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네. 알렐루야.
하느님, 믿는 이들을 세례의 물로 새로 나게 하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저희를 지켜 주시어 저희가 온갖 오류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충실히 간직하게 하소서.
2024년 4월 20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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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9,31-42)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오늘 복음
(요한 6,60ㄴ-69)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6,67)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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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요한 6,60ㄴ-69
오늘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20일
김남혁 대건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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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성체성사의 핵심은 ‘먹음’이 아니라 ‘닮아 감’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내용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지독한 거부감과 불편함을 드러냅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여 가르쳐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곧 당신의 말씀은 살과 피를 실제로 먹으라는 강요가 아니고, ‘영적’이고 ‘진정한 생명’에 대한 내용이었음을 풀어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은 길게 이어졌던 ‘생명의 빵’ 담화의 결론이며, 요한 복음서 6장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복음에서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한 베드로가 어떻게 성숙하여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약속대로 예수님 곁에 남아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하며 그분을 닮아 가는 여정을 걷습니다. 남아 있고 머물러 있었기에 점차 스승님을 닮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핵심은 ‘먹음’이 아니라 ‘닮아 감’입니다. 살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예수님과 일치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이 성체성사의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아 불편하여도 그대로 머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복음적 선택이고 최선의 지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영의 선택
우리는 한 주간 내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몸과 피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내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넘어 듣기에 거북한 말씀을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당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주신다고. 이에 사람들은 급기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듣기에 거북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내가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기에 그래도 이해하려고 애쓰며 주님 곁에 머물러 있으려 했지만 듣기에 너무 거북한 말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다며 마침내 떠나버립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겠냐고 하시며 당신 말씀은 거북한 말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주님의 말씀이 거북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 영적인 말씀이기 때문이고, 영적인 말씀이 거북한 한 이유는 우리가 육적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며 영적으로 한 말을 육적으로 이해하면 거북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는 이에게 하느님 나라를 얘기하면 거북할 수밖에 없고, 권좌에 오르려는 이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면 거북할 수밖에 없음과 같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거나 못 알아듣거나 하는 것, 주님의 말씀이 달콤하거나 거북한 것은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 안에 주님의 영이 계시냐 육의 영이 있느냐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영적인 말이 거북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몸과 관련한 권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영 안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드님도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기에 아버지를 보는 방법과 다르게는 아무도 아드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영과 신성으로 보지 않고, 인성으로만 보아 그분이 하느님의 참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보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던 모든 사람은 단죄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축성되는 성사를 보면서, 영과 신성에 따라 이것이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라는 것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모든 사람도 단죄받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이것을 증명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서 머무르시는 주님의 영이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무시게 하는 것인데 주님의 영이 자기 안에 머무시게 하는 쪽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그것을 포기하고 떠나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쪽 사람입니까? 주님은 어느 쪽 사람이냐고 오늘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이에 베드로 사도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선택입니다. 내 살던 대로 살겠다며 육의 영을 선택할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추구하게 하는 성령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대로 내 안에 어떤 영이 있는지 먼저 식별하고 다음으로는 성령을 선택하고 성령을 모셔 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처럼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전에 밥을 먹다 보면 입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돌 씹히는 소리입니다. 지금이야 돌 씹을 일이 전혀 없지만, 예전에는 돌이 꽤 많아서 쌀을 일어서 밥을 안쳐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밥에 쌀보다 돌이 많지는 않습니다. 만약 돌이 더 많다면 그것은 쌀밥이 아닌 돌밥이겠지요. 그래서 돌이 있어도 밥을 먹습니다. 왜냐하면 돌이 있다고 먹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돌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도 밥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 오히려 큰 돌이면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가려내기 쉽습니다. 문제는 모래알처럼 작은 돌입니다. 잘 보이지도 않아서 쌀과 구분하기 힘듭니다.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큰 고통과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남들이 보기에 별것 아닌 어려움이 더 힘듭니다. 큰 고통과 시련에는 다른 이의 도움도 받습니다. 그러나 작아 보이는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는 “그런 걸 가지고 뭐가 힘들다고~~”하면서 핀잔만 듣기 때문입니다.
어떤 삶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의 위로가 힘들다고 해도 주님께서는 더 큰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의 위로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 그 자체이신 분께서 내게 그런 아픔을 주실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커다란 착각입니다. 세상 안에 고통과 시련을 겪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벌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계속 겪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이때 주님의 손을 잡고 함께 하는 사람은 고통을 오히려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주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고통을 벌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고통과 시련이 있다고 해서 주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역시 은총으로 받아들이면서 주님 안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음에 길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 옛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 역시 어리석음에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면서 예수님을 거부하고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 되어야 합니다. 고통과 시련 안에서도 주님을 보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그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면서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어제가 만들어 낸 길들을 밟고, 오늘이라는 길 위를 걷는다.
- 김종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떠남이 많은 우리들 삶입니다. 바라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듣게 됩니다. 사람으로 살고 사람으로 죽는 법을 주님 안에서 다시 배웁니다.
무너진 약속과 어설픈 고백들을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떠난 사람의 이름과 남아있는 사람의 이름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우리가 잃어버렸습니다. 만남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만남에 우리가 머무르는 것입니다.
같은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만남과 떠남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입니다. 내어놓는 마음이 나눔의 마음이 되고 머무름의 기쁨이 됩니다. 머무름은 올곧은 현재진행형이 됩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머무름이 있습니다. 머무름의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머무르지 못하면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머무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머무르는 곳에 마음이 있고 그 마음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떠남을 치유하는 머무름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머무름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밖에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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