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니, 이제는 죽음이 그분을 누르지 못하리라. 알렐루야.
완전한 빛이신 하느님, 저희가 이 세상에서 파스카 신비를 경축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으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4년 4월 22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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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1,1-18)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오늘 복음
(요한 10,1-10)
나는 양들의 문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0,3)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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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요한 10,1-10
오늘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22일
태철민 엘제아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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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여기로 와라, 이게 문이다!
서로 오랫동안 사귀어 왔어도 상대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하느님을 알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매번 의심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공적으로 소개하는 ‘계시’이고, 요한 복음서는 이 계시를 “나는 -이다.”라는 문장으로 선언합니다. 그 어떤 과장이나 기교 없이 “나는 -이다.”라는 조금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복음에서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당신을 계시하셨다면, 오늘은 “나는 문이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라고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양 우리의 문’이라고 하시지 않고 “양들의 문”이라고 하신 부분을 눈여겨보게 되는데, 단순히 물리적인 울타리의 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고 ‘풀밭을 찾아 얻게’ 하며 ‘구원’으로 들어가게 하는 ‘문’임을 선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독서는 바로 그 문으로 들어가 이제 새로운 전망을 가지게 된 베드로의 모습을 전하여 줍니다. 그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가서 유다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음식을 먹은 일이 논란이 되자 베드로는 명백하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새 이스라엘’, ‘진정한 양 떼들’을 위한 문이 열렸음을 장엄히 선포한 것입니다.
사방이 막혔다고 느낄 때,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당황할 때, 예수님께서는 홀연히 문이 되어 주십니다. ‘여기로 와라, 이게 문이다!’라고 하시며 몸소 당신께서 ‘양들의 문’이 되어 주십니다. 그 문만이 숨 막히는 압박과 불의, 공포와 불안에서 우리를 참된 자유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이름을 불러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요한복음은 한 장 전체가 한 주제를 다루곤 합니다. 그래서 지난주 6장에서는 빵을 주제로 생명의 빵이 주제였고, 이번 주는 10장으로서 목자와 양들의 관계가 주제입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목자는 어떤 존재인지 얘기합니다. 목자는 한편으로는 양들을 우리 안에서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밖으로 불러내어 풀을 뜯어 먹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하여 목자가 있는 한 양들은 안전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존재입니다.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목자는 양들이 다른 이의 양이 아닌 자기 양이 되게 하고,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목자는 양을 떼로 대하지 않고 하나하나 소중히 대합니다.
다들 나가 알아서 풀을 뜯어 먹어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데리고 나가서 풀을 잘 뜯어 먹는지 살피며 먹게 하는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 그의 인격과 고유성을 존중하며 소중히 대하는 겁니다.
이런 목자의 사랑을 받는 양들은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목자의 그 양이라면 자기 목자를 몰라보고 다른 목자를 따르지 않고,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듣고서 자기 목자를 따라갈 것입니다.
목자의 익숙한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그래서 낯선 목소리와 분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 불감증의 양일 것입니다.
목자는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데 양은 목자가 자기를 부르는지 모르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목자의 사랑은 망실되는 겁니다.
여기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나 이 시를 소개하며 끝을 맺겠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이 목자시라면 나는 양인가? 그럼 문지기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착한 목자로 등장하십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따라갑니다. 이는 마치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헛갈릴 수 없습니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부르심은 마치 “마리아야!”라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목소리와 같습니다. 이것으로 아이는 어머니의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어머니로 여기는 이들은 어머니의 보호를 받으면서 절대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목자는 한 명입니다. 어머니가 하나인 것처럼. 어머니가 여럿일 수 없듯, 아버지께 가는 길도 하나입니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어머니를 좇아가면 잘못된 아버지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풀밭에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양들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양들이라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른다면 우리는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양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일한 목자와는 구별되는 일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문지기’입니다. 문지기는 양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불러주시기를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제가 다른 신부님과 몇 명의 평신도분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공동체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미사하고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눕니다. 가끔은 힘든 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끔은 기쁘게 웃고 떠들기도 합니다.
이 공동체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공동체가 미사를 하고 나눔을 하기에 그 직무를 담당합니다. 미사와 나눔이 빠지면 이 공동체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사제로서 이 공동체의 울타리가 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공동체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아직 세례받지 않은 사람, 혹은 세례받았더라도 오랜 냉담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양들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불교를 믿던 한 자매가 명동성당에서 교리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자매는 이번 모임 때 30년 만에 고해성사했다고 말했습니다. 부활 전에 모임을 하고 헤어질 때 제가 “이번 부활 땐 꼭 미사 나가세요!”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하나의 명령처럼 들렸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혹은 고해성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며 망설였는데 막상 고해성사하고 성체를 영해 보니 그동안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 말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르신 것입니다. 30년 만에 성체를 영한 그분은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문지기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불러주실 때까지 양들을 지키는 역할입니다. 공동체가 유지되게 하는 역할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역할은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을 불린 이는 새롭게 공동체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리나 거짓 목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참 목자에게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 기다리는.
저도 교사회를 하다가 교사 피정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뒤돌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묶어 주는 공동체가 없었다면 그 부르심을 받는 게 가능했을까요? 우리에겐 주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엮어주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미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부르심을 기다리는 양들이 아닌, 양 우리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는 양들의 문이다.
어느 본당에서 사목 위원으로 봉사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본당신부님께서 아주 열정적이라서 신부님과 함께 즐겁게 사목한다는 것입니다. 전의 신부님 때보다 일이 많이 늘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회 안에서 봉사하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당신부님께서 너무 즉흥적으로 일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전례가 바뀌거나 일정이 변경되어 혼란스럽다고 하십니다. “이 점만 아니라면….”이라는 말씀에 뜨끔했습니다. 그 본당신부님 모습이 제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신자들에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생각을 뒤로 미루면 괜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바로 행동했습니다. 문제는 이를 진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 박자 늦추는 삶이 필요함을 그리고 이 역시 또 다른 배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의도로 행동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누구는 그 좋은 의도로 곤란한 상황에서 힘들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겸손은 기다림이 아닐까요? 나서서 행동하면 물론 빠른 일 처리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이에 따라 힘들고 아플 수 있다는 것도 떠올려야 했습니다.
천천히 기다리는 모습이 예수님의 주특기였음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어도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까? 진정한 겸손의 모습을 예수님께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겸손의 주님임을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해 주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문이 계속해서 자기 자리를 옮길까요? 문은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킵니다. 그래야 양들이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양들에게 이 문은 구원의 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주님이 계시기에 길을 잃었다가도 얼른 그 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해 들어올 때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 겸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모범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이 주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우리는 외부인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양들을 살리는 문이 있습니다. 주님이 없으면 문도 없고 우리도 없습니다. 그 어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양들의 문이 있습니다.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집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문이 있듯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주님이 계십니다. 문(門)은 도움이며 문은 은총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생명의 문을 필요로 합니다.
생명으로 가는 생명의 문이 있습니다. 생명의 문은 우리를 기르며 우리를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의 마음을 만나는 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문이십니다.
도둑이며 강도는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옵니다.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도둑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생명의 문과 함께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생명은 생명의 문과 언제나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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