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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2/20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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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 차리니,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존엄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024년 12월 20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2월 20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2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7,10-14)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6-38)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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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이사 7,10-14
오늘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다윗의 열쇠, 영원한 나라의 문을 여시는 분, 어서 오소서. 어두운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이끌어 내소서.

 

 

루카 1,26-38
오늘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20일
김도연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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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스스로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며, 지금 당장은 하느님의 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만,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며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순명과 함께,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되셨습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신뢰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8).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이기 쉬운 방법으로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를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실천하기 어렵고, 현실과 맞지 않는 말씀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순명하는 믿음으로 당신 말씀을 대할 때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신비를 믿고 있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성모님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도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는 믿음,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에게 마음을, 승락에게 입술을, 창조주에게 태를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주님 성탄을 앞두고 천사가 아주 바쁩니다. 그리고 천사는 어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즈카르야에게 얘기하고, 오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동정녀 마리아께 얘기합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천사의 등장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낯선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는 천사도 두려울 수도 있는데 동정녀 마리아도 그런 것이고 그런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걸까요?

아니면 처녀가 아들을 낳을 거라는 말에 그대로 승낙하면, 엄청난 일들이 당신에게 닥칠 텐데 그것을 미리 생각하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걸까요? 제 생각에 둘 다일 것입니다.

천사의 등장도 처음 경험하는 낯선 것이요, 아들을 잉태하는 것도 처음 경험하는 낯선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을 낳는 것은 더더욱 낯선 것이며 두려운 것일 겁니다. 그래서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 대답을 할지 천사는 마리아의 입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대답에 우리의 구원이 달린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을 오늘 독서의 기도에서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동정녀여, 당신은 잉태하여 아기를 낳으시리라는 전갈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천사는 당신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보내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비참에 눌려 있는 우리마저 그 자비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승낙하시기만 한다면 우리는 즉시 해방될 것입니다. 당신의 짧은 응답으로 인해 회복되고 다시금 생명으로 부름받을 것입니다.

동정녀여, 속히 응답하소서. ‘말’을 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소서. 일시적인 ‘말’을 하시고 영원한 ‘말씀’을 받으소서. 믿음에게 마음을, 승락에게 입술을, 창조주께 당신의 모태를 열어주소서.”

아무튼 마리아의 승낙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천사에게 동정녀 마리아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응당하신 마리아께서 우리도 당신을 본받아 응답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고, 베르나르도 아빠스도 오늘 우리에게 똑같이 재촉할 것입니다.

믿음에게 마음을,
승락에게 입술을,
창조주께 우리의 태를.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고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이사야의 예고대로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잉태하게 된 경위를 말해줍니다. 

이를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 비교해 보면, ‘주님의 탄생예고’는 성전 안 ‘성소’에서 전해진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는 달리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에 있는 작은 동네 나자렛의 시골 처녀의 ‘집’에서 전해집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처를 성전 안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두시게 됩니다. 

그런데 천사의 인사말은 마리아가 이미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였음을 말해줍니다. 곧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전에, 믿음으로 충만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즈카르야는 ‘의심’하여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어버리고 벙어리가 되었지만,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하여 구원의 말씀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마리아는 몸으로 우리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

또 즈카르야에게는 아기가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루카 1,17)이라는 ‘사명’이 예고되지만, 마리아에게는 아기가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외아드님”(루카 1,35)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는 ‘신원’이 예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루카 1,35)으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드러납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이다.”(루카 1,38)

오늘은 여기에서 드러나는 ‘마리아의 희망’에 대해서만 보고자 합니다. 이는 마리아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 그것을 저도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곧 ‘그분의 희망을 희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희망과 하느님의 희망이 같아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원하신 바를 이루시도록 그분의 뜻에 승복하는 일이요, 그분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품고 자신의 희망이 아니라 그분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요, 당신의 사랑을 이루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허용하고 수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고, 그분의 은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하시는 일에 함께 일하는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저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고, 저희 안에서 사십니다. 바로 이것이 저희가 마리아와 함께 진정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희망이 있다는 이 사실이 말입니다. 우리를 희망하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기쁨인지요! 내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놀이터요 일터라니! 이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야곱의 탄성(Eureka!), 그 깨달음의 외침과 같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창세 28,17)

오늘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바야흐로 성탄의 기쁨이 몰려옵니다. 희망이 이미 수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의 희망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희망이 진정,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8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주님!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놀랍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믿음의 사람은 속세 사람들과 이렇게 구분된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주님 탄생 예고의 깊은 순간을 듣게 됩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시리라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합니다.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도 인간적으로 “이게 가능할까?”라고 의문을 품으셨을 것입니다. 

천사는 그녀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전하며,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아 아들을 배었으니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 불리던 이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6-37)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사벳의 믿음과 하느님의 능력의 증거는 마리아가 구원의 역사 속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여신 마리아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는 진리의 살아 있는 증인이 되십니다. 이 순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세상은 “이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묻지만, 믿음의 사람은 “아멘,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 점을 보여주는 예로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1967년, 젊은 시절 조니는 다이빙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생을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는 선교사의 권고를 통해 조니는 고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깊은 기도의 순간, 그녀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고, 그분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니는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약할수록 더 많이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며, 그분께 의지할수록 그분의 강함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그녀는 원망 대신 감사로 고통을 받아들이며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통해 조니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이루었습니다. 깊은 고통을 기쁨과 용기의 원천으로 바꾼 것입니다.

또 다른 놀라운 예는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의 이야기입니다. 1997년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말랄라는 마이완드의 말랄라(Malalai of Maiwand)처럼 용감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믿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이름은 탈레반의 억압 속에서도 교육과 정의에 대한 믿음은 말랄라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2012년, 그녀는 학교 버스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는 끔찍한 암살 시도를 겪었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6세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그녀를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로 이끌었고, 높은 이상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 일생의 목표는 전 세계의 모든 여자아이가 12년 동안 안전하고 질 높은 교육을 받도록 돕는 것입니다.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자아이들은 전 세계에 1억 3천만 명이나 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저런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해?” 

믿음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처럼 성녀 잔다르크(Joan of Arc)의 이야기도 믿음의 변혁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1425년, 어린 소녀였던 잔은 천사와 성인들의 환시를 경험하며 프랑스를 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지 농부의 딸에 불과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믿고 따랐습니다. 1429년, 잔은 군대를 이끌며 그 시대 여성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믿음은 그녀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세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믿음이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초기 삶에서 부와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1205년, 그는 산 다미아노(San Damiano)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던 중 “내 교회를 다시 세워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미아노 성당을 물리적으로 재건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점차 예수님께서 가톨릭교회의 영적인 기반을 새롭게 하라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요한 일부터 시작하라. 그다음에 가능한 일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가난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철저히 실천하며 교회를 쇄신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이루게 했고, 세상에 가난과 사랑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에서도 프란치스코 성인은 존경합니다. 놀랍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경배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세상의 기대를 초월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상에 희망과 영감을 줍니다. 

믿음의 사람은 결코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에게 “아!”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영감을 준 엘리사벳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아멘”으로 응답하며, 믿음의 힘을 세상에 놀라움으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저의 스마트폰은 늘 무음입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미사를 비롯한 각종 성사를 집전해야 하므로 스마트폰은 늘 무음으로 맞춰놓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연락되지 않습니다. SNS 문자 메시지도 그날 저녁이 돼서야 확인하게 됩니다. 누구는 제발 빨리 좀 봐달라 하고, 또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무음으로 해 놓는 것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음이 아닐 때, 모든 신경이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주5일, 하루 여덟 시간 근무’는 1926년, 미국 자동차 포드의 창시자 헨리 포드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으로 인해, ‘365일 대기’ 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미사 때 가끔 스마트폰이 울립니다. 그때 제대를 향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바뀝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SNS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리면 역시 대화가 끊어지고 맙니다. 정말로 급한 연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급한 연락이 그렇게 매 순간 올까요? 어쩌면 ‘급한 연락이 와라.’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주 급한 연락보다 지금 자기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여전히 제 스마트폰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합니다. 새로운 소식은 제가 찾아봐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로 앞의 사람에게 충실할 수 있고, 무엇보다 주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장점이 많은데 과연 스마트폰의 무음을 바꿔야 할까요? 
 
어디에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주님께 집중하고, 또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로 인해 집중할 수 없다면, 집중할 수 있도록 나의 방법들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의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도 알 수 없고, 주님께 대한 체험도 거의 없습니다. 당연히 주님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어제 복음에서 사제 즈카르야는 천사의 메시지를 믿지 않아서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주님께 집중해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 메시지를 들어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세상에 집중하고 있어서 믿지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성모님께서는 굳은 믿음을 보여주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주님께 집중하고 있으니, 처녀가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세상의 기준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굳은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일이 자기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세상이 아닌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한 사람의 발에 맞는 신이 다른 사람의 발에는 꽉 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삶의 비결 같은 것은 없다.

- 칼 융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그저 받은 은총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서로의 삶에 진정한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함도 선물이 됩니다. 그러기에 서로를 인정합니다. 

최고의 선물은 언제나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외적인 상황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가능성을 믿고 따릅니다.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작아지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구원의 가능성을 활짝 여십니다. 은총으로 지나온 길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입니다. 

고마워해야 할 은총이 사람들이 우리의 길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수많은 가능성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내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이 은총을 믿고 따르는 은총의 오늘입니다. 우리의 삶이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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