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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4/30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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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오리다. 알렐루야.

주님, 성자의 부활로 인간의 존엄을 다시 찾아 주시고 저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 주셨으니 저희가 해마다 믿음으로 거행하는 신비를 사랑으로 깨닫고 실천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4월 30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4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4월 30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5,17-26)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3,16-21)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도 5,17-26
오늘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3,16-21
오늘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4월 30일
조승현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8:0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믿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전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느님께서는 죄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고 구원하시려고 가장 소중한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해서 받는 보상이 아니라,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멀어지고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어 거저 베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창세 3,8) 숨어 있을 때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하느님 앞에 숨어 있는 우리를 먼저 찾아 주고 품어 주는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이 단순한 말이 아님을 보여 주고,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힘든 삶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우리는 믿음 안에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저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거저 베풀며 빛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은 단순한 생각이나 동의에 머물기보다,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아직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는 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위로하며 빛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남의 어둠으로 나의 어둠을 덮으려는 더 큰 어둠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은 좀 다른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공동체 또는 남의 어둠을 더 잘 보는 사람들에 관해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고드는 기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기자는 어두운 것을 들춰내 없애려는 것에 목적이, 곧 밝은 세상에 목적이 있음에 비해 어두운 곳에 꽂힌 사람은 그저 어두운 것을 들춰내어 공동체를 더 어둡게 만드는 것으로 그칩니다.

사실 사람도 그렇고 공동체도 밝은 구석이 많습니다.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어두운 구석만 봅니까? 정말 어둠을 빛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교만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기에 자기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에 꽂히고 남이 하는 것은 다 못마땅한 것입니다. 자기 어둠을 감추기 위해서일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것이 교만보다 더 무섭습니다. 무의식의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자기도 모르게 그럽니다.

무의식적으로 남의 죄나 잘못을 들춰야 자기 죄나 잘못이 감춰지기 때문이고, 남의 죄나 잘못이 커야 자기 죄나 잘못이 상대적으로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가나 음모꾼들처럼 의도적으로 남의 잘못을 가지고 자기 잘못을 덮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럽니다.

그러므로 남의 어둠으로 자기 어둠을 덮으려는 무의식의 더 큰 어둠, 그것이 내게도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오늘 <복음>은 니코데모와의 세 번째 대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17) 

이는 흔히, “복음서 속의 복음” 또는 “작은 복음서”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이 “하느님의 사랑”, 나아가 “먼저 하신 사랑”, 곧 “거저 베풀어진 사랑”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은 단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되, 그냥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 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말해줌과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아먹은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셨다면, 굳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박이나 번개, 천재지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거부하고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더구나 파괴해야 할 그 무엇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존중하고 수락해야 할 선물이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아니,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모두가 사랑하고 가꾸어야 할 선물입니다. 그런데 혹시 세상을 마치 마귀처럼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미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속정신입니다. 맘몬을 앞세우고 굴러가는 물신주의나 자신의 이익과 안정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체제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와 같은 것들 입니다.

결국,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속정신에 빠져 속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태우고 녹이는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 곧 ‘먼저 베풀어지고’, ‘거저 베풀어진 사랑’이 복음정신입니다. 그것은 이타적인 사랑이며, “세상”을 위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세상을 성화시킬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어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시고자 하시건만, ‘이미’ 심판을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까닭입니다(요한 3,19 참조).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건만, 막상 인간이 오히려 하느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고 심판한 까닭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이미’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거부는 이미 심판받게 되지만,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요한 3,21).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3,16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신 사랑의 멍에를 지고 
거부되고 배척받을지라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게 하소서.

이해받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사랑으로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눈감을 줄을 알고, 
죄 없으면서도 뒤집어쓸 줄을 알며,
약해져 꺾일 줄 알고, 
낮아져 밟힐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행동하기 위해 믿을까, 믿기 위해 행동할까?

오늘 복음에서는 구원이 행위보다는 믿음으로 온다는 주제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예수님은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받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은 빛으로 나아옴입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행위는 빛으로 나아오는 자격증과 같습니다. 행위가 옳지 못하면 자기 잘못이 드러날까 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올 수는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특별히 어머니가 병원에 계시고, 계단을 오를 수 없어 집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분들이 고생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서로 돕겠다고 나서서 행복한 고민이 생깁니다. 누구에게 더 시키고, 누구는 덜 시키고 하면 거기에서 차별받는 것처럼 여겨서 나아오지를 못합니다.

저는 이미 그분들이 저에게 해 주신 일들에 고마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다름이 없는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하면 그만큼 제가 다른 사람들을 더 신임한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지금 본당에 계신 분들도 저를 많이 도와주시지만, 이전 본당에 계신 분들도 도와주십니다. 그러면 지금 본당에 계신 분들이 섭섭해하고, 새로운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이전분들이 섭섭해하십니다. 이분들은 행위에 지나친 가치를 두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저를 돕는 행동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저에게 합당한 존재라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제가 별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감사해야 하는 존재임에도 저에게 다가오려는 분들은 무언가 일을 해야만 저에게 합당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들이 일을 하는 것은 저에게 다가오기 위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위에 지나치게 가치를 두는 분들은 언젠가는 믿음을 키우지 못한 덕으로 더는 다가올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우리를 쫓아내실까요? 우리 자신의 양심이 그분께 가기를 막을 것입니다. 행위에 치중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을 규정을 지키려다가 안식일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헌금을 보여주기 행위로 왜곡, 거짓이 드러나 심판을 자초(사도 5,1-11)한 아나니아스와 사피라도 있습니다. 성실한 노동을 내세우며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을 이해 못한 탕자의 비유에서의 맏아들도 생각해보십시오(루카 15,25-32).

행위는 사랑을 믿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도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행복임을 믿어야 구원에 가까워질 수 있고, 성체성사도 의미 있게 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믿음을 증가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물 위를 걷다 빠지고, 세 번 부인도 했지만 회개로 더욱 굳건한 반석이 된(마태 14,28-33; 요한 21,15-19) 베드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던 시몬을 생각해봅시다. 성경엔 나오지 않지만, 그 십자가를 함께 지며 영화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자비를 실천해 보니까 자비가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이와 같아야 합니다. 사랑의 행위가 행복임을 느끼기 위한 시도여야 합니다. 결국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심판받습니다. 그 믿음은 성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지, 성체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체도 그분의 살과 피입니다. 그것을 영하기에 먼저 합당한 존재라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올바른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다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다리를 살살 건너봅니다. 괜찮습니다. 다시 건너봅니다. 또 괜찮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생깁니까? 다리가 겉보기에 불안해 보여도 안전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성체성사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행동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착한 뜻이 그분께 다가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도 책을 많이 읽었어요?”
 
학생들이 제게 묻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따라갔던 만화방에서 읽은 만화책이 전부였습니다. 책 읽는 습관도 없었지만, 책 읽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밤 10시까지 하는 자율이 아닌 이름만인 자율학습을 해야 했고, 또 강제적으로 보충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에, 예체능 시간이 아깝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요즘의 아이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독서하는 습관을 갖게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빠른 결과만을 바라는 현대인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멀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를 주변 사람들이, 심지어 동창 신부들까지 부러워합니다. 
 
하루에 거의 한 권꼴로 책을 읽고 있으니, 이 부분만큼은 사람들을 앞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를 기쁘게 하는 것은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또 지금을 힘차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런 기쁨을 느끼면서도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힘듭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단번에 그리고 이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길게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빠른 결과만을 찾습니다. 과정 역시 너무나 커다란 기쁨을 줄 수 있는데도, 성급해서 과정 안에서 얻는 기쁨을 놓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분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너무나 쉽게 신앙생활을 소홀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름으로 열심히 기도했다고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곧바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해 교회는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그 사랑이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주님을 세상의 일보다 뒷자리에 위치시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 빠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일을 늘 뒤로 미룹니다.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사랑의 삶을 살고 이로써 기쁨과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이 구원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이기심과 욕심만을 내세우고 있다면 구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너 자신이 되라! 다른 사람은 이미 있으니까. (오스카 와일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실천을 잃으면 진리는 사그라듭니다. 진리를 이어주는 실천입니다. 참된 진리 참된 실천이 있을 뿐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참된 우리 자신으로 살게 하십니다. 한 분이신 진리 안에 살아가는 우리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아름다운 빛은 실천의 빛입니다. 모든 순간이 이와 같이 빛의 선택이며 빛의 순간들입니다. 우리는 빛을 따르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실천의 힘입니다. 실천에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참다운 실천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실천입니다.

예수님 밖에서 따로 진리를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실천의 차분한 빛입니다. 실천하는 구원이며 현실의 나로 살게 하는 진리입니다.

실천과 실천 사이에 끝없는 보람이 있습니다. 빛으로 나아가는 실천의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요한복음 3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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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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