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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2/26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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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스테파노에게 하늘의 문이 열렸네. 첫 순교자로 오른 그는 하늘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네.

주님, 첫 순교자인 복된 스테파노의 천상 탄일에 거행하는 신비를 저희가 삶으로 드러내게 하시고 숨을 거두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성 스테파노를 본받아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소서.

2024년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2월 26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2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6,8-10; 7,54-59)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0,17-22)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31,6)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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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사도 6,8-10; 7,54-59
오늘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무렵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마태 10,17-22
오늘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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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24년 12월 26일
김연수 스테파노 신부

 

✚ 성 스테파노 소개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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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은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기도하셨고,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하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못 박은 이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기도하셨고, 스테파노는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하여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하고 기도합니다.

참된 믿음은 마치 스테파노가 살아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이웃들을 대하는 것도,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도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신비가 이루어지게 합니다(갈라 2,20 참조).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여정입니다. 그분께서 사랑하셨던 것을 우리도 사랑하고, 그분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우리도 따라 걷습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믿음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과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만나고 배우며 닮게 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10,22).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

“첫 순교자인 복된 스테파노의 천상 탄일에 거행하는 신비를 저희가 삶으로 드러내게 하시고 숨을 거두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성 스테파노를 본받아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소서.” 

성탄절에 그리고 그것도 주님 성탄 바로 다음 날에 성탄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순교자 축일을 지내고, 첫 순교자 스테파노 축일을 지내는지 그 의미가 오늘 본 기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세상에 태어나시고 스테파노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지요. 주님이 세상에 태어나심으로 스테파노를 포함해 우리 인간이 천상에 태어나게 됨을 뜻하는 겁니다. 

주님의 모든 신비는 교환의 신비이고 성사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는 주님의 죽음으로 우리 인간이 부활하게 되고, 주님의 성탄과 육화의 신비는 주님의 땅으로 내려오심으로 우리 인간이 하늘로 오르게 되고, 주님의 성탄으로 우리 인간이 천상에 태어나게 되는 신비지요. 

문제는 있습니다. 교환이 이루어지려면 그 교환에 동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늘과 땅을 교환하자고 하시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면 우리는 땅에서 하늘로 오르겠다고 동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주님께서 땅으로 내려오셨어도 우리가 하늘로 오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주님의 성탄은 우리 구원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아무리 구원 열차에 오르라고 초대해도 우리가 그 열차를 타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오늘 축일로 지내는 스테파노는 이 교환의 제의에 처음으로 응답하여 처음으로 천상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스테파노에 대해 사도행전은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라고도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였다.”라고도 하는데, 사도행전을 보면 스테파노는 적대자들을 이렇게 초대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물론 그들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그 초대에 응답도 하지 않지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분노로 가득 찼기에 하늘 대신 스테파노에게 증오의 눈길을 보냅니다. 스테파노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초대를 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어려움과 인내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통로

어제와 오늘, 우리는 이 개의 ‘두 탄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제는 하느님의 지상탄생일이었고, 오늘은 인간의 천상탄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지상탄생과 스테파노의 천상탄생, 이 ‘두 탄생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탄생이 ‘자기 비움’이라는 일종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곧 구세주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셨으며, 스테파노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신 분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있는 하느님의 지상탄생 없이는 뒤에 있는 천상탄생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살았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처럼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한 사랑의 순교’로 죽으셨듯이, 스테파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순교’로 죽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사도 6,59)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26)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하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이처럼,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서도 불타는 사랑으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랑에 “하늘이 열리고”(사도 7,56), 하늘은 그를 받아들여 사랑의 순교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내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오히려 자신 안에 품은 하느님의 사랑을 퍼 올리면, 우리 안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이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미움이나 배척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움과 배척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미움과 박해를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움’과 ‘인내’를 통하여, 구세주와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려움’과 ‘인내’에는 고통을 변화시켜 하느님과의 만남이 되게 하는 묘한 이법이 있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0,22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 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열린 하늘을 보는 사람의 특징: 세상 모두와 맞설 수 있는 진리가 있다.

저는 유학을 마치고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얼굴과 살이 붉게 올라오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방, 양방, 심지어 레이저로 굵어진 핏줄을 터뜨려봤지만, 다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계면활성제 때문일 수 있겠다 싶어서, 비누를 쓰지 않았더니 그런 증상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현재까지 10년 넘게 샴푸도 쓰지 않고 얼굴과 몸이 비누칠도 하지 않지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살을 박박 긁어내고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또 크림을 바르곤 합니다. 저는 인간이 그렇게 창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었고 실험해 보니 정말 괜찮았습니다. 

만약 제가 이 주장을 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보이면 당연히 의사들, 비누나 샴푸 회사, 그리고 비누와 샴푸를 쓰는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박해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나 그렇게 살아. 우리는 달라!”라고 말할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이와 마찬가지로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입니다. 사도행전은 스테파노의 순교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사도 7,55). 

스테파노가 본 하늘의 환시는 그의 궁극적인 운명을 드러냈고, 그가 고통 속에서도 인내와 희망을 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는 말은 그들로부터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될 것임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18-19에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세상이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해 있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란 것이 내가 세상 모든 사람의 반대에 앞서서도 굽히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의 계시를 보고 담대히 외쳤던 인물로, 세상으로부터 큰 반발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아모스는 부정한 행위를 일삼던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며 그들의 죄를 고발했습니다. 그의 예언이 너무 날카롭고 불편했기 때문에,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는 아모스에게 이렇게 말하며 그를 협박했습니다. 

“선견자야, 유다 땅으로 도망쳐 가서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거기에서나 먹고살아라. 그러나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의 성소요, 왕국의 성전이기 때문이다”(아모스 7,12-13).

그러나 아모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담대히 답했습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가축을 기르며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다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명령하셨다.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아모스 7,14-16).

아모스는 예언을 배운 적도 없고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의 반대에 맞설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볼 때 예언에 힘을 받게 합니다. 요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에게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에게 와서 장차 있을 멸망에 대해 예언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 생각이 변하여 회개하였습니다. 

진리는 사는 사람은 그래서 이 세상에서 세상 모든 이들의 반대에 부딪혀도 굽히지 않는 신념이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과학적 진리를 밝히며 세상의 반대에 부딪혔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며, 당시 교회의 지배적 관점과 맞섰습니다. 그의 주장은 종교적 권위와 과학적 진실 사이의 긴장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연구를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결국 그의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지식과 관점을 변화시켰으며, 과학혁명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것이 하늘이 열려있고 거기서 진리를 보는 사람의 삶입니다. 성녀 조안나 베레타 몰라는 임신 중에 자신과 아기의 생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습니다. 그녀는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는 항상 아이를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끝까지 신앙 안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말은 낙태를 많이 하는 나라나 그런 것으로 돈을 버는 산부인과 의사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모든 반대에 맞설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늘을 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강력하고 진실된 설교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부패한 지도자들과 맞섰습니다. 그의 용감한 설교는 세속 권력자들과의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는 추방당하고 여러 차례 박해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으며, “나는 하늘의 시민이다. 나를 어디로 보내든, 나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다.”라는 그의 말은 그의 굳건한 신앙과 인내를 보여줍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이 된다.”라는 말이나 “하느님은 한 분이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겠지만, 이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세상의 모든 박해와도 타협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내가 열린 하늘을 보는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박해받아도 포기하지 않을 진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열린 하늘을 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삼대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입니까? 그의 책보다 아마 그의 삶이 먼저 생각나실 것입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산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근처 이웃들이 칸트를 보고 집의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하지요. 그만큼 그가 정확한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뇌과학자들은 일체의 잡념을 없애려면 뇌에 어떤 변화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변화에는 뇌가 곧바로 반응하기 때문에, 집중해야 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자기 학문에 집중하기 위해, 삶의 일상 안에서 늘 똑같이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잡념 없이 어디에 온전하게 집중하려면, 일상의 규칙적인 루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에 신경 쓰는 우리입니다. 
 
제게 많은 분이 기도하는데 잡념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십니다. 기도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기도만 했다 하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를 위해 자기만의 루틴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주일미사 참석하는 것으로 충분히 주님께 집중할 수 있을까요?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에만 가서 기도하면 잡념 없이 주님께 집중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은 내 삶 전체가 신앙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주님께 제대로 집중하면서 그 안에서 참 기쁨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를 기념합니다. 성인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뽑은 부제로, 식탁 봉사를 위한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로지 주님께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진리를 증언했습니다. 유다인들의 공격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으니,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돌에 맞아 죽음으로써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어 내면서 주님께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는데,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몸도 마음도 힘든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기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무엇을 말 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성 스테파노의 여정에 함께하시는 성탄의 하느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최상의 평화를 우리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모든 것을 내어맡기는 봉헌은 최고의 사랑이며 최후의 완성입니다. 

성탄의 삶은 순교의 삶입니다. 삶이라는 한계상황에서 만나는 신앙의 뜨거운 진면목입니다. 순교의 사람은 비폭력의 길을 선택합니다. 비폭력의 실천이 바로 성탄의 실천입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께 맡깁니다. 이 시대의 성탄과 이 시대의 순교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봉헌입니다. 

봉헌으로 더욱 빛나는 성탄이며 봉헌으로 더욱 뜨거워지는 사랑의 순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 무엇을 내어맡기는지를 묻는 첫 순교자 축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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