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2024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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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에페 3,2-12)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39-48)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 오늘 말씀 카드
(이사 12,3)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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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 3,2-12
오늘 제1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3
앞에서 간단히 적은 바와 같이,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4
그래서 그 부분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하여 깨달은 것을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7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을 펼치시어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따라, 나는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8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그러한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1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리라.
루카 12,39-48
오늘 복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23일
윤상현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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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나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을 결정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가 올 때를 물었고,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때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에 대하여 말하는 이들 가운데 그 확정된 날짜를 말하는 이들은 모두 믿을 수 없습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루카 12,39) 미리 준비하는 것처럼 그때를 알면 좋을 것 같은데, 왜 그때를 알려 주시지 않았을까요? 마치 시험 날짜를 알려 주지 않고 치르는 시험과 같습니다.
학생 때 가끔 그런 시험들이 있었습니다. 언제 시험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복음에 나오는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올 시간을 모르기에 언제라도 주인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 종의 처지라면, 사실 주인이 언제 오든 그때에 일어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나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을 결정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다가 그분의 다시 오심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여도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살았고, 수천 년이 지난 뒤에라도 주님께서 오실 때 그들은 어제 만났던 주님을 오늘 다시 만난 듯 친밀하게 그분을 맞이할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마지막 날에 대한 기다림이 약해졌고,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에 대하여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젠가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종처럼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바로 우리의 오늘을 살펴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는 모두 집사이고, 집사일 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인과 종의 관계 얘기인데 어제는 주인을 기다리다 맞이하는 종에게 주인이 시중드는 얘기입니다. 주인의 종들을 돌봐야 할 책임을 맡은 집사에 관한 얘기입니다.
오늘은 그러니까 둘 다 종은 종인데 어제의 종은 주인에게 시중받는 행복한 종의 얘기이고 오늘의 종은 주인께 선택받은 책임이 막중한 종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어제의 주인은 어머니같이 따듯한 주인인 데 반해 오늘의 주인은 아버지같이 책임을 추궁하는 엄한 주인입니다.
어제의 주인은 종에게 직접 밥을 차려주고 시중듭니다. 이때 종이 할 것은 나갔다가 급히 돌아와 밥을 차려줄 엄마를 아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듯 깨어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은 자기를 대신해서 종들의 밥을 차려주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때 이런 책임을 맡은 종이 해야 할 것은 주인이 돌아올 때를 오직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그러한 한가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맡겨진 자기 책임을 충실히 다해야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돌아올 때도 깨어 기다려야 하지만 종들에게 약식을 나눠줘야 할 때도 챙겨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그러므로 주인과 종들 사이에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인 집사는 주인과 종들에게 이중으로 충실해야 합니다. 주인에게는 인격적 충성스러움이고 종들에게는 일적인 충실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종의 충실함뿐 아니라 슬기로움에 대해서도 봐야 합니다.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과 맡겨진 일에 대한 충실뿐 아닙니다. 슬기로움도 요구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주제랄까 꼬라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 꼬라지를 모르고 꼴값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꼬라지는 집사일 뿐이고 그러니까 여전히 종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마치 주인이나 된 듯 술이나 처먹고 종들을 부리면 그것은 꼴값하는 것이고 자기 꼬라지를 모르는 대단한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슬기로움은 겸손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양식을 제때 종들에게 먹인 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라고 주인이 칭찬할 때도 ‘주인님, 저는 주인님의 종일 뿐입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좋건 싫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종들이고 집사들입니다. 본당에서건 가정에서건 그리고 심지어 직장에서건 우리는 집사들입니다. 본당 신부라고 해서 본당의 왕이 아니고 주님 대신 양들을 먹여야 할 집사이듯 단체장이나 부모나 직장의 책임자들도 주님으로부터 책임이 맡겨진 집사들이고, 충실함과 슬기로움이 모두 요구되는 종들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
오늘 <복음>도 종말에 관한 비유인 앞 장면의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에 이어, “집주인과 도적의 비유”와 “청지기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앞의 것은 어제 복음과 함께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있는 종들”(루카 12,37)이라는 ‘깨어있는 종들’에 대한 행복선언이라면, 뒤의 것은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들”(루카 12,43)이라는 ‘깨어 일하고 있는 종들’에 대한 행복선언입니다.
이는 ‘깨어있는 자’는 단지 잠들지 않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일하는 자’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깨어있으려면, 먼저 ‘대체 무엇이 맡겨졌고’, ‘무슨 일이 맡겨졌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할 일입니다. 곧 ‘청지기’(집사)가 가져야 할 태도와 방식을 가르쳐주십니다. 우선 비유에서,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하여 종들과 양식과 재물을 돌보는 직무를 맡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루카 12,42)
이는 먼저 제자들에게 다른 어떤 일이 아니라, ‘주인의 종들이 맡겨졌고’, ‘그들에게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고 돌보는 일’이 맡겨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바로 이 ‘사실 인식’을 제대로 해야 할 일입니다.
곧 ‘나에게 맡겨진 종은 나의 종이 아니라 그분의 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마구 부려 먹으라고 맡겨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양식을 내주라고 맡겨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양식은 이미 정해져 주어졌고, 그것을 때에 맞추어 소홀함이 없이 잘 챙겨내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맡을 수 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충실함’은 하느님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며 그 약속에 ‘신실하심’(헤세드)과 ‘한결같은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곧 당신 종들을 끝까지 챙기시는 ‘충실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바로 당신의 이 마음을 ‘청지기가 지녀야 될 태도’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일은 ‘슬기로움’으로 처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슬기로움’이란 맡겨진 이들을 다루는 기술이나 요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라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어주는”(루카 12,42) 일입니다. <잠언>에서는 말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예지다.”(잠언 9,10)
그렇습니다. 지혜는 주님을 알고, 두려워하고, 믿는 마음에서 옵니다. 그것은 “주인의 뜻을 아는 지혜”를 넘어, “주인의 뜻에 따라 사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시편> 작가는 말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친 사람이다.”(시 111.10)
그렇습니다. ‘지혜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곧 주인의 뜻을 알고 그것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요,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이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42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
주님!
먼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찾게 하소서.
저는 주인이 아니라
당신께 속해 있는 자인 까닭입니다.
하오니, 무엇을 하든
제 방식이 아니라
당신의 방식을 따르고,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따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관리인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제때 양식을 주는 일이 왜 유일한 행복의 길인가?
오늘 복음은 심판 때 깨어있으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심판 때 당신이 함께 계신 것처럼 제때 정해진 ‘양식’을 내어주는 집사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늦게 오겠거니 생각해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종들은 매를 많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며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주님께서 일을 맡기시는 이유는 그러니까 ‘행복’입니다. 일을 더 많이 맡기시는 이유는 우리가 더 행복해지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행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행복은 ‘자존감’에 달려 있습니다. 외적으로 복권에 당첨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되거나, 안 좋은 일이 발생하여 몸이 아프게 되어도, 몇 주, 몇 달 뒤에는 이전의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옵니다. 이것은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한 환경미화원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악취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거리를 청소했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도 아니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미화원은 싱글벙글 밝은 모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힘들지 않으세요? 어떻게 항상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일하실 수 있죠?”
그러자 환경미화원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네.”
직업이 행복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미가 행복을 결정합니다. 같은 환경미화 일을 해도 누군가는 그 일을 단순한 거리 청소나 돈벌이로 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일로 바라봅니다.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요? 당연히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객관적 상황이나 조건이 행복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결국 행복은 자존감과 연결됩니다. 자존감은 자신이 자기를 바라보는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행복 수준은 자기 스스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좀 야한 부분에 대해 말해볼까요? 만약 부부관계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첫날밤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충분한 행복을 받았지만, 내가 상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면 그래도 행복할까요? 남자들은 그래서 더 지속하는 약을 먹기도 하고 여자들은 인터넷으로 남자를 더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들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는 사랑을 받을 때보다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때 행복합니다. 그런데 행복의 수준은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양식’에 의해 생겨납니다. 사람에게 양식을 먹는 개들은 자신들도 사람인 것처럼 행복해합니다. 그래서 만약 사람에게 버림을 받으면 같은 개들 무리에서는 그 행복을 더는 느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기를 버린 주인을 몇 년 동안 같은 곳에서 기다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왜 흙에 불과한 우리를 당신 자녀로 창조하셨을까요?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행복을 주실 때에야만 하느님으로서의 영광과 행복을 누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당신 자녀로 삼으셨으면 에덴동산에서 동물들에게도 이름을 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자존감을 주는 양식을 그들에게도 제공해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일을 시키심으로써 당신 자존감과 행복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이사 43,7)
행복은 다 이기적입니다. 남이 행복해서 자신도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이 자신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생명의 양식을 내어주라고 우리를 파견하셨습니다. 진짜 행복은 내가 이웃에게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양식이 되어주는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내가 이웃에게 하느님 행복을 줄 수 있는 ‘생명의 빵’이라는 자존감을 잃지 맙시다. 이것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돌 가수가 자기의 연습생 시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해야 열심히 한 것인 줄 몰라서 계속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코피가 나면, ‘아! 오늘 연습 좀 했나 보다.’ 싶었다고 말합니다. 텔레비전에서 멋지고 화려한 모습의 아이돌을 보지만,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열심히 해서 코피 나본 적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 코 후비다가, 또 친구가 던진 공에 맞아서 코피 난 것 외에는….
그러다 문득 들은 생각은 ‘그렇게 열심히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일까?’라는 것입니다. 아이돌 연습생들 숫자가 엄청나다고 하던데,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열심히 해도 데뷔하지 못하는 연습생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즉, 열심히 해도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번아웃 증후군(만성적 스트레스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하지요.
노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행사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시작부터 마침까지 예행연습까지 하며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당일 엄청나게 비가 오면서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노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이를 인정할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쓸데없는 것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의 의미를 찾고 이를 간직해야 합니다. 주님 따르는 것 역시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닌, 과정 안에서의 의미를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주님 따르는 것 자체에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명심하여라.”라고 하시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을 이야기하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이 준비는 무엇일까요? 코피 쏟을 때까지 일하면서 살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사는 삶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르시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자기 욕심과 이기심만을 채우고 있다면 주인이 오시는 날 큰 후회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집중하면서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자주 죄에 빠지고 맙니다. 즉, 우리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 곧바로 주님께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큰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우리 곁에 충만하게 내려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예술적인 것은 없다.
- 빈센트 반 고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이 많이 요청되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예수님과 삶은 분리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입니다. 산 바람이 세차고 또 매섭습니다. 우리자신의 불충실을 정직하게 성찰합니다. 불충실을 끝내야 할 우리들의 생활입니다.
마지막까지 인내와 충실이 요구되는 기도의 나날들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우리는 또 잊고 삽니다. 수 많은 배반과 변명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을 바라십니다.
아직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 우리들 삶입니다. 물질의 욕심에 홀려서 하느님과 멀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삶을 일깨워 주시는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십니다. 욕심을 향하는 위태로운 거짓의 방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온전한 행복이란 하느님과 나누는 참된 행복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行)하는 모든 감사입니다. 행복이 요구하는 진심어린 감사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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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9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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