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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3/20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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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은 성난 민족들에게서 저를 구하시고, 제게 맞서 일어선 자들에게서 들어 높이셨으며, 포악한 자들에게서 구출하셨나이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참회의 생활로 거룩해진 자녀들의 마음을 비추시고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섬기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2024년 3월 20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3월 20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3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다니 3,14-20.91-92.95)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 오늘 복음
    (요한 8,31-42)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8,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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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요한 8,31-42
오늘 복음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3월 20일
박재찬 안셀모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8:30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성주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매우 중요한 본질 하나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그분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스승의 말씀을 듣고 간직하며 그 말씀 안에 머무는 것은 제자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일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스승과 제자 사이를 드러내 주는 일차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굳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것일까요? 그분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달으려면 진리 자체이신 분 가까이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진리는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그 답도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자유’를 통해서 발현됩니다. 구속이나 검열 또는 규제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대하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로 전락하여 버립니다. 교육이 아닌 조련으로 길들여지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독서는 불가마에 던져진 세 청년의 이야기로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알려 줍니다. 하느님만을 섬기고 우상을 거부하며 ‘진리’를 선택한 그들은 불가마 안에서도 ‘자유롭게’ 걸어 다닙니다. 그러자 박해의 주범인 네부카드네자르조차 “신의 아들” 같은 존재가 불가마 속에서 그들과 함께 거닐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유’이고, 이 자유는 ‘진리’에서만 싹트며, 진리는 그분의 ‘말씀’이기에, 교회는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놀랍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를 때 진리이신 그분께서는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십니다. 심지어 지옥의 불가마같이 뜨겁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일지라도 참 제자라면

주님께서는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이 길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생명이시라는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길이시라는 것은, 당신께서 하늘과 땅 사이의 길이라는 것, 곧 이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이어 주시는 길이라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요 우리가 하느님께 가는 길이시라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 없으면 하느님과 우리 사이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흔히 얘기하는데 그 차이만큼 하느님과 우리 사이는 벌어져서 하느님은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없고, 뵐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분이실 것입니다. 

아무튼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인간이 되어 오심으로써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가교요 통로가 되어 주신 고마운 분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길이시라는 것은 이렇게 고맙고 가깝게 다가오는 것에 비해 진리시라는 것은 그리 가깝지 않고 그래서 그리 고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의 주님은 우리의 느낌에 가깝지 않고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진리의 주님은 진리의 말씀이라는 말처럼 말씀이신 주님이십니다. 

말씀이신 주님은 하느님께서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처럼 그분으로 모든 것이 생겨났고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생겨났지만 정작 그 말씀을 하신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지 알 수 없는 분이고, 그래서 멀리 계시는 분이고 신비이신 분이십니다. 

아무튼 진리의 말씀이신 주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이 생기게 했기에 이때의 진리는 원리 곧 모든 생명의 원리요 생성의 원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주장하며 진화론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진화론은 창조적 진화론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모든 것이 진리의 말씀으로 인해 생겨났기에 자연 만물과 모든 일도 이 진리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고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의 진리는 이치 곧 자연의 이치요 작동의 이치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이치에 따라 모든 것이 돌아가고 움직이면 일은 순리대로 잘 풀릴 것이고, 생명은 죽지 않고 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치를 따르지 않고 누가 제 마음대로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때의 자유는 진리에 역행하고 순리를 따르지 않기에 일은 꼬이게 하고 생명을 죽게 하는 자유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 그리고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의 길을 가면 생명의 길도 갈 것이고, 진리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 자유라야 그 자유가 생명의 자유요 참자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말씀 참으로 알아듣기 쉽지 않지만 우리가 주님의 참 제자라면 그러기에 오히려 이 말씀 안에 오래 머무는 오늘 하루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근거는?

세라 애드킨스는 오하이오에 사는 약사입니다. 그녀는 샘슨과 솔로먼이라는 어린 두 아들을 남편 트로이와 함께 키웠습니다. 그런데 남편 트로이가 우울증과 불안 발작 증세를 보였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나중에는 직장도 그만두고 가족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강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세라와 트로이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치료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노력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각각 여덟 살과 여섯 살이던 2000년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주말을 맞아 세라는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던 골동품 여행을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떠났습니다. 일요일에 세라는 여러 번 트로이에게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호수에 배를 타러 나갔거나 다른 일로 바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요일 다섯 시쯤 집에 돌아와서는 우편물이 현관 앞에 방치된 걸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주문했던 장난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엄마 왔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두 아들을 죽이고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트로이는 이런 쪽지를 남겼습니다.

“나는 혼란, 의심스러운 충성, 죄의식, 절망, 상호 의존, 불안정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부터 샘슨과 솔로먼을 지켜 낼 것이다. 이 참혹한 불행의 반복을 나에게서 끝낸다.”

수많은 사람이 세라를 도우려고 힘을 모았다. 그녀는 석 달 동안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침대에서 함께 잤습니다. 세라가 충격에서 회복하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세상과 악에 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화가 났거든요. 나는 그 사람이 나에게 하려고 했던 것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으로 말입니다. 보세요, 그 사람은 나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한테 내가 해 줄 대답은 바로 이겁니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든 간에, 빌어먹을, 난 절대로 못 건드려!’”

엄청난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내가 누구냐는 믿음에서 옵니다. 부모와 함께 머물렀던 이 시기에 그녀는 다시 부모의 소중한 딸이라는 자존감을 회복하였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내나 엄마라는 우울할 수밖에 없는 감정에서 자기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그녀의 집은 위험 지대로 선포되었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데 3만 5,000달러가 들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는 몰랐습니다. 그때 세라는 깨달았습니다. 가난한 여성은 자기 아이들이 총에 맞아 살해되거나 폭력으로 자기 집이 난장판이 되었을 때 장례비나 그 밖의 다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직접 카펫에 묻은 피를 닦아 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일까요? 그래서 세라는 이런 참담한 일을 겪은 여성들에게 장례식과 청소 비용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오하이오대학교와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강의합니다. 또 무료 건강관리 클리닉에서 일하면서 이런 클리닉을 새로 하나 더 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위한 봉사만이 우리 모든 악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알더라도 내가 누구냐는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진리의 삶을 따를 수 없습니다. 아기가 두 발로 걷는 게 진리라도 먼저 내가 인간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따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려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이 시간이 기도입니다. 기도 때 우리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진리를 따를 준비를 마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당신을 받아들였을 것이라 하십니다. 당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라고 하실 때 그들은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라고 하시며 실제로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임도, 하느님의 자녀임도 믿고 있지 못하기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이웃 사랑의 진리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자녀임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임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인간 아버지의 자녀라고 믿으면 나는 성장하여 아버지가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진정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면 그분의 말씀인 진리를 따를 수 없게 됩니다. 

누구에게 좌우될 것인가가 내가 누구 자녀인지가 결정됩니다. 참 자유는 나는 그런 것에 좌우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뿐입니다. 그 믿음은 나의 아버지를 정하는 데 있습니다. 세라 에드킨스는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석 달 동안 부모와 함께 잤습니다. 

다시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노력을 한 것입니다.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 진리,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그분을 보내신 분을 아버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하느님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텀블러를 구입했습니다. 사실 몇 개의 텀블러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쇼핑몰에서 텀블러 가격이 터무니없이 싼 것입니다. 840원. 그것도 배송비 포함이었습니다. 주문하고 며칠 뒤에 텀블러를 받았습니다. 워낙 가격이 쌌지만, 텀블러의 질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허접하고 지저분했습니다. 물로 깨끗이 닦다가 글쎄 손을 베고 말았습니다. 텀블러의 입구가 제대로 마감되어 있지 않아서 날카로운 것입니다. 싸게 샀지만, 현재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혹시 입술을 베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게 쓸데없는 짐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은 것으로도 매우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결코 지금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를 떠올렸을 때 결핍을 느끼지 못합니다. 많은 것이 없어서 불행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를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욕망하는 것이 적을수록 더 풍요롭고, 더 자유로우며,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이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면 ‘나’ 스스로 하는 것이 줄어들게 됩니다. 온전히 나의 노력을 통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 ‘나’를 만들려다 보니 남과 비교하면서 부러운 이유만이 늘어납니다. 
 
미국의 유명한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는 “더 강한 사람일수록 원하는 게 적다.”라는 말을 자기 외투에 새겨놓고 늘 다짐했다고 합니다. 원하는 게 적을수록 ‘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더 강한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모든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해집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삶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늘 사랑하라고 하셨고, 당신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셨던 사랑의 삶을 통해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세상 것에 욕망을 두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주님을 통해서만이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데 더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선으로 다가가려 노력할 때, 악에서 멀어지려 자신을 통제할 때 두 단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떳떳하고 평온한 삶을 확보해 줄 그 두 단어는 바로 ‘지속하라’와 ‘저항하라’이다.

- 에픽테토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봄꽃이 피어나고 봄꽃이 날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죄와 허물을 내어드리고 주님께서는 진리와 자유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진리의 길을 걷지 않고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참된 자유는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되는 자유입니다. 

진리가 만들어가는 자유의 힘찬 발걸음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참된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먹고 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 자유이며 우리가 누려야 할 참된 자유입니다. 

진리와 자유이신 예수님께서는 죄로도 묶을 수 없는 구원과 해방을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함께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끝없는 자유의 길을 맑게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유가 보장된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온전한 모든 자유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늘이 열리고 복음이 선포되는 구원의 자유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생명을 내어주시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갇혀있고 묶여있는 우리를 풀어주시는 자유이신 하느님의 진리를 따르는 은총의 십자가입니다. 자유를 믿고 진리를 따릅니다. 진리와 자유는 온전한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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