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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1월 5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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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2022년 11월 7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티토 1,1-9)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원로들을 임명하십시오.

  • 오늘 복음
    (루카 17,1-6)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7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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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복음
루카 17장 1-6절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지형규 사도 요한 신부 강론

 

 

2022년 11월 7일 (월)
지형규 사도 요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11월 7일 (월)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

 

오늘 복음은 공동체 생활에 관한 예수님의 세 가지 말씀을 소개합니다.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경고와 형제의 죄를 몇 번이고 용서하라는 권고, 그리고 믿음의 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됩니다. 스스로 죄를 짓는 것도 문제지만 권모술수로 형제가 구원의 길 위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만큼 형제를 죄짓게 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는 권고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7회만 용서하면 된다는 가르침이라기보다,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 ‘일곱’이 드러내듯 회개하는 형제를 끝없이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힘에 관하여 역설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돌무화과나무는 웅장합니다. 그만큼 작은 믿음만이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믿음으로 공동체 안에서 큰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저마다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정 공동체, 직장 공동체, 본당 공동체가 구원의 길 위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예수님의 세 가지 말씀을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안분지족(安分知足)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배워서 아는 사람,만족할 줄 알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면 정말 좋을 겁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있지요.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도 있고요. 

안분지족은 자기 분수에 맞게 편안히 머물면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안빈낙도는 가난한 처지에도 편안히 머물 줄 알고 도를 즐기는 것입니다. 둘 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한 그런 경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어디서 배우고 누구에게서 배웠을까요? 틀림없이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서 배웠을 겁니다. 

행복이란 만족의 상태이니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이 행복인데 주님께서는 행복 선언에서 아무것 없이 가난해도 행복한 경지를 가르치셨지요. 

그런데 여기서 아무것도 없는 가난이란 선 곧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고 우리는 이것을 최악이라고도 합니다. 

만족, 행복을 설명할 때 물 반 잔의 행불행을 예로 듭니다. 물이 잔에 반이 있습니다. 같은 물 반 잔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행불행이 갈립니다. 

잔이 가득하길 기대한 사람은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지만 선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각오한 사람, 최악을 각오한 사람은 반 잔이어도 너무도 만족하고 넘치도록 행복합니다. 

그런데 누가 최악을 각오하겠습니까? 백이면 백, 최선을 기대하지, 최악을 각오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으로 가난한 사람 또는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만이 최악을 각오하기에 최악이어도 만족하고 곧 행복하고, 최악이 아니면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할 줄 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영으로 가난한 사람(the poor in Spirit)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의 만족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가득 채우기에 아무것도 없어도 부족함이 없고,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되기를 감히 꿈꾸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

 

고등학교 때 그녀는 키 160cm에 몸무게 90kg였습니다. 또 지저분하고 꾸미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지요. 잘 씻지 않았으며 늘 편한 체육복만 입고 다녔습니다. 사교적이지 않아서 말주변이 부족했고 말을 더듬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재주나 능력도 없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무려 1년을 쫓아다녀서 사귀자고 했지요. 남자는 “네가 너무 뚱뚱해서 같이 다니기 쪽팔려.”라고 말하면서 철벽을 쳤습니다. 첫사랑의 실패로 방에 틀어박혀 가슴을 치며 울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결심합니다. 
 
1년 뒤, 실연당했을 때의 절반 몸무게가 되었습니다. 과체중에서 벗어나자 건강이 좋아지면서 피부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남자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이별을 통보받습니다. 
 
“너 말투가 이상해. 우리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또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아나운서 학원에 등록해서 말투를 고치면서 사교적으로 변했습니다. 스피치 지도사가 되었고, 얼마 뒤에 다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별을 통보받습니다. 그녀의 옷차림이 여자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피부관리와 화장, 멋진 옷까지 그녀는 점점 아름다워졌습니다. 얼마 뒤에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살림을 못 한다고 결혼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헤어졌습니다. 
 
이제 울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두문불출하며 살림에 몰두했습니다. 다음은 영어를 못한다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웃습니다. 영어 공부를 할 것이니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남자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울기만 했다면 ‘패잔병’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승전고’를 울릴 수 있는 변화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에 온 마음을 두는 열성과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빛의 자녀는 영성 세계를 위하여 배우고 그에 합당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재물은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육신 생활과 이웃 사랑의 방편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통해 생활을 향상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변화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재물만을 요구하는 열성만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우리의 모습에 주님께서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5)라고 하실 것만 같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삶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유지되며, 사랑으로 끝난다.

- 촉니 린포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다.

 

작은 단풍들이 모여 가을 숲을 이룹니다. 이와 같이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성실한 과정이 성실한 결과를 만듭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되는 삶의 참된 행복입니다. 조금만 붙잡아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우리들 이웃입니다. 건강한 믿음은 작은 일에 우리가 성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작은 나눔의 시간입니다. 다시 삶을 배우는 사람의 시간입니다. 짧은 보폭이 모여 긴 보폭이 됩니다. 삶과 생활은 아주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총결합체입니다. 

아주 작은 일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합 일들입니다. 아주 작은 일들이 실은 가장 큰 일들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일에 성실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반성합니다. 삶의 시작과 끝은 아주 작은 일에 우리가 성실한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사랑으로 채워지는 큰 사랑입니다. 큰 일에만 마음을 쏟고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 다시 성실해지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성실한 날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주 작은 일들에 성실한 사람이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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