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4년 5월 21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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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야고 4,1-10)
청하여도 얻지 못한다면 잘못 청하기 때문입니다. - 오늘 복음
(마르 9,30-37)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오늘 말씀 카드
(야고 4,10)
자신을 낮추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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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 4,1-10
오늘 제1독서
청하여도 얻지 못한다면 잘못 청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4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5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
6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7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8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9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10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게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마르 9,30-37
오늘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5월 21일
김강룡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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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갈등과 불화를 해결할 방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사이의 ‘서열 논쟁’으로 생긴 갈등을 정리하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는데, 사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욕심”에서 비롯합니다.
독서는 이를 매우 날카롭게 묘사합니다.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복음은 이러한 갈등과 불화를 해결할 방법으로 세 개의 이미지(꼴찌, 종, 어린이)를 제시합니다.
“꼴찌”로 옮긴 그리스 말 ‘에스카토스’는 끝이나 종말 또는 마지막을 의미하며 맨 끝자리의 ‘무의미한 존재’나 ‘쓸모없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종”으로 옮긴 그리스 말 ‘디아코노스’ 또한 식탁에서 봉사하는 이를 뜻합니다.
“어린이”로 옮긴 그리스 말 ‘파이돈’은 세 살에서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 어린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어리고 연약한 이들을 말합니다.
결국 이 세 개의 이미지를 통하여 “첫째가 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력 대신 힘 없고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겸손을 가지도록 제안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그것이 바로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독서에서는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꼴찌가 되고 누군가의 종이 되며 연약한 아이처럼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식이나 위선 없이 진심으로 하느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야말로 구원의 초대이고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그때 하느님께서는 바닥에 있는 우리를 들어 올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린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 안아 주셨듯이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늘까지 치고 올라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다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사람과 겸손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되기 더 어려울까? 그러면서 탁 든 생각은 겸손의 사람이 더 되기 힘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영적으로는 둘 다, 우리가 되고 싶은 겁니다. 겸손한데다가 사랑하기까지 한다면 그것이 최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랑은 인간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지만, 겸손 특히 낮은 것은 인간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과 작음과 낮음은 인간적으로는 싫은 것을, 완덕의 이유와 영적인 이유로 되려고 하는 것이겠습니다.
완덕과 영적인 이유라면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가 되려는 것인데 제 생각에 하느님 앞에서가 아니라면 겸손하고 작고 낮은 자 되는 것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간 누구가 인간에게 자기를 굽히고 낮추겠습니까? 같은 인간인데 누가 누구에게 굽히고 싶겠습니까?
밸이 꼴리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억지로 자신을 굽히는 것이지 할 수만 있다면 남 위에 군림하고 싶고 적어도 밑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서고 싶어서 낮추는 것이고, 하느님 앞에 설 때 낮출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첫째가 되려면’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첫째란 하느님 앞에서 첫째지 인간들 가운데서 첫째가 아닐 것이고, 첫째가 되기 위해 꼴찌가 되라는 말씀도 하느님 앞에서 첫째가 되려면 사람들 가운데서는 꼴찌가 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에게 말합니다.
레오나르도야, 이왕 오르려거든 고작 이 세상에서 사람들 위에 있으려 하지 말고, 오르고 오르다 하늘까지 치고 올라 하느님 앞에서 첫째가 되어라!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권고한 것을 되생각합니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겸손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높여 주시도록 여러분도 겸손해지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당신 자신 전부를 바치시는 분께서 여러분 전부를 받으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것 그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남겨 두지 마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진정한 부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이자 동물보호법의 창시자이며, 동시에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유태인을 학살한 사람입니다. 이 두 개의 아이러니한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히틀러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악한 사람이었을까요? 악한 사람이 어떻게 동물을 보호하는 법까지 만들었을까요?
그렇지만 사람을 판단할 때 짐승이나 물건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것들에 자신의 처지를 투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사람은 커서 물건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구 쌓아놓습니다.
금쪽 상담소에 ‘김창훈’ 씨가 나왔습니다. 저장 강박증이 있고 아이를 지나치게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5남매를 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김창훈 씨를 바빠서 보호해 줄 수가 없어서 4년을 맞으며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보호를 못 해줄 거라면 낳지를 말지!”
결국 물건이나 동물은 사랑받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같아서, 자기연민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동물이 진정으로 좋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사랑의 정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같은 인간 중에 보잘것없는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영화 ‘베테랑’에서 보면 재벌 2세가 가난한 사람을 핍박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이 자신과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다면 아직 그는 부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부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재벌 2세 조태오는 밀린 임금 420만 원 때문에 1인 시위를 하는 아버지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올린 다음 아버지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자식이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는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는 환자들에게 잘 대해주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수천억 자산가인 김승호 씨는 우리나라 사업가 중 어떤 사람들은 식당에 갔을 때 종업원들을 막 대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직 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겐 아직도 식당 종업원이 자신의 지위를 올리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돈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서로 높아지려는 제자들을 나무라십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면 모든 어린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아기가 자신이 받은 은혜를 힘입는다면 자신처럼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아이들을 낳은 부모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을 사랑하려면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시각이 바뀝니다. 애벌레일 때는 나보다 못한 이들을 괄시하고 무시합니다. 자신보다 나은 애벌레가 있다면 그와 결탁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나비가 되면 자비의 눈으로 애벌레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애벌레들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눈이 사라집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 사이에 여러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욕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욕정이 욕심이 되고 그 욕심이 경쟁하게 하고 다투게 합니다. 따라서 아직 애벌레의 욕정이 남아있다면 그 사람은 나비가 되게 창조하신 하느님의 적이 됩니다.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삶은 이렇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교만한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거지를 만나 자비심을 느끼며 그 삶이 그들을 무시하며 살 때보다 더 행복함을 알고 그들을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구걸하는 거지를 무시한 게 마음에 걸려 그에게 가진 돈을 다 주었는데 참 평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이제 작은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으로서 가장 작은 사람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수,목,금요일(22~24일)은 사제 연수 관계로 복음 묵상을 쉬겠습니다. 토요일 새벽 5시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 닮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신부님, 신부님 본당 아이가 그린 그림을 주보에서 보셨어요?”
제게 많은 분이 이러한 SNS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주보를 보니까 교구 주보에 어린이들의 그림이 올라와 있는 것입니다. 그중 두 개의 그림이 우리 본당 아이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그림에 저로 보이는 얼굴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서 많은 분이 제게 연락하셨던 것입니다. 기분이 좋았을까요? 아니면 나빴을까요?
솔직히 부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의 주제 때문입니다. 그림 주제가 ‘내가 만난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이 그림 속의 인물과 제가 똑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저를 그리면서 예수님을 생각했던 것일까요? 이 점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스스로 너무나도 부족하고 나약한 죄 많은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다짐했지만, 지금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눈에 저를 이렇게 봐주더니 어떻게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 눈에서는 신부를 모두 예수님처럼, 수녀를 모두 성모님처럼 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함부로 사는 삶이 아닌, 예수님 닮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은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을 두려워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피하는 삶도 아닙니다. 그런데 고통과 시련은 내게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부활이란 커다란 영광입니다. 이 부활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 전에 겪어야 할 수난과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더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 논쟁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가장 낮은 위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장 높은 자리만을 탐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닮는 삶은 어떤 순간에서도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처럼 낮은 사람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즉,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 닮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자기를 통해 다른 이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겸손한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걱정이랑 모두 낡은 가방에 넣어 버리고 이제 웃어라, 웃어라.
- 조지 에세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다르게 사람을 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다르게 오십니다. 꼴찌의 꼴찌가 되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첫째와 꼴찌 의 삶이며 꼴찌와 첫째의 삶입니다.
꼴찌 없는 첫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꼴찌도 첫째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꼴찌를 살리는 첫째와 첫째를 살리는 꼴찌가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꼴찌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드러내는 꼴찌가 있어 더 행복한 세상입니다. 꼴찌를 통해 모르던 사랑을 알게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꼴찌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만든 첫째와 꼴찌의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납니다. 오히려 꼴찌로 오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복음의 됩니다.
알몸으로 태어나 맨몸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은 사랑을 나눈 꼴찌가 더 그립습니다. 다시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꼴찌로 오신 예수님에게서 보게됩니다.
첫째와 꼴찌의 논쟁이 아닌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첫째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넉넉하고 기쁜 꼴찌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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