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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5/08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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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하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이 부활 시기에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더 깊이 깨달았으니 온갖 오류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을 더욱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5월 8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8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8,26-40)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오늘 복음
    (요한 6,44-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사도 8,26-40
오늘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6,44-51
오늘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8일
조승현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47

✚ 강론시작 08:3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에티오피아의 고관 내시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52,13―53,12 참조)의 일부분입니다. 필리포스 부제는 성령의 인도로 그에게 다가가 그 주님의 종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일깨워 줍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53,4)라는 표현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 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까닭과 목적은 무엇일까요?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임을,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탈출 6,7 참조).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오해와 벌을 당신 몸에 받아 지시고 자비하신 하느님을 새롭게 계시해 주시는 것이지요.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꺼이 하느님을 자비하신 아버지로 받드는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관계의 회복’입니다.

또 다른 말씀으로, 이사야 예언서에서 말하듯 죄와 벌에서 해방되어(의로워져) 떳떳한 시민(자유인)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53,11 참조). 같은 구절이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새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 은혜에 어떻게 다 보답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을 건지, 선택할 건지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어제부터 이어지는 주님 말씀은 이것입니다.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당신이 다시 살리는 것이고, 당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당신도 아버지 뜻대로 살릴 거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는 마치 임금이 어떤 마을에 용한 의사를 파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의사를 찾아가기만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관건은 그 의사를 믿느냐 돌팔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입니다.

용한 의사라고 믿으면 찾아갈 것이고 안 믿으면 안 가겠지요. 요즘 제가 식당에서 하고 있는 일이 이것입니다. 오랫동안 의료 선교하다가 돌아오신 수사님을 모셔다가 간단한 진료와 치료를 어르신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기 전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의료법상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수사님을 사람들이 믿어줄지 어떨지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진료를 시작했고 제가 권했지만, 제가 예상한 대로 응한 분도 있고 거절한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응하신 분들이 더 많았고 어제는 수사님 언제 또 오시냐고 한 분이 물으시는 거였습니다.

과연 예수님 말씀대로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 오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오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어제와 오늘 주님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릴 것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릴 것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이 언제이고, 다시 살릴 것이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다시 살리실 것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 먼저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믿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정도로 명의냐도 문제지만 이 세상에서 다시 살아나느냐 저세상에서 다시 살아나느냐도 문제입니다.

믿기 쉽지 않습니다. 믿더라도 선택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시 살리신다면 믿는 쪽으로 선택하기 쉬울 텐데 저세상에서 다시 살리시겠다니 믿어도 선택하기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겠다는 주님 약속은 분명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고, 마지막 날이란 죽은 다음입니다.

믿는 쪽으로 선택할 것인지, 안 믿는 쪽으로 선택할 것인지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의 문제는 아예 생각조차 하기 싫은 분도, 곧 똥을 신문지로 덮듯 덮어두고 싶은 분도 있을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생명의 빵을 먹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어제 <복음>과 오늘 <복음>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군중들은 그분을 두고 수군거렸습니다(요한 6,4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살아있는 빵”이란 당신께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생명의 빵이요, 건너와 관계를 맺는 활동 중인 “빵”임을 말해줍니다. 곧 자신을 죽여 타인을 살리고 있는 ‘살아있는 활동 중인 빵’입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빵”은 동시에 “살리는 빵”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곧 먹는 이 안에서 ‘부활하는 빵’입니다. 

이 빵은 다름 아닌 “당신의 살”, 곧 ‘살아있는 살’이요, ‘떼어 나누어진 살’입니다. 먹혀서 ‘먹는 이’에게서 살아있는 살이 되고, 그를 당신과 한 몸이 되게 하고, 당신의 생명이 되게 하는 ‘살’입니다.

이는 당신의 증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죽음을 몰아내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우리를 당신 신성에 들게 하고, 우리를 부활시키시는 신비입니다.

그러니 “부활”은 단지 ‘죽지 않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드높여지고 영광되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탄하올 신비인지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빵”을 ‘먹을 것’인지, ‘거부할 것’이지는 우리 스스로가 응답해야 할 몫입니다. 만약 이를 알면서도 먹지 않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음은 일인 것입니다. 사실, “먹다”(τρωγω, ‘씹다, 씹어서 부수다’)라는 동사는 초식동물이 풀을 먹을 때, ‘새싹을 입으로 뜯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곧 초식동물이 풀을 씹을 때는 입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근육을 연계해 온 몸이 함께 움직여 씹듯이, 말씀을 온 몸으로 음미하며 먹는 것, 곧 삶으로 ‘실행’하는 것, ‘실행’으로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를르의 체사리우스는 말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먹지’ 않는다면, (먹지 않고 저장된) 말씀은 만나에 구더기가 들끓었듯이 구더기가 들끓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있는 이 빵을, 바로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받아먹고 살아갑니다. 바로 이 큰 사랑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요한 6,51)이라 하셨으니, 동시에 그 살을 먹은 우리 역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생명이 제 삶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먹혀서 저를 살리듯 저도 먹혀서 타인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주님!
당신의 생명이 
제 삶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의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먹혀서 
저를 살리듯, 
저도 먹혀서 
타인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가 ‘착한 뜻’을 소유하게 되는가?

오늘도 성체성사에 관한 교육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오는 이는 누구나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이들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 그 사람을 이끄시기 위해 교육하십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런데 그 방식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만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하는 이는 다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어제 강론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을 살리기 위한 동아줄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리기 위해 내려준 동아줄을 잡을 수 있도록 생명을 살는 사람만 그 줄로 이끌어주십니다. 생명을 죽이는 삼구의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썩은 동아줄을 잡습니다. 끝까지 올라가지 못합니다. 천국에서는 모두 살리는 사람, 모기가 아닌 예수님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다 모기입니다. 죽이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머니의 피를 먹고 삽니다. 태어나서는 어머니의 젖, 자라면서는 부모의 땀과 고생을 먹고 삽니다. 그 걱정이 사라질 때쯤, 자신도 자녀를 낳아 키울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이 죽이는 사람이 될까요? 이것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요? A.I. 로봇을 연구하는데, 어떤 사람은 장애자를 위한 기계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살상용 무기를 만들까요?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라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시작된 곳이고 자녀가 돌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오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심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게 아버지께 돌아가는 방식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의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의 인간적인 아버지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칩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곧 피조물인 인간으로부터 오는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먹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자녀는 이제 이 지상의 아버지가 아닌 천상의 아버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아버지의 가르침에 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부모라고 믿는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7살까지만 키워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러면 나는 누구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집에 우주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앉아서 그것을 한 번에 다 봤던 것 같습니다. 자라면서 계속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하늘 아버지의 가르침이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장 큰 가르침은 ‘하.사.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예수님께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을 마치 자신이 창조자인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는 자녀들을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그 창조하신 분이 따로 계실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창조자는 항상 살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뭐 드시고 싶으세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막막해집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거나요. 제가 다 잘 먹잖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제게 필요한 것이 없냐는 질문도 받습니다. 이때 역시 막막합니다. 특별히 가지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없어요.” 
 
이런 저를 스스로 바라보며 원하는 것이 없어진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또 먹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원하는 것도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나는 것이 딱히 없습니다. 욕심이 사라진 것일까요? 아니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어떤 신부가 그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관심이 사라진 거야.”
 
이 세상 것에 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이라면 아주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사랑에 관심 없어지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는 맛집 검색에 얼마나 진지했는지 모릅니다. 연로한 부모님께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모두 하늘나라에 가신 뒤에는 그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혼자 맛집을 찾아갈 정도로 미식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야 관심도 생깁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사랑해야 관심을 두고 주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기도와 묵상, 사랑 실천이 힘들다는 분을 만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관심도 생기는데, 주님께 대한 사랑이 세상 것에 대한 사랑보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생명의 빵’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으로,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고, 주님 안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관심이 부족합니다. 주님보다 세상 것이 더 좋고, 세상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습니다. 주님의 일은 항상 맨 마지막이 되곤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주님께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 대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자리가 마지막 자리가 아닌, 첫째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통해 관심이 점점 더 커질 때, 주님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이 큰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모든 생명이 하느님을 향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흘러갑니다.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생명의 빵이 되십니다.

생명의 빵이 진정한 생명이 되시어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생명의 빵을 통해 생명의 실체를 보고 만납니다. 생명의 빵으로 우리의 생명은 아름다운 생명이 되고 생명의 축복이 됩니다.

생명의 빵으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일치입니다. 사랑해야 할 생명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빵은 생명의 말씀으로 생명을 건넵니다. 죽어야 할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기도드리는 생명의 아침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생명의 빵을 받아 먹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의 빵이 계십니다.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는 어버이날 되십시오.

 

 

 

요한복음 6장 45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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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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