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분이 지체 없이 오시리라. 그분은 우리 구세주, 이제는 우리 땅에 두려움이 없으리라.
하느님, 거룩한 동정녀의 출산을 통하여 영광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이 강생의 놀라운 신비를 온전한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거행하게 하소서.
2024년 12월 19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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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판관 13,2-7.24-25)
천사가 삼손의 탄생을 알리다. - 오늘 복음
(루카 1,5-25)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 오늘 말씀 카드
(판관 13,25)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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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13,2-7.24-25
오늘 제1독서
천사가 삼손의 탄생을 알리다.
그 무렵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사이의 뿌리, 민족들의 깃발로 우뚝 서신 분, 지체 없이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루카 1,5-25
오늘 복음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19일
조기영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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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경건한 침묵 안에 머물기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루카 1,20).
하느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즈카르야를 ‘침묵’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침묵 속에서 그는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게 되고, 세례자 요한의 할례식 때, “그의 이름은 요한”(1,63)이라고 글 쓰는 판에 아기의 이름을 적으며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되었기 때문에, 엘리사벳은 나이 많은 자신이 어떻게 임신하게 되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사벳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느님의 시선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1,24-25 참조).
‘경건한 침묵’과 ‘온전히 하느님의 시선 안에 머무름’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 방법이며, 하느님과 대화하는 방법입니다. 믿음은 침묵과 하느님의 시선 안에 온전히 머무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라납니다.
생각 없이 떠들어 대는 수다, 소란스러움, 요란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함 등 이런 방법으로 믿음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체 앞에 있는 시간은 우리를 ‘경건한 침묵’과 ‘하느님의 시선’ 안에 온전히 머물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 성탄을 준비하며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 좋겠습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즈카르야를 반면교사 삼아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고, 그 가운데서도 즈카르야가 더 중심에 있습니다. 천사의 말을 믿지 않은 사람이 즈카르야였기 때문입니다.
판관기 삼손의 탄생 경위에 천사의 말을 들은 것은 아버지 마노아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는데 세례자 요한의 탄생 경위에는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들었고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쩌자고 믿지 않았을까요? 청원이 받아들여졌다고 천사가 말하는 것을 보면 자기가 청원한 것이 받아들여졌는데 어쩌자고 믿지 않았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 그 말을 들었으면 그 말에 너무 기뻐했을 것이고 즉시 믿었을 텐데 너무 늙었고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뒤에 들었기에 얼떨떨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은 참 고약한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타이밍에 맞추지 않는 분이십니다. 즈카르야가 아기를 주십사고 젊을 때 청할 때는 주지 않으시다가 다 늙어 포기했을 때 주시니 이것은 무슨 심보입니까?
인간 욕심의 타이밍이 아니라 인간구원의 타이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굳게 믿듯이 시간의 주인은 언제나 하느님이실 뿐 아니라 특히 구원의 시간은 하느님께서 주인이시고 그중에서도 인류 구원의 시간은 더더욱 하느님께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욕심을 받아들여 주시기를 청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원해주시기를 우리는 청해야 할 것이고, 그때를 하느님께 맞추는 것을 즈카르야를 보고 다시 말해서 즈카르야를 반면교사 삼아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즈카르야를 반면교사 삼을 일이 또 있습니다. 침묵입니다. 즈카르야는 뚫린 입으로 불신을 토로했고, 그 결과 침묵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보고서 우리는 불신의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하느님께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 불신의 말은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침묵이 숙성되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되면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입은 열려야 하겠지요?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탄생하는 일
우리는 어제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들었고,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곧 어제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 요셉의 이야기였고, 오늘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이들”(루카 1,6)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예고는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고 너무 늙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서 거룩한 인물이 태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실, 성경에는 여러 거룩한 여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창세 11,30),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창세 25,21), 야곱의 아내 라헬(창세 29,31),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 1,2),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판관 13,2), 그리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루카 1,7)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거룩한 인물들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장소와 시간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곧 세례자 요한의 잉태 예고 장소인 성전의 ‘성소’와 예수님 잉태 예고 장소인 ‘나자렛’은 두 제단 곧 두 계약을, 그리고 옛 계약에 따라 ‘제사를 드리는 시간’에 벌어진 이 일은 구약 시대와 신약을 연결해줍니다.
따라서 요한의 출현은 옛 계약의 율법과 사제직이 끝났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경계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벽이 무너지고 막힌 것이 사라집니다. 이는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사실, 요한은 불임인 늙은 여인에게서 태어나고, 그리스도는 동정인 젊은 여인에게서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어떤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막시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의 인물인 요한은 늙은 여인의 식어버린 피에서 태어나야 했고, 장차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실 주님은 꽃처럼 피어나는 처녀의 몸에서 피어나셔야 했던 것입니다.~그리고 즈카르야는 의심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었고, 마리아는 곧바로 믿었기에 세상을 구하는 ‘말씀’을 잉태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아기의 잉태를 알려주면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줍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이처럼, ‘요한의 사명’은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드러냅니다. 곧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루카 1,17)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사명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혹은 우리가 만나는 이 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탄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비를 입었으니, 기뻐하며 자비를 선포하고 베푸는 일입니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4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주님!
당신께서는
저의 무능과 허약 안에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피하고 도망쳐도
보물을 찾듯 찾아오시고,
거부하고 배신해도
목숨처럼 아끼시며
끝까지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 지금 지체치 마시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소서.
제가 응답하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이루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자녀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대한 대로 된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구세주의 선지자가 그에게서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못합니다. 그것을 믿었다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창피만 당할 것입니다. 그가 평생 청해온 것이면서 믿지 못하고 청했던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지, 안 되는지 시간이 지나 보면 알 것을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 하게 될 것이다.”
천사가 즈카르야의 입을 막아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 벌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믿기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지 못하고 엘리사벳과 합방을 하지 않았다면 요한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부모의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차곡차곡 자녀의 미래를 설계한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지켜보게 됩니다.
리처드 윌리엄스는 두 딸,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을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우겠다는 확고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TV에서 한 테니스 선수가 우승 상금으로 4만 달러를 받는 것을 보고, 테니스의 잠재적 기회를 깨달았습니다. 흑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스포츠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는 딸들이 태어나기 2년 전부터 전혀 무지했던 테니스에 관심을 가지고 78페이지에 달하는 ‘챔피언 육성 계획서’를 작성하였습니다. 비디오 레슨과 도서를 통해 독학하며 딸들에게 직접 테니스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그는 딸들을 벽에 세우고 빠른 속도로 공을 쳐 내며 방어 능력을 키우는 등 독특한 훈련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리처드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같다.”라는 신념 아래, 딸들의 훈련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장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지도 아래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으며, 나중에는 아버지의 헌신과 비전에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세레나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항상 우리를 믿어주셨고, 그 믿음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리부터 믿고 계획하여 자녀를 키우면 자녀는 성공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야 테니스 재능을 깨닫고 시작한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된 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실험을 자녀에게 한 대표적인 심리학자가 루돌프 폴가르입니다. 헝가리의 심리학자 루돌프는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자녀들을 체스 천재로 만들 것이다.”라고 계획을 세웠고, 그 믿음에 따라 자녀들에게 체스를 가르쳤습니다.
첫째 수잔 폴가는 세계 4위까지 올랐고, 둘째 소피아 폴가는 여성 선수 1위, 셋째 주디트 폴가는 당시 최고의 체스 천재였던 바비 피셔를 꺾고 당당히 최연소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서 자녀에게 어떤 삶을 바라는지 깨닫고 그렇게 준비하고 키우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훌륭한 자녀를 키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 앞에서도 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의 선택권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빼앗긴 자녀는 부모에게 이용당한다 느끼기에 온전한 자존감으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은 모호합니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자녀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란 믿음은 가져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만 그렇게 창조하셨을까요? 우리 모두도 세례자 요한처럼 귀한 인간입니다. 다만 부모가 그렇게 믿어주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자녀가 어디까지 성장하느냐가 달렸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렇습니다. 부모는 유대인들이 자녀가 하느님의 것임을 인정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한 목적이 있을 것이란 것은 믿어주지만, 그의 삶을 구체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찾아가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보면 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긋나는 아우구스티노를 보면서 하느님은 그런 삶을 살라고 창조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우구스티노는 회개하고 하느님 앞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분명 우리 자녀가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 앞에 큰 인물이 되려고 창조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의 방향은 본인이 찾아가도록 유도하며 믿어주고 기도해주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
상대의 이야기를 자신의 스토리로 바꾸는 식의 대화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몸이 안 좋은데?”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안 좋아.”라고 말합니다. “새 옷 하나 사야겠는데?”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사야 하는데….”라고 받아칩니다.
몸이 안 좋다는 친구에게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나도 안 좋아.”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나의 아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나의 아픔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에서 서운함도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디가 안 좋아?”라고 물으면서 그의 아픈 마음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사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자기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했는가는 전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이 기분에 맞춰서 말과 행동을 유추해서 조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굳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상대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는가에 집중하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듣다’를 뜻하는 영어 ‘hear’와 같은 발음을 가진 ‘here’는 ‘여기’라는 뜻입니다. 이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공감하려면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들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 없습니다. 또한 여기에 있으면서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면, 진짜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상대에게 좋은 기분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사제인 즈카르야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해 말해주지요. 하느님의 뜻이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해준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천사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
자기만을 바라보는 부족한 믿음은 ‘여기서’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듣지 않으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만을 바라보면서 말하지 말고,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자기 뜻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과연 주님께 어떤 기분을 전달할 것 같습니까? 주님 뜻에 맞춰있다면 주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뜻에만 맞춰있다면 주님께서는 내게 크게 실망하고 서운해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끊임없이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안주하지도, 안일하지도 않으면서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겨울에도 탄생이 있고 겨울 속에서도 빛은 빛으로 빛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이름이 기쁨의 빛이 됩니다. 기쁨을 만드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기쁨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기쁨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더 추운 곳을 향하는 기쁜 탄생입니다. 저마다의 탄생을 다시 만나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다시 만나는 탄생의 의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아름다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어느 이름은 치욕이고 어느 이름은 기쁨입니다. 은총 안에는 삶에 필요한 기쁨과 환희 평화가 있습니다. 탄생으로 삶을 빚어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기쁨의 의미입니다.
기쁨은 기쁨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기쁨으로 탄생합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이름이 빛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도 기쁨의 빛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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