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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8/20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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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복된 베르나르도를 지식의 영으로 가득 채우시어, 하느님 백성에게 풍성한 가르침을 전하게 하셨네.

하느님, 복된 베르나르도 아빠스가 하느님 집을 향한 열정으로 타올라 교회에 빛을 비추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불타는 열정으로 언제나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2024년 8월 20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8월 20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8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태 19,26)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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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에제 28,1-10
오늘 제1독서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과연 너는 다니엘보다 더 지혜로워 어떤 비밀도 너에게는 심오하지 않다. 


너는 지혜와 슬기로 재산을 모으고 금과 은을 창고에 쌓았다. 


너는 그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졌다. 


그러므로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 


그러므로 나 이제 이방인들을, 가장 잔혹한 민족들을 너에게 끌어들이리니 그들이 칼을 빼 들어 네 지혜로 이룬 아름다운 것들을 치고 너의 영화를 더럽히며 


너를 구덩이로 내던지리라. 그러면 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너를 학살하는 자 앞에서도 네가 감히 ′나는 신이다.′ 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를 살해하는 자들의 손에 달린 사람일 뿐이지 신이 아니다. 

10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죽음을 맞이하리라. 정녕 내가 말하였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

 

 

마태 19,23-30
오늘 복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8월 20일
유상준 베르나르도 신부

 

✚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9

✚ 강론시작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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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인간의 교만

에제키엘서 25─32장은 여러 민족들에 대한 심판을 담고 있고, 오늘 독서는 그 가운데 티로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예언서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민족들에 대한 심판은, 각 민족이 저지른 일이나 특정한 시대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권이 주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티로 임금에 대한 심판은 매우 전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 심판의 대상이 티로 임금이 아니라 누구라도 다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사야서 10장에서는 아시리아에 대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바빌론에 대해서 비슷한 내용이 선포되고, 다니엘서 4장에서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를 대상으로 하여 같은 주제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문제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계획에 따라 어느 나라 또는 어떤 임금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는데, 인간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강하고 지혜롭다고 여길 때, 오늘 독서의 표현으로 “나는 신이다.”(에제 28,2)라고 할 때 하느님께서 그것을 잃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너무 전형적인 주제여서, “나는 신이다.”라는 말을 보면 바로 멸망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내’ 힘, ‘내’ 능력, ‘내’ 지혜, ‘내’ 재산이라는 바로 그 생각이 어리석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보는 이들은 그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알아봅니다. 알아보지 못하고 착각 속에 사는 그 자신만 불행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이들의 것이고,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순례와 나그네의 가난

어제 복음에서 부자가 주님 추종에 실패하자 주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답하시는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지금 가난한가?’ 성찰케 되었습니다. 

저의 가난에 대해 성찰할 때 지금은 많이 무디어졌지만 옛날에는 집착 수준이었다고 할 정도로 무척 가난하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은 물질의 가난보다 아버지가 없는 가난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니 기가 꺾인, 아니, 기가 아예 죽은 가난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안 계시니 물질적으로도 가난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하루 세 끼를 먹은 것이 드물 정도로 늘 배가 고팠고, 시내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 와 밥을 먹을 때 슬쩍 나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돈이 없어 등록금을 못 내는 것은 물론 미술 시간에 스케치북을 사 가지 못해 미술 시간마다 손바닥 열대를 맞고 때우는 서러운 가난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학생의 서러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를 대신 부잣집 딸 미술 선생님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지금도 그 선생님 이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원에 들어와 프란치스칸 가난을 배운 다음에는 한편으로는 너무 행복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것은 고귀한 가난을 제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가난은 내몰린 가난이었다면 이때의 가난은 제가 선택한 가난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보물을 나만 소유한 듯 제가 오히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저는 가난에 너무도 집착했고 가난치 않은 사람을 무시하였으며, 저의 형제들에게는 왜 가난하지 않냐고 질책하고 더 가난해지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니 괴로워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저로 인해 괴로웠고 관계는 최악이 되어 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가난에 대한 집착과 영적인 교만이 그 원인임을 깨닫고 수련에 들어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난이 아니고 사랑임을 또한 깨달았습니다. 

이후 저의 가난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의 가난이었으며 그래서 수련 마치고 올라오자마자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그것은 선교 열망과 결합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의 가난 여정을 정리하면 내몰린 가난, 선택한 가난, 집착과 교만의 가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지금 그리고 앞으로 저의 가난은 어떤 것이어야 하고 어떤 것이 될까요? 제 생각에 순례자와 나그네의 가난이 되어야 하고 그런 가난이 될 것입니다. 

어제 주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라 하느님 나라로 가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도 순례자와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저세상 곧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도 순례자와 나그네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순례자와 나그네로서 이제 하나하나 다 내려놓아야 하고 내가 스스로 내려놓지 않아도 잃게 되고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건강부터 잃게 되고, 욕심은 말할 것도 없고 자그만 집착이나 애착도 하나하나 내려놓게 되고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순례자와 나그네의 이 가난이 우리가 마지못해 선택하는 가난이 되지 않고, 하느님 나라로 가는 즐거운 길에 기꺼이 선택하는 가난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100배가 주어진다고 믿는 곳이 천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즉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반면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하늘 나라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신학생 때 2주간 행려자들을 위한 서울에 있는 한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무료 급식소라고는 하지만 돈을 200원씩 받았습니다. 없는 사람은 안 내도 되지만 아예 받지 않으면 행려자들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가끔 식사 후에 그들끼리 밖에 나가 싸웁니다. 제가 있을 때의 싸움은 신문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이불 역할을 하는 그런 신문지가 전 재산입니다. 한 노숙자는 신문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없는 사람이 많은 사람 것을 하나 슬쩍 한 것입니다. 

저는 ‘과연 그들이 가난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들은 부자였습니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왜 욕심이 많을까요? 자신이 내어주는 것이 100배로 돌아옴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내가 어느 환경에 있는지에 대한 믿음으로 결정됩니다. 같은 아이라도 고아가 있고 부모가 있는 자녀가 있습니다. 고아는 이 세상에서 자기 것을 내어놓아도 100배로 돌아온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에게 조금만 효도해도 100배로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부모가 있어도 가난할 수 있지만 그 아이는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좋은 고아원에 있어도 100배의 보상을 믿지 않는 아이는 그 집착 때문에 지옥에 삽니다. 사실 그런 아이는 가진 것마저 빼앗깁니다. 

우리는 이솝 우화의 ‘개와 그림자’를 잘 압니다. 한 마리의 개가 고기를 물고 가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물에 비친 고기가 더 크다고 착각합니다. 욕심을 부린 개는 물속의 고기를 차지하려다 결국 자신이 물고 있던 고기를 떨어뜨려 잃어버리고 맙니다. 만약 100배로 돌려주는 세상이라고 믿으면 ‘불쌍하면 내가 주려고 했는데 이미 먹을 것이 있으니 줄 필요가 없겠네!’라고 하며 자신의 것을 잃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하늘 나라로 사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워런 버핏은 2011년 포춘지 9월호에 ‘나의 기부 서약’을 실었습니다. 여기에 그가 내어놓는 무엇이든 100배로 돌려받는다는 믿음이 숨어있습니다. 

“저는 재산의 99%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습니다. 규모로 보면 큰 액수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저보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교회나 기타 기관에 기부금을 내고 있습니다. 제 주식의 1% 이상을 저희를 위해 사용한다 해도 저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지도 더 편안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부한 나머지 99%는 다른 이들의 건강과 복지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제 가족이 걸어갈 길은 명확합니다. 저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사회의 필요를 위해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보상을 믿는 사람들이 나눌 줄도 압니다. 그런데 정말 저렇게 많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워런 버핏이 가진 돈의 1%를 가진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1%도 조 단위의 액수이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많게 되는 이유는 이미 지옥에 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학 가서 말도 못 할 때 그 상황이 지옥 같으니 계속 내 것만 찾고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부러라도 빼앗으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정말 100배가 주어지는지 보게 될 때 그 사람은 앞으로도 천국에 살 수 있습니다. 

‘약속’이란 영화에서 박신양이 술에 취하여 노숙자의 가방을 빼앗으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노숙자는 자신의 전 재산인 가방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지만 결국 빼앗기고 맙니다. 가방을 털어보니 신문지와 더러운 옷 몇 벌만 들어있습니다. 주인공은 웃으며 가방과 나머지 것들을 그의 앞에서 엎어버리고 대신 행려자에게 수표를 한 장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 보따리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아? 먹다 남은 사과, 가자 부스러기, 곰팡이 쓴 떡, 순 못 먹는 것들만 잔뜩 싸가지고 맨날 얻어먹으면서 지 것 빼길까봐 보따리 꼭 끌어안고 사는…. 내가 거지야. 희주는 어떤지 알아? 나한테 주기만 해. 나만 쳐다봐. 절벽 꼭대기에서 눈 꼭 감고 그냥 자기를 내던지는 거야! 이런 사랑 받아봤어?”

주님은 이렇게 억지로라도 빼앗으려고 하십니다. 그래야 당신께서 더 큰 것을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학생이 되거나 수녀원에 들어가면 바로 100배로 받는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많은 부모님이 생기고 많은 자녀가 생기며 많은 집이 생기고 죽기까지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단지 내가 별거 아닌 것을 바쳤다는 이유 하나로. 그리고 그분은 대신 “모든 것”을 내어주십니다. 이것을 느끼며 사는 동안은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을 살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공이 아닌 섬김으로

우리나라의 한센병(나병) 환자를 위해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고 앞장섰던 사람이 있습니다. 1912년 미국에서 온 선교사 서서평(본명: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입니다. 그녀는 32세에 간호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특별히 한센병 환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온몸을 바쳤고, 그 결과 현재의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이 머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선교, 교육, 구제에 온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일해서일까요? 광주, 제주도까지 돌면서 봉사에 매진한 그녀는 1934년 여름에 주님 곁으로 가고 맙니다. 
 
장례식날에 많은 여성이 운구 행렬을 따랐고, 특별히 그녀가 남긴 유품에 모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담요 반 장, 쌀 두 홉, 현금 27전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한 장이었던 담요도 어려운 사람에게 찢어주었기에 반 장만이 그녀의 유품으로 남은 것입니다. 심지어 죽기 직전에는 자기 시신까지 세브란스 병원에 기증했습니다. 그녀의 머리맡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닌 섬김으로) 
 
그녀는 이 문구를 매일 보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평생 성공을 바라보기보다는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받으신 주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평생을 사랑으로 사셨고 또 그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과연 어떤가요? 우리의 기도가 과연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세속적인 기준에 맞춰 있습니다. 욕심이 담겨 있고, 이기적인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 큰 욕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과연 자기를 낮추는 겸손과 사랑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지요. 부자는 절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 시대에는 그래도 넉넉한 사람이 많은 봉헌을 했고, 이런 봉헌에 대한 평가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힘이라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결국 부자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 집중할 때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닌 섬김으로)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 박노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하느님께서는 길을 지우시는 분이 아니라 잃어버린 길을 되찾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욕망에 굴복당한 정신은 그 어떤 곳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멈추어 있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바늘구멍에도 길은 있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보이는 바늘구멍입니다. 버려진 바늘구멍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부자들의 결핍과 낙타의 감사 사이에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우리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커져버려 빠져나갈 수 없는 욕망의 굴레입니다. 두고 온 것과 지니고 온 것들이 너무 많아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은 언제나 바늘구멍처럼 비좁은 우리자신입니다. 비좁은 우리를 다시 정신차리게 하십니다. 하느님보다 더 커쳐버린 우리들 욕심입니다. 오죽하시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과 이어져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지니고 있는 것들을 나누고 버리니 작아지고 가벼워지는 오늘입니다. 작고 빛나는 일상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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