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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6/03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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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뽑힌 이들을 도가니 속 금처럼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받아들이셨으니, 주님이 찾아오실 때, 하느님께 뽑힌 이들은 은총과 평화를 누리리라.

하느님, 순교자들의 피가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게 하시니 복된 가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의 피로 하느님의 교회를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언제나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2024년 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6월 3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6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베드 1,2-7)
    그리스도께서는 귀중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마르 12,1-12)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오늘 말씀 카드
    (2베드 1,7)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2베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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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2베드 1,2-7
오늘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귀중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써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7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마르 12,1-12
오늘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6월 3일
이원빈 예로니모 신부

 

✚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소개 00:06

✚ 교황님 6월 기도지향 01:25

✚ 미사시작 01:40

✚ 강론시작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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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분당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를 당신께 이끄시고자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배려를 묵상하게 합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 하느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알맞게 배치하셨습니다. 믿음이 나 혼자의 선택과 결정인 것 같지만, 사실 하느님의 이끄심과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내가 받아들이고 선택하여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 믿음을 허락하시고 이끄시는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계시하셨고, 또 우리 안에 당신 없이는 채워지지 않을 갈망도 주셨습니다.

복음은 악한 소작인들을 몇 번이고 참아 주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포도밭 주인은 소작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몇 번이고 기회를 줍니다. 자신의 종을 여러 차례 보냈고, 마지막에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면서 그들의 회개를 기다립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께 등을 돌려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도록 갖은 애를 다 쓰고 계십니다. 당신 사람을 통해서, 특별한 상황과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믿음과 사랑이 부족함을 느끼고 그러한 자신에게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하셨고, 부족한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이끌어 주시고 기다리시는 분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주님의 배려가 우리의 위로와 희망의 샘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덧셈인생 뺄셈인생

뺄셈 정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이나 정파를 배제하는 정치라고 사전은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덧셈 정치도 있겠고 그것은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일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 말씀의 한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여기서 포도밭 밖이란 공동체 밖이란 뜻이고,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는 것은 공동체서 축출했다는 뜻이며 머릿돌이어야 할 주님을 사람들이 버려버렸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저와 가까운 공동체들 안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척 슬프고, 그러는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이 무척 아프고 그 사람들이 무척 가엾습니다. 

왜 덧셈은 할 줄 모르고 뺄셈만 하는가?그런데 자기가 그런 줄은 알고 있을까? 자기가 그런 줄 안다면 무척 슬플 테고, 알면서도 그런다면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럽니까? 그것은 그것이 그의 능력이고 한계이기 때문이고, 달리 말하면 그에게 있어야 할 덕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덕이란 선덕의 줄임말로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대로 악덕이란 선은 행할 수 없고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덕이 있어야 선을 행할 수 있는데 덕은 없고 악덕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덕이 있고 어떻게 덕을 지닐 수 있을까요? 보통은 덕을 쌓는 사람에게 덕이 있고 오늘 베드로 서간도 이것을 얘기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실 믿는다면서 덕이 없는 사람이 있어 욕을 먹습니다. 능력은 많은데 덕이 없는 지도자들이 욕을 먹는데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의 덕에 다른 덕들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한 가지 덕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덕이 그 위에 쌓이게 되고,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나의 덕을 가지고 있고 다른 덕들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덕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덕을 거스르는 사람은 하나도 갖지 못하고 모든 덕을 거스르게 됩니다.” (덕들에게 바치는 인사 6-7) 

우리 인생도 그럴 것입니다. 뺄셈 인생이 있는가 하면 덧셈 인생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덕에 다른 덕을 하나하나 그리고 차례차례 쌓고, 그 덕들 덕분에 모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는 덧셈 인생이 있는가 하면 선덕을 쌓지 않아 악덕에 악덕을 하나하나 그리고 차례차례 쌓고, 그래서 모든 사람을 다 적으로 만들어 배제하는 뺄셈 인생이 있을 겁니다. 

우리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이고 나는 어떤 인생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억지로라도 했던 선행 하나가 죽기까지 선한 영향을 준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나쁜 소작인들은 주인의 땅을 경작하면서도 한 번도 도지를 바치지 않았습니다. 소출의 일부를 받으러 온 이들은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외아들까지 그들에게 보냅니다. 이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성체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체는 생명 나무인데 선악과를 바치지 않으면 오늘 주인의 아들처럼 그들 안에서 죽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 하는 게 우리 안에 있는 ‘양심’입니다. 양심은 받았으면 주어야 하는 ‘정의’ 시스템이다. 양심이 없다면 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기는 부모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면 양심이 불편해집니다. 받았으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부모의 뜻을 따라주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양심이 없다면 아기들은 영원히 유아적인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계속 받아먹기만 하며 내어줄 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은 양심의 작용을 통해 우리 욕망을 누르고 나눌 줄 아는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가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양심이 무뎌졌다면 아무리 받아도 미안하고 고마운 줄 몰라서 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점 중의 하나는 단 한 번도 소출을 바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때는 그 작용이 약합니다. 그러나 한 번 했던 것을 하지 않게 되면 양심의 가책이 심해집니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십일조를 낸 소작인들이라면 아들까지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주인을 주님으로 인정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배신하기 쉽지 않습니다.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성체를 영해야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란 믿음을 가져야 인간이란 믿음에서 나오는 온갖 죄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 본성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십일조, 혹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봉헌이 없다면 주님은 우리 안에서 또 돌아가십니다. 우리 안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십일조 연습입니다. 저희 성당은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50만 원씩 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사무실에 가서 십일조를 5만 원씩 내야 합니다. 이렇게 평생 한 번이라도 십일조를 해 보았다면 나중에라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과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한 번 했던 선행은 평생 영향을 미칩니다. 

‘예전에 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 더 큽니다. 그래서 돌아오기가 쉽습니다. 아이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준다고 성당 나오기 싫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부는 아이 때 시키지 않습니까? 어른들에 대한 예절도 어렸을 때 가르치지 않습니까? 한번 해 보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더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도 안 해 보았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양심의 가책이 덜합니다. 그래서 착해지기가 그만큼 힘이 듭니다. 

한 번 한 선행이 평생 내 양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아이들이 힘들다고 해도 매주 교리에 앞서 묵주기도 5단씩 시킵니다. 아이들은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시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이렇게 주님께 시간을 봉헌한 경험이 그들의 양심에 들어가 평생 작용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첫발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번 해 본 사람은 미래에라도 돌아올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우리도 단 1년 만이라도 십일조를 해보고 기도나 선행을 체험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뜻을 보고 행동해야 한다.

닭을 키우려고 닭장을 근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 닭장에 큰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글쎄 닭장 밑에서 물이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군다나 닭장을 만드느라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써서 수리할 비용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닭을 키울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모두 팔아 버려야 할까요? 
 
이 방법밖에 없을 것 같지만, 이 역시 올바른 판단은 아닙니다. 닭장 만드는 데 들었던 비용을 모두 날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방법을 최고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닭을 팔고, 그 판 값으로 오리를 사서 닭장에서 키우면 어떨까요? 오리는 물이 필요하니 이렇게 물이 올라오는 것이 최적의 환경일 것입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길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뜻도 사실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비로소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뜻만을 주장하고 그 뜻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주님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불평과 불만으로 원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하지 못해 고민 속에 있을 때, 나의 뜻만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의 뜻을 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큰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께서는 늘 우리 편이셨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최악의 상황이 아닌 최선의 상황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생각의 전환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기쁠 수 있는 또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의 마음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는 포도밭을 일구고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우는 일을 주인이 대신 해주었습니다. 또한 포도밭 소출의 전부를 가져오라는 것도 아닌 얼마만을 내라고 합니다. 아마 주인은 자기의 배려와 사랑을 알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작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인의 사랑과 배려는 전혀 보지 못하고,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사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꾸짖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생각의 전환을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보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늘 나의 입장에서 편하고 쉬운 것만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어렵고 힘든 것이라도 주님의 뜻이라면 용기 있게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이 충실한 주님의 소작인입니다.

 

오늘의 명언


나도, 다른 누구도 당신의 길을 대신 가줄 수 없다. 그 길은 당신 스스로 가야할 길이기에.

- 윌트 휘트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채워도 다 채울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욕심입니다. 다 채울 수 없는 욕심으로 살다가는 어리석은 우리들 삶입니다. 예수님 마저 죽인 뒤에야 비로소 조금 알게되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모든 구원의 역사는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우리는 살아갑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하느님마저 단칼에 버리는 우리들 마음입니다. 약속을 어기는 쪽은 그래서 늘 욕심 많은 우리들입니다. 아름다워야할 포도밭에 욕심의 잡초만이 무성합니다. 거두어들이시는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맞아들이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맞아들임은 넘치는 말들의 허황된 잔치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맞아들임의 머릿돌이 됩니다. 욕심의 모퉁이를 지나야 비로소 만나게되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보내고 또 보내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들 내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내면이 새로운 길을 만납니다.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으신 하느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 포도밭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새로운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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