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5/03/05 (수) 재의 수요일 미사와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3. 5.
반응형

 

 

주님, 당신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당신이 만드신 것을 하나도 미워하지 않으시며,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죄를 덮어 주시고 용서하시니, 주님, 당신은 저희 하느님이십니다.

주님, 그리스도를 믿는 저희가 거룩한 재계로 악의 세계와 맞서 싸우려 하오니 극기로 보루를 쌓게 하소서.

2025년 3월 5일 재의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3월 5일 (수) 재의 수요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3월 5일
재의 수요일
미사와 말씀 묵상

재의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요엘 2,12-18)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제 2독서
    (2코린 5,20─6,2)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요엘 2,12)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요엘 2,12-18
오늘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2코린 5,20─6,2
오늘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마태 6,1-6.16-18
오늘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5일
강주현 사도 요한 신부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개 00:37

✚ 미사시작 01:33

✚ 강론시작 14:22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생중계 성당

 

  • 가회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가회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가회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06: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생중계 없음


  • 남양성모성지 온라인 매일미사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남양성모성지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생중계 없음 / 화 11:00 / 수 11:00 / 목 11:00 / 금 11:00 / 토 11:00


  • 원당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원당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원당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10: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10:00


  • 초당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초당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초당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0:30 / 월 06:30 / 화 19:30 / 수 10:00 / 목 19:30 / 금 10:00 / 토 10:00


  • 팔로티회 온라인 매일미사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분당 팔로티회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자선, 기도, 단식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복음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실천하며 이 시기를 잘 계획하도록 초대합니다. 특히 자선과 기도와 단식, 이 세 가지를 실천하려면 무엇보다도 숨은 일도 보시는 분께서 갚아 주실 것(마태 6,6 참조)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야 하며, 단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야 합니다.

자신이 자선, 기도, 단식을 하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하느님과 내밀한 인격적 관계를 맺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피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집중하려는 노력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친밀해지도록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자 하셨다”(35항).

이 같은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사순 시기에 우리는,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믿고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애쓰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예수님께서 자주 산 위에 혼자 올라가셨던 것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은 그 자체로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재만 남기고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를 머리에 얹으며 우리가 재와 먼지에 불과한 존재이고, 재와 먼지로 돌아가게 될 것을 기억하라고 권고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따가 재를 얹는 예식을 하며 오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대신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권고하겠습니다.

그런데 재란 무엇이고 재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재란 불에 타고 남은 것이지요. 그러니 이런 권고를 받는 우리는 오늘 자신을 불태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자신을 불태운다는 것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크게 두 가지이겠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이겠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를 먼저 보면 욕망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욕망을 불사른다고 할 때의 뜻과는 다릅니다. 욕망을 불사른다는 것은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뜻이지만 불태운다는 것은 욕망이 사그라들어 재가 되게 하는 겁니다.

지금의 저는 욕망이 거의 다 타버린 재처럼 사그라들었지만 젊을 때는 끓는 피와 같았기에 어떻게든 사그라들게 해야 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이 무덤에 가는 것과 양로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술 한 병 사 들고 묘지에 가 아무 무덤이나 돌아가신 분께 한잔 올린 다음 그 무덤을 베고 무덤의 그분과 함께 한잔하면 욕망이 사위어지고 양로원에 가 어르신들과 어울리다 보면 욕망이 정화되거나 순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이미 사그라든 지금은 진정한 사랑을 불태워야 할 때입니다. 욕망이 사그라들며 사랑도 같이 사그라들게 해서는 안 되고 앞에서 봤듯이 지금이 오히려 욕망이 정화되어 참사랑을 할 때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육신만 화장하지 않고 저의 사랑도 영혼도 화장하고 싶습니다. 남은 생애 제게 있는 사랑을 내 몸뚱이를 위해 아껴두거나 남겨두지 않고 아낌없이 남김없이 다 주고 재만 남기고 떠나고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오늘 <제1독서>에서는 ‘회개’를 <제2독서>에서는 ‘화해’를, <복음>에서는 ‘의로움’에 대한 말씀을 들려줍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요엘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단식하고, 울면서,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께로 돌아오너라.”(요엘 2,13)라고 말하며,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은혜로운 구원의 날을 맞이하라.’고 말하며,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처럼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하지 말고, 숨어계신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몸과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뉘우침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의로움이 아니라 하느님에게로 ‘돌아옴’ 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신앙의 빛>에서, ‘회개’를 “주님을 향해 거듭 되돌아가는”(13항) 것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거듭해서 기꺼이 변모되려”(13항)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회개’가 첫째는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결국, ‘지속적인 회개’는 부르심에 대한 끊임없는 응답으로 지속됩니다. 이를 수도승들은 ‘제2서원’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이처럼, ‘회개’는 ‘뉘우침’이라는 내적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옴’이라는 외적 실행을 요청합니다. 곧 마음만 찢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행동의 요청이요,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삶을 불러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이는 의로움의 본질이 하느님 앞에 놓인 처지,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앞에 드러난 행동이나 결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생각을 보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운 생활의 중심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보상 받고자 했습니다. 혹 우리도 그러고 있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혹 우리도 기도나 봉사나 사랑을 통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경건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있다면 말입니다.

진정, 우리는 겉모양이 그리스도인인 것이 아니라, 뼈 속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늘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마태 6,6)의 현전을 마주하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마태 6,6)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희는 어둠이 아니지만 어둠과 놀면 어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저희는 빛이 아니지만 빛 앞에 머무르면 빛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저희는 천사는 아니지만 하느님 앞에서 노래하고 하느님을 섬긴다면 천사가 와 같이 될 수 있고, 마귀는 아니지만 마귀의 영을 따라 산다면 마귀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하지도 않은 선을 행한 것처럼 과시하지도, 저지른 악을 가리고 숨기며 거짓으로 치장하지도 말게 하소서! 마음의 단식으로 당신을 섬기고, 기도로 마음이 순결하게 하소서! 늘 빛이신 당신 앞에 머무르고, 당신의 영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6,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주님!
선을 과시하지 않고, 
악을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들 앞에서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고, 
숨어 계신 당신 앞에 
다소곳이 머무르게 하소서. 

마음의 단식으로 제 마음이 씻기어 지고 
기도로 마음이 순결하게 하소서. 

일상의 모든 삶이 
당신의 영으로 벅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육체를 태우면 심장은 사랑을 위해 뛰기 시작한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선과 단식과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는 신앙인이 싸워야 할 세 욕망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이 세 욕망을 한 마디로 육체적 욕망이라고도 합니다. 이 유혹을 이길 때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덕이 맺히게 됩니다. 이 욕망에게 힘을 주는 것이 심장입니다.

그런데 심장이 육체를 위해 뛸 때는 영혼을 위해 뛸 에너지를 잃습니다. 심장이 육체를 위해 뛸 필요가 없어질 때만 사랑을 위해 뛰기 시작합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엘리펀트 맨’은 ‘조셉 메릭’이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는 ‘존 메릭’으로 나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기형적인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극도로 기형적인 얼굴과 몸 때문에 사람들에게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 중 코끼리에 짓밟히는 꿈을 꾼 뒤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믿었고, 존은 어린 시절부터 기형적인 외모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합니다. 결국 그는 부모를 잃고 갈 곳이 없어 유랑 서커스단에서 ‘괴물’로 전시되는 신세가 됩니다.

런던 병원의 외과 의사 프레더릭 트리브스는 그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와 보호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트리브스는 자신도 메릭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합니다. 그가 세상에 나오게 되자 사람들을 둘로 나뉩니다.

그를 이용하고 학대하여 자신의 돈과 자존심을 세우려는 사람들과 그를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고 연민을 느껴 그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사람들. 엘리펀트 맨은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은 날 스스로 처음 느껴보는 편안한 침대에 누워 하늘의 어머니에게 갑니다.

엘리펀트 맨을 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에너지가 육체를 향하고 있는 사람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자기 육체가 아닌 하늘을 향하는 사람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기도와 자선과 단식은 결국 나의 육신으로 향하게 하는 심장의 에너지를 영혼으로 보내 사랑을 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마리아 공동체 평화의 오아시스, 임 파우스티나 수녀가 쓴 ‘복녀 끼아라 루체 바다노’에 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좀 길지만 원문 그대로 써 봅니다. 어떻게 육체를 향한 심장이 약해질수록 사랑을 향해 심장이 뛰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복녀 끼아라 루체 바다노는 2010년에 시복되었습니다. 끼아라 루체는 1971년 이탈리아 사셀로에서 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찾는 신심 깊은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바다노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없는 결혼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던 아빠 루제로는 성모님께 봉헌된 성지에 가서 11년 동안 하느님께 생명의 선물을 주시길 기도하여 오랜 기다린 후에 드디어 끼아라를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투명하고 큰 눈을 지닌 끼아라는 “맑고 밝다”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삶도 그러했습니다. 생기있고 활발한 끼아라는 스케이트, 자전거 타기,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끼아라는 9살 때 포콜라레 운동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포콜라레는 끼아라 루빅 여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폐허가 된 세상에 ‘서로 간 사랑과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해 1943년에 창설한 영성 운동입니다. 끼아라는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 끼아라 루빅과 영적 모녀 관계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투병 중에 끼아라 루빅 여사로부터 “끼아라 루체”라는 새로운 이름과 편지를 받기도 합니다

17살 때 테니스 경기 도중 어깨에 강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 후 결과는 암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기로 악명높은 골육종이였습니다. 이름대로 뼈에 생기는 종양이었습니다. 진단 결과를 알게 된 끼아라는 울지도, 반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즉시 침묵 속에 깊이 잠겼지만, 25분이 지난 후 그녀의 입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네”라는 응답이 흘러나왔습니다.

새로운 고통이 닥칠 때 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원하시면 저도 원합니다.”라고 하며 단호하게 말하며 자신의 고통을 바침으로써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항구한 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끼아라는 매일 미사를 통해 성체 모시며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한 줌씩 빠지기 시작했을 때 끼아라는 “예수님, 이 고통을 십자가에서 저를 구원하신 당신을 위해서예요.”라 말하며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육신의 고통의 강도는 점점 커졌으나 끼아라는 예수님과 함께 그 고통을 잘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끼아라가 예상치 못한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이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두 번째 수술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녀에게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엄마는 끼아라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끼아라야, 예수님께서는 다리가 없는 너에게 날개를 주실거야.” 

끼아라는 “엄마, 제가 걷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천국 가는 걸 선택할 거예요. 지금 제 마음을 끄는 것은 천국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너희들은 지금 예수님과 내 관계가 어떠한지 결코 상상할 수 없을 거야… 하느님께서 내게 무언가 더 큰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느껴. 어쩌면 오랫동안 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내게는 하느님의 뜻만이 소중하고 현 순간에 그것을 잘하는 것이야. 지금 사람들이 내게 걷는 것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야. 이 상태의 내가 예수님께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마치 어두운 굴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온 힘 다해 사랑하려고 나 자신을 다시 던졌고 빛은 되돌아왔다.” 

“순간을 잘 산다면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만약 그 끔찍한 고통의 순간을 예수님께 선물로 드린다면, 이 끔찍한 순간까지도….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한 의미 있는 선물로 바친다면 고통은 그냥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끼아라는 작은 종이에 성모님께 바치는 글을 적었습니다.

“천상의 어머니, 제가 회복될 수 있는 기적을 당신께 청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굴복하지 않는 힘을 제게 주시기를 청합니다.” 

끼아라는 투병 중에도 빛나고 환한 미소를 절대 잃지 않았습니다. 평온하고 강하게 남으며 고통스러운 치료를 감수했고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을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이끌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끼아라는 아주 활동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통해 또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을 사랑을 다 해 맞음으로 오히려 그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힘과 용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간 친구들은 도리어 그들이 위로받고 돌아갔습니다.

1990년 여름, 의료진은 끼아라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끼아라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십자가상의 수난을 나누고자 하는 원의와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진통제인 모르핀 투약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고통만을 바칠 수 있는데 모르핀은 제 정신을 흐리게 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제 고통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가능한 한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끼아라에게 하루는 햐안 옷을 입은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빛으로 싸인 천사는 끼아라의 손을 꼭 잡아주며 “힘을 내렴!”하고 말하고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병은 진전되었으며 고통도 늘어났습니다. 불평 한마디 없이 그녀의 입에서는 “예수님, 당신과 함께; 예수님,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만 나왔습니다.

많이 고통스러운지 묻는 엄마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무한히 사랑하세요. 특별히 힘겨운 밤을 보낸 후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내 영혼은 노래를 불렀어요…”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끼아라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께 오셔서 천국으로 나를 데려가시기를 청하지 않아요. 그분과 조금이나마 십자가를 나누기 위해, 그분께 내 고통을 계속 바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녀 없이 홀로 남게 될 것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계속해 말하기를 “하느님께 믿고 맡기세요. 엄마는 모든 것을 했어요.”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없을 때는 하느님을 따르세요.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에요.”라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1989년 출혈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끼아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예수님께로 갑니다. 저의 장례식에서 저는 사람들이 울기를 원치 않고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끼아라는 모든 것을 다 생각해 두었습니다. 장례식에서 부를 노래, 꽃들, 머리 모양, 신부가 입는 흰 드레스에 분홍색 리본 허리끈까지.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저를 준비시킬 때 이렇게 계속 말하셔야 해요: 지금 내 딸 끼아라는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아주 고통스런 밤이 지난 후 1990년 10월 7일 새벽 정배는 그녀를 데리러 왔습니다. 끼아라는 아직 18살. 그녀의 19번째 생일 파티는 하늘에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되자 끼아라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천국으로 갈 거야.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안녕! 엄마! 나는 행복하니까 엄마도 행복해야 해.”

키아라가 병에 걸리기 전에 하던 일들을 계속했다면 그만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육체는 영과 반대입니다. 사랑의 에너지를 빼앗습니다. 그래서 육체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써야 합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머리에 재를 얹는 것입니다. 복녀 키아라 루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저에게는 아직 심장이 있고 그렇기에 언제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재의 수요일

전쟁은 수천 년 전부터 끊임없이 계속됐고, 지금도 지구상에서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원인에는 사람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탐욕이 커지고 커져서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탐욕에 당당히 맞서 희생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평화)을 누립니다.
 
국가 간의 문제에서만 이 원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도 탐욕이 점점 커지면서 크고 작은 다툼이 계속됩니다. 이 다툼에서 이겨야 나의 욕심을 채우면서 평화를 얻겠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어떤 다툼도 끝낼 수가 없습니다.
 
누구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라 하지만, 결국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전쟁을 멈추고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이 있을 때,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감사할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만을 강조하셨던 이유를 묵상하게 됩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세상의 탐욕 속에서 멈추지 않는 전쟁을 당장 멈출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재의 수요일인 오늘입니다. 참회의 상징인 재를 축복해서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사순시기를 시작인 재의 수요일 복음에서는 자선과 기도와 참회에 대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자선과 기도와 참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즉,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또 칭찬받으려는 마음을 갖고 이 중요한 덕목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려는 자선, 기도, 참회이기에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서 “열심히 산다.”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없기에 하느님에게서 그 어떤 상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창세기의 말씀인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 3,19 참조)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 달렸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연결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면서 하느님 뜻인 사랑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삶이 아닌, 하느님께 잘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에 집중하는 은총의 사순시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명언

용기를 내면 잠시 길을 잃는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

- 쇠렌 키르케고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기승전결 먼지입니다. 먼지로 돌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한낱 먼지일 뿐인 우리는 우리 삶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참모습을 만나는 재의 수요일이며 은혜로운 사순의 첫 시작입니다.

사순시기는 사람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진실한 회개로 사람의 길을 우리에게 가리킵니다. 삶이라 불렀던 것이 더 이상 삶이 아니었음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은 먼지로 돌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이며 간절한 용서입니다.

회개와 용서를 안고 가는 삶입입니다. 먼지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이란 하느님께 목마른 먼지의 삶입니다. 먼지에게 하느님의 기적이 하느님의 은총이 일어납니다.

새 생명의 부활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이 사순시기는 특별히 먼지로 돌아갈 우리가 잃어버린 하느님을 되찾는 은혜로운 때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뜨겁게 만나는 은총의 빛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죄의 용서를 구하는 간절한 회개가 우리 가운데에서 선포됩니다. 구원을 체험하는 먼지의 뜻깊은 새날 되십시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