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하느님, 하늘을 꾸미신 영원한 말씀이 동정 마리아의 몸에서 나약한 인간이 되셨으니 저희에게 나타난 이 진리의 빛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힘찬 권능을 펼치게 하소서.
2025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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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요한 3,22―4,6)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 오늘 복음
(마태 4,12-17.23-25)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오늘 말씀 카드
(1요한 4,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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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3,22―4,6
오늘 제1독서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마태 4,12-17.23-25
오늘 복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6일
임영준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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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오늘 독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영에 이끌리는지 그러지 않는지를 식별할 수 있는 주요한 기준 하나를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음을 믿고 고백하는가 그러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표현하고 있는 ‘예수님께서는 참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인간’이시라는 믿음의 여부입니다. 이를 믿고 고백할 때 우리는 성탄과 공현의 의미를 깊이 되새길 수 있습니다.
주님 공현 뒤 한 주간의 복음 말씀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를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뒤 유다 광야에서 갈릴래아로 물러가시어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하는 선포를 시작하십니다.
당신의 오심으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여기’ 이 세상에 왔음을 말씀과 행적으로 알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4,23).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러한 복음 선포가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4,16)로 묘사됩니다.
주님께서는 어디든 당신의 구원이 필요한 이들을 먼저 찾아가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구원이 내게 필요함을 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회개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인식의 문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공현의 회개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 보니 어제 공현 대축일 본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어제 본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별의 인도로 성자를 이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니 믿음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저희도 자비로이 이끄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주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으니 우리도 하느님을 직접 보게 되기를 비는 내용입니다. 보여줘도 봐야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주님께서 당신을 공현하셔도 우리가 보지 않으면 주님의 공현은 내게는 헛것입니다.
공현 곧 모두에게 공적으로 당신을 나타내 보이셔도 어떤 사람은 보지만 어떤 사람은 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아기로 당신을 나타내 보이신 주님께서 이제 어른이 되어 공적으로 등장하시며 첫 말씀을 이렇게 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주님의 오심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어도 그 하느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공현의 회개를 묵상해봤습니다.
우리는 회개를 여러 차원에서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순시기의 회개는 십자가를 거부하는 삶에 대해 회개하고, 부활 시기의 회개는 여전히 죄의 어둠 가운데 사는 삶에 대해 회개해야겠지요.
그렇다면 공현의 회개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보여주셔도 보지 않는 죄와 보지 못하는 죄로부터의 회개인데 우리는 왜 보지 않고 왜 보지 못하며, 왜 어제 삼왕처럼 보고픈 갈망과 보려는 열망이 없습니까?
그것은 어쩌면 삼왕처럼 어둔밤을 겪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어둠 속에서 별을 찾지도 보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나라를 볼 때 어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의 어둠을 볼 때 어둠 곧 절망에 빠지지 말고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하늘을 보고 하늘의 별을 봐야 하며, 하늘의 별이 가리키는 주님을 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어둠에서 빛을 찾고 빛으로 참 빛이신 하느님을 찾는 회개입니다.
둘째는 주님을 공현하지 않는 죄로부터의 회개입니다. 우리는 삼왕처럼 별을 보고 그 인도를 받는 사람이자 동시에 빛이 필요한 이들에게 별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별이야!’ 하고 지레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린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하늘로 오를 수 있게 되고 그분이 인성을 취하심으로 신성을 지니게 된 고귀한 신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 공현의 또 다른 모습인 주님 세례 축일에 기념하는 것처럼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도 주님의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에 참여하고, 이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을 공현하고 하느님 나라를 공현하는 자들이 돼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빛 안에서 걸어야 하는 첫걸음은 회개
빛의 축제일인 ‘주님 공현 후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어제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빛의 공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빛을 받으며, 빛 속에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빛을 증언하러 왔던 요한은 물러가고, 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6-9).
오늘 <복음>은 이사야가 예언한 빛이 이미 도래했음을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그 빛은 “즈불룬 땅과 납달리 땅,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부터 비추어왔습니다. 질곡의 땅 갈릴래아, 이곳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당신 ‘사명’의 내용을 밝혀줍니다.
곧 하늘나라는 먼저 이방인의 압박, 곧 죽음의 그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먼저 선포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은 어두움 속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시는 분임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빛 안에서 걸어야 하는 첫걸음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밝혀줍니다. 곧 “회개하여라.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슈브,שב)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돌이키다’,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원래의 그림문자의 뜻은 ‘집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곧 자신이 ‘이전에 살던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에 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전에 살던 집’이란 우리가 거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우리가 이전에 행하던 행위나 지식까지도 포함합니다. 곧 우리의 행위와 앎으로부터 벗어나 새집으로 돌아와 하늘의 양식을 먹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옛사람의 행위와 지식(옛집)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콜로 3,9-10)이라고 말합니다. 곧 ‘우상의 집’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양식인 말씀을 먹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는 죄악을 버리는 것보다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의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만든 하느님의 처소(집)임과 동시에, 마지막 때에 다시 회복될 ‘새 예루살렘’(묵시 21,2)입니다.
‘회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호세 14,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하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요한 14,23 참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시면 우리 안에 ‘하느님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 안으로의 전환이 곧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건설되도록 수락하는 일입니다. 곧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일, 곧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처가 되는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4,15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주님!
당신께서는 어둠이 덮인 곳에
큰 빛을 비추셨습니다.
질곡의 땅, 핍박받는 이들에게
의로움의 빛줄기를 뿌리셨습니다.
오늘, 저희의 오류와 완고함을 뚫으소서.
어둠의 갇혀 있는 저희의 속박을 풀고,
묶인 이들을 해방하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밝혀 주시어,
진리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꽉 막힌 마음 여는 법 : 작은 틈새 찾기
어떤 분이 요즘 믿음에 불타 그 깨달음을 타인에게 전하려 하는데 거기에서 반작용이 너무 커서 조금은 힘이 빠지는 상황입니다. 그분에게 저는 ‘너만 잘났냐?’라는 반발의 마음이 들지 않게 살살 다가가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자세하게 이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가끔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부모에게 떠밀리다시피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한 청년이 들어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고해본 지 얼마 되었는지, 죄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꽤 오래 냉담하던 입이 반쯤 나와 있던 그 청년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진짜 죄 없어요.”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십계명을 읊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사람은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있습니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수님은 빛 자체이십니다. 빛이 의미 있는 곳은 어둠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둠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죄가 없다고 굳게 믿게 하는 무언가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 임언기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주려고 간암 말기 환자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고해성사를 거부하며 “나 죄 없어!”라고 외쳤습니다. 임 신부님은 속으로 “그래, 너 잘났다!”라고 하며 돌아섰습니다. 꽉 막혀 말해봐야 소용이 없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리옷 유다처럼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자신이 어둠임을 알지 못하여 스스로 빛을 거부해 목을 매 자살하게 된 상황이 아니라면 항상 희망이 있습니다. 완전히 빛을 차단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항상 빈틈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사탄만이 빈틈을 주지 않습니다.
저도 나름 잘 산다고 교만해질 때가 많습니다. 이때 저의 빈틈을 공략하는 말들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자비가 필요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고해성사를 조금 늦게 들어가는 것, 강론 때 조금 합당하지 않은 농담을 하는 것, 아주 가끔이지만,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새벽 미사를 했던 것, 감기 걸리고 마스크 안 쓰고 미사 하는 것 등입니다.
만약 신자들이 “신부님은 회개하셔야 해요!”라고 말하면 저도 “본인이나 잘하세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어린 관심으로 그러한 것들을 말해줄 때는 ‘아, 바꿔야겠구나!’라고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가가야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비극은 잘못된 ‘믿음’ 때문에 시작되고 그 믿음을 파괴할 작은 틈을 찾아 누구도 빛을 넣어주지 못한 데서 비극으로 끝납니다. 예를 들어 ‘멕베스’를 생각해봅시다.
맥베스의 비극은 세 마녀의 예언을 맥베스가 맹목적으로 믿고, 주변의 누구도 그 믿음을 깨뜨리지 못하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전개됩니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글래미스의 영주, 코더의 영주, 그리고 미래의 스코틀랜드 왕이라는 칭호로 인사를 건넵니다. 이들의 애매모호한 말은 맥베스의 마음에 야망의 씨앗을 심어줍니다. 마녀들의 말은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맥베스는 이 예언을 불가피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그가 코더의 영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이 신빙성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이를 들은 레이디 맥베스는 그의 야망에 불을 지피며, 맥베스가 직접 행동해 던컨 왕을 살해함으로써 예언을 이루라고 부추깁니다.
만약 레이디 맥베스가 던컨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점이나, 던컨이 친척이자 집에 초대받은 손님임을 상기시켰더라면, 맥베스의 결심은 약화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언은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운명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맥베스는 예언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행동합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는 마녀들의 반쿠오 후손에 대한 예언 때문에 불안에 시달립니다. 그는 반쿠오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암살하려 하지만, 반쿠오는 살해되었지만 플리언스는 도망칩니다.
누군가 마녀들의 말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나 예언이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더라면, 맥베스는 자신의 행동을 재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언의 확실성을 믿는 그의 집착은 그를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맥베스의 불안감이 더욱 깊어지자, 그는 마녀들을 다시 찾아갑니다. 마녀들은 새로운 애매한 확신을 제공합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그를 해칠 수 없다.”라는 말과 “"버넘 숲이 던시넌 언덕으로 움직일 때까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러한 말은 맥베스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며, 그를 파멸로 이끄는 자만심을 심어줍니다.
누군가 숲이 인간의 위장으로 인해 움직일 수도 있다는 점이나, 제왕절개로 태어난 사람이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로 간주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을 지적했더라면, 그의 자만심은 누그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맥베스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맥더프 가족을 몰살시키는 등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만듭니다. 한편 레이디 맥베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미쳐가며,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했지만, 그들의 행위가 가져온 결과를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콤과 맥더프가 이끄는 군대가 버넘 숲에서 나뭇가지를 잘라 위장하며 던시넌 성으로 진격하자,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는 마녀들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고, 맥베스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을 굳게 유지합니다.
맥더프가 자신이 제왕절개로 태어났음을 밝히자, 맥베스는 마침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습니다. 마녀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은 그의 행동과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태도는 결국 맥베스가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하게 만듭니다.
맥베스의 비극은 마녀들의 예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덕적 논리를 제시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결과입니다. 그러나 제어되지 않은 야망과 운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맥베스를 파멸로 몰아넣었고, 그의 길에는 파괴와 비극만이 남았습니다.
꽉 막힌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가 믿는 믿음의 빈틈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해봐야 이미 세 마녀를 믿고 있는데 어떻게 그 생각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방법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녀는 하느님은커녕 사람에 대한 신뢰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도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청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녀의 믿음을 조금씩 허뭅니다. 그리고 여섯 명의 남편과 살아도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참 생명의 물을 주는 분이 당신임을 알리십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그녀는 귀를 더 막아버렸을 것입니다.
항상 꽉 막힌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을 깰 아주 작은 것부터 찾아서 그 안으로 빛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어둠의 믿음을 깰 작은 빈틈으로 들어오는 믿음의 빛으로 자신이 어둠이었음을 깨닫는다면 차차 빛을 받아들이게 되어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배움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배움을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그릇이 바뀌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우치다 다쓰루, ‘무지의 즐거움’ 중).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지도 않고 그릇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배움이 아니라는 말에 큰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까지 본당에서 매주 성경 강의를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강의했던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즉, 앞으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며 성경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공부하기 전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맞습니다. 그릇이 바뀌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배움은 우리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렇다면 이 배움을 멈춰야 할까요? 아이들은 공부가 싫다고 말하고, 청소년은 공부가 지겹다고 합니다. 중장년은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노년이 되어서는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합니다. 그릇이 바뀌지 않으니 계속 똑같은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릇이 바뀌어야 행복할까요? 바뀌지 않아야 행복할까요? 자기 마음에 드는 새 물건을 사게 되면 기분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배움의 시간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배움을 통해 바뀌게 되는 나의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똑같은 삶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도파민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똑같은 상황에서는 절대로 도파민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 다가설수록 새로운 배움이 계속됩니다. 그 새로운 배움으로 행복이 계속해서 자기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는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로 실제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고, 사람들이 데려온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역시 고쳐주신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렇게 환자들만 치유하시는 의사의 역할만 하셨을까요? 항상 말씀이 있었습니다. 즉, 그들이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 그릇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주님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를 알리게 됩니다.
우리의 그릇이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 알아가면서 진정한 행복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서 몇 년을 살았느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 오헨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우리는 모든 나라 가운데 하늘 나라를 향하고 있는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참인생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가까이 온 하늘 나라를 만나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얼룩진 거짓의 껍데기를 벗고 새롭게 만나는 하늘 나라의 기쁨입니다. 회개로 말씀이 이루어지는 하늘 나라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회개의 삶입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를 모두 고쳐 주시는 하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의 마음은 하늘 나라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삶이 하늘 나라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공현은 우리네 삶의 새로운 생활의 물꼬를 트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늘 나라의 축복은 우리들의 마음과 실천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늘 나라의 실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실천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새로운 오늘입니다. 오늘이 바로 우리의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하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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