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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1/16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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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2024년 11월 16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1월 16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1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3요한 5-8)
    우리가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됩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8,1-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8,1)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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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한 5-8
오늘 제1독서

 

우리가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가이오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하여, 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 다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모임에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맞갖도록 그대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로, 이교인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루카 18,1-8
오늘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16일
조인준 미카엘 신부

 

✚ 미사시작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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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주님을 닮아 가게 하는 일치의 기도

청원 기도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는 모두 다 이루어진다. 만일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기도의 청원이 올바르지 않았거나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청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첫 번째로 그 청한 것이 올바른지 살펴보아야 하고, 두 번째로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때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끈질긴 과부의 비유는 바로 기도의 가르침에 관한 것입니다. 과부는 재판관을 찾아가 “올바른 판결”을 요구합니다. 한 번의 요구로 그치지 않고, 거듭하여 요구합니다. 

과부는 올바른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끊임없이 재판관을 찾아갈 것이고, 재판관은 마침내 과부의 요구를 들어줄 것입니다. 우리도 올바른 것을 청할 줄 아는 지혜와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인내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청원 기도에 대하여 조금 더 깊게 묵상해 보면, 끈질기게 요구하는 모습은 우리 인간보다 하느님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청원하는 쪽은 언제나 우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끈기 있고 한결같이 청하지 못합니다. 

정작 성실하고 한결같이 청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돌아오도록 끊임없이 요청하시고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응답을 갈망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간절히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인내하며 한결같이 하느님께 청원하는 것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그렇게 닮아 가며, 주님께서 우리의 청원에 빠르게 응답하시듯 우리도 그분 청원에 재빠르게 응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청원을 기억하여 청원 기도가 내 뜻을 이루는 주문이 아니라, 주님과 대화하며 주님을 닮아 가게 하는 일치의 기도가 되게 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가 지체되지 하느님은 지체하지 않으신다

오늘 주님께선 우리의 기도를 지체없이 들어주신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체험하는 기도와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체하더라도 들어주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즉시 들어주신 경험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들어주실 뿐 아니라 지체없이 들어주신다니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께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빨리해주고 싶은 분입니다. 그러니까 지체가 없이 들어주신다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지체하시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둑으로 치면 장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둑에서 인간은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합니다. 어떤 때는 수를 찾느라 이삼십 분 끙끙대고 그런데도 못 찾기도 하지만 인공 지능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수를 찾아내는 데 1초도 안 걸립니다.

이것처럼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인가? 말 것인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그래서 미적거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지체치 않으신다는 것은 미적거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시거나 들어주셔도 지체하신다면 당신 이유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이유 때문에 안 들어주시거나 지체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이거나 우리 믿음이어야 하는데 우리 믿음이 그러하지 못함을 잘 아시기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한탄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들어주시거나 안 들어주시거나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안 들어주신다면 나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들어주지 않으실 이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안 들어주심이 우리에게 더 사랑이기 때문에 안 들어주시는 거라고 믿는 겁니다. 우리도 자식이 안 좋은 것을 달라고 하면 예를 들어 지금 고도비만인데 먹을 달라고 하면 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청은 아예 안 들어주는데 그것이 사랑이고 더 사랑이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우리보다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더 잘 아시는데 그렇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거나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다면 응답이 지체되는 것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때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 마음은 조급하여 당장 들어주시길 바라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중이 더 좋다는 것을 아시기에 지체하십니다.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는 보통 새벽에 나타나십니다. 밤을 꼬박 지새우고 새벽에야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밤새 풍랑과 싸우던 제자들에게 새벽녘에 나타나시고, 부활하신 뒤 밤새 고기잡이 한 제자들에게도 새벽녘에 나타나셨지요.

기진맥진할 때를 기다리시고 갈망이 깊어지고 희망이 단단해질 때를, 그때를 기다리신 것이고 진정 그때까지 애타시며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큰 갈망이 없이 청하고 기다리고 그래서 희망이 단단하지 않으며 그래서 안 들어주신다고 쉽게 실망하고 더 나아가 절망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보다 더 애타시며 기다리십니다.

빨리 갈망이 깊어지고 희망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지체하니 그것 때문에 우리보다 더 애타 하십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지체없이 들어주십니다.

아시시로 돌아가면 당신 뜻을 알려주실 거라고 하느님은 프란치스코에게 말씀하셨고 실제로 산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알려주셨습니다.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이 말씀을 1205년에 프란치스코가 들었는데 이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기까지 3년여가 더 걸렸고, 그 후에도 그 깨달음이 계속되었던 것을 보면 완전한 깨달음까지는 프란치스코도 지체됐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미흡하여 지체되는 것이지 하느님의 판단 능력이나 사랑이 부족하여 미적거리거나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끊임없이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막바지 길에서 “기도”에 대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은 대체 어떤 기도를 말하는 걸까? 

흔히 ‘기도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이 기도를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항구한 기도, 지속적인 기도, 중단 없는 기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교회전승 안에서, 주로 서방교회에서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의 형태로, 동방교회에서는 ‘예수기도’(εύχη Ιησοû)의 형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씀은 대체 무슨 뜻일까? 

그것은 우선, ‘끊임없이 주 하느님을 향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이 동반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가 주님을 향하여 있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의 넋두리요, 하소연이요, 자기 한탄이요, 독백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그 어떤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 ‘주님을 향하여’ 있고, 우리 주님과 관계 안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곧 그것은 주님을 믿고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1사무 12,23)라고 말합니다. 만약 하느님과 관계 맺지 않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지 않는다면, 곧 하느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향하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한 대로,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방향 지워진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보다 앞서 우리의 주님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말말아야 할 일입니다. 희망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마치 과부가 판결해주지 않는 재판관 앞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간청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사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음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리의 믿음’을 찾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2,8)

그러니 이 “끊임없는 기도”는 “사람의 아들이 올 때”까지의 지속되어야 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를 <루카복음의 소묵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하기를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곧 하느님을 향하여 있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있기를 멈추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8,1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제 마음이 당신을 향하게 하소서.

이미 제 마음 안에 와 계신 
당신을 저버리지 않게 하소서.

늘 저를 향하여 있는 
당신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믿음을 두고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당신의 희망이 저의 희망이 되게 하시고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 

늘 제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군대 제대 후에 신학교 복학 전에 사회 현장 체험을 하라는 성소국장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주유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이 주유소에서 제일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경유와 휘발유를 구분해서 넣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승용차는 휘발유를 넣어야 할 것 같은데 경유를 넣어야 하고, 또 어떤 RV차는 경유를 넣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휘발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분에게 꼭 물어보았습니다. “경유 넣을까요? 휘발유 넣을까요?” 그러면 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면 몰라?” 
 
운전면허증도 없었을 때였고, 차라고 하면 버스, 택시밖에 모를 때였으니 당연히 보면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고서도 모른다고, 주유소 직원이 왜 그러냐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때의 일이 이렇게 떠올려지는 이유는 지금도 보고서 잘 모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알고 있습니까? 나의 무지가 하느님의 일을 잘못 이해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유소에서 일할 때는 스스로 모른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물어보아서 실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모르면서도 아는체하며 경유와 휘발유를 바꿔 넣었다면 차주의 소중한 차를 망가트렸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일을 물어보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행동하면 어떨까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망가트리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물어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이유로 불의한 재판관에게 매달리는 과부에 관한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 재판관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였습니다. 그러나 귀찮도록 매달리는 과부의 청에 결국 올바른 판결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느님께서는 어떠하시겠냐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삶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는 기도를 하지 않게 되면 하느님의 창조를 깨뜨리는 커다란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 밖에 많은 이유를 들어 기도하지 않습니다. 정작 이렇게 기도하지 않음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이나 행복은 자신에게 충분히 준 다음 자연스럽게 남에게 흘러가는 것이에요.

- 김하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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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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