그럼에도 바리사이들은 완고합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자아도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 안식일을 누려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은 없고 힘만 있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어제 복음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주님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제 생각에 오늘 주님 말씀은 새 술에 해당하는 말씀이고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안식일은 최고로 중요한 것이었고, 이 중요한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땐 가차 없이 단죄받던 때였는데 안식일보다 그리고 안식일 법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곧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 제게는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종종 법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이 법을 더 중요시하고 사람을 법보다 하시하고 단죄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법은 본래 정의로운 것이고 그래서 법의 정신이 본래는 인간 사랑인데, 사랑이 없는 사람은 법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법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며, 법을 가지고 사익을 취하고 남을 단죄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은 없고 힘은 있는 사람이 법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힘없는 이를 쥐락펴락하며 단죄하고 공격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랑은 없고 힘이 있는 사람이 늘 문제이고 위험한데 그런 자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우리는 지금 생생히 목격하고 있지요.
그런데 자신을 잘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우리가 또 공격하지 말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지 곧 사랑은 없고 힘만 있는 내가 아닌지 오히려 나를 돌아보는 오늘이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트집을 잡습니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깨닫게 됩니다. 곧 ‘해야 할 일’(생명을 살리고 축복하고 하느님을 주인 되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생명을 저해하고 자신이 주인 되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자신의 유익과 유쾌함 따르는 일)의 순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일을 우선하는 사람인가를 보게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을 왜 세우신 것일까?
야훼 하느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장면에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를 “내가 너희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되게 하기 위함”(탈출 16,1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안식일을 계약의 표로 삼으시는 장면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잘 지켜라. 그러면 너희를 성별한 것이 나 야훼임을 알리라.”(탈출 31,13)
이처럼, 안식일을 새운 이유를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혀줍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또한 안식일의 주인”(마르 2,28)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본 적이 없느냐?”(마르 2,25) 하고 물으시고, 그들이 제사 빵을 먹었던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곧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알았지만 다윗이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일’이 안식일 계명의 근본정신임을 밝히십니다. 곧 안식일의 본질이 율법의 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탈출기>의 ‘계약의 책’에서는 안식일이 누구를 위한 날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라.~그래야 계집종의 자식과 몸 붙여 사는 사람도 숨을 돌릴 것이 아니냐?”(탈출 23,12)
이는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율법이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듯, 쉼도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마르 2,27).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2,28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이 날은 저희를 위하여 마련하신 날
저희에게 새 마음
새 살이 돋게 하고 새 옷을 입히시니
당신이 주 하느님임을 알게 하소서!
이 날을 새롭게 하시고
저희를 새롭게 하소서.
거룩함을 입었으니
거룩한 일을 행하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모든 가르침이 마음의 안식으로 수렴하면 부모가 맞다.
오늘 복음은 ‘안식일법’의 참 의미를 알려줍니다. 안식일법은 비록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법이지만,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율법이었습니다. 안식일법을 어기면 사형이었습니다. 쉬지 않는다고 사형시키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안식일인데도 일합니다. 배가 고파서 남의 밭의 밀이삭을 뜯어 먹은 것입니다. 밀이삭을 뜯는 행위는 추수 행위이기 때문에 일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도둑질보다는 안식일법의 위중함을 감안해 안식일법을 위반하는 제자들을 둔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모든 잘못을 하는 당신 제자들과 당신 자신을 두둔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안식은 아무래도 평화나 평안, 혹은 보호받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게 되는 감정이 안식입니다. 안식의 반대말은 불안입니다. 부모가 절대 자녀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 불안입니다. 불안하면 자녀가 악해져서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이킹은 왜 생겼을까요? 불안 때문에 생겼습니다. 춥고 척박한 산악지방에 인구가 늘어나니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 남의 나라를 약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행위는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사회생활에 부적격자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특정한 물건에 집착하거나, 폭력적으로 되고, 도둑질과 타인을 괴롭히는 일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한 가지 원인은 ‘불안’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많은 율법을 줍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지 않고 불안만 가중시킵니다. 사실 부모가 아이들을 평화롭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본인들이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통해서 자기 평화를 찾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모기에서 모기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교회에는 없을까요? 고해성사 보러 들어왔을 때 사제가 신자들을 야단치고 불안하게 하면 될까요? 주일미사에 일하느라고 바빠서 못 왔는데 야단치면 될까요?
주일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세상 걱정을 잠시 잊고 하느님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정해주신 날입니다. 그러니 일에서 쉬면서 평화를 찾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사 때 어떤 복사들은 틀릴까 봐 두려움에 떱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질 때 아이들이 더 평화를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른들도 성당에 오면 세상 어디에서 느낄 수 없는 안식을 느껴야 합니다. 걱정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착해집니다. 이것이 창조자가 있음을 믿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찾을 때 부모는 바로 이 평화를 주는 존재입니다. 안식을 주는 존재가 부모이기에 불안을 조장하는 부모는 아이들이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신자들에게 밀쳐져서는 안 됩니다. 율법주의나 형식주의가 만연해지면 그래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냉담률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기의 참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아기를 반을 잘라서 두 어머니에게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진짜 어머니는 차라리 아기를 다른 가짜 어머니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짜 어머니는 자기 아기가 죽었으니 그 아이도 반이 잘리는 것을 원합니다. 솔로몬은 아기의 안식을 걱정하지 않는 자는 어머니가 아님을 분별해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교회에 하느님을 아버지요, 창조자로 믿게 하려면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율법이 신자들에게 마치 레베카가 야곱에게 에사우의 옷을 입히고 걱정하지 말고 에사우라고 우기라고 한 것과 같은 평화를 주는 가르침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안식일이 생긴 이유
강의를 나갔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람이 많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쉼의 시간에 스마트폰을 본다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스마트폰 보는 것이 쉬는 것일까요?
하루 평균,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습득하는 정보의 양은 신문 175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보통 신문 한 부에 포함되는 글자 수가 13만 자이나 우리가 매일 뇌 속으로 넣는 글자의 양은 일 평균 2,300만 자입니다. 일주일이면 1억 6,000만 자, 한 달이면 7억 자, 1년이면 84억 자입니다. 어떻습니까? 쉬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터질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런 정보의 양을 접하고 있으니, 머리는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가락만 움직이기에 쉬는 줄 알았지만, 머리는 쉴 새 없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는 일 없이 피곤했던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많은 일을 해서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억력이 전과 다르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으시는 분도 많습니다. 단순히 나이 먹이서가 아니라,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서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쉬기 위해 하는 스마트폰이 오히려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 우리 삶에서 이런 경우는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쓸데없는 소비를 멈추지 않습니다. 공부 잘하고 싶다면서, 정작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행복했으면 한다고 말하면서, 미움, 질투 등의 부정적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정말로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사실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에 보면(23,26), “너희가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밀 이삭 뜯은 것을 추수 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법에 왜 생겼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사랑 때문에 생겼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사랑 자체는 전혀 보지 않습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데, 법 준수만을 외치면서 사랑을 외면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지금 해야 할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과 함께하며 진정한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보인다
- 논어 학이 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맑으신 삶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녀 아녜스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안식일의 본질은 사람을 위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람을 위한 안식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통해 사람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안식일은 힘있는 이들만이 차지하고 누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할 현실의 안식일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아들에게서 안식일을 배웁니다. 예수님 또한 우리에게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칩니다.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흔적은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람은 안식일을 통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가치와 안식일의 바른 안목은 우리가 맺는 관계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이해로 사람을 다시 얻습니다. 안식일의 길은 사람을 향합니다. 그러기에 공감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안식일의 규정으로 사람을 짓밟는 정서적인 폭력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만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십니다. 막힌 우리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열면 안식일이 새롭게 보입니다.
단 한순간도 우리 힘만으로 살아온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의 따뜻한 온도가 우리를 살게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온도였습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보십시오.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이 안식일임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를 위해 안식일의 주인이 오셨습니다. 오늘 이 하루가 소중함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기도를 실천하는 사람의 오늘 안식일의 힘찬 행진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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