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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3/09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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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오래오래 살도록 그에게 복을 내리리라.

전능하신 하느님, 해마다 거룩한 성사로 사순 시기를 지내는 저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아 회개의 삶으로 그 열매를 맺게 하소서.

2025년 3월 9일 사순 제1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3월 9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3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1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신명 26,4-10)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 고백.

  • 제 2독서
    (로마 10,8-13)
    그리스도 신자의 신앙 고백.

  • 오늘 복음
    (루카 4,1-13)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4,8)
    그분만을 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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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신명 26,4-10
오늘 제1독서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 고백.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10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로마 10,8-13
오늘 제2독서

 

그리스도 신자의 신앙 고백.

형제 여러분, 성경에서 


의로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루카 4,1-13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9일
백승재 베네딕토 신부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개 00:38

✚ 미사시작 01:33

✚ 강론시작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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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십니다. 이끌려 갔다는 말은 의지 없이 움직였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수동적으로 끌려가신 것만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능동적으로 맡기셨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준비하시는 마지막 단계까지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도 특별히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에 넘어가시지 않자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루카 4,13) 떠나갑니다. 

이때 ‘다음 기회’로 옮긴 그리스 말 ‘카이로스’는 약속된 구체적인 순간들을 가리킵니다. 악마(사탄)들이 말한 ‘다음 기회’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겪으시는 순간(22,3.53 참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에서 사순 시기를 지내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유혹하였던 악마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아시고 자주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느님 앞에 머무셨습니다. 

이러한 머무름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온전히 신뢰하시고, 유혹에 적극 맞서신 것입니다.

사순 시기 동안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유혹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더욱 필요합니다. 유혹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는 사순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이끌리고, 유혹받고, 구원받는

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점은 이스라엘 백성과 주님께서 이끌리어 광야로 간다는 것이고 거기서 시련과 유혹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리고 마침내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여기 동사들의 공통점은 피동적입니다. 이끌리다. 유혹받다. 구원받다. 인도자가 있어서 이끌리고 유혹자가 있어서 유혹받고, 구원자가 있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자와 유혹자와 구원자가 실은 다 같은 분이십니다. 유혹자는 인도자와 구원자와 다른 분일 것 같은데 같은 분 하느님이십니다.

제가 여기서 실은 다 같은 분이라고 얘기했는데 마귀가 유혹자이지만 실은 성령께서 유혹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유혹받으시는 데 있어서 성령과 악력은 협력자였습니다.

성령께서 악령의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구하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데 이것은 이런 우리 믿음을 완전히 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믿음과 다른 성숙한 믿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유혹에서 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구하신다고, 더 정확히 말하면 악이 아니라 죄의 악에서 구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유혹이 일단은 악 곧, 나쁜 것이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단은 악이라는 것은 이단이나 삼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일단 곧 믿음 성숙의 일 단계는 유혹이고 시련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유혹과 시련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주님의 유혹 얘기는 근동 지방 성년식 과정과 같습니다. 근동에서 성년식을 할 때가 되면 아이를 광야로 내몰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어른이 되고 성년식을 거행하잖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흔들리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가 형제들을 양성할 때도 마구 흔드는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마구 흔들어댔으니 그때의 저는 양성자에게 아주아주 나쁜 놈이었지요. 그런데 실은 나쁜 놈 악마가 아니었고 양성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소를 흔들 때 양성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꽉 붙잡고, 흔들수록 더 꽉 붙잡지요. 그렇게 꽉 붙잡도록 저는 흔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어서 떨어지는 사람은 성소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부족하고 성소를 이어갈 힘도 끈기도 부족한 표시이니 일찌감치 포기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도 성소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냥 잘해줍니다. 그러다가 입회를 표명하면 성소자 관리에 들어가고, 수도자가 될 만한지 시험하고 흔들어대는데 지금의 저는 마음이 약해져서 옛날만큼 마구 흔들어대지 못하고 살살 흔듭니다.

그래서 저를 반성합니다. 마음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약해진 것이 아닌지. 더 모질게 흔들어대고 그러면서 시련을 같이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일단은 시련을 주지만 그것이 단련의 이 단계로 넘어가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단련의 이 단계를 거쳐 승리의 삼 단계로 가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또 다른 반성도 합니다.

나는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인지. 성령에 이끌리어 유혹받는 사람인지. 성령과 함께 악령과 싸워 승리하여 구원받는 사람인지.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사람은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사순 첫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두 개의 ‘신앙고백’과 함께 ‘참된 신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고백이요, <제2독서>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고백입니다. 곧 전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햇곡식을 봉헌하면서 주님께서 자신들을 이집트 땅에서 해방시키고 좋은 땅을 주셨다는 신앙고백이요, 후자는 우리의 구원이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을 통해 구원이 온다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의 유혹받으신 장면을 통하여, 앞의 두 독서에서 고백하고 있는 ‘신앙’의 핵심을 보여주십니다. 곧 오로지 아버지께만 신뢰와 의탁을 두는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믿는 이들이 어떠한 처지에서도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줍니다. 곧 유혹을 이기신 인간 예수님의 모습은 모든 인간이 닮아야 할 가장 모범적이고 완전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약속한 곳이요, 오롯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호세 2,16-18).

또 불모의 황폐한 사막이요 유혹받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야곱을 아껴주신 곳이요(신명 32,10), 이스라엘 백성을 보살펴주고 인도하신 곳이요(신명 2,7;8,15;느헤 9,18-19), 시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신명 8,2),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요(1열왕 19,4), 사랑을 알게 하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예레 2,2-3).

또한, 광야는 현실적으로 우리 삶을 뒤흔드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이 세상이요,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마침내 허기지셨던 예수님은 쇄약해지셨고,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태에 처했습니다. 가장 허약한 순간을 노려 악마의 끈질긴 유혹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피하시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돌파하십니다. 아니, 역설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유혹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곧 물질적 유혹, 빵에 대한 유혹, 필요와 효용성, 소유와 능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루카 4,4)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육신을 살리는 물질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말씀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요.”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곡 영적, 신앙적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지배와 권위, 존경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루카 4,8)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상을 믿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이로서 그분만을 섬기고 믿으라는 말씀, 곧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성전 꼭대기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곧 정신적 유혹, 영예에 대한 유혹, 과시와 인기, 교만과 허영, 영웅주의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루카 4,12)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허영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그분의 뜻 이루어지기를 바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유혹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악마는 무엇을 노리고 다가왔던 것일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루어야 할 사명을 방해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셨습니다.

이토록, 광야에서의 유혹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삶을 제시해줍니다. 곧 이 사건은 우리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신비로 이끌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술이나 기적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유혹을 이기시고, 사랑으로 사명의 길을 가셨으며, 아버지의 뜻에 희망을 두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도 예수님의 이 헌신에 힘입어, 결코 그 누구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자 누구입니까? 환란입니까? 궁핍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 모든 일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에 힘입어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주권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5-38).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4,4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주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게 하소서.

나의 필요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헤아리고
소유하기보다 
소유당할 줄을 알게 하소서.

무엇이 유익한가보다 
그것이 사랑인가를 보게 하시고
능력을 가지기보다 
가진 능력을 
사랑으로 쓸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으로부터 떼어 놓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에 힘입어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광야는 ‘이것’ 하나 찾는 장소이다.

사순은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우리 안에 합당하지 않은 무언가를 제거하는 시간입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까요? 헤라클레스 신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의 주신 제우스와 뛰어난 미모와 지혜를 지닌 인간 여성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 영웅입니다. 제우스의 정실 아내 헤라는 제우스의 여러 외도로 태어난 자식들을 매우 싫어했는데, 헤라클레스의 경우에도 특별히 더 큰 분노를 보였습니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헤라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빠는 힘이 너무 세서 억지로 떼어내야 했습니다. 그때 분출한 젖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분노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인간 세상으로 보내어 인간으로 살게 만들어버립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그가 아내 메가라와 자녀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헤라클레스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겼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속죄를 결심하고, 델포이 신탁을 찾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유명한 ‘12가지 과업(노역)’이었습니다. 이 열두 가지 과업을 모두 완수함으로써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고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12가지 사명을 완수하는 중에 머리가 여러 개인 괴물 히드라도 쳐부숩니다. 헤라클레스는 조카인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아 히드라의 목을 자른 뒤 불로 지져 재생을 막는 전략으로 괴물을 무찔렀고, 히드라의 독을 얻어 화살에 바름으로써 강력한 무기를 확보했습니다.

12가지 노역을 마친 뒤에도 헤라클레스는 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영웅적 모험을 이어갔습니다.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켄타우로스 네소스의 계략 때문에 헤라클레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네소스는 헤라켈레스에 의해 죽어가면서 히드라의 피가 사랑을 영속시키는 ‘묘약’이라고 말해줍니다.

데이아네이라가 ‘사랑의 묘약’이라고 여겨 헤라클레스의 옷에 바른 독이 그의 살갗에 닿아 끔찍한 고통을 일으켰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자,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오릅니다. 떠밀리는 죽음이 아닌 산 채로 자신을 화장시키는 능동적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헤라클레스가 불길에 몸을 던지자, 제우스는 그의 영혼을 올림포스로 데려가 오랜 고통에서 해방했습니다. 이로써 헤라클레스는 신들 사이에 올라 불멸의 존재가 되었으며, 그를 괴롭히던 헤라 또한 그를 올림포스의 정당한 신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삶을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는지도 알려줍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함으로써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에사우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신이 평생 해 온 사명의 완수만으로 충분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겸손’을 회복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기 교만을 태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발을 절뚝일 수밖에 없었고 에사우 앞에서 일곱 번이나 엎어져 “당신 얼굴을 보는 것이 하느님 얼굴을 뵙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그를 경배합니다. 이에 선물 때문이 아닌 그의 겸손함을 보고 에사우는 야곱을 자신의 땅에 받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명을 수행하기 전에 광야에서 세 유혹과 싸우기 위해 단식하며 기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불 속에 던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예수님을 인간성인 세속-육신-마귀를 태워버립니다. 결국 광야의 사순절은 우리가 기도-자선-단식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기 위해 겸손해지는 목적으로 행하는 인간이 신이 되는 과정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단식하고 있었습니다. 단식을 하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6끼를 굶고 느낀 것은 ‘이틀 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뭐 대단하다고 예수님께 무언가를 해드린다고 착각했을까요?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나의 뜻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고 자선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며 단식을 통해 하느님께서 양식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존재도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속에서 유일하게 남는 이 ‘겸손’을 찾는 일이 사순의 의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우리나라 명품시장 규모가 세계 7위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명품을 좋아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날 품질과 디자인이 모두 뛰어나고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을 명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물질적인 명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내면의 성숙함과 외면의 유려함을 모두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일상에서 충실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 사람이 진짜 명품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변함없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명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평가도 충분하지 않은,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귀한 우리가 될 것입니다. 명품의 삶을 사는 사람은 고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 세상을 원망하거나 스스로 포기한다.
 
둘째, 잠잠히 때를 기다리고 실력을 쌓아 나간다.
 
여러분은 고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당연히 두 번째 선택에 손을 들어야 명품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실제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은 두 번째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맹자는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 스스로를 버리는 사람은 하늘도 도울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큰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당신을 바라보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그 고통과 시련을 겪으셨고, 이 모두를 이기시고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을 모범을 보고 또 그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십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은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시장한 상태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악마를 경배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유혹이었습니다. 마지막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입니다. 우리가 겪는 유혹과 다르지 않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물질적인 유혹이고, 둘째는 세상 지위에 대한 유혹이고, 마지막은 하느님 존재에 대한 유혹, 즉 기적의 유혹입니다.
 
이를 성경 말씀으로 모두 이겨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유혹을 계속 받습니다. 과연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 말씀으로 이겨내고 있습니까?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진짜 명품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이 걱정하는 것은 결국 당신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 조셉 머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순(四旬)시기는 특별히 삶의 본질을 우리 삶에서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혹이 있고 또한 광야가 있습니다. 유혹이 있기에 기도가 있고 광야가 있기에 하느님을 찾는 우리의 성장이 있습니다.

유혹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하느님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고 말씀의 양식을 받아 먹습니다. 하느님의 자리를 결코 침범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는 우리들 여정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광야에서 유혹을 체험하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기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사명을 뜨겁게 만나는 광야입니다.

물질에 대한 권력에 대한 명예에 대한 유혹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진정 살아있음이 인간의 욕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는 사순입니다.

말씀의 관계이며 섬김의 관계이며 내어맡김의 관계입니다. 유혹을 받는 삶의 광야에서도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더욱 깊어지는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악마에 대처하는 지혜와 사명을 만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여정을 막을 수 없듯이 말씀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행복한 사순의 여정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덧없는 것을 물리치는 사순 제1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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