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길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요셉에게 어린 시절의 구세주를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의 구원 계획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
2025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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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사무 7,4-5ㄴ.12-14ㄱ.16)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 - 제 2독서
(로마 4,13.16-18.22)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16.18-21.24ㄱ)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오늘 말씀 카드
(로마 4,16)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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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무 7,4-5ㄴ.12-14ㄱ.16
오늘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로마 4,13.16-18.22
오늘 제2독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마태 1,16.18-21.24ㄱ
오늘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19일
김동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 성요셉 대축일 소개 00:07
✚ 미사시작 01:32
✚ 강론시작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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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하느님의 자비에 겸손하게 머물기
히브리인들의 문화에서 약혼은 혼인에 포함된 중요한 과정입니다. 일단 약혼하면 남편과 아내로 불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혼인할 때까지, 적어도 일 년은 남녀가 각자 자신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기와 함께 살지 않았던 마리아가 잉태하였다는 것은, 요셉의 처지에서는 마리아가 율법에서 금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전합니다. 히브리인에게 ‘의롭다’는 말은 곧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에 실제로 마리아에게 죄가 있는지 따져 보았어야 합니다(신명 22,23-27 참조).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율법에 따라 마리아의 죄를 따져 묻는 대신,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기로 합니다. 어쩌면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과정에 율법에서 금하는 죄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천사는 이러한 요셉이 하느님 구원의 신비를 꿈에서 마주하고, 이미 자신이 하느님 구원의 역사 안에 있다고 깨달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마주하지 못하고 요셉처럼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차마 용기가 없어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외적인 상황과 내적인 상태를 바라볼 기회가 온다면, 요셉 성인처럼 그 안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겸손하게 머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의리와 믿음의 요셉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오늘 복음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주님 이전에 의로움의 기준은 율법입니다. 율법이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의로움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마리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율법에 따라 파혼하고 그 사실을 알려야 했는데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알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파혼했는데도 마리아가 임신한 것이 드러나면, 마리아는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 되잖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요셉의 다른 의로움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의로움에는 율법의 의로움도 있지만 마리아에 대한 의리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의리는 율법적인 의로움이 아니라 인격적인 의로움입니다.
의리 있는 사람은 덕이 있어 어려움 중의 사람을 쉽게 저버리거나, 잘못을 저질렀어도 크게 분노하거나 쉽게 내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실 약혼자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의 애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요셉은 분노가 의리를 덮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셉을 칭송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신앙이고 그의 순종이지요. 오늘의 전례는 요셉을 아브라함과 비교합니다. 요셉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었고,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꿈에 나타난 천사를 천사로 믿었고, 천사의 말을 믿고 마리아도 믿었으며 천사의 말을 믿고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천사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은 것은 마리아나 요셉이 같았고, 이런 믿음의 바탕 위에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이집트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는, 이런 절망을 거스르는 희망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없이 있을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이집트로 떠나라는 명령에 순명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 명령에 대한 순명보다 앞서는 순명이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라는 명령에 순명한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이건 꿈일 뿐이야!’ 하며 명령을 걷어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었고 그 명령에 순명했습니다.
이런 요셉을 보면서 현몽을 한낱 개꿈으로 바꾸는 나는 아닌지 계시의 은총을 인간적으로 날려버리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다운 순명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비오 9세께서는 요셉 성인을 “보편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고(1870년), 비오 12께서는 “노동자들의 수호자”로,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구세주의 보호자”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신자들은 요셉 성인께 “죽음을 앞둔 이의 수호자”로서 간구합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요셉성인의 ‘보편교회의 수호자’ 선포 15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하신 교황교서 [아버지 마음으로](2020.12.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목받지 않고 날마다 신중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는 요셉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 곤경에 놓일 때의 주재자, 지원자, 안내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숨겨져 있거나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이 구원역사에서 비할 데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모친이신 마리아께 대한 관심에 비하면, 성 요셉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구속사에 있어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일찍이 다 이루셨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통해, 태어날 아기가 구세주 메시아임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이요, 둘째는 그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언이 요셉의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느님 구원계획의 온전한 조력자’로 제시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성 요셉의 인품을 세 가지로 묵상해 봅니다.
첫째,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마태 1,19).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의로움으로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였고, 마침내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둘째, 그는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마태 1,19). 곧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심과 자비심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적인 고소를 통해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조용히 파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결국 그에게는 모욕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그러한 모욕을 감수하면서라도, 마리아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참으로 그는 사려 깊은 처사를 할 줄 아는,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그는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하였습니다.”(마태 1,24). 곧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깊은 침묵으로, 하느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행동하는 믿음으로 순명하였습니다.
사실, 요셉은 오늘 <복음>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에서 단 한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들의 양부가 되셨습니다.
그는 <제2독서>에서 아브라함이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듯이’(로마 4,18), 그도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음으로 순명하여, 구세주의 양부가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미 얻은 외아들을 포기했어야만 했다면, 요셉은 아들을 얻기도 전에 이미 외아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나아가, 아브라함에게는 그래도 아내가 있었지만, 요셉은 아내마저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침묵하되, 참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되, 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행동하되, 참으로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사려 깊되, 참으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우리 신앙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깊은 침묵,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접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내맡기고 행동하는 믿음, 타인의 처지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자비심과 사랑,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다운 순명이, 바로 우리의 모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 요셉께 전구하며, 하느님 구원의 온전한 조력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20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오로지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의 성 요셉 : 고민을 오래 하지 말고 회의도 길게 하지 말라
지금까지 성 요셉의 의로움과 정결함에는 많은 강론을 하였으나, 성 요셉의 기도라는 부분에서는 크게 묵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는 기도가 필수적이고, 성 요셉에게서도 그 특징은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우선 기도하지 않는, 혹은 잘못된 기도를 하는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고민을 오래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단호합니다. 일생일대의 결정 앞에서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셨고, 예수님은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아가 강한 사람은 언제나 우유부단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를 결정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소비됩니다. 그래서 저는 회의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기도하고 결정이 된 상태에서 와야 하고 책임자는 기도를 통해 빠르게 나아갈 길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전쟁이나 기업과 같은 경쟁 상황에서 빠른 판단력은 필수적입니다. 빠른 판단력이 사라지는 이유는 신앙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대관식 이후부터 자신감을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1804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된 대관식에서 스스로의 손으로 황제의 왕관을 머리에 얹었습니다. 그 자리에 교황 비오 7세가 있었지만, 나폴레옹은 하느님의 축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로부터 11년 후인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그러한 교만함과 홀로 결정해야 하는 지도자의 외로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아프게 경험하게 됩니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돌아와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른바 ‘백일천하’의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군대는 약 7만 3천 명이었고, 상대편 연합군은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과 네덜란드, 벨기에군 연합 6만 8천 명, 그리고 블뤼허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군 5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은 이 양쪽 군대가 합류하기 전에 신속히 공격하여 각개격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투 당일인 6월 18일, 새벽부터 내린 비로 전장이 심하게 질척거렸고, 포병과 기병의 이동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나폴레옹은 오전 6시부터 공격을 망설이기 시작했습니다. 측근의 많은 장군들은 즉각 공격할 것을 조언했지만, 모든 결정을 홀로 내려야 하는 황제였던 그는 쉽게 결단하지 못한 채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나폴레옹은 조금 더 좋은 환경이 오기를 기다리며 공격 명령을 계속 미루었고, 그렇게 결정적인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나폴레옹은 무려 6시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끝에,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첫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의 지연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공격이 늦어지는 동안, 18km 떨어진 곳에 있던 프로이센군 5만 명은 전장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공격을 지연한 사이, 프로이센군은 오후 4시경부터 전장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계속해서 병력을 증원했습니다. 결국 저녁 7시가 될 무렵에는 영국군과 프로이센군의 병력이 완벽히 합류하여 총 11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반면, 전투를 너무 늦게 시작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미 피로와 혼란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고, 단 하루의 우유부단함으로 자신의 운명뿐 아니라 프랑스 제국 전체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다시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추방되었고, 쓸쓸히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만약 그가 홀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외로운 왕좌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신중하지만 빠르게 결단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눈치채고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이것은 ‘묵상’기도입니다. 마리아의 잘못을 자기가 다 끌어안겠다는 엄청난 결단입니다. 묵상기도를 통해 여기까지는 도달할 수 있지만, 관상의 단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바로 그 잉태가 곧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와 결혼하라고 하십니다. 요셉은 그렇게 합니다. 이 외에도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할 때 꿈을 꾸고는 바로 짐을 싸서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다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기도할 줄 모르는 교만한 사람이었다면, 성모님과 결혼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결혼했다면 시간을 끌다가 메시아를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이는 모두 결단력이 좋고 빠릅니다.
1805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원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기사로서의 명예와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았지만, 전쟁터에서의 패배와 포로 생활을 통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1205년 어느 날, 아시시 외곽에 버려진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깊은 기도에 잠겨 있던 프란치스코는,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 프란치스코는 망설이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즉시 자신의 화려한 옷을 벗고 거친 옷을 입었으며, 아버지의 재물을 포기하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돌 하나하나를 손수 쌓아 올리며 산 다미아노 성당을 수리하기 시작했고, 그의 단호한 결단에 감동한 동료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무너져가는 당신 집은 결국 탐욕으로 기울어져 가는 교회를 재건하라는 것이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저 작은 하느님의 집은 다미나노 경당을 재건하기 시작한 그의 결단력은 바로 요셉 성인과 같은 기도에서 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더 데레사도 있습니다. 그녀는 1929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인도의 콜카타로 파견되어 로레토 수녀회 소속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며 평범한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6년 9월 10일, 데레사 수녀는 다르질링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깊은 묵상 중에 강력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수도원의 울타리를 넘어 길거리의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소명을 명확하게 전하셨습니다. 데레사는 이 부르심을 듣고 즉시 결단을 내렸으며, 자신이 20년 가까이 지냈던 수도원과 안정된 생활을 떠나 콜카타의 빈민가로 뛰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맨손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결단력 있는 행동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전 세계에 가난과 사랑의 가치를 전하며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 프란치스코와 마더 데레사의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았다면 절대로 주저하지 말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요셉 성인과 이 성인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느님께 묻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즉시 겸손과 용기로 결단하여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고민을 많이 하지 말고, 회의를 길게 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분이시기에 항상 주저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일어나 가자!”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은 뒤로 미루면 안된다
책을 읽고 있으면 크게 와 닿는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내용을 통해 쓰고 싶은 것도 떠올려집니다. 예전에는 책에 밑줄을 그어서 기억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책에 표시하면 단점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는 사람(다시 읽는 본인도 마찬가지)에게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표시에 매여서 자기 것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표시에만 집중하게 되어서, 새로운 것을 찾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다 읽은 책을 본당 도서관에 기증하고 있어서 더 깨끗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밑줄보다 클립을 꽂아두었습니다. 이 클립으로 표시한 곳을 나중에 쓰면서 정리할 목적이었습니다.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읽으면 왜 클립을 꽂아두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분명 크게 와 닿는 구절이었는데, 다시 보면 별 내용이 아닙니다. 이제는 곧바로 적습니다. 지금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미루면 잊어버립니다. 소중할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뒤로 미루곤 합니다. 그 순간에 해야 할 것인데도 나중에 해도 충분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생명을 유한하게 만드신 것이 아닐까요? 너의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사랑의 실천은 결코 뒤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고,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실천하는 결정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지냅니다. 요셉 성인께서 간직하셨던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강림’이라는 하느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약혼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하지 그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의로운 사람, 법대로 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성인이기에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하기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간음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세우거나 율법 학자들에게 고발해서 돌로 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파혼으로 인해서 그 사랑이 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천사를 보내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계시에 곧바로 요셉은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버리지 않고, 또 사랑을 즉시 실천하는 그 모습에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뒤로 미뤄서도 또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계속해야 하는 사랑이고, 즉시 실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해줄 수 없다
- 캐롤 버넷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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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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