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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2022년 8월 8일 (월)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사제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리자 그는 주님 영광의 형상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임금의 자녀들은 성전 세를 면제받지만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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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주님, 복된 도미니코 사제는 주님의 진리를 전하는 훌륭한 설교자였으니 저희가 그의 성덕과 가르침으로 도움을 받고 그의 전구로 보호를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17장 22-27절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천영수 마론 신부 강론
2022년 8월 8일 (월)
천영수 마론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8월 8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수수께끼같은 성경말씀
때때로 성경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난해한 부분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의 말씀으로 시작되어, 곧바로 앞뒤 맥락과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성전 세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나옵니다. 그러고는 물에서 건져 낸 물고기와 그 입 속에 담긴 동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말씀으로, 그 뜻을 유추하고 비교해 볼 다른 성경 구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초대 교회 공동체가 마주하였던 문제를 봅니다.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과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이들 사이에 성전 세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기에, 신자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유다교의 전통에 충실한 이들의 입장을 인정하였다는 설명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한 영성적인 해석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서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의 성경 본문을 직역하면 자녀들은 ‘자유롭다’입니다.
이를 통하여 오늘 복음의 주제를 자녀들의 자유로 보는 견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자유의 대가로 우리가 내야 할 유일한 세금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형제적 사랑이라는 세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세금을 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물속에서 고기를 건져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곧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과 예속의 조건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드시고자 당신 자신을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스스로 사람의 손에 예속되실만큼 사람을 한없이 신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유롭지 못하고,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부모는 자유 의지로 기꺼이 아이를 보살피면서 스스로 아이에게 매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면 자유인으로서 다시 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자유를 얻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내 자유가 예수님처럼 다른 이를 섬기고 사랑하는 자유인지 자문해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의 사람의 부끄러움
오늘 복음의 얘기는 주님과 제자들이 성전 세를 내야 하느냐 문제입니다. 이 얘기는 읽을 때마다 저를 불편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얘기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 현실로 바꿔 얘기하면 신자들은 교무금과 헌금을 내는데 저나 다른 사제와 수도자들은 그것들을 내지 않기 때문이고, 저나 다른 사제와 수도자들이 내지 않는 이유는 교회와 성전의 봉사자로 성별되거나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지 않는 이유를 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베드로 사도가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라고 얘기한 것처럼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기에 낼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고, 둘째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주님을 따른 사람은 교무금이든 헌금이든 내지 않아도 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줘서 낼 돈이 없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주님과 교회에 바쳤기 때문에 바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헌신을 제대로 하였다면 헌금은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좀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 그러니까 하느님의 사람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문제는 그리고 제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봉헌자라고 하는 제가 얼마나 저의 전부를 바쳤냐는 점입니다.
저의 직업이 없고, 제 소유의 재산이 없고, 제게 딸린 가족이 없다는 면에서는 다 바친 것 같지만 저는 저를 버리지 않았고, 버린 것을 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저께도 얘기했지만 저는 제 맘대로 하려고 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제 맘에 들기를 바라니 어떻게 자신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버리지 않고 바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소유권은 없고 제 이름의 재산이 하나도 없지만, 사용권은 있다며 부족함 없이 다 사용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 포기한 것을 다 누리는 저를 자주 가증스럽다고 느끼곤 합니다.
성전의 봉사자로서 저는 또 다른 면에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제는 제가 영적 보조를 맡은 재속 프란치스코 형제회 월례회에 가서 강의하고 미사도 봉헌했는데 미사를 차리는 제대 봉사자들을 보면서 또 제가 너무도 부끄러웠고 그래서 반성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성작이나 미사 도구들을 정성껏 챙기고 조심스럽게 다루는지 그들의 모습에서 거룩함이 느껴졌는데 저는 그러지 못하니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분들은 프란치스코가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꾸짖듯 저를 꾸짖는 듯했는데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신비에 봉사하는 이들, 그 가운데 특히 분별없이 봉사하는 이들은 우리 주님의 몸과 피를 제물로 봉헌하는 데 사용되는 성작과 성체포 그리고 제대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수도원에 정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거룩한 제사에 쓰이는 도구들만은, 고급이 아니더라도, 잘 갖춰져 있기를 바랐는데 다른 것은 잘 챙기면서 성물들에 대해선 소홀한 제가 아닌지 반성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루브르 박물관 그림 도난 사건 이야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일반 전시실에서 그림 한 점이 없어졌습니다. 난리가 났지만 그림의 행방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야 범인이 잡혔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그는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의 화가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것이다.”
이 도난 사건으로 인해 되찾은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이 사건 전에는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눈썹도 없는 여인의 초상화, 그러나 여기에 스토리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남을 쫓아가며 사는 것 역시 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남과 다른 나만의 멋진 스토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의미를 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곳에서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멋진 스토리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런 스토리를 만들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일행이 카파르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 납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성전세는 성전 유지와 희생 제물의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이 매년 내는 인두세였습니다. 그러나 성전 주인이나 제관들은 납세 의무가 없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라고 했으니, 주인은 하느님이고 제관들은 그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하느님의 아드님이기 때문에 성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식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낚시해서 성전세를 직접 내게 하십니다.
성전세 내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한 공격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라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부정하는 것으로 죄의 영역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죄의 영역에 갇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에, 굳이 낼 필요가 없는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구원에서 제외하지 않으려는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스토리에 우리는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스토리에 우리는 모든 믿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랑은 사라질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영원을 믿는 고백이다.
-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마태 17, 26)
기복신앙이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중요하다. 받는 행위에서 베풀고 주는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다. 이웃을 돕고 이웃을 이롭게 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미 참된 가치를 알고 있다.
필요가 아닌 복음의 참된 가치를 알려주신다. 이와같이 본질과 기본은 참으로 중요하다. 돈이 목적이 아닌 하느님 자녀가 목적이다. 하느님 자녀에서 시작되는 참된 변화이다. 예수님께서는 극단을 벗어나는 지혜를 우리들에게 주신다.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급함과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시는 주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희생하여 자녀들의 고통을 없애주신다. 십자가는 철저히 주는 행위이다.
하느님 자녀들에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복음의 실천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면제받는 은총이다. 본인이 맛 보지 않고서는 그 기쁨을 그 실천의 가치를 알 리 없다. 우리의 삶이란 좋은 기회의 연속이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가 중요하다. 하느님의 지혜가 손을 대면 우리의 현실도 더 밝아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공동체의 가치는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 자녀들의 정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많은 것에서 면제받고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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