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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1/07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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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1월 7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7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로마 15,14-21)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그들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6,1-8)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로마 15,14-21
오늘 제1독서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그들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4 나의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 자신도 선의로 가득하고 온갖 지식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서로 타이를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15 그러나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대담하게 썼습니다. 

16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18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19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20 이와 같이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21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에 관하여 전해 들은 적 없는 자들이 보고 그의 소문을 들어 본 적 없는 자들이 깨달으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6,1-8
오늘 복음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3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5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6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7일
도승현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3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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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맡겨진 삶,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루카 복음서 15장의 ‘되찾은 양,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이어 16장에는 ‘약은 집사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지요.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그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불러 더 이상 집사 일을 맡기지 않겠으니 일을 정리하라고 이릅니다. 

‘낭비’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물이나 시간 따위를 아껴 쓰지 않고 헛되이 헤프게 씀”이라고 나옵니다. ‘헤프게’ 쓰는 것이 낭비라는 점에는 많이들 동의하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헛되이’ 쓰는 것 또한 낭비라는 점은 쉽게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말하는 낭비가 바로 헛되이 쓴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산 관리를 맡긴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주인의 목적에 맞지 않게 쓰는 것도 헛되이 쓰는 낭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자기의 재산을 맡긴 주인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집사는 빚진 이들을 하나하나 불러 그 빚을 줄여 줍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여, 곧 집사 자리가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나중을 생각하여 주인의 것으로나마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일은 무척이나 계산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인의 뜻에 맞게, 곧 자비를 베푸는 데 재산을 썼기에 그가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집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인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신 까닭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랑을 배워 오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이 아닐까요? 우리는 시간과 재물과 재능을 제대로 쓰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선심 쓰는 것을 멈추지 말라!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 드신 비유에서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고, 그것 때문에 해고될 처지를 맞이했는데 영리하게 대처합니다. 곧 해고될 때 자기를 받아달라고 주인에게 빚진 이들에게 주인의 재산을 갖고 선심을 쓰는데 실은 횡령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주인은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칭찬합니다. 주님의 생각은 집사가 주인 것을 횡령한 것이 아니라 선용했다는 것이고, 우리 인간도 본래 하느님 것을 가지고 집사처럼 선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이런 영성이 깔려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도 실은 하느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선심을 쓰려면 어쩔 수 없이 하느님 것을 가지고 선심 써야 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선심 쓰길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것을 나만을 위해 쓰면 그것은 착복이라고 생각하시고, 이웃을 위해 쓰면 선용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우리 부모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큰아들이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흥청망청 쓰려고 하면 언짢아하시지만 동생들의 환심을 사려고 부모 유산을 동생들과 나눠 쓰는 것은 좋아하지요.

여러분도 제게 그러지 않으십니까? 저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많은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제가 한평생 한 좋은 일 중에 여러분 도움 없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그것을 저를 위해서 쓰고 특히 욕망을 채우려고 썼다면 저를 이렇게 계속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도 여러분도 제가 하느님의 정직하고도 충실한 집사이길 바라시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다른 비유에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곧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양식을 제때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 정해진 대로 제때 나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것을 가지고 제가 막 선심 쓴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백성사 볼 때 특히 가난과 관련하여 성사 볼 때 하느님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았지만 하느님 것을 내 것인 양 마구 썼다고 고백성사를 보곤 합니다. 그러니까 저의 경우 하느님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쓸 때도 곧 선심을 쓸 때도 내 것인 양 쓰지 말아야 하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아직도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곧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마치 제 것으로 선심 쓰는 양 아직 으쓱대고 또는 나는 주머니를 따로 차고 있지 않으니 잘하고 있다고 으쓱댑니다.

그러므로 저는 더 가난하고 겸손한 집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난하고 겸손하지 못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것을 가지고 마구 선심 쓰는 것을 멈출 생각은 오늘 주님 비유 덕분에 없습니다. 가난하고 겸손하되 선심 쓰는 것은 멈추지 말라! 이 가르침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사 일을 그만두게.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 중의 하나는 우선 ‘돈’이라는 재물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권을 사들고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하고, 돈을 쫓다가 살인하기도 합니다. 물론 돈이 주는 순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의 역기능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인간을 파괴시키기도 합니다. 사실, 재물은 우리에게 선물임과 동시에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약은 집사의 비유”는 재물과 맺는 관계가 하느님과 이웃들과의 관계 맺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실, 주인의 재물을 맡아 관리하던 집사는 관리인으로서의 자신의 신원을 망각하고 관리를 맡긴 분의 뜻을 거역하고, 맡겨진 재물을 자신의 뜻에 따라 쓰고 낭비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그를 “집사 일을 그만두게” 하자,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와 ‘지금 있는 자리’,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자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질문하고 답합니다.

“어떻게 하지? ~옳지, 이렇게 하자.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루카16,3-4) 

그는 비록 불의한 관리인이었지만, 지혜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잔머리를 굴려 마지막 한 몫을 더 챙기려하지 않고, 오히려 재물을 나누었습니다. 쌓아놓은 재물을 나누고, 움켜쥐었던 것을 내주었습니다. 횡령하고 착복했던 것을 아낌없이 퍼주었습니다. 주인처럼, 아버지처럼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이어지는 뒷부분에서, 이 비유를 해설하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루카 16,12) 

그러니, 이 비유는 결코 약삭빠른 청지기의 처신이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자녀들도 닥쳐올 일에 대해 민첩하게 대처하건만, 그렇지 못하고 있는 ‘곧 닥쳐올 일에 대해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는 빛의 자녀들의 삶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실,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고,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는 신앙의 진실성을 드러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재물이 지금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와 우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사이에 압박과 침해와 불목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6,3-4
어떻게 하지? 옳지, 이렇게 하자.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주님!
제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 재물과 소유를 
횡령했습니다.

제 자신을 
마치 저의 것인 양 
횡령했습니다.

입으로는 당신을 
주님이라 고백하면서도 
제 자신을 
주인인 양 섬겼습니다.

진정, 당신이 맡기신 
이 몸은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이 저의 주님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를 옭아매는 
자애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잘 산 사람들은 잘 죽는 법도 알았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루카 16,1-8)에서 우리는 '불의한 집사'라는 당혹스러운 비유를 듣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해고 통지를 받은 집사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인의 빚을 탕감해 줍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이 집사를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그의 부정이 아니라, '해고'라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절박하게 움직인 그의 '영리함'입니다. 

이 집사와 정반대인 인물이 '부자 바보'(루카 12장)입니다. 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약삭빠른 청지기는 심판이 곧 온다고 믿었고, 부자 바보는 더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청지기는 '해고 통지서'를 받자마자, 자신에게 남은 '불의한 재물'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부자 바보는 '해고 통지서'(죽음)를 상상도 못 하고 재물을 쌓아두다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심판 앞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라고 한탄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너는 더 이상 관리인 노릇을 할 수 없다."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을 것입니다. 이 통지서를 미리 받아들고 삶을 바꾼 '영리한 집사'들이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죽음의 상인'이라 불렸습니다. 1888년, 그의 형이 죽었을 때 한 신문이 그가 죽은 줄 알고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라는 부고 기사를 냈습니다. 자신이 '죽음의 상인'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한 그는, 복음의 집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해고 통지서'를 미리 읽은 것입니다. 그는 즉시 유언장을 수정하여, 자신의 '불의한 재물'(전 재산 94%)을 기부해 '노벨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현세의 평판을 '인류의 은인'이라는 영원한 유산으로 바꾼, 가장 영리한 집사였습니다. 

1912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메이시스 백화점 소유주인 이시도르와 아이다 스트라우스 부부가 있었습니다. "여성과 아이들 먼저!"라는 외침 속에서 아이다는 구명보트 탑승을 권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 이시도르 곁에 남았습니다. 이시도르 역시 "다른 남자들보다 먼저 타지 않겠소."라며 거절했습니다. 아이다는 남편의 팔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함께였어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소."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갑판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자산은 '함께 죽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마지막 재산을 '영원한 사랑'과 '부부의 신의'라는 영원한 가치와 맞바꾸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였을지 몰라도, 그들은 영원을 위해 가장 영리한 선택을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극적인 '해고 통지서'를 받아야만 영리해질 수 있을까요? 성 베네딕토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두어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매일 스스로에게 '해고 통지서'를 발부하는 '빛의 자녀들'의 영리함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죽을 수 있다고 믿을 때, 생명은 문론이요 내가 움켜쥔 이 재물, 이 명예, 이 자존심마저도 곧 사라질 '불의한 재물'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병(ALS)'이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나는 내 죽음을 내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겠네."라고 결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불의한 재물', 즉 곧 사라질 '육신'과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사랑'과 '가르침'으로 베풀어 '영원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는 제자 미치 앨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아. 하지만 죽는 법을 배우면, 비로소 사는 법을 배우게 되지."  

죽음이라는 '해고 통지'는 무엇이 '불의한 재물'이고 무엇이 '영원한 가치'인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요?  

'오늘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상인'으로 남을지,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부부로 남을지 결정하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으로 영리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음이 이득입니다."(필리 1,21)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만 울고 나머지는 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우리만 웃고 나머지는 울면 그것이 잘 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잘 사신 분들은 항상 잘 죽는 법을 알았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배가 침몰해서 무인도에 그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 중 3명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들 각 직업은 특전사, 운동선수 그리고 나이 많은 노시인이었습니다. 이들 중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특전사는 무인도의 맹수와 싸우다가 사망했고, 운동선수는 섬을 벗어나겠다고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가 익사했습니다. 노시인은 “이것도 인생이다”라며 묵묵히 지내다가 지나가던 배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약해 보이는 노시인이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다릴 줄 알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 시인은 구조가 되지 않았어도 “이것도 인생이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어렵고 힘든 일이 계속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를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할 수 없다며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자기 인생인 것입니다. 쉼 없이 24시간 내내 고통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극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매일 재미있는 일을 찾으며 생존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절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도 인생이니까요. 
 
예수님께서 불의한 집사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였기에,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게 됩니다. 이제 직업을 잃고 생계가 막막해질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이때 좌절하고 포기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남은 권한(주인의 이름으로 빚 문서를 관리할 권한)을 창의적이고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인이 자기 재산에 손해를 입힌 것이 분명한데도, 자기 미래를 위해 약삭빠르고 단호하게 행동한 집사의 수완을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너희도 저 집사처럼 사기를 쳐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불의한 집사조차 자기의 미래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데,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위해 얼마나 더 절박하고 슬기롭게 준비해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의 답을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어지는 구절에서 답을 주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어라.”(루카 16,9)
 
우리가 가진 재물을 움켜쥐고 자기만을 위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를 나누고 베풀어서 하늘의 친구들을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이로써 하느님 나라에 영원한 거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드는 지혜로운 빛의 자녀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명언

시련을 이기는 법을 배우면, 더욱 강인해집니다(마크 트웨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위기 속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혜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관계와 미래를 살리는 통찰입니다. 그만큼 관계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주인이 불의한 관리인을 칭찬했다는 것은 그의 속임수를 칭찬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지혜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세속의 재물도 하느님 나라의 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가르치십니다. 위기 속에서 배우는 지혜로운 새로운 길입니다. 빛의 자녀들도 세상을 향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뜻을 지혜롭게 식별하는 적극적 실천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실천적 삶의 방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지혜는 단순히 세속의 지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복음의 지혜입니다. 세속의 계산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의 지혜를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세상을 피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현실을 지혜롭게 읽고 대응할 줄 아는 우리들이길 바라십니다. 세상의 지혜는 예수님과 함께 사랑과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15장 17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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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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