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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1월 12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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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부귀영화 그의 집에 넘치고, 그의 의로움 길이 이어지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2022년 11월 12일 (토)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3요한 5-8)
    우리가 형제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됩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8,1-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12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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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님, 복된 요사팟 주교가 성령을 충만히 받아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령의 힘으로 형제들을 위하여 기꺼이 생명을 바치게 하소서.

 

 

복음
루카 18장 1-8 절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2일 (토)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리백진 파비아노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11월 12일 (토)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오늘 복음은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시는 목적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유 속 등장인물은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구약 성경의 전통에서 ‘과부’는 의지할 데 없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합니다. 반면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로 묘사됩니다. 

과부는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재판관은 한동안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과부가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청하자, 그가 끝까지 찾아와서 괴롭힐 것을 예상하고는 마침내 그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줍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을 정의로우신 하느님에 빗대어 이야기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올바른 판결을 해 주는데, 하물며 정의로우신 하느님이야 얼마나 더 올바른 심판을 내리시겠는가?’라는 논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청하는 과부처럼 제자들도 하느님께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시도록 밤낮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불의의 사고나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쳤을 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라고 울부짖으며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하느님께서는 ‘자판기’가 아니십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정해 놓은 ‘원인과 결과’의 논리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신앙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가 낙심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지체 없으신가?

 

오늘 복음의 두 열쇠 말은 “낙심하지 말고”와 “지체 없이”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 가르침인데 문제는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느냐 그것이라고 주님은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그런데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과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말이 안 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면 낙심할 사람이 없을 것이고 끊임없이 기도할 필요도 없겠지요. 

하느님의 응답이 지체되니 낙심하고 기도를 중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유의 과부처럼 들어주실 때까지 끈질기게 청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가 많고, 들어주시더라도 지체하시는 경우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청하는 것은 모두, 그리고 청하는 즉시 들어주신다는 믿음은 갖지 말아야 합니다. 끈질기게 청하면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고 주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지 않고,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시지 않는다고. 인간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고. 

그러므로 우리가 뱀이나 전갈을 달라면 안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뱀이나 전갈 같은 것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달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선이 아니라 이 세상의 선을 좋아하는 겁니다. 

어제는 제가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돌아가신 분의 3주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따져보니 그분이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10년 이상을 그러니까 오늘 주님 말씀처럼 끈질기게 기도했는데 그러나 돌아가셨습니다. 

10년을 넘게 살게 해주셨으니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라고 할 수도 있고, 기도했는데도 돌아가셨으니 안 들어주신 거라고도 할 수 있지요. 

아무튼, 그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90이 넘으신 자매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들들을 잃고 지금 하나 남은 아들마저 앞세우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기도하고 있는데도 기도해주기를 또 간절히 청하시는 거였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25년 전에 신장 이식을 받으신 분인데 다시 나빠졌으니 좋아지기가 어렵고,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폐렴까지 앓게 된 상황인데도 이 자매님은 오늘 주님께서 비유로 드신 과부처럼 낙심하지 않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도 물론 기도할 것입니다만 믿음이 약한 저는 그 아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드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은 그 아들이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좋아하는 것이고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서 보실 때도 정말 좋은 것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기도대로 지체 없이 들어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할 수 없고 다만 하느님께서 제가 청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지체 없이 들어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청하는 즉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되는 그때 즉시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꼭 들어주시리라 믿는 것도 큰 믿음이지만 안 들어주시거나 늦게 들어주시더라도 그것이 하느님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더 큰 믿음임을 묵상하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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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 나랑 같이 살래?

 

어렸을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시장에 자주 갔었습니다. 반찬 재료와 식료품, 종종 석유 심부름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사야 할 물건 목록과 돈을 제 손에 꼭 쥐여주고는 잘 다녀올 것을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처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시장 가다가 동네를 찾은 약장수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약장수가 오면 차력 쇼를 비롯한 재미있는 여러 가지 쇼를 보여 주거든요. 저는 심부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그 쇼를 계속 즐겁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얘들은 가라.”를 외치며 쫓아내는 약장수에게 밀려나 다시 시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글쎄 손에 있어야 할 돈이 없어진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혼날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집에서 시장까지를 땅바닥만 보면서 왔다 갔다 반복했습니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입니다.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 앞에서 울고 있는데, 노숙자(당시에는 거지라고 했습니다)로 보이는 사람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너, 나랑 같이 살래?”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이 사람을 쫓아갈까도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어머니께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손에 끌려 집에 들어갔습니다. 
 
울면서 돈을 잃어버렸다고 말하자 당연히 혼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무섭다고 노숙자 손을 잡고 가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두려움을 피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해결은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이런 모습을 원하십니다. 고통과 시련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그냥 피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어 구원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다만 그때까지 좌절하지 말고 끈기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성가시게 졸라대서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을 외면하겠냐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늘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불평불만도 많이 표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피하려고만 했지, 정면으로 고통과 시련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매달리지 못하고 늘 피하는 데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매달릴 수 있는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니, 어렵고 힘든 시간을 현명하게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남의 험담을 하면, 곧 당신의 험담이 돌아오는 줄 알아라.

- 헤시오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가난한 우리들에겐 기도가 있습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삶이 뜨거운 것은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가 보아야 알게되는 것이 우리들 삶입니다. 기쁨과 슬픔 사이에 끊임없이 기도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기도하는 기도의 선택입니다.

기도의 이야기는 희망의 간절한 이야기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도로 사랑을 알게하시며 삶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로 태어나고 기도로 돌아가는 우리들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기도는 공동체를 향하고 공동체는 기도가 중심이 됩니다. 매일매일이 기도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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