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전능하신 하느님, 파스카의 영약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이 땅의 부모에게 받은 모습을 벗어 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28일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4,23-31)
기도를 마치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 오늘 복음
(요한 3,1-8)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사도 4,23-31
오늘 제1독서
기도를 마치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그 무렵
23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24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아뢰었다. “주님,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25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주님의 종인 저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6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모였구나.’
27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28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
29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31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요한 3,1-8
오늘 복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28일
김홍주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7:59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라고 말씀하셨지만 니코데모는 이를 “또”(3,4)라고 이해하며 그가 아직은 “밤”(3,2)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3,5) 태어나는 것임을 밝혀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의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높은 데에서 오는 힘”(루카 24,49) 곧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에제 36,25-27).
물은 죄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거룩한 삶으로 이끄시어 하느님 사랑의 다스림 안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 이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 그리고 삶의 목표는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자기 힘이나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느님께 내맡기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불고 싶은 데로 부는 바람과 같으신 성령에 따라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의 열매를 삶으로 드러내며 미움과 증오로 달구어진 세상을 시원하게 식혀 주는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진정 다시 태어나고 싶은가?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느님 나라를 보려면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오늘 주님 말씀에 니코데모는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없지 않냐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없지요.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을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수백 번 다시 태어날지라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도 니코데모와 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싫어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나이 먹은 지금은 이대로도 좋다거나 이대로가 더 좋다고 하기도 합니다.
더 문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여기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싫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진정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진정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가?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영으로 새로 태어나기
니코데모는 최고의회 의원으로서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다 지닌 탄탄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참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밤에” 그가 찾아온 것은 단지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는 신중함이나 두려움만이 아니라, 그의 영혼의 상태를 말해줍니다. 사실 ‘밤’의 의미는 무지와 불완전함을 의미합니다(시 82,5; “그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세상의 기초들이 모두 흔들린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요한복음>에서 “위”(아노텐: 위, 새로)란 단어는 다섯 번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높은 데, 하늘 혹은 하느님으로부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 아들의 모습을 갖게 됨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단순히 생활 개선이나 악습을 고치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에 의한 전적인 새로운 변화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이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그 물로 깨끗해지고, ‘예수님의 숨’이신 성령으로 죄 사함을 받아 태어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에서 새로 태어난 부활생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선사받은 생명이요, 변화된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생명”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요한 3,8)
그처럼, ‘영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오히려 ‘변화의 영께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 그리하여 변화되는 일, 변화된 눈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일,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현존과 활동 곧 그분의 사랑을 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세상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은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제가 영으로 새로워진 까닭인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3,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주님!
제 영혼의 무지를 깨우소서.
빛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제 영혼의 밤을 몰아내소서.
제 어둠의 행실을 벗기소서.
당신 빛으로 당신을 뵈옵게 하소서.
오늘, 세상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은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제가 새로워진 까닭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면 바뀌는 것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하시고, 또 같은 의미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종잡을 수가 없다는 의미로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다 위로부터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살고 교회에도 머물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말씀이 아니지만, 또한 많은 신자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예화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며칠 전에 저희 성당에서 성령기도회 강의를 해 주셨던 ‘포도나무 찬양 선교단’ 부부의 간증입니다. 남편분은 어머니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키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마저 돈을 벌 줄 모르고 술만 마시고 자녀들에게 폭력을 쓰는 그런 아버지였습니다. 하루는 아버지에게 돈을 안 주면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했는데, 재떨이를 집어던져 얼굴이 함몰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가출하여 나쁜 길로 접어선 아이는 다행히 음악적 재능이 있었습니다. 녹색지대에게 자기가 만든 노래를 주기도 하고 프로듀서로 급승진하면 초기 아이돌을 키우며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 적응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술과 마약과 갖은 죄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가톨릭교회에는 찬양이 약하기 때문에 좋은 찬양을 작곡하여 음반을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거짓’ 정보를 주었습니다.
이분은 6개월 교리 받는 것이 그저 음반을 팔기 위한 자격증 정도로만 여기고 수녀님이 하시는 교리를 다 받았습니다. 그때 심근경색이 심하게 왔습니다. 의사는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기도’란 것을 처음 드렸다고 합니다. 그동안 받은 교리가 생각나며 한 번만 살려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때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불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며 머리 위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병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이제 대중음악을 하지 않고 가톨릭 성가를 100곡을 작곡하여 봉헌하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이분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위에 보니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본 이들은 사랑할 줄 아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그저 육체적인 허무한 사랑뿐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참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분이 전국으로 찬미를 하러 다니며 건반을 연주하며 코러스를 해 줄 자매를 만났고 결국엔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6개월 후 자궁에 암이 발견되어 자궁 적출을 하게 되어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잠을 자지 못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몸이 항상 좋지 않아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음식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말에 땅을 사서 퇴비를 직접 만들어 무공해 농작물을 아내에게 직접 해 주었습니다. 가정일까지 모두 남편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하느님과 아내에게 화가 났습니다. 처음으로 하느님께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가슴 가득히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사랑을 알게 해 달라며?”
그는 사랑이 아내가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 질 줄 알아야 하는 십자가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펑펑 울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다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분은 세상과 교회, 그리고 아내와의 가정생활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머물게 된 이유는 병이 치유되는 ‘은총’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받아들이게 된 힘은 ‘진리의 말씀’을 통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결코 교회에도 가정에도 하느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태어나는 힘이 ‘은총과 진리’입니다. 이 은총과 진리를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십니다. 이때 심근경색이나 음성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은총이 어떤 것과 결합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우리는 통틀어 ‘성사’라고 합니다. 물과 성령은 바로 이 성사를 의미합니다. 성령 안에는 은총과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아이들도 다 부모의 은총, 곧 사랑과 능력, 그리고 진리, 곧 가르침과 모범을 통해 성장하고 그렇게 세상에 살 자격을 얻게 됩니다. 아기로면 머물면 세상에선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머물기 위해 성체에서 들려오는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말씀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 은총과 진리가 진정으로 사제의 삶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만약 이렇게 새로 나지 않았다면 사제로 살지라도,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고 있을 것입니다. 몸으로만 행동으로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위로부터 새로 나야 합니다. 이 목적으로 성당에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서 더 큰 사랑을 위한 더 큰 십자가를 감사히 질 줄 아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물고기가 자기보다 먼저 일어난 다른 물고기에게 묻습니다.
“오늘 물이 어때?”
이 말에 다른 물고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합니다.
“물? 그게 뭔데?”
계속 먹고 마시고 또 하루 종일 피부에 닿고 있는 물이지만 자기가 그 물속에 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를까요?
“오늘 산소 어때?”라고 물으면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쳐다볼 것입니다. 공기 속에 있는 산소는 우리 곁에 계속 있고 또 계속 들이마시고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볼 수 없고, 직접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오늘, 주님은 어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다고, 만질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보려 하지 않고, 만지려 하지 않고, 또 알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닫힌 마음이 문제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고 계속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이를 삶 안에서 느낄 수 있으려면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활짝 열린 마음만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스승 소리를 듣는 바리사이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기도 했습니다. 어디 가서 지식적인 면에서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표징을 일으키는 예수님 모습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확신하지만,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세상의 눈을 의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도 세상의 기준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에서 태어난 이’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영에서 태어나야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머리로 계산하고 따지는 믿음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을 의식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역시 세상의 기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음을 기억하면서, 삶 안에서 사랑으로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기 위해 더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대게 가장 의미 있는 물건은 평범한 것이다. 우리는 왜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할까? 그 물건이 소유자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삶의 핵심 서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피터 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날마다 새로운 오늘입니다. 벚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연두빛 잎이 새롭게 피어오릅니다. 모든 것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음에 있어도 마음에 있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바꾸어주십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이것이 참된 생명의 길입니다. 참된 생명은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따릅니다. 세례로 새롭게 태어나고 회개로 새로워집니다. 진실되고 맑은 삶은 행동의 변화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과 성령이 우리 영혼을 비춥니다. 교만과 아집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영적인 삶이며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는 삶이 다시 태어나는 영적인 삶이 구원의 삶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진정한 삶을 부활의 삶으로 보여주십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운 부활입니다.
요한복음 3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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