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을 형제들에게 전하오리다. 알렐루야.
주님, 저희 기도를 들어주시어 저희가 신비로운 이 예식으로 성자의 부활 축제를 지내며 다시 오시는 그분을 모든 성인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28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7,15.22─18,1)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6,12-15)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사도 17,15.22─18,1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요한 16,12-15
오늘 복음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28일
김욱 다윗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9:17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말재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아레오파고스 연설을 전합니다. 바오로는 먼저 아테네 시민을 대단한 종교심을 지닌 이들로 치켜세우며 그들의 예배소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사도 17,23)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미지의 신, 그러나 숭배받아 마땅한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니, 바오로의 이 설교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을 보내셨지만, 그 일은 인간의 말재주가 아닌 ‘십자가의 복음’으로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믿는 이들을 구원하셨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2-24).
말재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내주는 어리석은 사랑의 길,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을 지성이 아닌 근원 곧 마음에서부터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에게 이해시키고 또 그 사랑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는 분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보내 주시고자 하는 성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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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진리들, 하나의 성령들인 우리
요한복음에 많이 등장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진리입니다. 다른 복음에는 진리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데 요한복음에는 25번이나 진리라는 말이 나오고 1장, 3장, 4장, 5장, 8장, 14장, 15장, 17장 18장에서 두루 나오며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는 오늘 이 말씀은 16장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진리의 하느님을 얘기할 때 요한복음은 주로 그리스도 예수를 지칭하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으로 그것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오늘은 성령께서도 진리의 영이시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도 진리이시지만 오늘 말씀을 놓고 볼 때 성령은 진리이신 주님께로 우리를 이끄시는 진리십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이끄시는 진리시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진리의 한 부분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의 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에게도 일리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흔히 ‘네 말에 일리가 있어!’라고 얘기하지요. 그런데 일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가 기분 좋을 일 없고 우쭐할 일은 더욱 없습니다. 많은 진리 또는 모든 진리 가운데 하나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사실 우리가 지닌 진리는 아주아주 보잘것없는 진리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진리를 다 알고 내가 하는 말이 모든 진리인 양 생각한다면 내가 알고 지닌 하나의 진리로 모든 진리를 가리는 엄청난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교만이라면 내게는 하나의 진리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인정할 때 우리는 모든 진리에 열려 있고 모든 진리를 향할 것이며, 이때 진리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존재와 말이 겸손한 진리일 때 우리도 성령처럼 사람들을 모든 진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비유하듯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은 경부선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곳에서 경부선까지 가는 데도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경부선까지 인도하는 수많은 길이 바로 성인들이고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진리의 길과 생명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시고, 우리를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로 이끄시는 분이 성령이신데 이 성령을 모실 때 성인들과 우리도 주님의 성령들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나도 모든 진리이신 주님께로 가고, 그럼으로써 이웃도 주님께로 이끄는 하나의 진리들이 되고, 주님의 성령들이 되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먼저, 성령을 청하라. 그러면 빛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 고별사 중에서도 마지막 말씀입니다. 곧 마지막 말씀 중에서도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만큼 귀중하고 소중한 말씀입니다. 이 다음 구절부터는 이제까지의 말씀을 다시 요약하시는 부분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성령의 개입은 크게 보면, 세 시기에 걸쳐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 시기는 강생 때로,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라고 표현됩니다.
둘째 시기는 세례 때로,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 1,10). 또 “그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마르 1,12)고 표현됩니다.
셋째 시기는 부활과 승천하실 때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루카 24,49)고 표현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고별사에서 ‘성령에 대한 약속’을 다섯 번이나 거듭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14,16-17).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말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14,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다.’(15,26).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16,8).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16,13-1)
이는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는 안내자라는 말씀입니다. 곧 성령의 이끄심이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도, 진리를 행할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 16,13ㄴ)
이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 속에 깊이 결속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성령의 일치 안에 있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1요한 2,20-27)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들을 때는 우선적으로 성령께 의탁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12세기의 카르투시오회의 귀고는 [관상생활에 대해 쓴 편지]에서,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성령을 청하라. 그러면 빛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도유’, 곧 ‘성령으로 기름 부어진 독서’(lectio untionis)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진리의 해석자이시고 동반자이심을 말해줍니다. 말씀의 뜻이 ‘진리의 영’으로 하여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6,13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주님!
진리의 옷을 입고
당신 정원에 심어진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게 하소서.
하여, 당신의 정원에서
행함으로 꽃을 피우고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모상에 따라
새로워지게 하시고,
진리의 영의 숨결 되어 흐르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가 참 말씀의 전달자가 되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감당할 능력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는 이유는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들으시는 것만 그대로 이야기하시는데 어떻게 말씀하시는 분을 감당하게 할까요?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배 위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러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베드로와 같은 존재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제자들은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서 하는 행동과 말은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더 옳다고 여기면 그대로 따라서 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당신에게 받아 그대로 알려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전해주시듯,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받은 것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이해시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서 전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완전히 죽지 않는다면 그대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완전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느님께 분명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엔 분명 그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분명 잘못된 해석과 전달입니다.
욥은 죄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냥 세상에 욥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해 그런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성경을 옳게 해석해서 전해준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틀렸던 것입니다.
욥 친구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느님의 수준처럼 되지 못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민수기 13-14장)에 관한 내용을 살펴봅시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여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보다 눈앞의 어려움에 압도되어 백성들을 낙담시켰고, 이는 결국 40년간의 광야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하느님을 믿고 쳐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 둘만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신교는 인간이 하느님의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여깁니다. 특별히 성체성사의 능력이나 죄를 용서하는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도 포기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성경해석도 제한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해석해봐야 그 틀이 완전한 성령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한 성당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프레스코화 ‘에체 호모’를 아마추어 복원가가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모습을 심하게 훼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작자의 의도와 작품을 '그대로'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겸손함 없이 임의로 해석하고 개입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그러한 능력이 없는데도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믿었던 성모 마리아처럼 되어야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사전적 정의로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 또는 모임’인 회식이지만, 단합과 친목, 사기, 결속력 고양을 위해 회식을 합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사를 외치지요. 저도 종종 건배사를 해달라는 청을 받는데, 그때마다 갈등입니다. 어떤 건배사가 좋을지를 도대체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6살 먹은 딸과 아빠의 대화 내용을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아빠와 딸이 근처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단체 손님 중의 한 명이 건배사를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이 말을 들은 6살 먹은 딸이 “아빠, 저 아저씨들이 마시는 게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어른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거야.”라고 대답하자, 딸이 곧바로 말합니다.
“그럼, 술 마시면 건강해져?”
건강을 위해 술을 끊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건강을 위한다면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어린 딸의 눈으로는 정말 이상한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면서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죄와 더 가까운 삶을 살면 어떤가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 것에 대한 욕심과 이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어떨까요? 이 모습이 정말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이상한 사람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할 수 있기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보다 세상의 것을 더 먼저 바라보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보다 순간의 만족을 먼저 챙기는 비정상적인 삶을 선택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부족과 나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정상으로 갈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서 비정상적인 삶이 아닌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제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 모두 내어 맡기면서 정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상의 삶만이 진정한 행복의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순간의 만족도 세속적인 풍요도 없지만, 진짜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잘못으로부터 뭔가를 배워라.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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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진리의 영께서는 진리를 알게 하시고 진리를 살게 하시며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과 생명을 우리들에게 드러내십니다. 살아계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삶의 방향과 삶의 목적을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획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이렇듯 성령께서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인생의 여러 선택 앞에서 참된 구원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또한 앞으로 올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시고 이끄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께서는 예수님의 약속이고 선물입니다.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한 걸음을 내딛게 하십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시며 우리를 이끄시고 때론 뒤에서 밀어주시며 때론 나란히 걸으시며 우리 모두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에는 거짓과 실패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한 빛이 되시고 지혜가 되십니다. 깨어있는 일상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진리의 영께서는 삶의 방향이시며 삶의 목적이십니다. 진리의 영께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의탁합니다. 진리의 영이시여,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생명의 오늘이게 하소서.
사도행전 17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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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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