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알렐루야.
온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복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영광스럽게 고백하도록 부르셨으니 그들의 모범과 전구로 저희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복음의 명령에 언제나 충실하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묵시 12,10-12ㄱ)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 오늘 복음
(요한 12,24-26)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묵시 12,10-12ㄱ
오늘 제1독서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나 요한은
10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던 자, 하느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발하던 그자가 내쫓겼다.
11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안에 사는 이들아, 즐거워하여라.”
요한 12,24-26
오늘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29일
한장호 베네딕토 신부
✚ 윤지충 바오로와 순교자들 소개 00:07
✚ 미사시작 01:23
✚ 강론시작 15:02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
오늘은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시복하신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1984년 한국 103위 순교 복자의 시성 과정에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한국 교회가 평신도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시작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왜 이들 복자에는 초기의 평신도 순교자들이 없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자세하게 순교 기록을 남긴 후대의 순교자 중심으로 먼저 시복을 추진하면서 초기 순교자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교황께서는 초기 순교자들도 조사해서 시복을 추진하도록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그 결실이 2014년 124위 순교 복자의 탄생입니다.
십 년 전 사제 안식년을 맞아 칠십 일 동안 전국 도보 성지 순례를 하였는데, 그때 특별히 감명 깊게 순례한 곳들이 바로 새로 시복된 복자들의 성지였습니다.
경남 진주시 사봉면 사봉 성지에는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의 무두묘가 있습니다. 효수형을 받은 까닭에 머리는 관아에 남겨 두고 몸만 옮겨 와 모셨다고 합니다. 경남 함안의 대산 성지 성당에는 스물두 살에 혹독한 매질 끝에 장독으로 순교한 복자 구한선 타대오가 잠들어 있습니다.
김해시 진례읍의 산 중턱에는 복자 박대식 빅토리노 순교자의 묘지가 있습니다. 성지로 오르는 산길은 좁고 엉성하였습니다. 본래는 부유한 집안 출신인데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순교한 뒤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선산에 모시지 못하고 그곳에 간신히 묘를 꾸렸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가슴이 먹먹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시복된 지 십 년이 지났으니 이들 성지도 많이 바뀌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만간 안식년을 얻는다면 다시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생각지 않는다면 자기 목숨을 미워하고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면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무엇 하러 잃습니까?
그러므로 잃어야 할 자기 목숨은 이 세상에서의 목숨이고, 얻어야 할 목숨은 저세상에서 얻게 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잃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는데 누구나 때가 되면 죽게 되고 자기 목숨을 잃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이런 육신의 죽음이 아닐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잃어야 자기 목숨이란 육신 생명이 아니라 바로 죽여야 할 자기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미워하고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기는 배타적인 자기이고,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기이며 자기를 희생할 줄 모르는 자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비유를 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이르도록”이란 말의 의미를 새겨 살아도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살고 죽어도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이고,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자기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는다고 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위해 산다는 것이지요. 주님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웃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축일을 지내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기에 이들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모범을 보고 배우는 오늘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섬김의 순교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그들 중 5위(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가 1839년 전라도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날입니다. 이들은 한국초기교회의 순교자들로서, 시대로는 오히려 103위 성인보다도 앞서 사셨던 분들입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병인박해 순교자 103위를 시성했으나,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교회를 일궈낸 이들이 누락되었다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에 의해 신해박해(1791)부터 병인박해(1866)까지의 124위 순교자들이 시복된 것입니다. 그들 중 124위 중 최연소자는 12세로 이봉금 순교자이며, 최고령자는 75세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 순교자입니다.
이들 가운데,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종사촌입니다. 전라도 진산 출신으로 1790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이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가 체포령을 내려지자 자수했습니다. 그는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입니다. 구베아 주교의 파견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1794년에 입국했습니다. 강완숙 집에 숨어 지내면서 성사를 집전해 6년 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늘리는 데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신유박해 때 귀국을 결심했다가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했고,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의 아버지인데, 형 약전에게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에 입교했습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해 주문모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게 보급했고, 평신도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다 1801년 순교했습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첫 기념일을 앞두고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 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님은 <특별담화문>에서, 그들은 “신분 차별과 불평등, 가난이 일상화되었던 시대에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보여주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복자들에게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고 권고하였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서, 윤지충 바오로를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진산 군수가 “네가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 이송되어서도 “왜 사교에 빠져 방황하느냐?”고 문책하자, “저는 조금도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사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는 말씀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곧 목숨을 바쳐 섬기는 순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이야말로 곧 “순교”입니다. “섬김”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섬김의 순교”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2,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형제를
존중하게 하소서.
형제를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 하게 하소서.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를 떠받들어
사랑으로
순교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순교 사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순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순교를 말하면 누가 좋아할까요? 왜 죽어야 하는지, 죽는 건 고통은 아닌지 의아해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순교가 행복임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어디서 올까요? 부처님이 잘 보신 것 같습니다. 바로 집착에서 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랄 때 지옥을 산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성경에서 부자 청년이나 롯의 아내를 생각해봅시다. 롯의 아내는 집착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자 청년도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집착의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깊은 바닷속 인어공주는 인간 왕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인간이 되어 그와 함께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집착적인 사랑 때문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내어주고, 걸을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감내합니다. 그러나 결국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상적인 사랑과 특정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얼마나 큰 희생과 고통을 초래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욕구가 다 채워지면 고통이 사라질까요? 그 고통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왜냐하면 모든 집착은 생존과 연결되기에 생존에 집착하는 한 욕구에 집착하는 결과가 됩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영원한 삶에 대한 강한 집착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불로장생의 약을 찾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동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백성이 고통받았습니다. 정작 자신은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 속에서 살다가 영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단순한 명상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차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집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까지 아깝지 않을 이유가 필요합니다. 목숨을 내어줄 이유는 사람 사랑의 의무입니다. 사랑은 목숨을 내어놓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의무가 될 때 결국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자캐오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지 엘리엇의 ‘실라스 마너’의 줄거리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실라스 마너는 가장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며, 약혼녀마저 그 친구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절망에 빠진 실라스는 '래블로'라는 새로운 마을로 이주하여 오직 베 짜는 일에만 몰두하며 은둔자처럼 살아갑니다.
세상과의 모든 교류를 끊은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삶의 목적은 밤낮없이 일해서 번 돈, 즉 반짝이는 금화였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사랑과 신뢰를 잃은 공허함을 금화를 세고 어루만지는 행위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라스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금화 항아리가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삶의 유일한 의미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 실라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새로운 빛을 가져다줍니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 아편 중독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이 실라스의 오두막 근처에 쓰러지고, 그녀의 어린 딸 '에피'가 불빛을 따라 그의 집으로 기어 들어온 것입니다.
처음 실라스는 금발의 아기를 보고 자신의 사라진 금화가 돌아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곧 살아있는 생명인 에피의 온기와 순수함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는 에피를 자신의 딸로 삼아 정성껏 키우기 시작합니다. 에피를 돌보는 과정은 실라스에게 잊고 지냈던 인간적인 감정과 사랑을 일깨웠습니다. 에피의 해맑은 웃음과 재롱은 그의 황금에 대한 집착을 서서히 밀어냈고, 그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불어넣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에피를 통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에피는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고, 에피의 친아버지인 마을의 지주 고드프리 캐스가 뒤늦게 나타나 에피를 자신의 딸로 인정하고 부유한 삶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고드프리는 과거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에피의 존재를 숨겼지만, 이제 후회하며 에피를 데려가려 합니다. 그러나 에피는 자신을 길러준 실라스 마너 곁에 남겠다는 확고한 선택을 합니다.
에피의 이러한 변함없는 사랑과 선택은 실라스에게 그 어떤 금화보다 값진 '참 행복'을 안겨줍니다. 그는 자신을 배신했던 과거의 기억이나 금화를 훔쳤던 도둑(던스탄은 이미 죽었지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에피를 버렸던 친아버지 고드프리에 대한 원망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에피의 사랑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운 존재로 완성됩니다.
사랑에 대한 의무는 어쩔 수 없이 다가옵니다. 여기서 에피는 마치 한 알의 밀알, 혹은 성체와 같습니다. 이것을 키워내면서 실라스를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었고 집착이 사라지지 용서도 쉬웠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이고, 그래서 순교하라는 것입니다. 순교는 사랑의 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면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결국 이 세상에서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아이들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그에 반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어느 물리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억력이 감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뇌의 도파민 분비 감소로 인해, 또한 새로운 경험 감소 등의 이유가 있다고 들었지만, 이 물리학자가 말한 ‘기억력 감퇴’라는 말이 제일 크게 와닿았습니다. 기억나지 않으니 하는 일 없이 시간만 지난 것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많은 것을 쉽게 기억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기억하기에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분, 그래서 한숨짓는 분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기억에 남을 일을 많이 하자.’
잊어 버려도 많은 일을 한다면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에 남을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속도를 자기가 정할 수 있다는 것도 은총이 아닐까요? 그만큼 기억에 남을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에 남을 일보다 편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합니다. 자연히 기억에 남지 못하고 시간만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뿐입니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을 어떤 일을 만들어야 할까요?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충분히 기억에 남길 만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것보다 주님의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 세상의 영광보다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좇는 삶, 이런 그들의 삶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함을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순교자들이 보여주셨던 신앙의 모범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기억에 남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신앙의 선조들 덕분에 편안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삶,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삶이 아닌, 자기 모두를 주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억에 남을 일을 하는 삶,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삶을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과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의 명언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아이리스 머독).
빠다킹 신부의 11번째 책,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신청은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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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그냥 맺히지 않습니다. 열매는 그리스도를 닮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안에는 초기 순교자들의 사라지지 않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간절하신 기도는 믿음의 맑은 강물이 되어 이 땅을 뜨겁게 흐릅니다.
순교자들의 덕분에 한국 가톨릭은 언제나 길을 찾습니다. 작고 보잘것 없는 밀알 하나가 죽으면서 세상을 바꿉니다. 죽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순교는 자기 안에 갇힌 우리를 열어주는 새로운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순교는 열림이며 열림은 내어놓는 신뢰입니다. 내어놓는 신뢰는 자기를 비우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내어놓는 순교는 두려움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첫 순교자이십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참여한 이들입니다. 십자가에 참여한 이 땅의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생명을 바칩니다.
생명 전체를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순교입니다. 순교는 봉헌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살립니다. 우리 생활 전체를 봉헌하는 것이 봉헌의 본질입니다. 이 땅의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일깨워줍니다.
내어놓는 사랑의 여정이며 일상의 봉헌이 참된 순교입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우리들을 비추는 신앙의 참된 거울입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시여,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과 다시 시작하는 이 나라를 위해 빌어주소서.
요한복음 12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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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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