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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2/28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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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때문에 살해된 죄 없는 아기들은 흠 없는 어린양을 따르며 영원히 외치네. 주님, 영광받으소서.

하느님, 죄 없이 살해된 아기 순교자들이 말도 배우기 전에 죽음으로 주님을 찬미하였으니 저희도 오늘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을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2024년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2월 28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2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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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1요한 1,5―2,2
오늘 제1독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주님이신 하느님을 찬양하나이다. 눈부신 순교자들의 무리가 주님을 기리나이다.

 

 

마태 2,13-18
오늘 복음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28일
은성제 요셉 신부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05

✚ 강론시작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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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마태 2,4). 그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로 오신 그분을 경배하러 동방 박사들과 함께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탄생이 그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졌고, 결국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비극적인 일을 벌입니다.

헤로데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자신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질 하느님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그에게는 ‘하느님’이고 ‘구원’이었습니다. 헤로데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기지 못하는 사람의 최후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6,24).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주님’은 누구이신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를 멈추게도 하고 움직이게도 하는 것, 절대로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하게도 하고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실제 ‘주님’이십니다. 헤로데에게 그 주님은 ‘자신의 왕권’이었습니다.

“헤로데는 ……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2,16-17).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죄 없는 아기 죽음의 큰 뜻

“헤로데는 예루살렘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줍니다.”

죄 없는 아기들이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는 우리 교회가 순교라고 포장하지만 가혹하고 잔혹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서 죄 없는 그 많은 아이가 죽어야만 하는가? 그런 하느님의 처사가 옳다고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그런 처사를 어떻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죄 없는 어린 아기들이 죽임당한 사건이 옳은 일일 뿐 아니라 사랑이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가 풀려야 합니다.

어떠한 죽음이든 죽음은 모두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죽음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죽음이 불행한 것이라는 얘깁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것이 행운이고 행복이 아니라 행복해야지 살아있는 것이 행운이고 축복이지 불행하면 살아있는 것이 결코 행운도 축복도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일찍 죽으면 불행한 죽음이라는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기준으로 하면 행복한 삶을 오래 살다 죽어야 행복한 죽음이고 그런 죽음을 호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기준을 천국 행복에의 참여라고 하면 사실 일찍, 빨리 참여할수록 좋은 거지요. 죄 없는 사람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죄 없는 사람도 죄 있는 사람도 다 죽는 것입니다. 죄 있는 사람만 벌을 받아 죽는 거고, 그들만 일찍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죄 없는 아기들이 예수님을 위해 죽임당한 것은 죽음이 죄의 벌만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증거 하는 것이며,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의 예표입니다.

그러니까 죄 없으신 당신 아들을 우릴 위해 죽게 하신 하느님께서 죄 없는 아기들을 당신 아들을 위해 죽게 하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죽지 말고 사랑 때문에 죽으라는 하느님의 큰 뜻이 오늘 우리가 지내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에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고통의 신비

오늘 기념하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은 무죄한 이들의 고통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동시에, 훗날 예수님의 죽음도 ‘무죄한 아기의 죽음’처럼, 죄 없으면서도 무고하게 죽게 될 예수님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사실, 이 ‘죄 없는 아기들이 학살당한 일’은 겉으로는 헤로데의 잔인한 학살을 드러내지만, 실상은 ‘메시아가 태어났음’을 알려줍니다. 곧 그들의 죽음은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가 ‘메시아’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메시아가 나타나심에 대한 지상의 왕의 두려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헤로데의 죄 없는 아기 학살을 두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마에서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8)

이는 예레미야가 아들을 잃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통곡을 들어 예언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마리아를 신약의 ‘새로운 라헬’이라 칭합니다. 곧 라헬이 일생동안 고통을 겪고 죽음의 고통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면, 마리아 역시 “영혼이 칼에 꿰질리는”(루카 2,35)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셨던 ‘고통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또 라헬이 <예레미아서>에서 ‘이스라엘의 어머니’(예레 31,15)라 칭해지듯이, 마리아는 <요한묵시록>에서 전체 ‘교회의 어머니’라 칭해집니다(묵시 12,17;12,1-6 참조). 그리고 라헬이 하느님 앞에서 지상의 자녀들을 위해 슬퍼하며 울음으로 전구했듯이, 마리아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장 유력한 ‘기도의 전구자’가 되십니다. 

또한, 우리는 ‘무죄한 어린이의 희생’을 들으면서 앞서 있었던 모세가 히브인들을 억압하면서 저질렀던 어린 사내 아기들을 살해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사실, 파라오와 헤로데, 그들은 모두 자신을 지키고자 빛을 두려워한 이들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완고함과 자기중심적인 폭력과 독선과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지 않는지 잘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사랑의 왕국을 저버리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이유를 확고하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마태 2,14)

이는 하느님께서 베푸는 구원의 역사는 그 어떤 어둠에도 방해에도 아랑 곳 없이 반드시 이루지리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아기 때문에 다른 죄 없는 아기들이 살육당한 소식을 들었을 때, 아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살인자 아닌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헤아려 보게 됩니다.

분명, 죽어가는 아기들의 “울음소리”보다 어머니들의 “애끊는 통곡소리”가 훨씬 더 컷을 것입니다. 아기들의 슬픔은 한 순간이었고 죽음이 슬픔의 끝이었겠지만, 아기를 잃은 어머니들의 슬픔은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죽은 아기들의 어머니들의 아픔을 마리아는 통째로 짊어지셔야 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아기가 희생되어 다른 아기들을 살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토록, 그녀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에 모든 책임을 떠맡고 고통을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또다시 아무런 죄도 없는 당신 아드님 예수님의 죽음을 떠맡아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죄 없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 쓸 줄을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인가 봅니다. 그렇게 예수님도 훗날 죄 없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쓰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혹 ‘무죄하면서도 억울함을 당할 때’가 있다면, 바로 그 일을 순교로 삼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 어처구니없고 황당할 때, 부당한 고통을 당할 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때, 그 슬픔을 넘어 구속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주님!
자신의 아기 때문에 
다른 아기들이 살육당할 때, 
어머니 마음은 
미어지셨을 것입니다. 

이토록,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은
죽는 것보다도 더 큰 아픔을 
짊어지는 일인가 봅니다. 

그러니 저희도 
어처구니없고 황당할 때, 
부당한 고통을 당할 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때, 

어머니 마리아처럼 슬픔을 넘어 
구속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뇌과학의 관점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때 도파민이 분비될까요? 사실 우리의 뇌는 아주 큰 욕심쟁입니다. 그래서 늘 ‘더 많이’를 추구합니다. 어제와 똑같은 삶에서는 결코 도파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지금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다면 도파민을 분비할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찾지 못하면 좌절과 절망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종종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이 있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시련에 그냥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불행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성당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 쉬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쳤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그 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일을 계속 찾는 일,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도 너무나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저의 경우는 책 읽고 글 쓰는데 새로움을 얻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책을 계속 읽고 있고, 똑같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글을 쓰고 있으니 새로움을 얻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항상 똑같은 기도를 하고 있다면 기도 안에서 행복을 느낄까요? 아닙니다. 매번 다른 기도를 하는 사람만이 다양한 주님을 새롭게 느끼면서 행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안에만 살면 새로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순간의 만족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준안에서 사는 사람은 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의 만족을 벗어나 계속된 만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헤로데 왕이 베들레헴과 그 근방에 사는 아기들을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왕의 위치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 장차 유다의 왕이 되시리라는 예언을 듣고는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했기에, 이런 엄청난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자기 왕위를 유지하려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과연 행복했을까요? 정적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잠시의 평화와 기쁨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 최악의 왕으로 기록될 뿐입니다. 당연히 하느님께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헤로데 왕처럼 세상의 기준만을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늘 새로움으로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는 주님의 기준인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큰 행복을 차지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닫힌 문만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는 바람에 우리를 위해 이미 열려있던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 헬렌켈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우리는 우리를 모릅니다. 지울 수 없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아프고 슬픈 역사입니다. 소중한 아기들의 미래를 잔인한 헤로데가 마구 짓밟고 모두 없애 버립니다. 성탄의 본질은 언제나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아기들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관심과 사랑을 애타게 찾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누구 없습니까?" 하며 간절하신 마음을 건네십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호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멈춰버린 이기적인 마음은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죽음도 잊혀져가는 사소한 죽음은 없습니다. 아파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헤로데의 무자비한 권력에 맞서야 합니다.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희생이 어른들의 욕망을 씻어줍니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합니다. 

성탄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보게 합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관심과 사랑의 성탄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아픈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어른들이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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