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았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알렐루야.
하느님, 복된 마티아를 사도단에 들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하느님 사랑의 한몫을 받고 뽑힌 이들 대열에 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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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15-17.20-26)
마티아가 뽑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 오늘 복음
(요한 15,9-17)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사도 1,15-17.20-26
오늘 제1독서
마티아가 뽑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16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20 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그래서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26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요한 15,9-17
오늘 복음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14일
정성윤 베드로 신부
✚ 성 마티아 사도 소개 00:08
✚ 미사시작 01:18
✚ 강론시작 09:14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하느님의 선물
오늘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과 죽음으로 빈 열두 사도의 자리를 채우고자 새로운 사도로 뽑힌 마티아 사도의 축일입니다. ‘마티아’는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 흔한 이름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양들을 돌보도록 그리스도께 위임받은 베드로가 사도들의 으뜸으로서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먼저 방향을 제시합니다. 배반자 유다를 대신하여 그의 직책을 넘겨받을 이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이에 “그들은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사도 1,23) 앞에 세웁니다. 베드로가 그들을 앞세우는 대신 모든 사람에게 추천을 받고, 거기에서 뽑히는 이가 형제들에게 존경받도록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하여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1,21-22)을 뽑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를 보고 알고 믿게 된 이 가운데 하나라야 자신들과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1,22)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뒤 모두 함께 기도하고 나서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힙니다. 베드로와 동료들은 이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하였습니다.
요즘 가톨릭 교회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시노달리타스’입니다. ‘함께’라는 뜻의 그리스 말 ‘쉰’(syn)과 ‘길’이라는 뜻의 ‘호도스’(hodos)가 합해진 말입니다. 교회의 직무를 맡은 봉사자들과 믿음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함께 걸어가는 우리 교회의 여정, 아름답지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과 기도의 선택
“기도를 하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제비뽑기로 마티아를 사도로 뽑은 것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선거철이기도 하고 교황의 콜클라베 선출이 영화화한데다 새로운 교황 선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며칠 전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 전 당원 투표에 의해 뒤집혔지요. 당의 실권자들이 자기 입맛대로 후보를 교체하려다가 당원에 의해 뒤집혔는데 이것이 제가 보기에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고 민주주의 정의의 실현입니다.
민주(民主)란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이지요. 국민이 주인인 정치를 해야 하는데 권력을 가진 자는 너나없이 자기가 주인인 듯 자기 입맛대로 모든 것을 주무르려고 합니다.
이것이 교훈이 되어 대통령 선출도 민주적으로 잘 되길 바랍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교황 선출은 잡음 없이 잘된 것 같이 들립니다.
추기경 대의원의 삼 분의 이의 표를 얻어야 선출되는 방식이지만 이 교황 선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선출은 사람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들의 선출을 통하여 뽑으신다는 것이 세상의 선출과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도 이런 뜻에서 다음과 같은 주님 말씀을 들려줍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제자나 도구가 된 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그 뜻에 따르는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본래의 뜻이지만 우리가 무엇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선택이나 공동체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고 이런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지요.
마티아 사도의 선출 방식인 제비뽑기도 이런 믿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세속적이거나 가볍거나 장난스러운 선출 같아 보이고, 그래서 우리 각자의 심사숙고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한 끝에 선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비뽑기는 우리 인간의 이런 생각을 깨는 겁니다. 인간의 심사숙고와 진지한 논의를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온전히 하느님 뜻에 맡기는 것이라는 믿음이고 그 믿음에서 나온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기도를 통해 우리 생각과 의견을 가능한 한 비워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믿음에서 저는 요즘 옛날에 비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생각을 비우고 다른 이의 뜻을 따르려는 곧 양보와 순종의 뜻도 있지만 제 생각을 비울 때 다른 이를 통해 하느님 뜻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도 자주 이런 믿음의 선택을 했습니다. 기도하고 성경책을 펼쳐서 성경 말씀대로 하거나 갈림길에서 맴돌기를 한 뒤에 쓰러지는 쪽이 하느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쪽이라고 믿고 가거나 하였지요.
그러므로 거듭 얘기하지만 의심 없이 그렇게 믿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인간의 많은 생각을 빼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생각이나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믿음과 기도의 선택을 매 순간 하는 우리의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
오늘은 사도 마티아 축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가리옷 유다의 빈자리를 마티아가 채우게 되는 선출과정을 보여줍니다. 곧 하느님께서 뽑으신 이를 받아들여 ‘사도단’이 채워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가 부활의 증인으로 직무를 맡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삼으십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5-16)
참으로 놀라운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친구’로 삼으십니다. ‘친구’란 ‘깊은 친교’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모세가 하느님과 친구처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였듯이, 친교의 ‘깊은 관계’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으로 맺는 친교입니다. 하느님과의 영으로 맺는 깊은 친교는 우리들 서로의 관계를 ‘깊고 거룩한 관계’로 이끌어 갑니다. 곧 영의 열매를 ‘우리들 안에서’ 맺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로 삼은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그러면,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그것은 ‘사랑’이라는 열매입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사랑’은 친교의 영이 맺는 열매입니다(갈라 5,22-23,사랑,기쁨,평화,인내,호의,선의,성실,온유,절제).
그렇습니다. 바로 이 ‘사랑’이라는 열매만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열매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1코린 13,8.13.). 곧 ‘스스로 접어버리지 않는 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이 영원한 까닭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이토록, 우리가 사랑할 때 신비롭게 당신과의 영원한 사랑 안에 우리를 가두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7)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고, ‘친구’라는 은총이 실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4)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더불어 살아야 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인은 경쟁자이이거나 적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헐뜯고 비난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서라도 ‘위해 주어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온전한 모습을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봅니다. 그것은 바로,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랑입니다.”(요한 15,13).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5,11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뽑혔다고 믿는 사람이 끝가지 가는 이유와 뽑기의 필요성
공지: 사제연수 관계로 목요일과 금요일 복음 묵상이 없겠습니다.
오늘 성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성 마티아는 가리옷 유다의 자리를 이은 사도입니다. 그는 제비로 뽑혔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로또의 주보 성인’이라고도 불립니다. 아무리 제비로 뽑았지만, 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뽑혔다는 믿음은 그 일을 수행하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결혼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어떤 이들은 결혼식은 하지 않고 사귀기만 합니다. 하느님이 맺어주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보나 마나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는 명확한 표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믿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는 이유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지만, 관계도 믿음이 약해지면 깨지게 마련입니다. 만약 결혼했는데, 자기가 한 것처럼 생각할 때 힘든 일이 오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과 왜 결혼했을까?’
내가 한 결혼이기 때문에 깨지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주님께서 묶어주신 것이라고 믿을 때는 예수님의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처럼 좀처럼 깨지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은 내가 된 것일까요? 아니면 국민에 의해 뽑힌 것일까요? 만약 뽑혔다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하게 만든 것입니다. 혹은 “내가 했으니, 내가 지킨다.”라는 식으로 전쟁과 준하는 상황도 아님에도 국민을 향한 계엄령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뽑혔다고 믿을 때 일을 끝까지 잘 수행해 낼 수 있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뽑혔다고 믿을 때는 그 뽑아준 이가 충만한 ‘도움을 줄 것’ 또한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못 해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세를 이집트로 보낸다면 하느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을 빼 올 지팡이도 들려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어야 일을 해 낼 수 있고 온갖 어려움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뽑아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께서 뽑아주신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뽑히는 ‘예식’을 행해야 합니다. 그 예식을 통해 누구나 뽑혔다고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예식이 필요합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은 돌아가신 아빠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왕래했지만, 삼촌 집에 식모처럼 얹혀사는 중이었습니다. 애순 엄마는 애순이가 그 집에서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는 것을 듣습니다. 조기를 애순이만 뺀 숫자만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는 그들이 좋아하는 조기를 내던지며 애순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애순은 이 과정을 통해서만 뽑혔음을 믿게 됩니다.
세례는 왜 받고 혼배성사는 왜 할까요? 성품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예식을 통해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은 그 예식에 참여한 자기 자신입니다. 그 예식을 통해 진짜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식은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살과 피라고 성체성사 때 굳이 말하는 것일까요? 믿지 않으면 성사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을 때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 빵과 포도주가 봉헌됩니다.
많은 이들이 왕이 되기 위해 바위에 꽂힌 검, 엑스칼리버를 뽑으려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젊은 아서만이 검을 뽑아내고, 이로써 그가 영국의 정당한 왕임이 증명됩니다. 엑스칼리버를 뽑는 행위는 아서가 신성한 선택을 받았음을 공표하는 명확한 ‘표징’이자 ‘예식’입니다. 이 예식을 통해 아서는 자신과 백성들 모두에게 왕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인받고, 이를 바탕으로 왕국을 이끌어갈 힘과 정당성을 얻습니다. 예식은 이렇듯 ‘인정받는 행위’입니다. 그 인정이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났지만 자정이 되어 급히 떠나야 했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 한 짝을 남깁니다. 왕자는 유리구두가 발에 맞는 여성을 찾아 신데렐라를 다시 만나고 결혼합니다. 유리구두는 신데렐라가 왕자와 연결될 운명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인정받는 표징’입니다. 유리구두를 신어보는 과정은 마치 신데렐라의 특별한 신분을 확인하는 ‘예식’과 같으며, 이를 통해 그녀는 이전의 힘든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위와 행복을 얻게 됩니다.
어머니는 ‘저의 생일’ 때 어깨를 잡으시고 ‘엄마는 일곱 살까지만 키워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저의 생일이 아니었고, 어깨를 잡지 않았다면 그 임팩트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티아를 뽑기 위해 그들이 단순히 제비뽑기만을 한 것이 아닙니다.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 제비뽑기가 단순한 운이 아니라 하느님이 개입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도 관계도 구원도 믿음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위해 반드시 예식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인정받았음을 믿게 하는 예식이 반드시 필요하여 주님께서 칠성사를 세우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우리의 삶은 행복과 고통으로 나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행복과 고통이 우리 삶을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지만 고통을 잘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 오히려 고통을 통해 힘을 내며, 고통이 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지내온 삶을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를 고통이 만들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말하는 것, 글 쓰는 것이 한때 제일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의 ‘빠다킹 신부’를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인간관계의 고통이 있었지만, 이를 지나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시험의 고통도 컸지만, 이를 통해 노력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몇 차례 입원하는 등, 고질적인 허리 통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운동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지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했습니다. 포기가 아니라 정면에서 마주 서야 했습니다. 그래야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도 위로를 건네는 힘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목숨을 바치십니다. 하느님께서 겪으신 고통의 무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것으로 끝이었을까요?
그 사랑의 결과는 우리 모두의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지금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고통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사랑으로 커다란 위로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의 모범을 따라 서로 사랑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사랑은 고통을 피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게 되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이 힘들기에 우리는 사랑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서로를 통해 삶의 이유를 찾고 삶의 무게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원의 길에 그만큼 다가가는 방법이니 말입니다.
때로는 고통을 견디는 과정 안에서 흉터가 남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나의 길을 증명하는 명예로운 표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벤저민 프팽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우리를 친구라고 받아주신 예수님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한순간이 모든 순간이 됩니다. 친구라고 부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 삶에 가장 큰 기쁨입니다.
친구라는 가장 편한 빛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거짓 없는 빛이며 기쁨입니다. 가장 좋은 마음을 서슴없이 주십니다. 쉽게 변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며 단단한 관계입니다.
친구는 언제 어느 때라도 가까이 있습니다.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기도도 좋은 친구가 되고 묵상도 좋은 친구가 되어있습니다. 함께하는 기쁨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최고의 사랑을 만나는 만나고 바라보는 친구같은 편한 오늘 되십시오. 가장 좋은 친구가 있어 가장 아름다운 오월입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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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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