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
자비로우신 하느님, 천사와 인간의 임무를 오묘히 나누어 맡기셨으니 하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들이 이 땅에서 저희 삶을 보살피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9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다니 7,9-10.13-14)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었다. - 오늘 복음
(요한 1,47-51)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니 7,9-10.13-14
오늘 제1독서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요한 1,47-51
오늘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9월 29일
이기성 안드레아 신부
✚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8
✚ 강론시작 09:08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주님께 이끌어주는 천사
오늘 복음에서 사람의 아들 위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베텔에서 꿈으로 하느님을 뵙게 된 야곱의 체험을 떠오르게 합니다(창세 28,12.16-17 참조). 거기서 야곱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28,17)라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이 체험과 고백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집과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당신이심을 나타나엘이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약속은, 예수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요한 1,49)라고 한 나타나엘의 신앙 고백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타나엘보다 먼저 예수님을 체험하고 나서 그에게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1,45)라고 알리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초대한 필립보가 없었다면, 이 신앙 고백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중요한 만남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한 말은 하나의 선포였기에, 그는 나타나엘에게 천사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천사를 가리키는 그리스 말 ‘앙겔로스’의 본뜻은 ‘선포하는 사람, 전달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천사를 만납니다. 그 존재가 사람이든, 하늘의 존재이든 우리를 참된 선이신 주님께 이끌어 줍니다. 만일 나도 누군가를 주님께 이끄는 역할을 한다면 천사입니다. 오늘 하루 천사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해 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겐 세라핌 천사가 필요해!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하도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을 내셨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천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갖고 묵상코자 합니다.
천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떤 존재인가? 내겐 어떤 존재로 존재하면 좋을까? 내가 천사라면 나는 어떤 천사이면 좋을까? 천사의 존재와 관련해서는 믿으라는 것이 오늘 축일의 의미입니다.
제 생각에 천사는 하느님의 사신이니 하느님을 믿는다면 천사도 믿고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까지 곧 악마도 믿을 수 있습니다. 임금만 해도 사신을 보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사신이 있을 수 없겠지만 조금만 지체가 높아도 자기 대신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사신은 천사가 아니라 인사 곧 인간 사절이 되지만 하느님의 경우 우리는 천사 곧 하느님의 사절이라고 하지요. 하느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부지런한 사랑의 손길을 느낄 것이고 그 손길을 천사로 느끼고 천사의 활약으로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천사에 대한 저의 믿음이고, 천사가 하느님 사랑의 부지런한 손길이라면 악마는 하느님 사랑의 다양한 손길이라는 것이 또한 저의 믿음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마는 하느님 백성을 파괴하려는 악마가 아니라 욥에게 하느님께서 사탄을 보내셨듯이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악한 영이 아니라 천사지만 악역을 담당하는 천사입니다. 이것이 천사와 악마에 대한 저의 믿음이고, 이것은 관념적인 믿음일 뿐 아니라 체험적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정작 나누고픈 것은 천사론을 얘기하기보다 내겐 어떤 천사가 필요하고 나는 어떤 천사가 되고 싶은지 그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 일생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나, 악령과의 전투에서 도움을 주는 미카엘 천사나 어려울 때 도와주는 라파엘 천사의 손길은 이미 많이 체험했습니다.
저는 프란치스코처럼 치품천사(熾品天使) 곧 세라핌 천사 체험이 필요하고, 제가 천사가 된다면 프란치스코처럼 치품 곧 세라핌 천사가 되고 싶습니다. 치품천사란 한자어 뜻 그대로 불타는 사랑의 천사지요.
불태울 사랑이 인간적으로는 사그라드는 지금이 바로 세라핌 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는 뜻이고, 약하기에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겸손히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세라핌 천사를 제게 보내주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입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존재로서 하는 일이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합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천사들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사가 있는 것이지, 천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51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
제 마음에 울려오는
하늘의 이야기를 듣게 하소서.
우리 안에 펼쳐놓은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우리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여시는
하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우리는 믿는 데도 불안할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세 대천사님들은 각자의 역할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날라다 주는 존재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수호하며 정의를 세우고,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라파엘 대천사는 우리를 치유하고 동반합니다. 이 모든 천사의 역할은 결국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성당에 다니면서도, 왜 여전히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할 때가 많을까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충분히 내려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혹시 우리 마음속에 천사가 내려올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는 어렸을 때 재래식 화장실 밑으로 채변봉투를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다. 악취가 진동하는 그곳으로 누가 선뜻 손을 내밀겠습니까? 그곳에 손을 넣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제가 학교에 가서 혼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지저분한 곳으로 손을 내려 채변봉투를 올려주셨습니다.
왜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하셨을까요? 그 채변봉투 안에 '저의 것'이 들어 있었고, 저라는 '소중한 것'이 그 속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속에 저의 것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똥이 있는 곳으로 손을 넣을 필요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은총'의 원리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조각, 곧 그분의 아드님이 없으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으로 은총을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당신 아드님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 안에 '하느님의 조각'을 심어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당신의 피가 섞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가 흘려진 곳', 곧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단이 만들어지고, 그 무덤 위로 천사들이 평화와 은총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천사가 우리에게 온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이신 아드님을 우리 마음속에 '무덤'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천사를 통해 은총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자리에 천사가 앉아 있었다고 요한 복음은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자리에 흰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는 머리맡에 다른 하나는 발치에 있었다." (요한 20,12)
천사는 아무 데나 앉을 수 없습니다. 천사는 오직 하느님의 아드님, 곧 하느님의 가장 소중한 조각이 묻힌 그 거룩한 무덤 위로만 내려와 평화를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가 섞인 곳에 은총이 내린다'는 진리는 우리 시대의 성인,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통해 너무나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의사라는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멀리 아프리카 수단 톤즈로 건너간 그는, 한센인들의 고름을 직접 짜주고, 학교를 짓고, 병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의 피와 땀은 톤즈의 메마른 땅과 그곳 주민들의 고통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톤즈 사람들을 품었고, 그들의 삶 속에 자신의 '피'를 깊이 섞었습니다.
그런 이태석 신부님이 암에 걸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수단 톤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통스러운 암 투병 중에도 그의 마음은 왜 그곳을 향했을까요? 그는 "우물을 만들러 다시 톤즈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곳, 톤즈에 당신의 피와 땀, 그리고 영혼이 너무나도 많이 흘려졌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당신의 '피가 섞인 무덤'과 같은 자리였고, 그 무덤을 통해 하느님의 평화와 은총이 쏟아져 내리기를 갈망하셨던 것입니다. 가장 깊이 피 흘린 곳에 가장 큰 평화가 임합니다.
우리 안에 이 무덤을 가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조각, 곧 예수님께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무덤'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무덤만 있으면 될까요? 무덤은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는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자주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그분의 죽음을 묵상하고 그분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었고, 무덤을 가장 먼저 찾아갔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마음속 깊이 품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무덤'을 자신 안에 만들었기에, 가장 먼저 평화의 소식과 부활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상들이 3년 상을 치렀던 것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그 아픔을 품는 것이 효의 도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평화를 얻고 싶다면, 우리 안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무덤'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무덤을 만들 수 있을까요? 바로 십자가의 길이나 비르짓다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 15기도 등을 매일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분의 고통을 내 마음의 무덤에 새길 때, 우리는 그분의 피에 동참하고 그분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무덤을 만드는 이는 그 무덤 위로 평화의 천사들이 내려와 항상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983년 11월 4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노바 블라흐비첸가 마을에 ‘옥시나 말리야’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 모두 알코올 중독자라서 이 아이가 3살 때부터 대형 개 사육장에서 사람의 보호가 아닌 개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것입니다. 부모의 방치 속에 5년 동안 개 사료를 먹고, 개들의 보살핌으로 살아남았습니다.
1991년, 경찰과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이 아이는 두 발이 아닌 네 발로만 걷고 뛰었으며, 개처럼 짖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늑대 소녀, 개 소녀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 뒤 언어 교육과 사회 적응 훈련을 받았지만, 정상적인 언어 발달에 제한적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유치원생 수준의 언어 수준에 머물 뿐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사람들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과 함께 살아야 가능했습니다. 동물과 함께 살면 어떨까요? 또 혼자 살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모두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산다면 어떨까요? 하느님을 닮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를 보내 주십니다. 바로 천사입니다. 이 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세 천사가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입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이름을 붙입니다. ‘하느님의 힘’으로 국가를 수호하는 대천사가 성 미카엘,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이’로 예언의 뜻을 알려주는 대천사가 성 가브리엘, ‘하느님의 치유’로 우리를 살려 주고 안내하는 대천사가 성 라파엘입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거짓 없는 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가 율법과 전통에 충실하고, 마음이 순수하며, 위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천사의 도움으로 우리는 충분히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을 닮을 수 있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 받는 것, 사랑하는 것, 희망하는 것, 떨리는 것, 사는 것이다. 예술가가 되기 전에 사람이 돼라(오귀스트 로댕).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세 대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세 대천사는 서로 다른 얼굴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정의와 희망과 치유를 가르칩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진리와 말씀과 관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더불어 완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의 길잡이입니다. 세 대천사는 단순한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드러나는 은총의 표징입니다. 이 은총은 바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은총입니다.
세 대천사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지키고 동행하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다리가 되어 말씀과 은총을 중개합니다. 또한 하느님을 찬양하는 존재로서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서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본질적인 길을 보여줍니다.
대천사가 필요한 이유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역사와 삶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삶 안에서 구체화되도록 돕는 영적 동반자가 바로 세 대천사들입니다. 세 대천사는 오늘도 정의와 식별로, 소통과 희망으로, 치유와 동행의 가치를 우리에게 새롭게 드러냅니다.
오늘도 성 미카엘처럼 정의를 지키고, 성 가브리엘처럼 희망의 말을 전하며, 성 라파엘처럼 상처 입은 이와 함께 걸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 대천사는 하느님의 가장 구체적인 사랑의 손길입니다. 다양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함께 기쁜 날 되십시오.
요한복음 1장 5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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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6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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