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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022년 6월 6일 (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람은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라 하였는데,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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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외아드님을 낳으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저희에게 어머니로 주셨으니 사랑이 넘치는 마리아의 협력으로 나날이 풍요로워지는 하느님의 교회가 자녀들의 성덕으로 기뻐하며 모든 백성을 품 안에 모으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요한 19장 25-34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2022년 6월 6일 (월)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2022년 6월 6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목마르다.”
십자가 위에서 목말라 신음하시며 죽어 가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하여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세상 모든 죄악과 고통을 지시고 홀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다 이루어졌다.”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주님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으로 죽음은 극복되었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 곁에는 성모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십자가 아래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님을 차마 마주 바라보지 못하시며 그 어떤 말도 못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라고 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시어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아 기르셨으며,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도 동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전적으로 협력하신 구세주의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이제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주 예수님을 모시고, 성모님을 어머니로 공경하는 우리의 자리는 ‘십자가 아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을 말입니다. 이 길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걷는 사랑과 봉사, 희생과 죽음의 길입니다.
이 길은 힘겹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은총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우리 곁에는 성모님께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인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 주십니다.
“어머니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마리아처럼 모성성을
오늘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축일의 의미는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라는 것이고, 영성적으로는 우리 교회가 마리아를 본받아 모성적인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것, 특히 십자가 위의 주님께서 마리아를 요한의 어머니가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어머니도 되시고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것은 초대 교회부터 있었던 교리이고 신심인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것을 근자에 와서 굳이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날 축일로 지정하여 지내게 한 것은 마리아의 모성성을 지금 우리 교회가 본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모성적인 교회가 되자는 것은 우선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믿고 성령으로 잉태하셨듯이 우리와 교회도 성령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으로 표현하면 마리아처럼 성령께는 정배가 되고 그리스도께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정배로 자신을 얘기해왔고, 그중에서도 봉쇄 관상 수녀들을 그리스도의 정배라고 해왔는데 프란치스코는 클라라와 자매들에게 여러분은 천상 성부의 딸과 여종들이 되셨고, 성령의 정배들이 되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정배가 되는 것과 성령의 정배가 되는 것은 어떤 차이입니까?
그리스도의 정배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어 그리스도의 아들과 딸을 낳는 것이고, 성령의 정배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어 그리스도를 낳은 것이요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를 낳는 것이지요.
프란치스코는 우리와 교회가 마리아처럼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그리스도를 임신하고, 그리스도를 출산하는, 그런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것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순간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고 일단 받아들임으로써 말씀을 잉태하였듯이 그렇게.
그리고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일축하지 않고 일단 받아들인 다음 임신 기간 내내 그 말씀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듯이 그렇게.
그리고 아홉 달이 지나 마침내 출산하여 아들을 볼 수 있도록 낳아주듯이 그렇게.
이렇듯 모성성의 실현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간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형제들이 주님을 뵈러 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고 하자 주님께서 누가 내 형제며 어머니냐 물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어머니라고 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말씀이시고 하느님 말씀이 그리스도시기에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것이며,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임신하는 것이고,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출산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마리아처럼 모성성을 실현하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99세 엄마와 74세 아들의 900일 여행 이야기
74세의 노인이 99세 어머니와 900일 동안 여행을 떠났었던 이야기가 화제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세계의 지붕이라는 서장에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중국 헤이룽강에 사는 아들은 가난해서 비행기도, 자동차도 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수레를 매단 세발자전거로 어머니를 수레에 태워 서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생 희생만 하며 늙어 온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이렇게 900일간 함께했지만, 서장에는 함께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103번째 생신을 앞두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죽음 직전,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세상 구경하는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
장례를 치른 뒤, 다시 7개월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아들 홀로 서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유해를 그토록 가고 싶어 하셨던 서장에 뿌리면서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제 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왜 우리 마음에 사랑을 쫓아내고 있을까요? 만약 아들이 ‘왜 이렇게 가난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합니까?’라고 생각했다면, 또 ‘그 나이에 무슨 여행입니까?’라고 생각했다면, 사랑은 마음 안에서 희미해졌을 것입니다. 사랑했기에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서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보냅니다.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예수님을 맡기는 장면을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성모님께는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시지요. 이 제자는 신앙인을 대표하고, 성모님은 이들의 영적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예수님 당신의 죽음으로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맡을 수 없어서 맡긴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함께하는 성모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제자는 그때부터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 집에 모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모님을 귀한 보물처럼 자기 삶 안에 들어오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 사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성모님의 사랑에 함께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제자가 보였듯이, 성모님을 보물처럼 귀하게 자기 삶 안에 모셔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제 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 27)
동정 마리아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삶이다. 진실함과 간절함의 여정이다. 교회는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어머니의 정성과 손길로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모든 기쁨을 함께 나누신다. 교회에 대한 존귀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어머니시다.
고맙고 존귀한 사랑의 관계는 생활을 사랑하고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의 삶으로 드러난다. 모두의 어머니가 되시는 어머니시다. 이 시대 교회의 역할또한 어머니가 되는 자기 희생과 헌신적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 구체적인 현실 위에 구체적인 실천이 더 없이 중요하다.
어머니는 곧 실천이다. 실천이 빠져버린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닐 것이다. 신앙의 생명은 타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창조이며 변화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살아있는 교회는 어머니와 함께 끊임없이 기도하시며 삶 자체를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하신다.
어머니같이 뜨거운 가슴으로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교회 그 교회의 모습이 그리운 시대이다. 어머니를 통해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 곧 교회의 모습이길 기도드린다. 어머니의 삶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간절함과 절박함의 정성과 사랑이 더더욱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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