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4/09/28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9. 28.
반응형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2024년 9월 28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9월 28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9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코헬 11,9―12,8)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오늘 복음
    (루카 9,43ㄴ-45)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 오늘 말씀 카드
    (코헬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코헬 11,9―12,8
오늘 제1독서

 

먼지가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이 하느님께 되돌아가기 전에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10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그때 집을 지키는 자들은 흐느적거리고 힘센 사내들은 등이 굽는다. 맷돌 가는 여종들은 수가 줄어 손을 놓고 창문으로 내다보던 여인들은 생기를 잃는다. 


길로 난 맞미닫이문은 닫히고, 맷돌 소리는 줄어든다. 새들이 지저귀는 시간에 일어나지만 노랫소리는 모두 희미해진다.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양각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루카 9,43ㄴ-45
오늘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28일
서웅 마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8:36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생중계 성당

 

  • 가회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가회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가회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06: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생중계 없음


  • 남양성모성지 온라인 매일미사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남양성모성지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생중계 없음 / 화 11:00 / 수 11:00 / 목 11:00 / 금 11:00 / 토 11:00


  • 원당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원당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원당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10: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10:00


  • 초당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초당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초당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0:30 / 월 06:30 / 화 19:30 / 수 10:00 / 목 19:30 / 금 10:00 / 토 10:00


  • 팔로티회 온라인 매일미사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분당 팔로티회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허무한 삶 속에서 오늘을 즐기는 방법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던 코헬렛이 그다음에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고 하더니, 이제는 젊음을 즐기고 근심을 떨쳐 버리라고 권고합니다.

코헬렛은 오늘 독서에 해당하는 부분 외에도 그의 책 여러 곳에서 인생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던 그의 태도와 모순되게 보여서 어떤 이들은 이 책이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코헬렛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 없음을 절감하였고,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께서는 모든 일을 “제때에 아름답도록”(코헬 3,11) 만드신다고 믿을 때, 더 이상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삶을 어둡게 만들지 않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 즐기라는 것은 영원한 기쁨이 아닙니다. 코헬렛은 아직 영원한 생명이나 천국의 기쁨 같은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이라고 믿으며 맡깁니다. 

젊은 시절에는 젊은 시절에 누릴 수 있는 것을 즐기고, 꽃이 피면 그 꽃이 시들기 전에 꽃을 즐깁니다. 젊거나 꽃이 핀 그 순간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심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순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의탁으로 채웠기에, 코헬렛은 허무한 삶 속에서도 오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이 아니면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라’는 번역이 과연 잘 된 번역일까요? 색안경을 끼고 보면 이 번역은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즐기라’는 것이 퇴폐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의미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번역보다 앞선 공동번역성서를 보면 사실 오해를 살만한 면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아, 청춘을 즐겨라. 네 청춘이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겨라.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아라. 그러나 즐기라는 말이 영어로 ‘Rejoice’라고 하고, 개신교 번역에서는 ‘즐거워하라’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환호하라’, ‘크게 기뻐하라’, ‘크게 즐거워하라’라는 뜻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철학에서 쾌락주의도 나쁜 것이 아닌데 많은 오해를 받습니다. 에피쿠로스가 얘기하는 쾌락은 일시적이고 말초적인 쾌락이 아니라 욕망을 오히려 절제하고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곧 아타락시아의 경지이며, 고통의 부재 또는 고통의 극복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가 우울증에 빠지거나 비관주의적이거나 고통에 함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이 얼마나 불행입니까? 더 쉽게 얘기하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어떻게든 즐겁게 살려는 ‘태도’입니다.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라는 저의 행복론과도 통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제가 무조건 행복하려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행복이 조건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되겠다는 저의 의지이고 태도지요.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유하면 행복하다면 그것은 돈에 좌우되는 행복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불완전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코헬렛서는 근심에 머물지 말고, 고통에만 머물지 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얘기하지요.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 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그러니 더 큰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근심과 고통이 마음 안에 머물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수난과 십자가의 길에는 발을 내딛지도 말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인생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이루신 다음, 산에서 내려와 더러운 영에 들린 아이를 고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 9,44)

그러나 제자들은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루카 9,45 참조).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라는 말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순명’, ‘순종’을 표현할 때, 구약성경은 히브리 단어 ‘쉐마’를 사용하는데, 이는 단순히 청각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아듣는 것보다, 말씀하시는 분의 명을 ‘마음의 귀에 담아 행동에 옮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들어,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그의 모든 명령을 성심껏 실천하면, 너희 하느님께서는 땅 위에 너희를 높여주실 것이다.”(신명 28,1)

그래서 말씀은 ‘믿음의 순명’과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따를 수가 없나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하느님이 너에게 바라시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실,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는 성경본문이 아무 말씀도 안 할 때도 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불투명한 말이나 난해할 때도 있습니다. 곧 말씀이 뜻을 감추고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도 사랑의 마음, 순명과 믿음으로 응답하고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알아듣기 어려운 성경본문을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고 이렇게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장애라고 여겼던 대목들이 실로 크고 거룩한 유익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필로칼리아)

또한 사막의 마카리오는 역시 믿음으로 먼저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는 분량에 만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애쓰시오. 그리하면 이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바가 여러분의 영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들은 말씀을 비록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 채로 말씀하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곧 '신비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이해하는 바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비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삶은 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당신께 오라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말씀, 혹은 삶은 품고 살아야 하는 선물이요, 그것을 통하여 그것을 주신 분을 만나야 하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인생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셨듯이, 오늘 우리도 형제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는 ‘부활 신비의 삶’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루카 9,45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하루에 책 한 권을 목표로 책을 읽습니다. 맞습니다. 다독합니다. 물론 많은 분이 이것저것 많이 읽는 다독보다는 한 권의 책이라도 정독하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정독보다 다독이 맞다고 판단됩니다.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오랫동안 한 권의 책만 읽는 것보다는 여러 장르의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서 깊이가 부족해도 넓게 지식을 갖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질보다는 양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 안에서도 질보다 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실패라는 ‘양’입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도자기 공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학기 과제를 내면서 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평가 기준을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50개 이상을 만들면 A, 40개 이상이면 B, 그 이하는 C”라고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몇 개를 만들든 가장 잘 만든 한 점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어느 그룹에서 최고의 작품이 나왔을까요? 
 
첫 번째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이 만들면서 실패의 과정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완성도 높은 최고의 작품을 만든 것입니다. 
 
양보다 질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질 높은 ‘나’를 만들려면 양적으로 많은 실패가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멀리하려고 하지만, 이 실패는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양적으로 많은 실패에 질적으로 높은 성공을 가져올 확률도 높아집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던 예수님이고, 예수님에 대한 평가 역시 대단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 상은 정치적 메시아입니다.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할 힘 있는 임금님, 개선장군처럼 늠름하게 들어오는 영광의 임금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없이는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다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이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부활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모든 실패처럼 보이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 끝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영광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늙은이는 젊은이들과 어울리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마라.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해오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이야기하지 마라.

- 조너선 스위프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시는 참사람이 계십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우리들에게 넘겨지십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언제나 하느님 마저 자신의 이해득실에 의해 넘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람입니다. 

넘겨지심으로 삶의 소중함을 다시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람을 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의 손에 당신의 목숨을 맡기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힘 없이 우리들에게 넘겨지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넘겨지면서도 사람을 도와주시는 놀라우신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짓밟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겨지심으로 오랫동안의 악순환을 끊으십니다. 넘겨지심이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내어주시는 사랑임을 십자가의 수난에서 배웁니다. 

우리의 사랑은 다 내어주시는 하느님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하느님 사랑 없이 존재할 순 없습니다. 내어주시는 사랑을 향하는 사랑의 참된 새날 되십시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