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고, 그 적들을 바다에 빠뜨리셨네. 알렐루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와 화해의 새 계약을 맺으셨으니 저희가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4,1-12)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21,1-14)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사도 4,1-12
오늘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요한 21,1-14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25일
정성윤 베드 신부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11:16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그분을 만나 뵙는 데 마땅한 준비 갖추기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요한 21,3)라고 말할 때 그와 함께 자리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섯 명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를 제외하면 남은 제자들은 열한 명이어야 맞는데, 오늘 복음에서 네 명의 제자들이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그들이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베드로를 아직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도 회개하고 돌아왔지만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으로 위축되어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고기 잡으러 가자고 말하는 대신 다른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따라 주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전에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낸 삼 년여의 시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고기 잡는 어부로 살아온 그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고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자 으뜸 사도로서, 또 고기를 잡는 어부로서도 그 권위를 모두 잃은 듯해 보입니다.
그런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요한의 외침에 곧장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어 가 가장 먼저 주님 앞으로 달려갑니다.
무너진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일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는 것이 더 중요하였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만이 그를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급한 가운데서도 그가 겉옷을 두르는 일을 잊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을 존중하고 그분을 만나 뵙는 데 마땅한 준비를 갖추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 뵙고 그분께 나아가는 데에도 이와 같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신앙으로 참된 권위를 지니도록,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 나아가고자 겸손과 존경의 마음을 준비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재 성소를 받는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가 무대입니다. 드디어 제자들이 주님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래아를 기준으로 하면 돌아온 것이지만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하면 돌아간 것이며, 돌아간 것이니 예루살렘에서의 삶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의 무대는 다시 예루살렘이고,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활약에 활약을 펼칩니다.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루살렘 삶을 청산하고 갈릴래아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같이 갈릴래아로 돌아온 제자들은 총 여섯 명입니다.
다른 다섯 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때는 없습니다. 오늘 저는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누가 제일 죄책감도 느끼고 허탈감도 느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역시 베드로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반석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시며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고,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그가 아닙니까?
그런데 반석 노릇도 하지 못했고 다른 제자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배반했잖습니까? 그래서 다섯 명은 떨어져 나가고 여섯 명만 배반자 패배자로 돌아온 것일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고기잡이를 나가는데 이상한 것은 밤에 나갑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원래 밤에 고기를 잡아야 하는 걸까요? 그 옛날에도 집어등이 있어서 밤 고기잡이가 있었던 걸까요? 그런 것이 아니라면 오늘 고기잡이는 영성적인 밤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저께 강론에서 이미 나눔을 하였듯이 영성적으로 어두운 밤을 거쳐야만 새벽이 오는 그런 의미 말입니다.
아무튼 이 밤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밤새도록 한 일이 허탕이 되는 체험을 하고, 새벽을 맞이하는데,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 나타나 지시한 대로 그물을 치자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되고 가장 사랑받던 제자가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지시하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렇습니다. 갈릴래아는 이제 더 이상 베드로와 제자들의 고향이 아닙니다. 새로운 성소를 다시 받는 재 성소의 장소이거나 처음에 받았던 성소를 새로운 사람이 되어 다시 받는 재 성소의 장소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께서 제자들을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신 뜻이 바로 이것이고 이렇게 재 성소를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는 거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의 그들은 힘이 없고 무기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무력하고 무기력했을 때 주님의 힘을 체험한 다음에는 주님을 힘입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힘차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가능합니다.
재 성소를 받는 것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을 힘입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래서 힘차게 복음 선포하는 부활의 사람이 되는 것이.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셨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발현하셨건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절망에 빠져있고, 과거의 생업이었던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절망과 실의에 빠져 엉뚱한 곳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제자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시어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요한 21,6)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들이 제자들이 되기 전에,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그들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알아본 이는 요한이었지만, 그분께 먼저 달려간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요한은 관조적이고 베드로는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은 사랑을 받은 이가 되고, 베드로는 일을 맡은 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날 아침을 열치시고 오시어,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서 식사를 준비하시고 부르십니다. 어디서 났는지, 숯불 위에는 이미 ‘물고기’도 있고 ‘빵’도 있었습니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는 수난 받으신 당신의 몸을, ‘빵’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바수어진 당신의 몸을, 곧 당신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요한 21,10)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른 것은 와서 시중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와서 ‘시중을 받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게 하고 깨우쳐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리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지만, 당신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렇습니다. 당신 자신을 바쳐 부활생명을 담은 사랑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당신의 밥상을 받아먹는 일입니다. 그것은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시중을 받는 일,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숯불에 구운 물고기’가 되고, ‘찢어지고 바수어진 빵’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당신의 향기를 뿜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이요, 당신의 사랑을 아는 일이요, 그리고 그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그 사랑을 증거 하고 부활생명을 증거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당신께 상을 차려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를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의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고,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과 내맡김의 생선을 구워, 우리의 삶으로 상을 차려 올리는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21,12
와서 아침을 먹어라.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고 자란 제가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형제 섬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말씀 시중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연속적인 부활 체험 : 내 그물을 던질 배의 오른쪽을 꾸준히 찾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 번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말은 오늘 복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계속 만나게 하는 방법이란 뜻도 됩니다. 제자들은 무언가 하려고 물고기를 잡으러 호수로 나갑니다. 그러나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그물을 던지니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그분이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153마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란 히브리어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배는 교회를 나타낼 수밖에 없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은 교회의 봉사자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헛수고일 때가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이 우리 성당에 와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로마에서 성서를 공부하고 들어왔지만, 신학교에서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엔 사제들 모인 곳으로 가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성체조배를 하였습니다. 그러며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고, 본당을 성경과 성체로 활성화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한 줄이라도 외우게 하고, 냉담자 가정방문도 하였습니다.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마침 코로나도 시작되었지만, 신부님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사목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유튜브로 방송하고 성체를 들고 차로 성체를 영하러 오도록 기다렸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나서 오히려 성당 신자가 증가한 어쩌면 유일한 성당이 되었고 신문에도 이런 일이 실리고 유튜브도 많은 공감을 얻고 그러면서 대전교구와 수원교구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게도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내 힘만으로 물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다시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는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는 목소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계속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저도 유학을 가서 어떻게 잘 끝내고 올지 생각하였습니다. 성체조배를 통해 얻은 답은 역시 성체조배였습니다. 하루 세 시간씩 성체조배 하면 다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5년 이상은 해야 하는 박사학위를 3년 만에 끝내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논문 발표를 하는 날 전날도 성체조배 하다가 성당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떨지도 않고 발표를 잘 마쳤고, 많은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들은 다 최고 점수를 주셨습니다.
오산 성당에 처음으로 와서 열심히 사목하였습니다. 물론 신자분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 주시고 신자들이 많아지기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엔가는 정체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교구청 복음화국 부국장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소공동체’를 맡아서 깊은 묵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한 것을 접목하여 조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더 많은 하느님 자녀들이 그물에 들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교회에 있어야 하고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거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목소리가 빠지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힘이 빠집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 자녀를 낳는 일에 투신해야 합니다. 세례받을 때 우리 모두는 선교사로 파견받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습니다. 그분에게 강조되는 것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교황에 선출되고 처음으로 간 곳이 난민들이 수장된 곳이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로마 주교로서 받아야 하는 월급도 일절 사절했으며 교황 관저가 아닌 사제들의 숙소에서 사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일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킵니다.
이는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본받고자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재산을 옷까지도 모두 벗어 던지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평생을 거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이라는 부르심이 돌아가신 교황님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이런 부르심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배에서 그물을 던질 오른쪽을 찾았습니까? 아니라면 조용히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이 많은 어르신의 4가지 유형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는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1) 자기 모습 그대로에 만족하며 특별한 욕망 없이 사는 사람. 내면의 평온함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자기가 살아온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후회로 가득한 사람. 늘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기에 친구가 없습니다.
3)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얻는 이야기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매력적이고 함께할수록 내면의 풍요로움을 얻습니다.
4)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 긍정도 부정도, 또 교훈도 없습니다. 이런 분과 대화하면 공허함만 남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갖고 싶습니까? 아마 최고는 3번 유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나도 또 주위 사람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힘들다면 1번도 괜찮습니다. 내면의 평화와 지혜 역시 매력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번 유형이 많아 보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남 탓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집니다. 그리고 4번 유형도 심각합니다. 어떤 교훈도 없는 공허함만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3번과 1번의 유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함께할수록 내면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기에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침묵할수록 1번의 모습도 깨닫습니다. 조용히 침묵하며 기도와 묵상을 할 때, 평화와 지혜를 얻습니다. 이런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도 엿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에 제자들은 부르심 받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결과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 칠 곳을 알려 주셨고, 그 결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분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아직 큰 기쁨 속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부끄러웠는지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고,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옵니다.
부활의 기쁨이 컸다면 예수님을 향해 곧바로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잡은 고기 그물을 팽개치고 예수님께 달려가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직 그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배고픈 자신들을 위해 빵과 구운 물고기까지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얼마나 목이 메었을까요? 자신들은 예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일상으로 돌아갔는데도, 꾸짖지도 않고 사랑으로 감싸안아 주시니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3번과 1번의 유형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우리도 그런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말이지요.
오늘의 명언
삶은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존 호머 밀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는 오늘 아침이 바로 부활의 아침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아침입니다. 아침을 짓고 아침을 차리시는 분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따뜻한 부활입니다. 어둠을 지나 가득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삶의 새로운 기쁨을 만납니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습니다. 너무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상심과 좌절의 마음은 온데간데없는 싱그러운 마음을 체험합니다. 부활은 신기루가 결코 아닙니다. 부활이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감사의 우리 일상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료체험으로 만나는 신비의 시작입니다. 이미 숯불이 빠알갛게 타오르고 이미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습니다. 가득한 아침입니다. 가득한 확신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아침을 먹고 봉헌의 삶을 삽니다. 되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일상의 생생한 만남입니다. 맡겨드리는 일상의 부활 되십시오.
요한복음 21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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