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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7월 29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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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2022년 7월 29일 (금)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요한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당신은 부활이요 생명이니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7월 29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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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라자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내신 성자께서 복된 마르타의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형제들 안에서 성자를 섬기며 마리아와 함께 성자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요한 11장 19-27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정재환 노엘 신부 강론

 

 

2022년 7월 29일 (금)
정재환 노엘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이길재 베드로 신부 강론

 

 

2022년 7월 29일 (금)
이길재 베드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다른 친구들은 절을 두 번 하는데 왜 우리는 한 번만 해요?

 

오늘 복음은 라자로 이야기(요한 11,1-44 참조)의 중반부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으며 주님의 부재에 실망을 드러내었던 마르타가 주님의 현존과 말씀으로 변화되어 믿음을 고백하기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어릴 적 제 아버지는 성묘를 가시거나 상갓집에 가시면 절을 한 번만 드리셨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아버지를 따라 하였고 천주교 신자인 이웃들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께, 다른 친구들은 절을 두 번 하는데 왜 우리는 한 번만 하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아버지는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오늘 복음 말씀을 들려주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니 한 번만 절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영원한 삶’에 대한 첫 번째 교육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로 대표되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현존과 함께 ‘지금’,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이 단순한 이상이나 약속, 희망이 아니라 예수님의 현존 안에서 체험되는 실재임을 경험한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 형제처럼 우리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신앙을 삽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저는 누군가의 신앙을 평가해야 할 때 이것만 봅니다.

 

존 록펠러는 23세에 이미 백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43세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독점기업인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를 세웠습니다. 그의 재산은 현 시가로 따지면 500조가 넘습니다. 하지만 53세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내는 것은 물론이요, 주일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늘 긴장하며 걱정으로 가득 찬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건강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록펠러의 전기를 썼던 존 윙클러에 따르면 53세의 그는 “미라처럼 보였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때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희소 질환으로 1년 시한부 인생을 통고받았습니다. 윙클러에 따르면,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한때는 모유만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본래 록펠러는 건강 체질이었습니다. 농장에서 자랐기에 강인한 어깨, 꼿꼿한 자세, 힘차고 활달한 걸음걸이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일, 끝없는 걱정, 끊이지 않는 비난, 불면의 밤들, 운동과 휴식 부족”이 커다란 타격을 입혀서 결국 그를 주저앉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일주일에 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식비는 2달러도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비록 십일조를 하고 기도하고 교리 교사 봉사하더라도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익이 생겼을 때는 모자를 바닥에 던지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만, 손해를 보면 곧바로 병이 났습니다. 돈의 노예였던 것입니다. 

한번은 오대호를 거쳐 4만 달러어치의 곡물을 실어 나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곡물에 보험을 들지 않았습니다. 150달러 정도의 비용이 추가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이리호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파트너였던 조지 가드너가 아침에 사무실로 가보니 록펠러는 화물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가 가드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무 늦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보험을 들 수 있나 알아보게. 어서 빨리!”

가드너는 서둘러 도시 외곽까지 달려가 보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록펠러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그사이 화물이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전보가 온 것입니다. 록펠러는 150달러를 낭비했다는 이유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결국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한 해에 5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던 그가 자기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데 쓰이는 150달러를 아까워했다는 말은 그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즐거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근심과 걱정, 두려움 속에서 돈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죽는 게 두려웠는지 신앙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그 신앙이 그의 감정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감정을 바꾸지 못하는 신앙은 거짓 신앙입니다. 나중에 한 아이에게 수술비를 지원해 주며 이후 40년을 더 살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그의 신앙이 그의 감정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음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바꾸지 못하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오늘은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축일입니다. 셋은 자매입니다. 라자로의 죽음으로 마르타는 예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에도 자신만 일하며 동생은 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마르타의 근심을 덜어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이 믿음이 마르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오빠가 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당연히 우리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걱정, 근심, 두려움, 불안이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직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닙니다. 성당에서 나갈 때 우리 감정을 살펴봅시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미사를 의미 없게 한 것입니다. 

한 소녀가 산길을 걷다가 나비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는 것을 발견하고는 가시덤불을 제치고 들어가 거미줄에 걸려있던 나비를 구해주었습니다. 나비는 춤을 추듯 훨훨 날아갔지만, 소녀의 팔과 다리는 가시에 찔려 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나비가 순식간에 천사로 변하더니 소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사는 자기를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때 천사는 소녀의 귀에 무슨 말인가를 소곤거리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해서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록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우러러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예쁜 소녀가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임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할머니가 죽기 전에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소녀였을 때 나비 천사를 구해 준 적이 있지, 그 대가(代價)로 천사는 나를 평생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었어…. 그때 천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구해주어서 고마워요.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하게 될 거예요.’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다고 중얼거렸더니 정말 평생 행복했던 거야. 사실 천사가 내 소원을 들어준 게 아니야. 누구든지 만족한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면, 세상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이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분을 만났습니다. 손과 발과 옆구리에 상처를 지니고 계셨지만 분명 살아계셨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 미래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난 이의 모습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열정이 넘쳤다는 것입니다. 

우리 감정을 바꿔놓지 않는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이 우리 감정을 바꿀 수 없다면, 그것도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다면 기도는 헛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성체를 영하는 순간 기쁘고 행복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아직은 부활이요 생명으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기분을 바꿔주지 못하는 건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현인으로 높이는 이유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인 헴록을 마시고 죽은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말은 많은 이에게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헴록을 마신 뒤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두었다가 갚아주게나.” 
 
임종의 자리에서 외상값을 걱정했던 것이 아닙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희랍 신화에 나오는 의료의 신으로, 사람들은 병을 고쳐 준 의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닭 한 마리를 봉헌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순간에서 감사하지 못했던 일을 기억했고, 이를 실천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현인으로 높이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남다름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모두가 감사하며 사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보편적인 것이 오히려 남다름이 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주님을 굳게 믿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어렵고 힘들다면서 믿음을 갖지 않고 주님의 뜻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남다르게 평가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르타는 남다름을 보여줍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뵙자, 자기 오빠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사람이 마지막 숨을 넘기면 영혼이 사흘 동안 육체 주위를 빙빙 돌다가 나흘이 지나면 이제는 영영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르타도 이 가르침에 따라 자기 오빠가 이제 가망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도 원망하지 않고 이런 믿음을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이 믿음에 주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마르타는 마지막 때의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 먼 훗날의 영광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실제로 라자로를 다시 살려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데 어떤 남다름을 가지고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남다른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서 영예롭게 사는 가장 위대한 길은 우리가 표방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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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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