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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1/2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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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2025년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월 2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히브 7,1-3.15-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 오늘 복음
    (마르 3,1-6)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 오늘 말씀 카드
    (마르 3,5)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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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 7,1-3.15-17
오늘 제1독서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형제 여러분,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마르 3,1-6
오늘 복음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22일
정호철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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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따스한 연민과 친절함에 머무르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면 고발하려고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예수님을 어떻게든 망신 주고 혼내는 데만 쏠려 있습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이가 온전해지는 일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마르 3,3). 

아마도 고발하려는 자들이 그를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 불행한 모습을 바라보며 연민을 가져 그 무디고 완고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기기를 바라셨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먼저 말씀으로 그들을 부드럽게 다독이시며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3,4) 

그러나 그들은 끝내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습니다. 입도 마음도 모두 닫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손을 뻗어라.”(3,5)라고 말씀하시고,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곧바로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난 우리이지만, 우리 마음이 때때로 무관용과 적대로 완고해지고 경직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가끔은 마음이 각박해지고 입이 사나워질 때도 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나날에 따스한 연민과 친절함이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 사랑 덕분에 우리가 그리된 것이니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람과 사랑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오늘 복음의 장면은 처음서부터 팽팽한 긴장이 느껴집니다. 물론 이 긴장은 주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야기를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장애인을 고쳐주실지 지켜보고 있었고, 고쳐주실 때는 고발해야겠다고 미리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주님도 이것을 미리 알고 계셨을 테지만 정면 돌파입니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을 미루거나 하지 않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충돌이 불가피한데 주님은 충돌도 피할 생각이 없습니다. 주변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핵심입니까? 제 생각에 핵심 중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소극적으로는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남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는 당시 유대교가 중시하는 안식일이 핵심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중요한 것일 뿐이지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이 이것이기에 안식일도 살리는 데 이바지해야만 됩니다. 

안식일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핵심을 간과합니까? 사실 우리는 지극히 하찮은 일들 때문에 자주 핵심을 간과합니다. 

간과(看過)란 지나쳐본다는 뜻인데 어느 것을 보느라 봐야 할 것을 지나친다는 뜻이 있으며, 과오(過誤)를 범한다는 뜻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간과의 잘못을 우리도 자주 범합니다. 복음의 사람들처럼 덜 중요한 것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에 이어 오늘 또 말씀드리지만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과 사랑.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려는 사랑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든 사람과 사랑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핵심인 가치를 간과하지 않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누구인가?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며,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마르 2,28). 

오늘 <복음>도 여전히 ‘안식일 논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지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그들이 입을 열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손을 뻗어라”(마르 3,5)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누구인가?

손에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가슴에 자기 뜻을 꼭 움켜잡고 있듯이, 손에 무엇인가를 꼭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형제들과 주고받고를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곧 자신의 고집 때문에 완고해져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느님과 형제들과 단절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묘한 것은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손을 꼭 쥐고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명, 에덴에서부터 쥐었습니다. ‘선악과’를 손에 움켜쥐었고, 교만과 불순명과 탐욕을 움켜쥐었습니다. 

사실, 그것을 따먹고 높아지려고 한 것이지만, 오히려 추락이었습니다. 금단을 어기고 자유를 행사했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이었습니다. 욕심 부려 자신을 채웠지만, 오히려 단절과 죽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움켜쥔다는 것은 곧 추락이요 속박이요 죽음입니다. 그러니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곧 원죄를 뒤집어 쓴 그리스도인을 표상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꼭 움켜쥐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을 가리고 숨어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 서라. 손을 뻗어라.”(마르 3,5)

오그라든 손을 편다는 것은 단지 움켜 쥔 것을 내려놓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빈손에 못을 박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단지 움켜 쥔 것을 내려놓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건네주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께서는 손을 펴시어 십자가에서 못을 받아들이시고, 구원의 피, 화해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하여 첫 아담이 움켜쥔 손을 펴시고, 새 아담이 되셨습니다. 죽음과 어둠을 몰아내시고 생명과 빛이 되셨습니다. 

오늘 저희는 손을 펴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움켜쥔 것을 내려놓아야 할 일입니다. 손을 뻗어 상처를 입고 구원의 피를 흘려야 할 일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손에 구원의 못을 받아들였듯이 말입니다. 사랑으로 상처 입을 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건네줄 줄을 알아야 할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손이 당신 구원을 전하는 손, 당신 사랑을 건네주는 손이 되게 하소서! .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3,5
손을 뻗어라.

 

주님!
주고받을 줄 아는 
복된 손이 되게 하소서.

주고 싶은 것만 주고,
받고 싶은 것만 받는 손이 아니라

주고 싶지 않아도 주고, 
받고 싶지 않아도 
받는 손이 되게 하소서.

선악과를 움켜쥔 탐욕과 
불순명의 손이 아니라
못과 창을 받아들인 사랑과 
신뢰의 손이 되게 하소서.

손을 뻗어 당신의 사랑과 
구원을 받아들이고
움켜 쥔 것을 나누어주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안식일의 의미 : "졸지 마! 세상은 호구야!"

오늘 복음도 안식일 법의 의미에 대한 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안식은 평화입니다. 평화를 주는 이는 부모이고 창조자입니다. 불안을 주는 부모는 자녀를 사회에 부적응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은 그 평화로서 자녀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안식일에 회당에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습니다. 손은 능력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없어서 세상에 나갈 용기도 낼 수 없다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중앙으로 부르십니다. “네가 주인공이야. 쫄지 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돈 많고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시는지만 살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호구라는 사실을 보여주셔야 했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용기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손을 뻗어라.” 하시고 그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당신이 먼저 세상을 이기지 못하면 자녀에게 평화를 줄 수 없음을. 죽음을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자녀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금쪽이’에 은둔형 외톨이가 나옵니다. 엄마가 음주운전 피해자로 사망하자 아들은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말도 안 하고 컴퓨터만 합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컴퓨터 사용을 제한하자 아들은 울면서 이렇게 소리 지릅니다. 

“제가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게 훨씬 쉬울 테니까요! 진짜 너무나도 살기 힘든데…. 제 인생에서! 제 가정에서! 진짜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제 가정에서! 인생에서! (컴퓨터가) 유일하게 살길을 만들어주고 있다고요! 유일하게….”

아빠는 왜 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없었을까요? 아빠조차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엄마 옷장을 열어놓고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애들 좀 지켜줘. 내가 더 열심히 할게.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당신은 못 와도 내가 갈 수 있으니까 갈게. 가서 또 잔소리해 줘. 너무 그립다. 미안해.”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인데,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날 수 있을까요? 부모는 자녀를 위해 먼저 세상을 이겨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크리스 가드너란 자수성가한 한 인물을 그렸습니다. 그는 1954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나 가난, 가정 폭력, 위탁 양육으로 얼룩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드너는 유명 중개 회사에 무급 인턴십을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에 그는 노숙자가 되어 어린 아들과 함께 보호소와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에서 살면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마침내 가드너의 인내심은 결실을 보았고 결국 Series 7 시험에 합격하여 정규 주식 중개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1987년 자신의 중개 회사인 Gardner Rich & Co.를 설립하여 재정적 독립을 달성했습니다. 수천억을 번 가드너는 자신도 아버지 없이 자랐지만, 엄마도 없는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세상을 이겨야 했습니다. 그는 아직 노숙하면서도 자식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로 누군가가 네게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하게 두지 마라. 나조차도 마찬가지야. 알겠니? 네게 꿈이 있다면, 그것을 지켜야 해. 사람들은 자기들이 뭔가를 할 수 없으니까 네게도 못한다고 말하고 싶어 해.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가서 그걸 가져. 끝이야. 가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도 세상이 주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어야 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어깨를 감싸며 손을 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에 대한 믿음은 이런 안식의 참 의미를 살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안식일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라는 책은 아주 인상 깊습니다. 주인공은 체코 공산 정권 시절, 전도유망한 대학생입니다. 그는 방학 중에 여자 친구와의 연애 사업을 진전시켜 보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여자 친구는 공산당 교육에 참여해 버립니다. 더군다나 여자 친구가 공산당 교육이 너무 기대되고 신난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에 짜증이 난 주인공 루디빅은 곧바로 농담이 섞인 엽서를 아래와 같이 보내지요.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그러나 이 엽서는 공산당을 비판한 것이 되어 대학교에서 쫓겨나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15년을 지내게 됩니다. 사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당에서 쫓겨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요. 친구에 대한 복수와 저주를 계속 하면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됩니다.
 
15년 뒤, 수용소 출소 후에 곧바로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복수의 대상인 친구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복수하려던 대상은 과거이고 자기 환상으로만 존재함을 깨닫게 되지요. 즉, 현재 시점에서 진정한 복수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말, 행동은 언제나 과거일 뿐입니다. 현재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자유로워지기 위해 현재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모두 현재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도 안식일 논쟁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생각만 하고 있지요. 안식일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만들어진 안식일 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 죽이는 것 등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과거에 매여서 예수님을 고발할 생각만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더 확장되어서 바리사이들은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에 있습니다. 즉,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법도 궁극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에 맞춰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면서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뜻은 현재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과거에 매이고, 미래를 걱정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라.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우리는 더 이상 오그라듦의 노예가 아닙니다. 아픔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오그라듦을 풀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지켜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오그라든 아픔을 풀어주시며 우리의 자존감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오그라든 우리의 아픔으로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더 이상 눈치의 노예로 살지 않길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꺾이고 뒤틀린 우리 마음 속을 들여다보십니다. 그만큼 귀한 사람입니다.

당당하게 가운데로 나오고 당당하게 손을 뻗어 사랑을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오그라들게 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아픈 과거가 오그라들어 우리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오그라듦의 헛것이 아닌 치유의 온전하고 건강한 생활이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오그라든 영혼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은 사랑의 영혼입니다.

사랑의 영혼은 가운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며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마음을 뻗어 손을 뻗어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을 정직하게 만나는 온전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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