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때가 차,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다.
주 예수님, 지체하시지 말고 어서 오시어 주님의 사랑을 믿는 저희를 위로하여 주소서. 아멘.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2월 2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2월 24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사무 7,1-5.8ㄷ-12.14ㄱ.16)
다윗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영원할 것이다. - 오늘 복음
(루카 1,67-79)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2사무 7,1-5.8ㄷ-12.14ㄱ.16
오늘 제1독서
다윗의 나라는 주님 앞에서 영원할 것이다.
다윗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8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루카 1,67-79
오늘 복음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때에 요한의
67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0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72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73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74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75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2월 24일
안주환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5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구원의 빛, 이제 문 앞까지 왔다.
구세주께서 오시기 하루 전의 복음은 즈카르야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에서 노래하는 이 찬가는 두 분을 향합니다. 전반부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루카 1,68)께, 후반부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태어난 지 여드레 되는 “아기”(1,76)에게 바쳐집니다.
이 찬가의 내용도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부분(68-75절)에서는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구원자에 대한 감사의 찬미를 드립니다. 뒷부분(76-79절)에서는 높은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실 별을(1,78 참조) 앞서가 그분의 길을 준비할 요한의 사명을 예언합니다.
이 노래의 중요한 주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을 기억하신다는 것, 따라서 하느님의 약속을 믿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즈카르야는 이제 막 시작되어 곧 이루어질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다.”(1,68-69)라고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고, 앞으로도 찾아오실 것이기에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곧 이 찬가는 과거에 대한 감사와 찬미이자 미래를 위한 예언입니다.
오늘 밤 높은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실 별이 전쟁과 폭력의 어둠 속에 남겨진 이들을 비추도록 기도합시다. 오직 이 빛만이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1,79)입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곧 오시어 저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하씨 집안 사람인가?
저는 안동 김가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후 안동 김가입니다. 그러니까 안동 김가 후 안동 파입니다. 이 정도만 알고 더 이상 잘 알지 못하는데 인간적인 족보와 가문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희 후 안동 김가 가문에 속한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의 외가 청송 심씨 가문을 보면 학자 집안답게 매우 점잖고 조용한데 저희 후 안동 김가는 세도가 후손이기 때문인지 매우 정치적이고, 거칠고 시끄러워 저는 저의 가문을 싫어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겁니다.
세속 가문이 이러하다면 저의 영적 가문은 이러합니다. 하씨 집안의 프씨 파입니다. 하느님 집안의 프란치스코 종파입니다. 저의 안동 김가 가문이 망하는 것은 그리 걱정하지 않고 세우고 싶지도 않지만 이 가문과 종파는 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든든하게 세우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십자가의 주님에게서 받은 사명이기도 하고, 그 가문에 속하는 제가 받은 소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은 자기 왕국을 안정시키고 왕궁을 지은 다음 주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내가 너희 집을 나의 집안이 되게 해줄 테니 너도 너의 집안을 하느님의 집안이 되게 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은 오늘 복음의 요한과 즈카르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을 때 집안사람들은 관례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서 즈카르야라고 지으려고 했지만 불신이 치유된 즈카르야는 아들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요한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여기서 성찰해봅시다.
내가 하씨 집안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까? 나는 하씨 집안 사람으로서의 나를 사랑합니까?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는 나’일 뿐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령으로 가득찬 즈카르야의 노래
오늘 <독서>는 다윗 가문에 영원한 왕좌가 약속되고, <화답송>에서는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시 89,5)고 노래한다. 그리고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환호합니다.
“떠오르는 별, 영원한 빛, 정의의 태양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어둠 속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소서.”
‘즈카르야의 노래’에서 따온 이 구절은 바로 우리의 기도요, 이 시대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여전히 어둠과 질곡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어둠과 악이 난무하기에, 우리는 빛을, “정의의 태양이신 주님”을 더더욱 기다립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성령으로 가득 차 노래합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기도> 때 드리고 있는 이 ‘찬가’(Benedictus, 찬미 받으소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1,68-75)는 찬양 노래입니다.
‘자비’를 찬양하며, 그 자비를 베푸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그 자비는 선조들과 예언자들에게 약속하시고 예언한 것, 바로 “구원”을 말하며, 바로 그 ‘구원’이 아기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심을 찬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주시려는 것입니다.”(루카 1,75)
<후반부>(1,76-79)는 ‘곧 태어날 아기가 장차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노래합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은 하느님으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은 예수님으로,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는 세례자 요한으로 드러납니다. 곧 세례자 요한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선구자’로 말합니다.
이 노래는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
<후반부>도 여전히 “자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곧 “크신 자비”에 대한 찬미입니다. “크신 자비”라는 말의 직역은 ‘자비의 내장으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자비의 ‘깊고 마음’이 크심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 크고 깊으심에서 그리스도는 오시어, 어둠과 죽음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고 ‘평화’로 이끌 것입니다. 어둠 속 우리를 당신 빛 속, 평화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니 등불을 밝혀들고, 그 참 빛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주님!
제 안에 오신 빛
자비시여.
저를 비추소서.
제 안에 오신 별
빛이시여.
밝히소서.
제가 환해 지리이다.
당신 마음으로
저를 채우소서.
제가 자비로워 지리이다.
당신 얼굴로
저를 비추소서.
제가 평화로워 지리이다.
그 크고 깊으심으로
저를 어루만지소서.
제가 새로워 지리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어둠 속(Nothing)에 앉아 있어야 별(Everything)이 보입니다
찬미 예수님.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 아주 오만한 천재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손이 곧 신의 손이라 믿었습니다.
"나는 죽음을 통제한다."
그는 오만했고, 당연히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곧 빛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빗길 교통사고로 양손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전 재산을 털어 수술해도 고칠 수 없게 되자 그는 폐인이 됩니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에인션트 원이라는 스승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그를 눈보라 치는 에베레스트산 한복판에 덜컥 버려두고 떠납니다. 죽음의 공포, 철저한 고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그 절체절명의 순간 스승은 말합니다.
"너에 대한 것이 아니다(It's not about you)."
그가 자신의 자아(Ego)를 내려놓고 항복했을 때, 비로소 마법의 힘(은총)이 그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는 손을 잃음으로써(Nothing), 세상을 구하는 소서러(Everything)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가 부르는 노래, '베네딕투스'는 바로 이 과정을 겪은 자만이 부를 수 있는 찬가입니다. 즈카르야는 사제였습니다. 평생 하느님을 섬겼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를 '벙어리'로 만드셨습니다. 열 달 동안의 침묵, 그것은 즈카르야의 자아를 깨뜨리는 에베레스트산이었습니다. 그가 말할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을 잃고 'Nothing'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의 눈에 "떠오르는 별"이신 구세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빛인 줄 착각하는 이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언가 선택하고 할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바로 이런 이들을 'Nothing'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어둠 속에 앉히는 것, 그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미국의 변호사 호레이쇼 스패포드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시카고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네 딸을 배 사고로 모두 잃었습니다. 그는 딸들이 수장된 대서양 한가운데를 지나가게 됩니다. 인생 최악의 어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실에서 절규하던 그에게 갑자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펜을 들어 찬송가를 썼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
가장 깊은 슬픔의 어둠 속에서 그는 부활의 소망이라는 가장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칠레 광부 매몰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 700미터, 빛 한 줄기 없는 갱도에 33명의 광부가 69일간 매몰되었습니다. 섭씨 32도의 무더위와 암흑 속에서 그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구조된 후 작업반장 우르주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 33명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34번째 인물이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지상의 빛이 사라진 지하 700미터의 절대 어둠 속에서 그들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임마누엘)을 만났습니다. 왜 우리는 어둠 속에 앉아야 할까요? 천문학자들은 별을 관측하기 위해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같은 오지로 떠납니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 즉 '광공해(Light Pollution)'가 있는 곳에서는 은하수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성공, 칭찬, 자만심이라는 인공조명이 너무 밝게 켜져 있으면, 베들레헴의 작은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를 어둠 속에 앉혀 이 광공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스스로 빛나기를 멈추고 자신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 사람(사막)만이 구세주를 발견합니다.
아일랜드의 사도 성 파트리치오(패트릭)도 이 과정을 겪었습니다. 16살의 귀족 소년이었던 그는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가 됩니다. 6년 동안 낯선 땅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양을 치는 고독 속에 버려졌습니다. 부모의 품을 떠난 끔찍한 어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백록에서 말합니다.
"그 고독 속에서 나는 하루에 백 번도 넘게 기도했다. 그러자 내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불타올랐다."
그 6년의 광야 생활이 그를 'Nothing'으로 만들었기에, 그는 아일랜드 전체를 비추는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제로(0)'로 만드는 예언자를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닭 울음소리'가 바로 그 예언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지킬 수 있는 빛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었을 때, 그리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의 자만심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의리 있는 수제자가 아니라, 겁쟁이 배신자, 철저한 'Nothing'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무(無)의 체험 후, 베드로는 통곡의 기도를 바쳤고 진짜 반석이 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에게는 엘리사 예언자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아람의 군사령관 나아만은 자신의 지위와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병을 고치러 갈 때도 막대한 보물과 왕의 친서를 들고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Something)'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에게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합니다. 흙탕물에 들어가라는 명령은 장군의 계급장을 떼고 벌거벗은 나병 환자(Nothing)가 되라는 굴욕적인 요구였습니다. 그가 자존심을 꺾고 물속에 들어갔을 때, 그의 살은 어린아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는 비로소 "이스라엘의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를 제로로 만드는 예언자를 만나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예언자는 바로 '교회'입니다. 제가 지금 냉담자를 무작정 방문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낮아짐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예절과 가르침, 고해성사와 전례는 우리 자신을 제로로 만듭니다.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제 탓이오"를 고백하게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치켜세우지만, 교회는 우리를 죄인이라 부르며 어둠 속에 앉힙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메시아의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고, 하루에도 백 번이라도 "주님,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존재가 됩시다. 우리가 어둠 속에 앉아 있을 때, 동터오는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Chat Gpt에 이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나에 대해 기억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임팩트 있는 3줄 광고 문구를 만들어 줘.”
1) 말과 마음이 만나는 순간, 조명연 신부의 강의가 시작됩니다.
2) 신앙과 삶, 그리고 행복을 잇는 따뜻한 여정.
3) 하느님 안에서, 더 깊고 더 자유로운 나를 만나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인터넷 안에서 나의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뻥 치지 마!”라면서 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황금률을 따라야 합니다. 즉, 남이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으로 힘을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약한 사람, 못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사실 남이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부모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기가 해 달라는 대로 부모는 다 해 줍니다. 못나서 그럴까요? 아니면 아이보다 약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더 강하기 때문에, 사랑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떨까요? 우리보다 당연히 크신 분이고, 그 사랑의 크기도 엄청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사랑의 크기를 키워서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벙어리로 지냈던 침묵의 시간을 깨고, 아들의 탄생과 곧 오실 구세주를 찬미하며 부른 노래를 들려줍니다. 즈카르야가 처음에 천사의 예고를 믿지 못해 말을 잃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강함을 특히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었지요. 그 결과는 열 달 가깝게 침묵해야 했습니다. 바로 정화와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을 때,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였습니다.
비로소 즈카르야도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불신의 마음에서 굳은 믿음에서 외치는 소리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계속된 불신과 불만의 마음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 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고통은 지나가지만, 고통을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은 영원하다(성녀 데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자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비추는 자비의 빛이십니다. 자비에서 비롯된 은총의 빛입니다. 조용히 우리의 길을 비추십니다.
사람에게 내려와 사람의 삶을 밝히십니다. 이와 같이 참된 신앙은 스스로 빛나려는 교만이 아니라, 비추어 주시는 하느님 앞에 자기 자신을 맡기는 신뢰입니다. 빛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벗어남의 은총입니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빛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우리의 구원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 앞에서 눈을 뜨는 은총의 기쁜 순간입니다. 그분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행복한 성탄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루카복음 1장 7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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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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